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과 실생활

갈라디아서 5:22-26, 디도서 2:14 

 

최석모 강술/문이호 필기


 

만물 가운데 오직 사람이 가장 귀하다 함은 어린아이라도 잘 아는 말이다. 그러나 사람의 실생활에 있어서 그런 우수한 인격의 소유자를 얼마나 찾아볼까. 이사야서를 보면 "너희 패역한 자들아 마땅히 이를 생각하여 사람 노릇을 하고 심중에 깨달으라"(사 46:8) 하신 책망을 들을 수 있다. 이는 사람의 본분을 모르며 그 의무를 버린 자들에게 대한 말씀이다. 그러므로 타락한 심령은 마땅히 본연지성을 회복하여 하나님을 예배봉사하며 세상에 있어서 국가사회, 가정과 자신에 관한 의무를 다하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그러나 이 타락한 인간이 어떻게 하면 참다운 사람노릇을 할까. 예레미야서를 읽으면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된 것이요 심히 악한 것이니 뉘가 알 수 있으리오"(렘 17:9) 한 탄식을 듣나니 인간의 타락한 정도를 가히 알겠도다. 그러면 이 사악한 세대에서 어떻게 하면 거룩히 구별된 생애를 가질 수 있을까. 이번 대회는 이 대책을 강론하는 것이다. 오늘 밤의 주제인 "성결과 실생활"은 이에 대한 대답이 될 줄 믿는다.

실생활은 성결을 요구


  성결은 공상이나 이상에서 나온  황당한 말이 아니요, 성서가 명확하게 말씀하시는 바이다. 또 우리 실생활에서 누구에게나 요구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다. 이제 그 필요하다는 이유를 말하자면 이러하다.

1) 영원한 생애를 위하여

생활은 생명이 있는 동안에만 한하여 있다. 그러므로 생명의 끝도 각각 다르니 초목은 흙을 떠나면 곧 썩게 되며 짐승은 호흡이 떠나면 그만이다. 그러나 인생은 흙집(욥 4:19)을 떠나서라도 그 생명은 불멸하며 공간에 그림자가 사라진다 하여도 그 생활은 계속하니 금생과 내생이 보기에 일반이로다. 그러므로 죽도록 애써 성공이 없다 할지라도 내세생활의 준비만 성공이라면 승리요, 만족이겠다(요 19:37). 금세의 실천생활은 영원한 길에 출발점이니, 호리의 실수가 천리의 차이로, 현세의 타락은 내세의 멸망이며 세상에서 거룩히 구별된 생활은 천국복락의 그림자가 되는 줄 안다. 그러므로 성경에 "거룩하지 않으면 주를 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성결이 현세 실생활에 필요하다는 데 대하여는 여러 말이 필요치 아니할 바이다.

2) 탈선적(脫線的) 생활에서 요구

인간의 역사는 영적 여행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야곱은 애굽 바로왕에게 대답하기를 이 세상에서 나그네 된 지 일백 삼십년이라 하였다. 그의 간단한 말은 여정을 서술한 전기라 하겠다. 그런고로 일정한 목적이 있어 출발하는 자는 몰려다니며 산보하는 무리와는 달라서, 예정의 노정기(路程記)가 있어야 하고, 기차로 여행을 한다면 반드시 레일을 밟아야 할 것을 각오하여야 한다. 가령 그 궤도가 경사지거나 끊어지게 되었다 하자. 모든 생명과 짐을 싣고 있는 그 차체는 급하게 아래로 질주하다가 파쇄되리니 승객의 생명은 위기일발에서 초조할 것이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러나 지금 이 탈선적 생활을 하는 자 얼마인가? 이미 전복된 심령을 가지고도 유아독존으로 교만한 자 있으니 실로 가련하며, 한가히 지내고 무소불위하다가도 성결을 받을 줄 알고 말하는 자 적지 아니하니 가증한 무리들이다.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신자와 교역자 중에도 언행이 다르다 하니 그들의 전도까지 믿고 들을 수 없다 한다. 간혹 교묘히 이런 사정도 없진 않겠지만 십중팔구는 성결의 체험이 없는 자인 줄 안다. 만일 성결한 신자가 다 이러하다면 신자의 빛은 언제 있을 것이며 성결진리의 가치는 어디 있다고 할 것인가. 그러나 이 진리가 무능한 것이 아니라 그 개인 자체가 병든 연고이다.

그러므로 생활의 법칙에서 탈선된 자여, 속히 주 예수께 돌아오라. 그리스도께서는 이 길을 지키시려고 갈보리산에서 보혈을 흘리셨다. 이 밤에도 그 붉은 보혈이 흐르는 비상신호를 높이 들고 계시고 있나니 고민, 불평, 무법, 불안, 공포의 사선에서 뛰어나와서 십자가 상하신 발 아래 모이자! 보혈은 흐르고 성신은 불붙는데 원죄로 괴로워하는 신자는 오직 성결을 신앙으로 받으라! 이것이 중생자의 요구되는 은혜니 이를 체득한 후에야 죄와 세상을 이기고 시온성을 향해 나아가되 일사천리의 세력으로 일관매진 할 수 있다. 이런 승리의 생활을 원하는 자이어든 먼저 성결을 간구하라.

성결한 자의 실생활 상태

그리스도의 구원은 완전하사 각 개인의 자범죄를 속하는 동시에 심중에 잠재한 죄의 원성(原性)까지 깨끗케 하여 무형한 죄악의 세력에서 놓여서 자유의 생활을 하게 하셨다. 예컨대 한 밀폐된 집 안에 각 계급의 사람이 가득 차 있다 하자. 오래지 않아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탁해진 공기, 부족한 산소로 인해 머리도 아프고, 상황이 더욱 나빠지면 생명이 위태로운 지경에까지 이를 것이다. 이때 누가 그 문을 열어준다면 즉시 호흡과 정신이 회복되어 자유의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누구나 성결의 체험이 없는 자는 비록 중생자로 일시적 호흡을 할 수 있으되 머지않아 신선한 공기의 교통이 없기에 기절하는 위험을 피하지 못하리라.

사도바울도 중생 후에 실생활에 있어서 죄의 법에서 놓이지 못하여 호소한 바 있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하랴"(롬 7:24). 그러나 로마서 8장 이후의 바울은 죄의 법에서 놓임을 얻어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의 생활을 한 것을 볼 수 있으며, 여기서 그의 완전한 간증을 들을 수 있다. 이것이 성결 후의 실천생활이다. 마음에 있어서 참되면 밖으로도 나타나나니 먼저 중심의 정화가 있은 후에 그 은혜가 성장하는 데로 실생활에까지 새롭게 표명이 된다(고후 5:17-18, 약 3:10-12, 엡 5:22-23).

이제 다시 성결자의 생활 정태(情態)를 몇 가지 비유로 잠깐 서술하고자 한다. 성결자의 신앙상태는 아침 광선과 같이 어둠이 없는데 따뜻한 봄 화원과 같이 평화스럽다. 또는 한여름 숲과 같이 생명과 능력이 있어 상쾌하며 세한삼우(歲寒三友) 즉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같이 절의(節義)를 자랑하니 호연지기가 당당하다. 할렐루야! 이런 은혜를 받아 만유의 주 하나님을 예배봉사하며 세상에 있어 국가, 사회, 가정에 대한 각자의 의무를 양심(良心)으로 행하며, 다스리는 통치에 끝까지 충성을 다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인생아, 네 본분과 의무를 다하느냐? 뜻있는 자여, 먼저 '모든 선'(萬善)의 근원되는 성결의 은혜를 사모하라! 체험하라(롬 13:5,6; 벧전 2:13~14)!

성결자는 연꽃과 같다. 연못에는 사방에서 오염물이 들어와서 부패하고 더럽다. 그러나 연은 오염되지 않고 오히려 거기에서 자양분을 얻어 키는 크며 잎은 펼 때에 장대하여 보이며 꽃은 피며 향기는 날릴 때에 이것을 꽃 중의 여왕이라 한다. 그리스도의 신부 된 자여, 난관이 있다고 비굴하지 말자. 생명이 있거든, 역경을 당할수록 더욱 기세를 높이 펴면서 그리스도의 참 평안을 증거하자! 배교하여 세대를 원망하지 말고 저 연못에 가서 성결과 실생활에 대한 설교를 들으라. 영의 귀가 열렸다면 자기 죄를 핑계할 것이 없으리라. 진정한 선의 가치는 역경에서 발휘되나니 그때가 그리스도의 성결의 생활을 배우며 시련할 좋은 기회라 한다. 신앙의 용사여, 더 한층 분발하자!

성결자의 생활은 대양을 항해하는 기선과 같다. 망망대해에서 파도는 사방에서 키를 다투면서 흉용한다면 어지러운 파도에 묻힌 일엽의 배쯤이야 거칠게 빠지는 것을 면치 못하겠다. 그러나 경험 많고 능숙한 선장이 키를 조종한다면 아무 사고 없이 목적지에 안착할 수 있다. 우리 신자에게도 저 파도와 같은 어려움이 없지 않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선장되시고 성신은 증기(蒸氣) 되심같이 진리와 능력으로 같이 하심에, 비록 고해(苦海)의 근심풍파, 슬픔파도와 시합(試合)이 있다 하여도, 만고(萬苦)를 정복한 개가(凱歌)는 피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든 성도와 천사들에게 큰 흥미를 줄 것이며,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하신 주님에게 찬미의 예배가 되는 줄 아노라. 이것이 성도의 생활이라 하겠다.

성결의 생활이 세상에 주는 유익

죄 중에서 거듭나고 성결한 자는 자연히 대중에게 선을 행하게 된다(딤 4:14). 이는 성신이 성결자의 신앙에서 발동하고 있는 까닭이다. 마치 몇 천만 볼트의 전력을 일으키는 발전소가 있어, 그 광력으로는 흑암한 밤에 빛을 주며 그 동력으로는 인류 생활상 필요한 것을 제작하는 모든 기계를 운전하고 있음과 같다. 올여름 감리교에서는 요한 웨슬리 부흥의 2백주년 기념집회가 있었다. 실로 18세기의 부패한 교회와 사회는 요한 웨슬리의 성결운동으로 말미암아 일신되었다. 그 광채는 지금도 찬란하여 그때의 성결운동의 위력은 미약하나 오늘밤 이 집회석상에서도 맥이 뛰고 있음을 주의하라.

끝으로 부탁하는 말씀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 1:16) 하셨으니 하나님의 자녀된 자여, 이 은혜를 받아 실생활에서 거룩히 구별되어라. 주를 영접하려는 자여, 성결의 옷을 준비하라. 교회의 사명에 충성하려거든 먼저 이 은혜를 체험하라. 지금의 비상시국에 처하여 보국의 정신을 가진 자여, 이 은혜를 실천생활에 나타내라. 성신의 열매를 맺는 그곳에는 영육간 어느 방면을 물론하고 그 은파(恩波)에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오늘 밤 말씀드린 '성결과 실생활'이란 문제는 가장 긴급한 문제라고 절감한다. 지금이 모든 선(萬善)의 근원되는 성결의 은혜를 간구하여 우리의 본분과 의무를 다하자.

활천 2004년 10월호(1938년 7월호 244-247쪽의 글을 현대어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