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인은 이런 삶을 지향합니다

 

 

이강천 목사
(전: 바나바훈련원 원장)

 

 

애굽의 풍속을 좇지 말고 가나안의 풍속도 좇지 말고

20여 년 전 필자가 신학대학 교수로 있던 시절에 어느 남학생으로부터 상담 내방을 받았다. 내용인즉 이러했다.

어느 날 버스로 여행하는데 옆 좌석에 그리스도인 여성이 타서 쉽게 대화를 하며 친해졌다. 그 후로 자주 만났고, 결국 잠자리를 같이하는 데까지 가까워졌다.

그런데 해가 바뀌어 다른 교회로 사역지를 옮기게 되었다. 새로 가게 된 교회 목사님에게 딸이 있는데 과년한 처녀였다. 담임 목사가 자기를 매우 잘 봐서 사위 삼고자 하는 눈치로 당신의 딸과 데이트 할 기회를 주선하여 주었다. 그 아가씨와 데이트를 하다 보니 훨씬 매력 있고 고상하여 장차 사모감으로도 훌륭해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 전에 사귀던 아가씨를 떼어 내고 새 아가씨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동안 더블 데이트를 하다가 들통이 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먼저 사귀던 아가씨에게 상처를 덜 주고 헤어져 새 아가씨와 결혼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며 그 방법을 물어 왔다.

필자는 이런 종류의 상담자가 된 것이 몹시 당황스러워 침묵하다가 물었다. “침실까지 함께 썼다면서 그 아가씨를 버려도 양심이 괜찮겠는가?” 그러자 그가 갑자기 정색을 하면서 내뱉었다. “교수님은 개방적이고 젊은 세대를 이해하시는 줄 알았는데 잘못 찾아 왔나 봅니다. 연애는 연애고 결혼은 결혼이지 연애했다고 결혼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 요즘 없습니다.”

필자는 또 한번 당황스러운 마음을 억제하며 “세상 청년들이 다 그러하여도 하나님의 사람은 다르지. 하나님 말씀의 기준과 원리와 규범을 따라야지. 세상 청년들이 다 가는 길로 가서 하나님께 버림받든지 전에 아가씨하고 결혼하고 하나님 앞에 쓰임받든지 그것은 자네가 알아서 할 선택일세” 하며 충고하여 보낸 적이 있다. 그 후 그 청년은 전에 교제하던 아가씨와 결혼하고 훌륭한 목사가 되어 주님을 섬기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은 ‘구별’로부터 시작된다. 성경의 계시에 의하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타락한 이방 세계의 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기를 원하셨고 또 그것을 명하셨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세우신 목적 자체가 이방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서 하나님의 영광 됨을 세계에 나타내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너희는 그 거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좇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나의 법도를 좇으며 나의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레 18:3-5).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그 동안 살아 익숙해 있던 애굽의 풍속을 좇지 않기를 바라셨다. 동시에 그들이 들어가서 살게 될 가나안 사람들의 풍속도 좇지 말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의 문화는 애굽의 문화가 아니다. 가나안의 문화도 아니다. 바로 하나님의 문화이다. 하나님의 규례, 하나님의 법도,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의도, 하나님의 지시, 그것이 하나님 백성의 삶을 규정해 주는 것이다.

성결한 삶이란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께 속한 삶을 의미한다. 성결을 체험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나 성결의 은혜는 이 세상에서의 성결한 삶을 향한 소명이다. 성결하게 살도록 부르시는 주님의 부르심이다. 성결한 삶이란 타락한 세상 풍속, 세상 문화, 세상 가치관으로부터 구별된 하나님의 법으로 살아가는 삶이다.

신약에서도 이 구별된 삶은 동일한 중요성으로 나타난다. 예수님은 제자 공동체의 거룩을 위하여 중보하여 기도하셨다. 요한복음 14-16장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향해 성령의 은혜 시대에 대한 말씀을 강론하시고 나서, 제자 공동체를 위한 중보의 기도를 올리고 있는데(요 17장) 기도의 내용 중 특히 구별된 거룩을 간절히 기도하고 계신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4~17)

예수님은 여기서 제자 공동체가 세상에 속하지 않음을 확인하며 세상에서 데려가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 안에 있으면서도 악에 빠지지 아니하고 진리로 거룩하기를 기도하신 것이다. 제자 공동체는 세상과 격리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있으나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 세상과는 구별된, 그리하여 진리에 속한, 진리로 거룩하게 된 공동체가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셨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준은 세상이 아니다. 세상의 풍속이 아니며 세상의 문화가 아니며 세상의 가치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준은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진리요 말씀이다.

말씀의 통제를 받는 삶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문화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으며 살아간다. 그리스도인들조차도 세상 문화의 흐름을 헤쳐가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의지 중에 살아야 하는 것이다. 거룩이란 무엇인가? 결국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 하나님께 속하여 사는 것이고, 세상 문화를 좇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좇아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들이 계속해서 성결한 삶을 이어가기 위하여 영위해야 할 삶의 스타일은 ‘말씀의 통제를 받는 삶’이라고 하겠다.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어 있고 하나님 아버지의 양육서인 성경말씀이 우리의 삶의 중심에 오게 해야 한다. 그래서 매일매일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며 통제를 받고 살아가는 삶이 필수적인 것이다. 하나님 아버지의 진리,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좇는 것이 거룩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출애굽기 19:5-6에 보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언약을 맺는 시내산 언약 사건이 나온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이 세우고자 했던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가 무엇인지 계시되어 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출 19:5~6)

이 말씀을 다 설명할 지면이 없거니와 여기 보면 마지막 하나님이 세우기를 원하셨던 것은 거룩한 백성이다. 사실 구약은 어떤 의미에서 이 거룩한 백성을 세우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계시된 책이다. 물론 거룩은 구별로부터 시작되는 것을 보았지만, 세상으로부터의 구별은 이제 하나님께로의 구별이고 하나님께로의 구별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는 백성을 의미한다.

하나님께로 구별된 삶이란 두 차원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다. 즉, 하나님 사랑이요 이웃 사랑이다. 그래서 구약 메시지의 대부분은 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서의 거룩한 삶에 집중되어 있다.

언약의 대계명인 십계명이 전반부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하라는 계명이요, 후반부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이다. 하나님의 계명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계명과 더불어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는 계명들로 가득 차 있다.

여호수아 사사기를 시작으로 이어지는 역사서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과 의로 살아갈 때는 평강하나, 우상을 섬기며 불의와 포학이 성하여지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전쟁에 시달리는 내용으로 반복된다.

예언서의 메시지도 이 두 종류의 메시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이 거룩한 백성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로 구별된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일과 하나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일로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약을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

요한 웨슬리는 거룩이 그리스도인의 완전으로 이어지고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사랑이라고 설명하였거니와 결국 성결인의 삶이란 사랑이라고 말해야 하겠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그것은 진정한 예배로부터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주재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지시를 받는 삶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추상적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주재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지시를 철저히 받는 삶으로 표현되어야 할 것이다.

성결인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경외한다. 그리하여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다. 동시에 성결인은 사랑을 실현하며 산다.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베푼 사랑이 주님을 사랑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나누고 목 마른 자에게 마실 물을 봉사하며 나그네 된 자를 영접하고 병든 자를 문안하고 감옥에 갇힌 자를 돌보는 사랑이 예수님 사랑하는 일이라고 가르쳤던 것이다(마 25:41-56).

우리 주변에는 소년 소녀 가장, 무의탁 노인, 외국인 근로자들, 즉 나그네들 그리고 어려운 이웃들이 많다. 성결인의 삶은 이러한 작은 자들을 섬기고 베풀며 나누는 삶을 즐거워하는 삶이 아니겠는가?

성령으로 살아가는 삶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일은 단순히 거룩하라, 거룩하게 살아라, 사랑으로 살아라 말씀하시고 명령하시는 것만이 아니다. 거룩하게 살고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능력을 부여하신다. 그것이 성령의 은혜이다. 우리가 죄로부터 구별되기 위해서는 죄의 능력을 제어하는 능력이 필요한데, 주님은 성령으로 우리를 죄의 세력에서 해방시키는 능력을 주신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

동시에 성령은 사랑의 능력으로 임하신다. 성령이 거룩한 삶의 동력이 되신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 5:22~26).

성결한 삶이란 한번 성령으로 성결을 체험한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성령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성결인은 성령충만한 삶을 계속 추구한다. 그리고 성령의 지시에 순종하여 살아간다.

성결교회가 그 능력을 상실하지 않으려면 성결을 하나의 교리로만 설명해서는 안된다. 하나의 이데올로기처럼 사용해서는 안된다. 하나의 표어로만 사용해서는 안된다. 날마다 성령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는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민감하게 성령님의 감동하심과 지시하심에 순종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교회 전체의 분위기여야 하고, 삶의 보편적 경험이 되도록 해야 한다.

<활천 2000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