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교회는 늙어가고 있는가?

신촌포럼(2007.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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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인근 목사
(
수유리교회)

 

 


「탄생-성장-노쇠-소멸」은 우주만물의 존재양식이다. 그러나 성경은 입장을 달리 하여 인간의 노쇠 현상인 노인에 대하여 <센 머리 앞에 일어서라>거나,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는 등 소멸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보다는 오히려 경험의 축적이라든가 지혜의 완성 같은 긍정적인 가치판단을 하고 있고,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 소멸이 아니라 더 나은 시작의 단초(端初)로 보는 등 창조적 구도로 보고 있기도 하다.     


이런 전제하에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기독교 대한성결교회의 오늘을 <교회는 늙어가고 있는가?> 라는 주제로 논의한다면 그것은 첫째, 부정적 측면에서 <교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소멸에 관한 부분>과 둘째, 긍정적인 측면에서 <교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완성과 창조를 지향하고 있는 부분>에 관한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의 두 가지 입장을 만족시킬 수 있는 진단의 방법으로는 1. 유연성과 경직성 2. 역동성과 停滯性 3. 개방성과 폐쇄성, 그리고 3항과 관련하여 4. 미래지향성을 판단의 잣대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유연성과 경직성>은 변화의 가능성이라는 측면에 채택한 것이고, <역동성과 정체성>은 추진력의 유무를 판단의 기준으로, 개방성과 폐쇄성은 발전의 한계와 범위를, 그리고 미래지향성은 방향성을 진단하는 기준으로 삼는데 적절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준과 잣대로 먼저 헌법전문에 해당하는 제 1장 총강으로부터 제 4장 생활규범에 나타난 교단의 성격을 진단해 보고, 이어서 지도체제의 문제, 치리회의 문제 등을 다루고, 그 다음 교단 신학의 방향과 진전 상황을, 그리고 교회 내의 여러 정치적 행태와 분위기를 진단해 봄으로 100주년을 맞는 교단의 오늘을 진단해 보고자 한다.     


 

II. 진단

                                       

                                                                                 

1. 헌법을 통해 본 진단 

                                                       

 1) 헌법 제 1장 총강에서부터 4장 생활규범이 이르기까지의 내용은 교단의 신앙과 신학의 근간을 이루는 내용들을 담고 있다. 이미 성신연의 작업으로 4중복음의 성격이 전도표제에서 신학의 골간으로 위상이 달라졌고, 또한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이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시대배경이 농경시대에서 산업시대를 거쳐 정보통신 시대로 달라졌으며, 이에 따라 신학도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을 쉬지 않았고, 그 결과 다양한 신학적 입장이 휩쓸고 지나갔는데, 이에 대한 적절한 정리와 반영이 안 되면 시대에 뒤처지거나 동떨어진 교회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 마디로 지나간 신학적 입장도 정리하여 수용하지 못한 마당에 어찌 미래에 대한 도전을 시도인 들 해 볼 수가 있는 일이겠는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사람들의 윤리기준도 변한다. 이혼한 사람은 상대자가 죽기 전에 재혼하는 경우 주례를 서지 말라는 규정은 현실을 외면한 규정일 뿐만 아니라 비인간적인 규제이다. 이혼율이 날로 급증하는 세태 속에서 아무 말도 안하고 아무 지침도 주지 않으면서 성결만 부르짖으면 되겠는가? 낙태문제에 대해서는 우리는 어떤 입장인가? 또한 교인은 소송하지 말라는 규정의 경우 권고규정으로는 몰라도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이라 할 것이며 경제문제가 매우 복잡해지는 세태 속에서 경제와 관련된 우리의 윤리규정은 무엇인지를 밝힐 필요가 있다고 본다. 환경문제나 구조악에 대한 입장 등 현실적이고도 실제적인 문제들에 대해 입을 다문다면 누가 그 집단에게 기대를 걸겠는가? 하다못해 연약한 여승(女僧)까지 나서서 환경파괴를 두고 단식 투쟁을 할 때,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집단이 가타부타 일언반구도 없이 입을 다물고 있다면 누가 그 집단을 더불어 어깨를 나란히 할 집단으로 여기겠는가?

 

건강차원의 문제인 술 담배문제도 종교나 윤리차원이 아니라 건강차원의 자리로 돌려보내야 할 것이고, 방어적인 윤리규정 보다는 좀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윤리규정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런 삶의 구체적인 정황과 관계가 있는 제반 문제들에 있어서 기독교윤리학자들을 동원하여 유연성과 개방성이라는 측면에서 재조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런 측면에서는 늙은 게 아니라 구시대의 의식 상태에서 깨어난 적도 없는 죽은 교단이라는 평가를 받을 우려가 있어 보인다. 

  

2) 결의 기관 / 지교회의 결의기관은 전문화 시대에 부응하기에는 너무 늙어있다는 판단이다. 사무총회 직원회 당회로 이어지는 체제는 오늘의 교회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효과적이지 않으며 더구나 다가오는 시대에는 오히려 거침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① 사무총회는 일종의 직접 민주주의 정치형태인 바 교회가 소규모이던 시절에 통용되던 정치형태로서 교회가 대형화된 오늘의 상황에는 맞지 않으며 사무총회에서 다루는 내용에 있어서도 교단의 가입과 탈퇴 등 소속에 관한 사항, 담임 교역자 청빙 및 장로선출 등을 위한 투표는 몰라도 기타사항은 교인들이 잘 알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관심도 없어 비효과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판단이다.    


② 직원회의 경우, 집사, 안수집사, 권사 등의 칭호는 신앙적 성숙을 가늠하는 신위(信位)의 칭호로 끝나야 하는데 학력 경험 연령 전문성 등 어느 모로나 수준차가 극심한 사람들에게 교회의 실무를 맡긴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이냐.    


③ 당회의 권한 역시 비능률의 극치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미 목사직은 성직이면서 전문직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단계에 와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늘의 목사는 학부 4년에 세미나과정 3년을 거치고 끊임없는 재교육으로 각종 전문직 집단 중에 가장 다양하고 폭넓은 지식을 습득한 고학력 전문가이다.

 목사의 중요한 사역 중 하나인 설교만 하더라도 신학은 물론 사회학 미래학 윤리학 심리학 상담학 역사학 심지어는 언어에 관한 문제까지 관련 학문을 도외시해서는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고, 담임 목사로서 교회를 이끌어감에 있어서 경영적 마인드 까지를 갖춰야 되는 형편이다. 이런 고도의 훈련을 받은 목사와 전혀 교육이나 훈련이 돼 있지 않은 장로와의 인식의 격차가 날로 벌어져 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다면 오늘의 당회 제도는 전혀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판단이다.  


3) 목회구조

① 담임 목사 중심의 종적 구조는 교회가 당면한 목회적 사역을 감당하는데 이미 그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는 판단이다. 교인들의 요구가 다양해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의 성격이 복잡해 진 현대 사회에 일인 체제의 지도체제가 효과가 있을 리 없다. 우리 사회 어느 집단에도 이런 비능률적인 지도체제를 운영하는 집단은 없다. 더구나 이런 비능률적인 교역자 체제를 비능률적인 당회가 견제한다면 그 결과가 뻔하지 않은가.

 

② 현행 헌법에 나오는 목회자의 명칭 역시 성직의 존위(尊位)를 일컫는 원로목사 목사 전도사 와 직무를 일컫는 명칭으로 설교목사 행정목사 전도목사 음악목사 ... 등으로 이분화 하여 목회 실무진을 전문화하고 전문팀별로 주임 목사를 둔다거나 하는 조직의 현실화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한다.

  한 마디로 현행 목회구조는 전문화되고 다양화해 가는 사회 현실과 그런 현실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가 수용하기에는 너무나도 낡은 구조라는 판단이다.

 


2. 정치행태를 통해 본 진단

 

1) 유연성과 경직성의 측면에서 본 조직 장악력 부재 현상

교단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면서도 성결교단의 정치행태는 유연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라는 판단이다. 특히 타 교단과 비교해 볼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러한 유연성이 조직 장악력(掌握力)의 부재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서울 북지방회가 강북지방과 분리되는 과정에서 겪은 문제는 법과 행정과 정치의 혼돈에서 온 문제였다. 서울 북지방회는, 헌법에 규정된 행정구역별로 조직하라는 규정과 지교회 수가 30을 넘어야 한다는 규정, 그리고 당회수가 10을 넘어야 한다는 규정에 맞지 않는 강북지방과의 불법적인 분리안을 결의했고, 지역총회는 이를 허락했다. 이를 두고 정치 운운할 수가 있는 일인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경기중앙지방 일도 정치의 미숙을 드러내고  있는 일 중 하나로 보인다. 모 부총회장 후보의 자격문제는 어떠한가? 행정과 정치의 미숙을 보여주는 일 아닌가? 이를 두고 유연성 운운하기엔 너무나도 부끄러운 현실이다.

  

이런 현상 속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늙은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 유아기 현상인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비록 유아기적 유연성이라 하더라도 유연성은 변화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는 이의가 없다 하겠다. 정치는 조정능력에 따라 결과가 결정되는 수단이다. 조정이 먹혀들려면 무엇보다도 유연성이 절대적인 조건이라는 말이다. 비록 유아기 현상으로서의 유연성이라도 유연성은 가능성이다. 여기에 행정력을 바탕으로 한 조직 장악력을 강화한다면 창조적 미래를 열어갈 수 있으리라고 본다. 


그렇다면 조직 장악력의 부재는 어디서 온 것인가? 조직의 책임자인 총회장을 경영적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다만 명예로 여기는 구태의연한 가치관으로 접근하여 1년씩 돌아가며 하다 보니 조직 장악력 부재현상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 뒤따라 온 것이고, 거기 더하여 총무의 조직 장악력마저 기대하기 힘든 것은 국실장 이하 직원채용에 있어 교단 내 유력인사들의 입김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연성이 긍정적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의 유연성이 창조적 미래를 여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할지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이다.

      

2) 역동성과 정체성의 측면에서 본 정치행태

100주년 사업은 우리의 역동성을 가늠해 보는데 있어서 좋은 재료가 된다고 본다. 이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엄청난 재원을 만들어내야 하고 인원이 동원돼야 하며 시간을 소비해야 하기 때문이며 이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 비판적인 평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100주년 사업은 우리교단의 역동성을 증명해 보여준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다. 이를 확대 재생산하여 장차 행정력에 반영한다면 발전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다른 한편 각 지방회와 총회의 주요 직책을 맡은 이들의 세대교체는 긍정적 측면으로 민주적 운영방식과 인터넷 세대의 행정력 제고 등이 보이고 부정적 측면으로는 고난을 겪어보진 못한 세대의 무기력성도 엿보여 우려의 측면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어 보인다.

 

3) 개방성과 폐쇄성

개방성 면에서는 성결교단이 탁월한 우수성을 보이고 있다는 판단이다. 대내적으로는 선후배간이나 조직과 조직 간의 관계는 매우 유연한 관계 하에 있다는 평가이고 목사의 지교회 청빙과정도 타 교단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다. 교단에 따라서는 목사에 급수가 매겨져서 연령이나 경력에 따라 넘을 수 없는 벽이 상존하고 있는 형편이고 선후배간의 서슬 퍼런 서열관계는 자유로운 의사표시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없지 아니하다. 그러나 이런 점에서는 무질서하다할 만큼 유연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유연성은 곧장 개방성으로 이어진다 하겠다. 최근 이러한 임원의 자격이나 대의원 자격제한을 강화하려는 일련의 시도는 유연성과 개방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라고 평가될 것이다.    

  

개방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교단 내 일부 교역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인터넷 사이트가 유지되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성결교단은 유연성과 개방성을 지닌 교단으로 타 교단 교역자들에 의해 평가 받고 있다. 거기 올라오는 교단이나 교단 인사들에 대한 비평은 타 교단이라면 어림도 없을 내용들이다.  

                                                                                 

대외적으로는 아직도 KNCC 가입을 못하고 있는 등 외형적으로는 폐쇄성을 보이고 있으나 내용적으로는 각종 연합단체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는 등 개방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어 장차 거 기독교적인 활동에 약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본다.   


4) 미래지향성

 

① 과거지향 / 100주년은 이명직 세대의 퇴장과 특정한 지도자로 지칭되지 않는 다양한 성격의 지도자군(群)이 등장하는 세대교체의 시기이다. 퇴장하는 이명직 세대는 여러모로 유연성을 지닌 세대로서 교단을 과거지향적으로 몰고 가려는 구체적인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이는 100주년을 맞은 교단이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한편 퇴장하는 이명직 세대가 남긴 유산에 대하여 긍정적인 재해석을 시도하고 이를 다가오는 미래에 확대재생산하려는 노력은 우리의 미래에 대한 희망적 요소로 보아야 할 것이다.   

 

② 현실집착 / 그러나 상당기간 주도권을 행사해 온 주도 세력이 형태를 바꾸며 계속적으로 주도권을 행사하려는 시도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된다. 이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나갈 대체 세력이 등장하지 않은데도 원인이 있지만 다른 한편 새로운 지도자 그룹을 꾸준히 길러내지 못한 책임 또한 기존의 주도세력의 몫이라 본다.

 

100주년을 맞는 성결교회의 문제점 중 하나는 개혁적 이념을 가진 새로운 지도 세력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100년차 총회와 101년차 총회의 이념적 차이는 무엇일까? 퇴장하는 이명직 세대를 발전적으로 이어가려 한다면 이명직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요청되는 것인데 그런 작업이 보이지 않는다. 전혀 새로운 지도 이념을 창출해 내려한다면 새로운 지도자를 찾아내야 할 것인데 그 또한 아무런 낌새를 찾아보기 어렵다. 순교자 박봉진의 순교정신을 새로운 지도이념으로 내세워보자는 안도 있으나 그러기에는 박봉진은 너무 이념적이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현실집착은커녕 현실에 주저앉은 형국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다보니 생겨난 것이 <다양한 지도자군(群)>인 것이다.

  

③ 미래지향 / 100주년 사업 중 괄목할만한 사업은 성신연의 <성결교 신학>을 새롭게 정립한 것이고, 서신대 기독교교육연구소가 해낸 BCM 교육목회에 관한 작업이라고 본다. 전자는 이명직 세대의 개인 영혼구원에 매달리던 한계를 깨고 사회 전반의 구원을 위해 문을 활짝 여는 일을 신학적으로 정리해 낸 일이고, 후자는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새 시대 목회 방향을 제시하고 그 방법론을 보여준 일이다. 사실은 이명직의 사유의 틀은 유교적인 가족주의나 한 때 유행한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를 뛰어 넘는 우주론적 사유의 틀을 지닌 분이라고 본다. 이명직에 대한 재해석을 통해 미래를 열어가는 틀을 만들어 갔으면 싶다.      

   

3. 지도자들의 의식을 통해 본 진단

 

1) 지도자 부재 / 그동안 우리는 기능적 정치 지도자는 몰라도 정신적 교단지도자는 내세울만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역사적인 안목을 가지고 교단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통전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가 없었다. 성결교회의 분열과 합동의 과정에서도 지도자 그룹에게서 어떤 역사의식이라든가 시각을 지닌 이가 보이지 않는다.

 

100주년을 맞아 기성 예성의 합동을 제안한 기성측의 제안은 실현여부를 떠나서 반드시 말해져야 하는 사안이었고 제안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안의 과정에도 이 제안의 역사적 당위성을 주장하는 지도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예성을 사랑하는 모임>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 어느 젊은 예성측 목사가“우리의 후손을 생각해서 올바른 판단을 하자”고 말했지만 현실에 집착한 이들의 소리에 묻혀버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것이 100주년을 맞는 우리의 지도자들의 형편이다. 100주년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어느 구석에도 역사의식을 가진 지도자의 발언이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몹시 걱정스럽고 부끄러운 점이다.


2) 요즘 100년차 총회 임원선거 후보자 문제를 두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그 내용인즉슨 모 후보의 후보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 법해석이나 행정 절차상 오류가 있느냐 정당하냐가 핵심이다. 100주년을 지내고 난 첫 총회가 지향할 바 방향이나 미래의 목표 같은 것엔 아무런 관심이 없고 개편될 항존 위원 등 주요한 자리를 결정하는 총회라는 사실에만 관심이 있는듯 하다.

     

 

III. 마무리

 

100주년을 맞은 성결교회, 늙어가고 있는가?”이 질문에 단답형 답변을 하기는 매우 어려워 보인다. 늙기는커녕 아직 젊어보지도 못한 유아기적 유연성을 보이고 있기도 하고, 임원이나 대의원의 자격 제한을 강화하려 한다든가, 정치적 조정으로 주도권을 계속 이어가려는 시도를 한다든가, 시대에 뒤떨어진 교회의 신앙적 입장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든가, 시대에 안 맞는 교회 조직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든가 하는 부분에서는‘늙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내려도 좋을 폐쇄적인 부분도 없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유야 어떻든 성결교단은 유연성 개방성 역동성 미래지향성이라는 잣대로 재어 볼 때 총체적인 평가는 늙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성결교단이 지닌 가능성이며 경쟁력의 근거라고 본다.

   

100주년, 지금. 105년차 총회에서 결의할 헌법개정전문위원회를 만들어 변화하는 시대에 부응하는 미래지향적인 헌법을 만들어 거기 새로운 교회상, 행적조직 등 회기적인 내용을 담아 교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은 유연성, 개방성, 역동성, 미래지향성을 지닌 젊은 교단 성결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