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을 성결케 하라

레위기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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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인근 목사
(
수유리교회)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니라"(레 11:45).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하심을 스스로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절대자이기 때문에 사람이 인정하든 말든 아무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나는 거룩하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라,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 또한 당연히 거룩해야 하며 "나는 거룩하다" 선포해야 마땅합니다. 인간이 거룩하지 않으면 그것은 자신의 형상인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 됩니다.

자연 또한 그렇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속성을 담아 창조한 자연 또한 당연히 거룩해야 합니다(롬 2:20).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거룩하게 창조된 인간이 연출해 내는 인생이나 역사 또한 그 속에 하나님의 거룩하신 품성이 담겨야 마땅합니다.

결국 만물이, 그리고 자연이, 이 모든 피조물들이 엮어내는 역사 곧 우주가 지향하는 바는 하나님의 거룩함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 곧 만유(萬有)를 향하여 거룩하라고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존재가 지향하는 바 거룩함은 어떤 것입니까? 먼저 상대적 개념으로서의 거룩함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둠을 상정(想定)함으로 그 반대개념으로서의 밝음 또는 빛을, 악을 상정함으로 그 반대개념으로서의 선을, 죽음을 상정함으로 그 반대개념으로서의 생명을 이해하듯이 더러움을 상정함으로 거룩함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사람들의 거룩함에 대한 이해가 그러했습니다. 진리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없는 초기 상태의 사람들의 거룩함에 대한 이해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런 차원에서의 거룩함은 소극적입니다. 혹시 실수할지도 모를 일이니, 가능한 한 나서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더러운 것 안 만지고, 나쁜 짓 안하고... 안하는 것이 많을수록 거룩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거룩의 반대쪽에 있는 것들을 멀리함으로 거룩해지자는 것이지요. 또한 방어적입니다. 악을 정복하기보다는 악을 피하고, 정의를 세우기 위하여 투쟁하기보다는 서로 싸우지 않으려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죽어지냅니다. 이런 수준에서는 구조악이나 사회악에 대한 문제 같은 것은 생각도 못할 일입니다.

이러한 낮은 수준의 거룩함을 극복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하나님의 사람들을 역사 속에 보내셨습니다. 비느하스 같은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위하여 살인을 저지릅니다(민 25:7-9). 숱한 사사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전쟁을 벌여, 적군을 사살하기도 하고, 성을 파쇄하기도 하고, 기물을 부수기도 합니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거룩함을 실제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역사 속에 손수 오셔서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거룩함을 완성하십니다. 주님은 성전을 더럽히는 장사치들을 향하여 분노를 터뜨리십니다. 그들의 환전상(換錢床)을 둘러엎으시고 짐승들을 때려 내쫓으시며 한바탕 소탕전을 벌이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온 것은 화평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싸움 붙이러 온 것이라고. 지나치다 할 만큼 호전적인 발언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거룩함입니다.

예수께서는 마침내 성령시대를 여심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간 거룩함을 펼쳐 보이십니다. 용서로 문제를 해소하고 사랑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진리를 깨달아 그 진리 안에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이루어내는 길을 보이신 것입니다. 죄악은 십자가로, 죽음은 부활로, 모든 부족과 오류는 성령으로 온전한 거룩함에 이르는 길을 보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직접 역사 속에 오셔서 십자가와 부활과 성령으로 이루어 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사랑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진리로 나타내 보이셨으며 사랑과 진리를 성령으로 이루어 내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과 성령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인간과 자연과 역사 속에 이루어진 과정입니다.

만물의 으뜸인 인간은 특히 이러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만유 속에서 실현하기 위하여 주님의 역사에 동참하도록 명받았습니다. 만유의 사전적 의미는 "개체 하나 하나가 강조된 존재하는 모든 것들", 곧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 전체를 뜻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명은 자연과 역사 모두를 위한 것이 됩니다.

1. 먼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몸이 거룩해야 하고 마음(맘)이 거룩해야 하며 몸과 맘(마음)이 연출해내는 삶이 거룩해져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성결입니다.

우리의 선배들은 이 인간의 성결에만 매달렸습니다. 그러나 성결이 창조주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근거를 둔 것이므로 마땅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만물에 적용돼야 하는 것입니다.

2. 만유 곧 우주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도 하나님의 거룩함을 이루어내야 합니다. 자연보호, 공해문제, 반핵문제 등이 여기 속하는 문제들입니다. 성결에 대한 해석을 자연과 역사에까지 확대함으로 우리가 발붙이고 살아가는 현실 문제에 대한 성결론적 해답을 제시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3. 만유 안에서 인간이 펼쳐내는 역사 또한 거룩해져야 합니다. 사회악의 문제, 구조악의 문제, 정치참여·현실참여 문제가 다 여기 속하는 것들입니다.

성결은 우주 구원을 담고 있는 놀랍도록 큰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결을 표방하는 성결교회가 오히려 성결을 왜소하게 만들고 초라하고 비참하게 만든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나마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성결마저 무너진 지 오랩니다. 성결교회의 앞서간 성직자들이 지녔던 거룩한 모양마저 잃어버렸습니다. 더러운 이를 탐합니다. 감투를 위해 이전투구를 서슴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성결을 부르짖으나 어찌 보면 세상 사람들보다 한술 더 뜨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더러운 짓을 서슴지 않고, 악을 잘도 용납하면서 그게 은혜로운 거랍니다. 이러고도 성결을 입에 담을 수가 있겠습니까? 사회정의 문제, 공해문제 등 세속 사회의 문제들은 외면하면서 우리는 성결을 지향한답니다. 성결교회가 세워진지 한 세기를 마감하고 2세기로 접어드는 오늘,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성결을 성결케 하는 일입니다.

성결은 우리의 인생 전체를 걸고 추구해야 할 말씀입니다. 이 한 가지에 모든 것을 걸어도 좋을 큰 말씀입니다. 늘 새롭게 태어나고(중생), 모자란 것은 채우고, 병든 곳은 치유받으며(신유), 주 예수를‘깊이 아는 놀라운 그 은혜’가운데,‘하늘나라 즐거움이 매일 새로운’날마다의 재림을 경험하는 가운데, 자라고 자라서 온전한 성결에 도달해야 합니다.

성결교회는 그 어느 종교나 교단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천착(穿鑿)하는 교단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도 좋을 것이며 이를 위하여 일생을 걸어도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그러나 낮은 차원의 성결을 뛰어 넘어 현실을 살아가는 오늘의 영혼들에게 실제적인 구원을 약속하는 성숙한 성결을 이루어냄으로만 자부심과 긍지가 제 기능을 다할 것입니다.

교단창립 100주년을 앞둔 이 시점에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성결론, 심령의 성결만 성결이라는 편협한 해석으로는 오늘을 살아가는 영혼들에게 온전한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성결을 성결케 하는 일부터 시작합시다. 그리함으로 죄로 부패한 영혼을, 망가진 자연을, 왜곡된 역사를 성결의 복음으로 거룩하게 합시다.

<활천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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