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인은 이런 교회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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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만 목사
  

교회는 이 세상에 세워지며 또한 하나의 모임이라는 차원에서 그 목적과 목표 그리고 지향성을 갖기 마련이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적인 목적이나 동기에서 세워진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받아서 구원받은 새 생명의 소유자들이,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연합된 영적 생명의 유기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정체성을 그 본질과 특질로 소유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바람직한 교회는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가 근원되시며, 또 날마다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생생한 종말론적인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성령의 역사로 밝히는 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 아울러 역사성을 지니면서도 항상 변하는 세계 속에서 본연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스스로 개혁하는 교회인 것이다.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교회 자체가 하나님의 백성이요 성령의 집이며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 정체성이 훼손되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하는 것이다.

 

성결교회의 정체성

성결교회의 정체성은 교단 헌법의 교리 부분에서 천명하고 있는 부분에서 밝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헌법 제8조에서는 “성결교회의 사명은 곧 요한 웨슬리가 주장하던 성결의 도리를 그대로 전하려는 사명 하에서, 본 교회는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사중복음을 더욱 힘있게 전하며 모든 사람을 중생하게 하며 교인들을 성결한 신앙생활로 인도하여, 주의 재림의 날에 티나 주름잡힘이 없이 영화로운 교회로 서게 하려는 것이다”라고 말해 준다.

여기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중대한 사실은 성결교회가 강조하는 전도표제로서의 사중복음은 단순히 전도할 때 외치는 구호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적어도 본질적인 죄인인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거듭나서 새 생명을 얻음으로 새 사람이 되고, 이차적인 은총인 성령세례와 충만함을 받아서 원죄의 부패성에서 해방되며, 영육간에 강건하며 다시 오시는 주님을 흠도 티도 없이 만날 수 있는 신부로서 온전한 삶을 살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에 성결교회의 맥은 곧 예수 그리스도 중심적이며, 성령 안에서의 열매 맺는 삶을 지향한다. 이는 바로 우리가 이 땅 위에 사는 동안에 날마다 체험할 수 있고 또한 체험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완전’인 것이다.

 

성결인이 지향하는 교회상

성서적으로 보면 성결인은 외적으로 성결교회에 속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명목상의 교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거듭나고 성결한 은총을 체험하고서 성령의 역사를 힘입어 그 열매를 맺는 사람이다.

여기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과제가 있는데, 그것은 곧 성결인이 어떠한 교회를 지향하고 있는가를 묻기 전에 먼저 성결의 은총을 체험했느냐를 생각해야 된다는 것이다. 물론 교회가 성결하면 성도들이 그러한 신앙적인 분위기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는 목회자나 몇 사람의 지도자들이 주인이 되어서 관리하고 운영하는 집단이 아니기 때문에 성도들 스스로 성결한 은총을 함께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하에서 성결인들이 지향하고 기대하는 교회상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교회이다

교회는 결코 어떤 특정한 계급이나 신분이나 특정한 당국 또는 관료에 의해서 운영되는 모임이 아니다. 교회는 어디서나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이며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들이 연합된 영적인 생명의 유기체이어야 한다. 물론 교회 안에는 서로 감당해야 할 여러 기능들이 있지만 이는 바울 사도가 증거한 것처럼 하나의 생명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도움과 연결과 상합이어야 하며 모든 성도는 서로에 대해서 동등해야 한다(엡 4:1-16).

성서는 구약시대의 족장과 사사들 그리고 선지자들의 활약과 신약 시대의 사도들, 그리고 오늘날 목회자들의 기능에 대해서 말해 준다. 그러나 이 모든 소명에서 중요한 것은 그 기능들이 개인적인 특권이나 영예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위하여 섬기는 직분으로 받았다는 것이다.

사실상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찬미하고 증거하고 또한 사람을 섬기도록 부름을 받은 것이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개인의 집합체이거나 종교적인 결합욕구의 소산물이 아닌 것이다. 모든 성도들이 한몸이신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존재하고 활동하여 함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둘째, 목회자들이 먼저 성결의 은총을 받은 교회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는 여러 직분이 있다. 그중에는 목회자의 직분이 있다. 그것은 물론 계급이 아니지만 모든 성도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섬기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목회자들이 먼저 성결의 은총을 체험하지 못하면 성도들을 바르게 인도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 성결교회의 현실은 어떠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늘날 교회의 안팎에서 교단을 초월해서 바른 목회를 해야 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 영성을 회복해야 된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교단의 모든 모임이나 기구가 정치적으로 운영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성결인들이 성결인대회를 열고 회개운동을 하며 성결성을 회복하자고 외치는 외침 속에는 목회자와 교회의 지도자들이 먼저 성결의 은총을 받아야 한다는 간절한 요청이 담겨 있는 것이다.

셋째, 성결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교회이다

성결교회는 분명히 우리 한국인들의 전도를 통해서 세워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깊은 뿌리는 요한 웨슬리의 신앙 부흥운동에 있으며, 그 맥이 바로 19세기 미국에서 일어났던 ‘성결-오순절 운동’에서 이어지고 있다.

‘성결-오순절 운동’은 18세기 웨슬리의 신앙을 되찾자는 것으로, 이미 구원받은 신자들이 ‘두번째 은총’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은총을 통하여 ‘온전한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것을 ‘순복음’(the full gospel)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성결-오순절 운동’이 순복음의 이름하에서 주장한 복음의 네 가지 면이 곧 구원, 성령세례, 신유, 재림이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성령충만의 증거를 웨슬리는 ‘온전한 성화’로 보고, 성령충만시 능력과 함께 모든 죄에서 씻김을 받아서 성결하게 된다고 주장하는 ‘만국성결교회’가 설립되었던 것이다.

참으로 중대한 사실은 일본에 동양선교회와 동경성서학원을 설립하고, 우리 성결교회 설립자들이었던 김상준, 정빈 두 사람에게 신앙을 심어준 카우만이 바로 만국성결교회에서 선교사로 안수를 받았다고 하는 것이다. 김상준, 정빈 두 사람은 한국에 새로운 교파 세우는 것을 목적삼지 않고, 오직 ‘성결-오순절 운동’에서 강조한 순복음을 전파하였던 것이다. 곧 우리 성결교회의 설립자들이 전하는 복음의 요체는 웨슬리가 강조한 ‘온전한 성화’(또는 온전한 구원, 그리스도인의 완전)였다.

여기서 우리가 나아갈 지향성이 나타난다. 사실 지금 우리 성결교회에서 증거하고 또 가르치고 있는 복음의 성격을 살펴볼 때, 우리에 게 주신 하나님의 귀한 사명과 특색이 너무도 희석되어 버린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진정한 성결인들은 이 같은 아쉬움을 통감하면서 성결교회의 정체성을 회복하여 성결 지향적인 교회가 되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열린 교회이다

우리 한국 교계에서는 벌써 ‘열린 교회’ ‘열린 목회’ ‘열린 예배’라는 말들이 친숙할 정도가 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외국 교회들을 방문하여 직접 현지 교회들의 프로그램을 보고 배워서 자신의 목회 현장에 접목시키고 있는 경우도 많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짚고 가야 할 사실이 있다. 열린 교회란, 어떠한 프로그램을 잘 사용하는 교회를 말하기보다는 그야말로 세상을 향하여 문을 열어 놓은 교회를 말한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 안에 있는 양들도 귀하지만, 우리 밖에 있는 양들을 향하여 마음을 열어 놓은 교회가 바로 ‘열린 교회’라는 것이다. 열린 교회들은 자연히 그리스도의 사랑과 복음으로 세상을 섬기는 교회이며 땅 끝까지 선교의 장을 넓히는 교회이다.

물론 우리 성결교회는 교세에 비해서 선교에 역점을 두고 많은 선교 사역을 감당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선교나 해외선교는 동시에 이루어져 할 과제라고 하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주님께서 “예루살렘으로부터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행 1:8)고 명하신 사실은 예루살렘과 땅 끝이 동시적으로 선교지역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특별히 우리 성결교회에서 강조하는 재림의 복음은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을 생각하기 때문에 어떤 성도들보다도 전도의 절박성을 강조하고 있다. 바로 여기서 우리 성결교회가 참으로 순수한 구원의 복음을 뜨겁게 전파하던 선배들의 자리를 찾는 교회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 성결교회가 열린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지향성중에는,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점에 대해서 선지자적인 사명을 감당하며 고통당하는 이웃에 대해서 관심을 갖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과제가 자리잡고 있다.

다섯째, 인물을 양성하는 교회이다

교회는 하늘에 있는 교회와 지상에 있는 교회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늘의 교회를 사모하며 지금 지상의 교회에 속하여 있다. 그렇다면 이 지상의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그런데 이 같은 사명을 목회자나 교회 건물이 감당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은 성도들이다. 교회는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로서의 양면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예배당에 모여서 의식적인 예배를 드리는 일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백성 그리고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결교회의 형편을 살펴보면, 다른 교단에 비해서 우리 사회에서 지도적으로 활동하는 인물들을 길러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 같은 문제점의 근저에는 우리들이 강조하는 성결의 도리를 잘못 가르친 데 원인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성결한 삶을, 단지 세상을 멀리하고 그저 깨끗하고 정결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사실로 잘못 가르친 요인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성결의 은총은 소극적으로는 모든 죄에서 해방되어 정결하게 되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지만, 적극적으로는 모든 일을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과 사랑의 동기에서 이루는 능력 있는 삶을 말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은총을 체험한 성도들이 세상에 나가서 소금과 빛으로서의 사명을 적극적으로 감당하는 일꾼이 되도록 양육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여섯째, 제자훈련 사역을 철저하게 실천하는 교회이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최후로 주신 명령은 곧 많은 사람들을 전도(가서)하여 변하여 새 사람이 되게 하고(세례 주고) 교육하고 훈련시켜서(가르쳐 지키게 함) 제자삼는 사역을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마 28:18-20). 그런가 하면 바울 사도는 믿음의 아들이며 후배 목사인 디모데에게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 2:2)고 권면했다.

구원받은 신자가 반드시 제자로 양육되어야 할 이유가 있다. 제자가 되어야 주님을 따르게 되고, 또한 주님으로부터 배우며 주님을 나타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하며 말씀 안에서 거하고(요 8:31-32) 하나님과 이웃과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 그런데 참으로 귀한 사실은 이 같은 삶이 바로 성령충만하게 살아가는 성결한 삶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에서 성결교회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철저하게 이룰 수 있는 귀중한 자리에 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모든 교회와 성도들을 향하여 제자육성 사역을 본보기로 보여 주는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맺는 말

우리 성결교회는 한국 교회의 역사에서 후발주자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오순절이라고 불리우는 1907년에 일어난 대부흥운동의 현장에서 5월 2일에 시작된 성결교회의 전도운동이 한국 교회 부흥운동의 선도자 역할을 감당해왔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 성결교회는 성결복음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가 되고 있다. 이제 우리 성결교회는 초대의 안디옥교회처럼 성령의 역사로 세계를 향하여 성결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기 위하여, 선배님들이 전해준 희생적이고 순수한 정신으로 모든 성도들이 제사장적인 사명을 감당하고, 세상을 향하여 열린 적극적인 교회로 거듭나기 위한 거룩한 몸부림을 해야 한다.

(활천 2000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