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교회 자아성과

웨슬레안 사중복음주의

이정근 목사


 

근래에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이라는 말이 자주 쓰이고 있다. 이것은 심리학/교육학적 용어로서 에릭슨이라는 학자가 강조한 내용인데 정체성보다는 자아성(自我性)이라 번역해야 한다. 이 자아성은 여러 가지 뜻을 품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너는 누구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의 내용이라 할 수 있다. 너는 누구냐고 물으면 흔히 신분증(ID)을 제시하듯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성숙한 인간이 된다. 그리고 그 대답은 주관적 객관적으로 검증되고 통합된 자아여야 한다.

네가 누구냐고 물으면 사람들은 우선 이름을 댈 것이다. 그리고 족보와 이력을 말하고 현재 하는 일과 성품을 말하고 장래에 되려는 자아상을 말할 것이다. 철학적인 사람이라면 자각된 자기와 객관적 자기 혹은 본래적 자아와 비본래적 자아에 관하여도 말하고 낙천주의자 염세주의자 이상주의자 등 인생관도 말할 것이다.

기독교 신자들은 일반적으로 자아성이 매우 잘 확립되어 있다. 네가 누구냐고 물으면, 피조물입니다, 죄인입니다,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육신과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고 내 영혼은 영원한 생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예수님을 담아 가지고 다니는 질그릇입니다, 그리고 이 땅 위에 있는 동안 영혼구원이라는 사명을 위해 삽니다... 그런 대답을 숨도 쉬지 않고 말할 수 있지 않은가.

이같이 자기를 전체적 통합적으로 말할 수 있을 때에 우리는 자아성이 강하다고 평가한다. 인간은 자아성이 없이 태어나서 자아성 위기를 거쳐 자아성 확립으로 성장해 가고 이 자아성은 자신의 성장과 환경의 변화에 따라 기민한 적응과 변형과정을 거치게 된다. 자아성이 희미하거나 위기에 처해 있으면 미숙한 인간이 되고 반대로 자아성이 강하고 확실하면 성숙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무슨 일에든지 머리가 되는 까닭이 여기에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결교회와 그 성도들의 자아성이 어느 정도 확립되어 있느냐이다. “성결교회가 무엇입니까?” 혹은 “성결교회 신자는 장로교회 신자와 어떻게 다른가요?” 하고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통합된 자아가 형성되어 있느냐는 것이다. 세계의 축소판인 미국에서 목회를 해 보니 우리 성결교회 성도들과 교역자들의 자아성 수준이 장로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순복음교회 신자들에 비하여 현저히 떨어지는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성결교회 신자들은 다른 교단 신자들에 비하여 그 응집력이 크게 떨어진다. 교역자들도 아무 거리낌 없이 독립교회나 다른 교단으로 이적하는 결과를 가져 왔고 따라서 성결교회는 초대형교회도 없고 교세도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결교회는 교역자와 성도들의 자아성 확립을 위하여 종합적 효과적인 정책을 수립하여 실천해야 하겠다.

자아성 확립을 위하여는 여러 가지 방안이 있으나 그것들은 성결교회의 특징과 사명을 개발하고 가르치는 일로 요약된다. 교리의 특징, 역사의 특징, 교회생활의 특징, 예전의 특징, 세족식을 성결예식으로 제정하는 일, 교단가와 사중복음노래의 보급, 성결인대회의 활성화, 교단교육을 위한 교재의 제작... 이 같은 것을 위하여 교리체계를 확립하는 일이 매우 긴급하다. 교리는 교회가 하고 있는 모든 사역의 기초가 되고 골조가 될 뿐 아니라 성결교회 자아성을 확립시켜 주는 가장 중요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성결교회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기독교 개신교 소속회원입니다”라고 대답해야 한다(헌법 제13조). 성결인은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신자이건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신자이건 유교,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과는 전혀 다른 기독교에 속해 있다. 기독교에 속해 있다는 말은 사도신경을 믿는다는 말이요 그것은 곧 성결인도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이 된다.

게다가 개신교에 속해 있다는 말을 헌법에는 “기독교 개신교파가 공통으로 믿는 복음주의”(13조)라고 선언했다. 복음주의(evangelicalism)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루터와 칼빈 등이 주도한 종교개혁의 전통 위에 서 있다는 말이요 다른 하나는 근본주의도 아니요 자유주의도 아닌 ‘온건 보수주의’ 혹은 ‘열린 보수주의’라는 뜻이다. 복음주의가 종교개혁의 전통에 서 있는 만큼 우리 성결인들도 기독교 신앙은 바로, ① 성경중심, ② 그리스도 중심, ③ 구원중심(以信稱義), ④선교중심임을 굳건하게 믿는다는 뜻이다. 이 말은 성결교회는 천주교회 교황의 최고권위 대신 성경의 최고권위를 믿으며 교회나 신부가 영혼을 구원하는 대신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을 확고히 믿는다는 뜻이다. 물론 연옥, 마리아 신모설을 믿지 않는다.

복음주의는 또 성경을 글자대로만 믿는 근본주의와 현격히 다르다. 따라서 복음주의는 성경을 전체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반면에 성경을 하나님 말씀보다는 인간 신앙체험의 기록으로 주장하고 원죄와 영혼의 구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 같은 기적을 완강하게 부인하는 자유주의와도 전혀 다르다. 복음주의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인간은 원죄와 자범죄로 전적으로 타락했음과 하나님의 외아들로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 얻음과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을 그대로 믿고 있다는 뜻이다.

성결교회는 “요한 웨슬레가 전하던 성결의 도리를 그대로 전하려는 사명하에서 본 교회는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사중복음을 더욱 힘있게 전하여...”(헌법 제8조)라고 했다. 이는 성결교회는 ‘웨슬레안 사중복음주의’를 교리적 대강령(the cardinal doctrine)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이 웨슬레안 사중복음주의는 두 가지 흐름 곧 웨슬레안주의와 사중복음주의를 합류(conflux) 혹은 조화시킨 것으로, 1) 구원받는 길, 2) 구원의 내용, 3) 구원받은 자의 사명을 확실하게 가르쳐 줌으로써 성결인의 자아성을 확립시켜 준다.

성결교회는 웨슬레안이라는 점에서 장로교인 등과 구별된다. 장로교 하면 우리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칼빈주의와 절대 예정론이다. 그만큼 장로교인들은 교리적 자아성을 손쉽게 확립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들은 요한 칼빈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강조하는 까닭에 구원받을 자와 멸망받을 자를 미리 정해 놓으셨으며 구원하시기로 작정된 사람은 끝내 구원을 얻는다는 하나님의 일방적 절대예정론을 믿는 것이다. (참조: 칼빈주의 5대교리.)

그러나 종교개혁의 완성자인 요한 웨슬레를 따르는 우리 성결인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으며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만민의 구원을 위하여 죽으심(만인속죄론)과 그 은혜로 인하여 자유의지를 받은 인간의 믿음이 만나는 곳에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복음적 신인협동론을 믿는다. 따라서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받게 되고 구원받았더라도 믿지 않으면 다시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 성결인은 같은 요한 웨슬레안들인 감리교회, 구세군, 나사렛성결교인과 어떻게 다른가? 그것을 가장 명확하게 가르쳐 주는 핵심이 곧 중생, 성결, 신유, 재림으로 표현된 사중복음(Four-fold Gospel)이다. 사중복음의 발생과 성결교회에 들어오게 된 경로에 대하여는 조종남/박명수 박사 등의 연구가 있으므로 설명을 생략한다. 신학자들 사이에서는 그간 사중복음을 웨슬레안 전통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 왔다. 그러나 목회자들은 실상 웨슬레 신학보다는 사중복음을 그 설교와 목회의 근거로 삼아 왔다. 이 사중복음은 신학자들의 버린 돌이 목회자들의 머릿돌이 된 셈이다. 그만큼 사중복음은 목회현장에 적응능력이 높기 때문이요 구원론의 핵심과 전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생은 구원의 시작, 성결은 구원의 성장, 신유는 이 세상에서의 현재적 구원, 그리고 재림은 미래적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담고 있는 것이다. 사역(ministry)은 실상 구원을 위한 사역이어야 하는데 사중복음은 구원사역을 위한 ‘흔들리지 않는 터전’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요한 웨슬레가 로마가톨릭교회, 영국 성공회, 개혁자의 신학, 동방교회, 경건/신비주의 등 당시의 모든 신학과 교리를 종합하고 자신의 창의적인 구원론을 수립했던 것처럼 사중복음이 웨슬레 신학의 부족한 점을 크게 보완하여 주는 점도 있다. 그것은 웨슬레 신학에서는 신유와 재림은 중요 관심사가 아니었으며 특히 성화를 강조하다 보니 중생은 초기성화라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된 점도 있다.

우리 성결교회가 일목요연하게 체계화된 교리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은 교단 전체의 큰 불행이다. 장로교회가 지나치게 교리화하여(칼빈이 법률학도였다) 오히려 융통성이 부족하고 율법주의적 경직성을 문제로 안고는 있다. 그러나 성결교회는 기본교리마저 산만해서 체계가 없고 심지어 ‘하나님의 나라’라는 기독교의 심장 같은 교리가 실종되어 교리체계에 관한 한 취약성이 매우 크다.

이 같은 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미주성결교회는 12항목의 간결한 ‘교리적 선언’을 제정하여 총회의 승인을 거쳐 사용하고 있으며 영어로도 번역되었다. 이 교리적 선언은 바로 우리 성결교회의 교리의 대강령이 ‘웨슬레안 사중복음주의’(Wesleyan Four-fold Evangelicalism)라는 합의 아래 작성되었다(미주성결교회 헌법 부록 참조). 그리고 교리적 자아성의 확립을 위하여 교독문으로도 사용하고 있으며 앞으로 교재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교육시킬 계획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성결인들에게 누가 “성결교회가 무엇이며 성결인은 어떤 사람들이냐”고 물으면 그 대답은 “우리는 웨슬레안 사중복음주의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라고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다시 물으면 아래와 같이 체계적으로 대답할 준비(벧전 3:15)가 되어 있는 것이다.

첫째, 우리는 불교/힌두교/이슬람 등과 전혀 달리 기독교에 속해 있으며 그래서 사도신경대로 믿습니다. 둘째, 우리는 교황을 절대표준으로 믿는 천주교회와 달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최고의 표준임을 믿는 복음주의자입니다. (그리고 복음주의는 이성을 표준으로 삼는 진보주의나 성경을 맹신하는 근본주의와도 구별됩니다.) 셋째, 우리는 칼빈주의의 절대예정론을 따르는 장로교회와 달리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믿음이 협력해서 구원받음을 믿는 웨슬레안입니다. 마지막, 우리는 사회복음을 강조하는 감리교회와 달리 사중복음을 강조하여 온전한 구원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결교회 신학/교리의 대강령인 웨슬레안 사중복음주의의 요체이다. 이렇게 믿을 때에 성결교회는 다른 종교, 다른 교단과 뚜렷하게 판별되는 신학적/교리적 자아성이 뚜렷하게 확립된다. (일반적으로 신학은 개인의견, 교리는 교회나 교단의 합의된 신앙고백을 뜻하나 여기서는 비슷한 뜻으로 사용했다.) 이것은 결코 새로운 교리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성결교회 초기부터 확실하게 전승되어 왔던 것이요 현재의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내용을 정리하고 이름을 붙인 것에 불과하다. 마치 삼위일체라는 말이 성경에 없으나 그 같은 사상이 성경의 근간이 되어 있는 바 삼위일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 기독교 신관이 더욱 명확해지고 다른 종교의 신관과 확실하게 구별되는 효과가 있었던 것과 같다고 하겠다.

게다가 웨슬레안 사중복음주의는 구원론과 그에 필수적으로 따르는 전도/선교에 강조점을 두기 때문에 장래에 성결교회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신학적 기초도 마련해 놓는 효과가 있게 된다. 그리고 이 웨슬레안사중복음주의는 보편성(globalism)과 개별성(localism)을 모두 함유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해 두고 싶다. 기독교와 개신교라는 보편성이 있고 웨슬레안과 사중복음이라는 특수성이 있어 현재와 미래에 펼쳐질 보편적 개별성(glocalism)의 시대에 효용이 높은 신앙고백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들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게 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초급한 것은 바로 이 웨슬레안 사중복음주의에 기초하여 장로교회가 자랑하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해당하는 문서를 작성하고 교단의 합의를 거쳐 공식문서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성결교회의 오고오는 세대와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이 목회, 교육, 신학연구, 선교에 이를 활용하게 된다. 이미 교단적 합의를 거쳐 공포된 ‘미주성결교회 교리적 선언’은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활천 2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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