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래 목사의 <성결교회 목회에 대한 평가와 전망>에 대한 논찬

김한옥 목사(서울신학대학교 조교수: 목회신학)


목회는 신학적 기반 없이 할 수 있는 교회경영 기술이 아니고, 신학은 목회와 무관한 탁상공론이 아니다. 신학연구의 목적은 교회이며, 교회는 신학을 통해서 자기 존재의 이론적 기반과 활동의 근거를 확고히 한다. 특히 변화의 양이 크고 속도가 빠른 오늘날 이론과 실천 사이에 해석학적 상호수용이 신속하고 활발하게 이루어질수록 신학과 목회는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새 천 년을 바라보는 교단의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성결교회의 목회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I. 논문의 개요와 긍정적인 면

조 목사님은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 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결교회의 목회에 대하여 역사적, 경험적 관점에서 일목요연하게 다루고 있다. 이 논문은 크게 성결교회 목회의 평가와 전망으로 나누어 연구되었다.

먼저 앞 부분에서 조 목사님은 성결교회의 목회를 "시대적 특징"에 따라 셋으로 나누고 있다. 이 시기는 1. "비교파적"으로 직접전도와 체험적 신앙을 강조했던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 시대(1907-1921)>, 2. "개인의 구원과 삶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 부흥운동" 중심의 목회를 펼쳤던 <조선예수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 시대(1921-1943)>, 그리고 3. 계속 이어진 부흥운동과 교회교육, 해외선교를 목회적 특징으로 하는 <기독교 대한성결교회 시대(1945-현재)>로 구분된다.

앞으로 성결교회의 목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논문의 두 번째 부분에서 조 목사님은 목회의 이론과 실천론을 간략하게 제시하였다. 성결교회의 목회는 성결목회, 균형목회, 자기희생 목회, 경영목회,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목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논문 후반부의 골자이다.

이 논문은 다음과 같은 면에서 긍정적로 평가될 수 있다.

첫째, 성결교단에서 목양일념으로 사역하고 계시는 현장목회자가 직접 연구발표한 글이라는 점이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이 논문은 일선에서 목회를 하고 있고, 앞으로도 목회를 책임져야 할 목회자가 쓴 논문이기에 과거를 비평함에 있어서 지나치게 과장하거나 역사적인 목회유산들을 왜곡하지 않았고, 미래를 전망함에 있어서 신중함을 잃지 않았다. 이러한 정신은 이 논문을 이론적인 범주에만 묶어두지 않고 경험적이며 실제적인 것들까지 다루고 있다. 계시, 전통, 이성, 경험을 목회신학의 틀로 하는 현대 목회신학의 관점(Thomas C. Oden)에서 보면, 조 목사님의 글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둘째, 성결교회의 목회를 바르게 평가했다는 점이 긍정적인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다음 세 가지 면에서 발견된다:

1) 성결교회가 목회에 있어서 성결교회로서의 특성을 살리지 못했다고 지적한 점이다. 성결교단이 이만큼 성장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은혜이며, 선배 목회자들이 헌신적으로 목회한 결과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장점들을 제대로 유지·발전시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대형교단(특히 장로교)을 닮아가려고 하면서 우리의 것을 소홀히 여긴 아쉬움이 있다"(p.3). 성결교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간간이 이러한 자성의 소리를 들어온 것이 사실이다. 성결교단의 신학적, 목회적 전통으로 볼 때, 다른 교단보다 우수한 목회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것을 활용하지 못한 것은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2) 성결교회 목회에서 영적인 면과 신학적인 면의 부조화를 지적한 점이다. 발제자에 의하면, 성결교단은 초기에는 신학이 빈곤하였고, 최근에는 영적인 열의가 부족하다고 한다. 증빙할만한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지만, 성결교회를 포함한 과거의 한국교회들이 성경 및 신학교육이 부족하여 이단자들을 비롯하여 교회의 많은 문제점들을 안고 있었다는 점과, 오늘날의 교회가 아는 것은 많아도 영적인 열의가 부족하여 머리만 큰 교인들을 만들어 낸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것을 볼 때, 조 목사님의 평가는 정당하다고 할 수 있다. 발제자가 성결교회의 목회를 전망하면서 "균형목회"를 제안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3) 성결교회(한국의 대부분의 교단이 다 그렇듯이)가 장년위주의 목회에 치중하는 것과,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지적한 것도 동의할 수 있다. 아직도 교인수에 어린이들이 포함되기도 하고 배제되기도 하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볼 때, 어느 특정 계층만을 목회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목회학적으로나 교회론적으로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또한 오늘날 교회는 변화하는 세상과 문화를 더 이상 주도해 나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변화에 적절하게 적응하지도 못하고 무비판적으로 그것들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조 목사님의 지적은 합당하다고 생각한다.

셋째, 성결교회의 목회를 전망하면서 목회의 이론과 실천론이 두루 언급되고 있다는 점이 이 논문의 긍정적인 요인으로 평가될 수 있다. 조 목사님은 논문에서 이론과 실천을 구분하여 다루지 않고 <성결교회의 목회전망>이라는 제하에 성결목회, 균형목회, 자기희생 목회, 경영목회,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목회라는 소주제들을 다루었으나, 내용상으로 볼 때, 목회의 이론과 실천론이 다 포함되어 있다고 본다.

발제자가 제안하는 성결교회의 목회는 1. 영성과 체험, 2. 균형과 조화, 그리고 3. 목회자의 소명감과 철저한 헌신이 기초가 되고, 방법론적으로 1. 교역자 중심의 팀목회와 2. 선교지향적인 목회, 그리고 3. 다양한 방법으로 성도를 양육하는 목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어떤 이론가의 창작이 아니라 성결교단 목회자가 목회경험을 바탕으로 교단의 신학적, 목회적 특징들을 유기적으로 잘 조화하여 제시하고 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II. 비평과 평가

발제자 개인의 목회에 대하여 기술하는 것이 아니고 교단의 목회에 대하여 말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부담스러운 과제를 맡아서 수고해 주신 조 목사님께 감사를 드리며, 논찬의 성격상 몇 가지 점을 지적해 보고자 한다.

첫째, 목회와 관련하여 가장 근본적인 점을 거론하고자 한다. "목회"라는 말에 대한 정의가 먼저 내려져야 한다. 조 목사님의 논문에 보면 전도와 목회가 구분되기도 하고 같은 의미로도 쓰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전도중심의 목회"라는 말과 "초기 성결교회는 오직 전도에만 주력하였고 목회에는 주력하지 않았으므로..."(1면)라는 표현과, 성결교회의 목회를 전망하는 부분에서 교회의 모든 사역을 목회로 언급한 것에서 그런 인상을 받게 된다. 오늘날 목회학에 대한 이해가 매우 다양하지만 이 논문의 성격상 전도를 포함한 목사의 모든 사역을 목회라고 하면, 무난할 것 같다.

둘째, 논문형식에 대해서 지적하고 싶다. 전체 6면에 달하는 조 목사님의 논문은 간략하게 잘 정리되었으나, 너무 내용이 압축되어 있어서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예를 들면, 목회의 균형을 말하면서 "3) 교회내부, 외부 성장의 균형, 4) 교역자, 평신도의 균형"(4면)이라고만 되어 있어서 발제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짐작은 되지만 매우 난해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성결교회 목회의 역사적인 발전과정을 평가하면서 아무런 참고자료가 제시되지 않았고, 앞으로의 목회를 전망하는 부분에서도 교단적 차원에서 정리된 자료나 기타의 자료가 없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논문의 앞 부분에서 성결교단의 신학적 특징을 이론적인 기초로 제시하였더라면, 교단의 목회를 평가하는 준거가 될 수 있었고, 목회전망의 방향을 잡아주는 키의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 사료된다. 한 가지 더 지적한다면, 나오는 말 첫째에서 셋째까지의 글을 차라리 서론에다 놓았더라면, 독자로 하여금 이 논문에 대한 관심을 더 높일 수 있었으리라고 본다.

셋째, 내용 면에서 몇 가지 지적하고 싶지만, 조 목사님께서 바람직한 목회를 위하여 고려될 수 있는 다양한 개념들을 매우 포괄적으로 언급하였기 때문에 논찬하기가 난해한 면이 있어서 교단적으로나 목회적으로 가장 관심이 많은 <성결>에 대하여 생각해 보기로 한다.

조 목사님은 교단설립(1907년)에서 일제로부터의 해방에 이르기까지의 목회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과거 성결교단의 목회가 부흥운동을 통한 개인구원과 삶의 변화에 집중한 나머지 사회의 정의와 국가의 독립에 대한 성도의 의무를 강조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성결교단은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정책, 6.25 동란 등 민족적 고난의 어두운 터널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나오면서 순교의 신앙을 가진 인물들은 길러내었으나, 민족적인 독립투사는 배출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목회적 오류는 성도들로 하여금 독재자와 불의 앞에서 기도만 하고 지혜롭게 행동하지 않는 이중성을 조장할 수밖에 없다. 성결의 교리가 개인적인 면과 사회적인 면을 모두 수용하고 있다면, 성화된 개인의 사회적 의무를 특별히 강조하지 않는 목회는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목회적인 관점에서 성결은 하나의 이론에 머물러서는 안되고 목회훈련을 통하여 나타나는 삶의 형태, 기독자다운 생활의 실천이어야 한다. 즉 성결한 목사와 성결한 성도의 <표>가 있어야 하는데, 성결교단의 4678명의 교역자(목사 2420명, 남전도사 1318명, 여전도사 940명)와 60만명의 성도들 중에서 <사표>로 제시할 성결인은 과연 몇 퍼센트나 되는가? 그리고 100년을 바라보는 목회역사를 통해 성결교단 목회자와 성도들이 성결을 강조하지 않는 타 교단의 목회자와 성도들과 뚜렷하게 다른 점이 있는가? 목회현장에서 성결은 현실과의 엄청난 괴리를 목격하면서도 외치기만 하면 소속감을 갖는 교단교리에 지나지 않는가? 아니면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보여주는 성도의 구체적인 삶의 <표>인가? 이제 성결교회의 목사들은 교단 교리에 붙들린 성결인이 아닌 진정한 성결인이 되어야 하고, 성도들을 진정한 성결로 안내하는 목회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때이다. 조 목사님도 "오늘날 기독교가 이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가장 큰 요인은 믿는다고 하면서도 성결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결교회 목사는 모름지기 자기 자신이 성결한 자여야 하며, 성도들을 성결케 만드는 목회자여야 한다"고 지적하였고, 또한 이에 대한 목회적 대안으로 "자기희생 목회",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목회"를 언급하였지만 특별히 성결을 지향하는 목회론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러한 목회적 기준들은 다른 교단에서도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III. 좀 더 생각할 문제들

성결교회의 목회에 대한 평가와 전망이 조 목사님의 논문에서 훌륭하게 제시되었기 때문에 중복되는 주장은 피하고 논찬자의 관점에서 몇 가지 더 언급하고자 한다.

우선, 목회자의 목회신학이 정립되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구조상 교회는 담임목회자의 신학이 목회를 결정한다. 신학적 정립이 불분명한 목회자는 교회사역을 통해 얻은 경험을 정립해서 자신의 "목회철학"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올바른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얻은 철학은 다시 소속교단의 신학이나 아니면 어떤 목회신학으로 재표현되어야 한다. 목회는 신학적 기초 위에서 하는 것이지 철학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는 자신과 교회의 모든 일에 대하여 분명한 목회신학적 기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목회의 세 축이라고 할 수 있는 1) 사람을 이해하고 적절한 자리에 배치하는 일, 2) 사역을 이해하고 범위를 정하는 일, 그리고 3) 이 모든 것들이 유동적으로 움직여 교회의 목표와 목적을 성취하는 기술을 익히고 적용하는 일은 목회자의 신학적 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목회는 실천보다 이론 정립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실천론보다 이론이 먼저 정립된 목회는 계획성과 유동성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수 있고 항상 창조적일 수 있다. 또한 급속도로 변화하는 다양한 문화와 기술과 학문들을 교회에 수용할 수밖에 없는 오늘날 목회신학은 그것들을 수용하고 배제할 준거를 마련해 준다. 소위 성공한 목회자들의 방법을 복사해서 활용하는 목회는 긍정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개교회의 동질성 조차도 상실하게 만든다.

둘째, 교회의 대사회 봉사에 대한 이해와 올바른 실천이 필요하다. 성결교단을 포함하여 한국의 대다수의 교단들은 교회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목회에 큰 힘을 기울이지 않거나 그것을 효율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사회에 그리스도의 빛과 사랑을 적절하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적으로나 아니면 셩결교단적으로라도 하나의 대표적인 봉사기관을 두고 교회가 힘을 합한다면 국가적인 기아나 재난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교회가 큰 몫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언론사에 맡겨오던 일을 이제는 교회가 맡아서 해야 한다. 교회는 처음부터 복음전하는 일과 공궤하는 것을 병행하였다.

셋째, 함께 하는 목회, 함께 사는 목회를 구현해야 한다. 조 목사님도 균형의 목회를 언급하셨듯이 앞으로 목회자 홀로 하는 목회는 경쟁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논찬자는 <함께 하는 목회, 함께 사는 목회>를 제안하고 싶다. 먼저, 전교인이 함께 하는 목회로 새 틀을 짜야 한다. 그 이유는 교회론적인 전제에서 볼 때 그렇게 되어야 하고, 실제적인 면에서,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참여시켜서 목회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이다. 교단 목회자의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시정하려면 앞으로 얼마 동안은 여전히 대교회가 많은 교역자를 수용하여 목회자 위주로 목회할 수밖에 없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전교인이 목회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음으로, 교회는 통일한국 시대를 바라보면서 이제부터라도 함께 사는 목회를 실천해야 한다. 목회에서 개인의 구원과 축복은 여전히 중요한 주제이지만 함께 사는 방법을 모르면 그러한 은혜가 의미 없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앞으로 목회는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사는 <우주적인 동반자적 삶을 배우고 실천하는 목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가난과 독재에 시달린 북한 동포와 함께 사는 <약한 자와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목회>가 되어야 한다. 또한 통일 이후에 우리 주변을 둘러싼 세계 3대 강대국들과 함께 사는 <강한 자들과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목회>로 나아가야 할 것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개개인에게 구체적인 관심을 갖는 목회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목회의 틀은 설교자가 선포하는 말씀 중심의 목회였다. 목회는 주로 목회자 일인과 다수의 회중간에 오고가는 대화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오늘날 신앙의 사유화가 일반화 되어가고 있는(이미 되어 버린)상황에서 목회는 개개인의 가치와 그들의 관심에 주목하고 개별적인 상담목회, 소그룹 목회, 성장과 발달에 따른 목회 등 성도를 <서비스>하는 목회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점차 고령화되어 가는 성도들을 돕기 위해 교단이 종합병원을 세우는 것도 신유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