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교회 문화의 창달을 위하여

- 사중복음의 문화화 -

박양식 목사

 

머리말

문화의 시대를 맞아 사회, 정치, 교육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문화라는 담론을 찾는 데 모두들 열중하고 있다. 교회도 예외일 수 없다. 이러한 문화 담론 찾기는 시대적 요청으로서 결코 도외시할 수 없는 과제이다. 따라서 성결교회가 21세기와 새천년기를 맞아 문화 담론을 전면에 끄집어내어 토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 동안 교회 역사를 보면, 처음 백 년은 복음이 씨로 뿌려지는 시기였다. 그 다음 백 년 내지 이백 년은 복음이 문화로 열매 맺는 시기였다. 이런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보더라도 한국 교회 전체는 복음을 문화로 열매 맺어야 할 시기에 들어섰다. 성결교회도 창립 90주년이 넘어선 시점에서 성결의 복음을 문화로 열매 맺게 해야 할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고 하겠다.

시대적 요청과 교회 역사적 시점의 축이 서로 맞물리는 현 시점에서 성결교회가 어떤 문화를 만들었고 만들어가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런 물음은 세상이 문화를 많이 논하기 때문에 따라하게 되는 유행의 추구가 아니다. 복음 외에 다른 것에 관심을 쏟게 되는 미혹의 증거도 아니다. 이것은 시대를 책임 있게 살아가기 위한 신앙의 한 표현이다.

신앙과 문화는 결코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문화 하면 무조건 세상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문화를 세상적이라고 생각하여, 그리스도인은 문화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이라고 파악한다면 그것은 오류이다. 그것은 마치 물고기의 삶을 관찰하려하면서 물 속에 산다는 사실은 전혀 보지 않으려는 것과 같다. 물고기의 삶은 물 속에서 관찰해야 제대로 된다. 물을 제거한 채 물고기만을 본다면, 제대로 된 물고기의 삶은 볼 수 없고, 호흡 곤란을 느껴 팔닥거리는 물고기의 모습만을 볼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관찰하거나 성결교인의 삶을 관찰할 때, 문화라는 맥락을 빼놓고는 제대로 관찰할 수 없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이 글에서는 성결교회의 문화 창달에 대한 몇 가지를 검토하려 한다. 제언에 앞서 먼저 문화 이해와 문화 창달에 관한 기본적 전제를 제시하고 나서 성결교회가 문화 창달의 위해 실천해야 할 과제를 정리하겠다.

 

문화 이해와 문화 창달

문화에 대한 정의는 매우 다양하다. 그 다양한 문화의 정의를 살핀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고전적인 정의를 알아봄으로써 문화에 대한 기초적 이해를 하는 것이 순서이다. 문화라 함은 공통된 사회적 생활방식이다. 공통적이기 때문에 문화는 집단성이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된다. 개인의 문화라는 것은 사실상 성립 불가능한 말이다. 일정한 수의 집단이 공통적인 생활방식을 드러내야 그것을 문화로 파악할 수 있다. 집단이 공통적으로 표출하는 생활방식이라고 할 때, 거기에는 전통이 있으며 표준과 원리가 담겨 있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일정 기간 공통된 생활방식이 사회 속에서 전통으로 확립되어야 하고, 그 공통된 생활방식에는 분명한 표준이나 원리가 드러나 있다.

이런 정의에 입각하여 성결교회의 문화를 생각해 보자. 성결교회 문화라 함은 성결교인 전체가 공통적으로 하는 생활방식이어야 한다. 성결교인 몇 명이 하는 것은 성결교회를 대표하는 문화가 될 수 없다. 성결교인 전체에게서 보이는, 전통으로 유지되어 온 생활방식이 바로 성결교회의 문화가 되는 것이고, 그런 성결교회의 문화는 구체적인 특징으로 파악되는 표준 내지 원리가 있어야 한다. 예컨대, 성결교인이기 때문에 성결한 행동방식으로 이야기될 수 있는 생활방식이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이에 입각하여 어떠한 성결교회의 문화가 있는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다음 논의로 넘어가자.

이제 문화 이해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문화를 창달해 나가기 위한 시스템에 대한 이해를 할 차례다. 크뢰버(A. L. Kroeber)에 따르면, 문화와 개인 사이에는 강력한 순환적 인과관계가 있다고 한다. 이 말을 풀어 볼 때 문화란 개인이 집단을 이루어 만들어낸 것이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문화는 역으로 개인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좀더 부연하자면, 개인이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만들어진 문화에 개인이 지배받는 구조가 순환적으로 반복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화 창달의 과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개인이 의식적으로 공통된 생활방식을 계속 실천해 나감으로써 문화의 창조를 이루고, 그 생활방식을 일반 사회에까지 확장시켜 갈 수 있다는 사실에 눈떠야 한다. 이것은 어떤 집단이나 사회에게 문화 창조를 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다음으로, 현 상황이 문화가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주가 되는가, 아니면 개인이 문화를 인도해 가는 것이 주가 되는가를 살펴야 한다. 문화가 개인에게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황이라면, 그런 상황이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한 구체적 방법론을 찾아야 할 것이다. 반면에 개인들이 문화를 창달해 나가는 상황이라면, 그 방향에서의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전략을 강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문화 창달을 위해 놓치지 말아야 할 두 가지를 지적하고 넘어가야겠다. 이 점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주의사항으로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하나는 문화 창달을 일종의 캠페인 정도로 착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문화 창조와 전파에서 실패한다면, 그것은 문화 창달의 과정이나 결과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 창달이라는 것은 목청을 높여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생활방식이 시대와 사회 속에 새로이 확립되고, 삶의 자리에서 구체적인 성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문화는 결코 교리로써 강요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문화는 자발적인 선택을 통해 인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이것을 문화라고 강조하더라도 사람들이 선택해 주지 않으면 그것은 문화로 정착되지 않는다. 따라서 문화 창달은 고도의 메카니즘을 가진 체제로 이해하고 접근해서 풀어가야 한다.

다른 하나는 기독교문화가 무엇인가 고정된 것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문화가 무엇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기독교문화를 실천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그 질문은 모순이다. 영원한 것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대에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고정된 기독교문화를 추구하는 것이 잘못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왕 제도가 기독교문화냐라고 물을 때 우리는 시대적 문화 감각에 따라 답변해야 한다. 사울이 왕으로 세워지기 이전에는 왕 제도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추구할 문화가 아니었다. 그러나 왕이 세워지는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허락받은 이후 왕 제도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받을 만한 제도가 된다. 이렇듯 기독교문화는 시대를 넘어서는 초월적 가치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문화 창달이란 고정된 틀을 찾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않는 가치에 따르는 생활방식을 확립해 가는 것이다.

 

시대적 요청으로서의 성결교인의 문화적 사명

시대와 문명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성결교회가 하나님 뜻에 맞는 문화를 창조하고 전파하기 위해서는 실천해야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기서는 지면상 우리 성결교회가 문화 창달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가지고 실천해야 할 기본 과제를 지적하겠다.

성결교인 전체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문화적 사명을 투철하게 갖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적 사명의 성경적 근거, 사람들의 행위를 유도하는 시스템으로서의 문화 개념에 대한 이론적 이해, 현 시대의 문화적 상황에 대한 현황과 흐름의 파악, 목적에 맞는 문화 창출을 위한 전략과 대안 찾기 등에 대해서 깊은 안목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이에 관해 일일이 논하는 것은 많은 지면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인의 문화적 사명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간단히 제시하고, 성결교회의 문화 창달을 위한 성결의 가치를 언급하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그리스도인의 문화적 사명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여러 가지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서는 이른바 문화명령이라 알려진 창세기 1:28과 그에 관련된 구절들에서 찾아보겠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명하신 ‘생육하라’, ‘번성하라’, ‘충만하라’, ‘정복하라’, ‘다스리라’라는 명령은 사람들의 활동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 명령대로 행한다면 사람들은 활동의 결과를 얻게 되는데 그것은 문화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의 것이다.

이것은 인간 타락 이후에도 유효한 명령으로 나온다. 노아 홍수 후 노아에게 하나님은 아담에게 하신 말씀 그대로를 반복하신다.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이다(창 9:1, 7). 상황이 변하긴 했지만 그래도 같은 명령을 남은 자 노아에게 하셨다는 사실은 문화명령이 타락한 역사 세계 안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가지 더 분명한 근거는 야곱에게서 발견된다. 이삭은 야곱을 축복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어 너로 생육하고 번성케 하사”(창 28:3)라고 했다. 하나님의 자손에게 그런 문화명령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늘 근본적인 축복이었다. 그 축복은 결국 야곱에게 실현되었다. 그 표현이 “이스라엘 족속이 애굽 고센 땅에서 거하며 거기서 산업을 얻고 생육하며 번성하였더라”(창 47:27)에 나와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 노아, 야곱에게 하셨던 축복의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알려주는 선언이라 하겠다.

앞의 말씀들을 볼 때 결국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문화명령이란하나님의 근본적 축복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문화명령은 성경 속에서 지속적으로 확인되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런 문화명령을 이 땅에서 수행하는 성결교인으로서 붙잡아야 할 것은 ‘성결의 삶’이다. 이것은 21세기 상황에 문화로 정착시켜가야 할 과제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현대사는 민주화와 노동운동의 과정을 거쳐 도덕화로 이어져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도 민주화와 노동운동의 과정을 거쳐 도덕화의 길로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의 세계가 도덕화의 문제와 씨름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여러 면에서 확인된다. 세계 정치나 경제가 도덕을 표면상이라도 내세우고 있고, 환경 문제와 관련해서는 더욱이 도덕 문제와 연관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했다는 것은 매우 분명한 일이다. 이런 시대적, 문명적 상황에 직면하여 성결교인이 문화로 정착시켜 가야 할 가치로서 성결은 매우 적절한 문화적 가치로 붙잡을 만한 것이라 하겠다.

성결을 문화적 가치로 말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낄 분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분들은 이것이 성경 가치를 세상 가치로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 성경 가치를 세상 속에도 중요한 가치로 뿌리 내리게 하는 작업이란 사실을 이해할 수 있기 바란다. 이렇게 보면, 다음 세기에서 성결교인이 문화적 사명을 적절히 해낼 수 있는 주역임을 자각해야 한다는 사실이 당위성을 가지고 부각된다. 한마디로 말해 성결교인의 문화적 사명은 하나의 시대적 요청이라는 것이다.

 

문화적 사명의 실천을 위한 성결교인의 방향모색

문화 창달에는 왕도가 없다. 그만큼 문화는 소수의 노력에 맞추어 창조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조적 소수의 방향모색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성결교인의 문화라 할 수 있는 것이 나오겠지만 그때 가면 이미 상황은 끝난 것이 되고 만다. 따라서 성결교인의 문화적 사명을 시대 속에 열매 맺게 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성결교인의 문화적 사명을 실천하기 위한 공론화가 성결교회 안에서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뜻 있는 일부 교회들은 교회 내에 문화선교위원회를 설치하고 미래의 문화선교 목회를 대비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장로교 통합 측에서는 뜻 있는 큰 교회들이 출연하여 “문화선교연구원”을 발족시켰다. 그 동안 문화연구 포럼을 개최하여 다양한 문화 주제들을 토론하였고, 지난 9월에는 문화선교 지침서를 내놓기도 하였다. 아직 그 방향이 모호한 면이 없지 않지만 그렇게 문화선교의 방향을 지속적으로 모색해 간다면 그 대응능력이 훨씬 고조될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처럼 성결교회 안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성결교회의 문화적 사명과 구체적인 문화선교 전략을 내놓으며 시대적 요청에 적극 대처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성결의 가치를 통한 생활방식을 정착시킬 수 있는 시대적 요청에 직면하여 호기를 맞고서 그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한 달란트를 묻어 놓는 것과 마찬가지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성결의 복음이 일반 사회 속에 문화로 정착될 수 있는 방안을 하나하나 찾아서 실천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다음 세기에 성결교인이 성결 문화를 통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관건이다. 바라기는 성결교인이 성결의 문화를 창달함으로써 살림의 역사를 일으키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사명을 완수해 갔으면 한다.

(활천 1999년 11월호)

 

박양식 목사는 2014년 3월 29일 등산 도중에 심장마비로 향년 58세의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평소 활발하게 문화 목회를 펼쳐 왔던 박양식 목사는 기독교 문화 사역자들을 위한 멘토로 역할하며 문화 목회의 저변 확대를 위해 앞장서 왔다. 문화선교단체 ‘보냄과 세움’을 20여 년 전 창립해 운영을 맡아왔으며, 예수랑교회도 개척하고 시무하며 문화 사역을 현장 목회에 접목하기도 했다. 또한 기독교 문화 교육선교회 CMC 원장, 기독교역사문화연구소 부소장,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기독교문화학과 겸임교수 등 문화 사역을 위해 활약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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