성결신앙의 회복

- 성결신앙의 진단과 비전 -

 

홍순우(장충단교회 원로목사, 교단증경총회장)

 

들어가는 말 21세기 새 천년이 바로 눈앞에 다가왔다. 반갑게 맞이해야 하지만 어쩐지 불안하고 켕기는 바가 없지 않고, 그렇다고 새 천년이 오는 것을 피해갈 수도 없는 일이다. 시간의 속성과 우리 인간의 운명과의 상관관계를 기피하기보다는 솔직하고 진지하게 맞아 정면대결 혹은 정면돌파해야 한다. 우선 21세기를 맞이하면서 몇 가지 다행스러운 일들이 있다. 그 첫째는 시간을 쪼개 나누어 놓은 사실이다. 끝없이 영원한 억겁(億劫, 불교적 용어)을 그대로 그냥 거기서 살아야 한다면 인간은 아마 지루함과 지겨움 그리고 단조로움에 미쳐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무한한 시간을 광년(光年), 천년(千年), 백년(百年), 십년(十年), 년(年), 월(月), 일(日), 시((時), 분(分,), 초(初) 등 열 단계로 쪼개 놓은 것은 말로 형용키 어려운 슬기요,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만약 이렇게 시간을 나누어 놓지 않았더라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포스(sisyphos)의 저주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의 부조리와 모순도 내일이면 나아지려니 하는 기대와 여망으로 오늘의 오뇌(懊惱)를 참고 이겨낸다. 우리가 여망(餘望)을 걸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시간이다. 이런 근거에 의해서 새 천년은 우리에게 기대와 흥분 그리고 스릴을 안겨준다.

 

성결신앙의 현주소

1. 한국성결회의 발상(發祥)의 의미

'순복음을 동양에'라는 사명을 받고 일본 동경에서 시작된 것이 OMS 선교회이다. 카우 만과 길보른이 '아무런 선교비 보장이 없이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카우만 부인의 소유였던 피아노를 팔아서 여비로 쓰면서 시작한 것이 OMS 선교회가 가지는 특색이라 하겠다. 이 동양선교회 성서학원에서 공부한 김상준, 정빈 양인에 의해 1907년 서울에서 성결교회의 새싹이 돋아났다. 이때는 벌써 1885년에 미국의 막강한 교파 배경과 그 후원을 입고 찾아온 장로교, 감리교의 선교사들이 활동하기 시작한 지 22년이 지난 때요, 평양과 원산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성령 의 부흥 불길이 전 한반도로 퍼져 나가기 시작한 때요, 한반도 전역을 감리교와 장로교 선 교사들이 분할해서 선교하기로 협정이 체결되어 있던 때였다. 이는 로마제국의 지하 땅굴 속에 있던 소수 그리스도인에 의해 밀라노 칙령이 내려진 사건이나 구한말 대원군의 척사위정(斥邪衛正)이란 추상 같은 분위기 속에 기독교가 상륙한 사건과 견주어 볼만한 사건이다. 바위 틈에서 나무가 싹터 자라나는 격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에 의한 하나님의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에 한국 성결교회가 없어서는 안될 당위성의 산물인 것이다.

2. 성결교회의 특징들

1) 점진적 회심보다는 급격한 회심

성경말씀을 듣는 순간 성령의 감동 감화가 내려질 때 "형제들아 내가 어찌 할꼬"라고 가슴을 치며 회개 자복하고, 사죄와 구원의 확신을 얻는 것 그리고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의 자유 해방감에 취해 벌떡 일어나 춤을 덩실덩실 추고, 박수를 치며 찬송을 부르는 것이 초대 성결교의 장점이요, 특색이었다.

2) 간접전도가 아니라 직접전도

원래 OMS의 출발 동기는 오직 전도일 뿐이었지 교회의 조직에 있지 않았다. 노방전도나 축호전도를 해서 가까운 교회에 나가도록 안내하고 지도하는 것이었다. 후일에 성결교회로 조직이 되고 나서야 교회 부흥에서 간접전도가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선교 후원 교단이 막강한 선교회에서 병원, 학교, 사회사업소 등을 통해 이 땅 백성들을 끌어모을 때 우리 선배들은 선망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3) 신유 4중복음 중에 세번째가 신유다.

성결교 초창기에는 성령충만, 성령세례와 동시에 영혼의 병인 죄를 용서받고, 마음의 병인 번뇌에서 놓임받고, 육신의 병인 질병에서 고침받는 역사가 꼬리를 물고 일어 났었다.

4) 내적인 죄를 숨기지 못하고 고백, 회개함

성령의 역사 중에 가장 큰 것은 죄인의 내적으로 숨겨둔 죄를 밝게 비춰서 노출시키는 것이 다. 성령의 감화 감동을 받으면 필연적으로 자기 속에 잠복해 있는 죄가 크고, 무섭고, 밉게 느껴진다. 그것을 그대로 부둥켜안고 살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토해 내친다. 그런 현상이 바로 회개 자복이다. 초대 성결인의 특징은 보통 사람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것까지도 큰 죄로 깨닫는 것이다. 그것은 그냥 묻어 두면 그 내재하는 죄와 외재하는 마귀가 은밀히 내통을 해서 나를 죄짓게 만들고, 죄가 누적되면 지옥으로 끌고가려는 죄의 온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 때문에 울며, 통곡하며, 자복하게 된다. 죄에는 크고 작고, 무겁고 가벼운 것의 구별이 없다. 따라서 아무리 작은 죄라도 속에 묻어 두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것이 성결인이었다.

5) 불같이 뜨거웠다 / 구령열에 불탔다

초대 성결인은 요한 웨슬리가 1738년 5월 24일 수요일 이른 아침에 체험했던 바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고 고백한 것과 동질적인 체험을 강조한다. 또한 성결인이라면 이같이 마음이 뜨거워지는 체험을 해야 마땅한 것으로 여겼었다. 그런 신앙 선배들의 뜨거운 마음, 구령열(救靈熱)이 오늘의 성결교회를 만들어 냈다고 보아야 한다. 이 같은 뜨거움, 구령열은 곧 사랑으로 행동화되어서 길거리, 시장바닥을 누비고 돌아다니면서 노방전도를 했다.

 

성결인의 현실진단

"질문이 없으면 해답이 없다"는 독일의 격언이 있다. 우리가 만일 현실에 안주하여 문제 의식이 없으면 그것은 마치 중병에 들어 있음에 대한 불감증과 같은 것이다. 인간은 간사해 서 쉽사리 낙관하고 무사태평을 구가하기 쉬운 존재다. 한국의 장로교-감리교-성결교라는 삼대 교단 대열에 끼어온 것에 만족하고 있는 동안 침례교와 순복음교가 앞서가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만의 하나 새천년을 맞아 웅비(雄飛)의 기상이 꺾이고 현실 자랑에 만족하고 있다면 역사의 현장에서 뒤안길로 물러서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우리는 이대로 괜찮습니까?"라는 물음이다. 그러면 분명히 "아니야, 그것은 안되고 이래야 돼" 하는 해답을 받게 될 것이다. 그 해답을 모색해 보자면

1. 지도자를 육성해야 한다

'인사(人事)는 만사(萬事)'다. 어느 집단이나 공동체든 그 구성원이 훌륭하고, 그 집단의 영도자가 훌륭하면 그 집단은 끝없이 발전한다. 지도자가 빈곤이면 집단 구성원이 중구난방 (衆口難防)에 각개약진(各個躍進)하는 오합지졸(烏合之卒)이 되어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훌 륭한 지도자는 거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길러내야 한다. 지도자 빈곤의 악순환은 인간성의 불순에서 그 원인을 찾게 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나 나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하는 기질이 지도자 배출을 저해한다. 지도자가 될 싹이 보이면 온갖 중상모략, 권모술수를 다 동원해서 타도하고 말아야 직성이 풀리는 습성이 우리들 혈관에 물려받은 사색당쟁(四色黨爭)의 유산이다. 언제나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고매한 인격자는 간교한 모사꾼에게 당하게 마련이다. 훌륭한 지도자를 길러내려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크게 뉘우치고 바로 서야 한다. 내가 훌륭한 지도자가 못되면 훌륭한 지도자를 육성함에 일조(一助)를 해야 한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얼마든지 자라나서 큰그릇이 될 가능성과 개연성을 가진 자가 심술궂은 무리에 의해 된서리를 맞고 풀이 꺾인 경우가 적지 않게 있다. 새 천년에 이런 새싹들이 다시 솟아나야 한다.

2. 첫사랑을 되찾아야 한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2) 하신 주님의 예언이 지금 우리에게서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사랑의 냉각요인은 불법이다. 불법은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이 짓밟히는 것이다. "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성품을 다해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와 같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하나님의 제일 크고 으뜸 되 는 계명을 묵살하니까 사랑은 자취를 감추는 것이다. 사랑이 있는 곳이 천국이라면, 사랑이 고갈되고 메마른 곳은 미움이 판치는 생지옥이요 약육강식의 각축장이 되고 말았다. 인정도 메말랐다. 오직 자기의 이익만이 궁극적 목적이다. 실속을 차리고, 감투를 쓰고, 이권을 위해서 내편이 아닌 자는 내 원수라는 이분법의 흉악한 폐단이 교계에서 판을 친다. 음흉한 술수를 가지고 사람을 농락하고, 세상을 우지좌지하는 존재를 따라다니는 군상, 문전성시하는 양상이 우리의 실상임을 직시하고 개탄하는 사람이 늘어만간다. 새 천년의 급격히 변화하는 세태 속에서 사람들이 구하고 찾는 곳은 사랑이라는 오아시스이다. 그것은 교회의 무한한 사랑을 기대하게 된다. 교회에 사랑이 그리워서 찾아오는 군상이, 사랑이 실종되고 메말라 버린 교회, 증오와 아귀다툼만 하고 있는 교회를 보게 된다면 실망하고 교회로부터 발걸음을 돌릴 것이다. 아마도 이러한 교회는 구경거리나 비웃음거리가 되고말 것이다. 복음의 핵심은 사중복음이고, 사중복음의 열쇠는 성결이며, 성결의 극치는 아가페적 사랑이다. 따라서 사랑이 빠진 성결교회,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성결인은 알맹이가 없는 쭉정이일 뿐이다. 지금 우리 성결교회의 사랑을 정확하게 진단한다면 몇점일까? 합격선일까 아니면 낙제점일까? 솔직하고 진실무위하게 자가진단해 보아야 한다.

 

끝맺는 말 : 비전

1. 하나님이 함께하심

요한 웨슬리 기념비의 비문에는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한국 성결교회를 사랑하신다. 아무리 어렵고 험악한 일이라도 다 합력해서 유익하게, 선하게 매듭지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1943년에 교단이 해산될 때도 사탄은 이 땅에서 성결교회를 완전히 말살코자 했으나 일본이 망하게 되었고, 성결교회는 되살아났다. 1960년대 교단이 분열의 진통을 겪었을 때에도 완전히는 아니지만 재결합의 기적을 행하셨다. 우리의 환상과 꿈은 예성과 합치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 뿌리(기원, 전통)가 하나요, 교리 (신조, 사중복음)가 하나요, 성결인(같은 성결인)이기 때문이다. 장차 재림의 주를 영접할 때 함께 나아가 맞을 터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아무 조건없이 사랑으로 서로 얼싸안는 일이 새 천년의 꿈이요, 과제인 것이다. 인간적인 계산으로서는 불가능한 일 같다. 그러나 라인홀드 니버는 "사랑은 불가능의 가능성"이라고 했다. 제3의 오순절이 와서 성령의 강권적 역사가 있게 될 때 모든 장벽은 허물어지고 화해와 일치가 있게 될 것이다. 나는 반드시 그날이 올 것을 믿는다. "일치가 있는 곳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했다. 이는 분열과 분규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이 떠나가신다는 말의 반증도 된다. 예성과 하나가 되기 전에 먼저 우리 가까운 사이의 갈등과 불협화음을 사랑으로 녹여야 한다. 폴 틸리히는 "사랑은 분리된 것을 재결합하는 힘"이라고 했다.

2. 다음 세대에 희망이 있다

지금 우리 교단 군목들이 각 부대에서 제일 성실하다는 평을 받는다. 각급 지휘관들의 공통된 요구는 "성결 출신 군목들을 보내주시오"이다. 또한 서울신대 기숙사 학생들이 대거 밤에 뒷산에 올라가 열렬하게 기도하는 모습은 믿음직한 일이다. 교수들 가운데도 성결교회 전통을 높이 존중하며 성실하게 가르치는 분들이 있다. 반면에 각 지방에서 목회하는 젊은 세대가 노장들을 걱정하게 하는 부분들도 있지만 그래도 그들의 눈동자가 빛나며, 내일의 교단의 운명을 책임지고 나갈 야망이 이글이글 타는 것을 볼 수 있다. 기성세대가 노파심으로 걱정할 일이 아니라 기대와 여망을 걸고 기도해 주어야 한다. 특별히 우리 교단이 파송한 선교사들도 현지에서 훌륭하게 선교활동을 하고 있음은 자타가 인정하는 바이다. 이분들이 앞으로 훌륭한 지도자들이 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고 믿어도 될 만하다.

3. 진리는 영원하다

"모든 것은 없어져도 진리는 있다"라는 말은 진리의 영원성을 간파한 말이다. 우리 교단은 진리의 터전 위에서 세워졌고, 진리를 위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 교단은 영원히 진리와 함께 발전하고 부흥하고 빛날 것이다.

(활천 1999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