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강산에 성결의 바람이여, 불어라!


안 막 목사
(
동일교회)

 

2007년이면 성결교회가 100주년이 된다. 자랑스럽게도 지금 우리는 3년이면 맞이할 교단 100주년을 준비하고 있다. “백년을 이어온 한국성결교회 천년을 이어갈 세계성결교회를” 위하여 이때 우리는 지혜를 모아 교단의 정체성과 교단의 미래를 찾아야 한다. 지금은 성결가족 전체가 더불어 기도할 때이다.

성결교회의 정체성

우리 교단 헌법은 성결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결이라 함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신의 세례를 받음이니, 곧 거듭난 후에 신앙으로 순간에 받는 경험이다. 이 은혜는 원죄에서 정결하게 씻음과 그 사람을 성별(聖別)하여 하나님을 봉사하기에 현저한 능력을 주심이다(행 1:4, 5, 8; 15:8, 9; 눅 24:49). 사람이 의롭다함을 얻음에 신앙이 유일한 조건 됨같이 성결도 오직 신앙으로 얻는 은혜이다(롬 5:1, 행 15:8, 9, 갈 3:14, 요일1:9).”

요한 웨슬리는 성결을 성령세례로 표현한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성결은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속에 역사하심으로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에게 외적으로 나타나는 빛의 성질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빛은 발해야 한다. 또 내적으로는 그 양심을 일깨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정직하고 똑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그리하여 성결은 그 영혼이 거룩한 순종을 하도록 할 뿐 아니라 거룩한 의무도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갖게 한다. 본질상, 우리 자신들은 영적인 일은 수행할 힘이 없으나 중생과 성화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해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부여받게 된다.

이제 우리는 성령으로 뜨거워져야 한다. 체험적 성도가 되어야 한다. 요한 웨슬리 자신도 친히 올더스게잇에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성령체험의 확신 있는 신앙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김상준, 정 빈이 시작한 성령운동, 부흥운동으로 돌아가자. 뜨거움과 열정과 순수의 그 처음 모습으로 되돌아가자.

성결교회의 미래

우리는 다시 한 번 강력한 성령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성결교회의 시작은 한마디로 성령에 이끌리는 사람들의 시작이었다. 성령님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원초적인 전도의 시작, 그것은 예루살렘교회가 그리했으며, 초기 한국교회가 그리했으며, 한국성결교회가 그리했다.

그러하기에 100주년을 맞이하는 성결교회는 이 역사적 시점을 교단 부흥의 중요한 목표로 삼아 그 일을 이루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것은 3천교회 100만 성도를 꼭 되게 해야 한다. 무엇이 성결교회의 성장을 멈추게 하고 있는가? 무엇이 우리를 선배들이 이룬 교세를 더 증가치 못하는 부끄러운 후배로 만들고 있는가? 또 하나는 세계 교회사에 기념비가 되게 할 영적 대각성의 성령운동이 일어나게 하자. 단순히 100주년 기념행사나 잔치가 아니라, 한국교회에 영적 흐름을 바꿀 성령운동이 일어나게 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시대마다 함께 하셨던 성령운동의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① 1738년, 시작된 영국의 요한 웨슬리의 성령운동의 영향력이다. ② 1837-1898년, 미국의 무디 부흥운동의 영향력이다. ③ 1907년, 한국의 평양에서 일어난 성령운동의 영향력이다. ④ 이제 2007년, 한국성결교회의 100주년을 세계기독교회사에 기념비 될 만한 영적 대각성운동의 기회로 삼아라. 성결가족이여 일어나라. 이 강산에 성결의 바람을 불게 하라. 하나님께서 성결교단에 허락하신 축복의 때를, 축복의 기회로 만들자.

이제 성결교회의 미래를 위하여, 오늘 100주년을 위한 준비를 세 가지만 강조하고 싶다.

첫째는, 성결교회에 회개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1907년 제2오순절과 같은 성령강림도 장대현교회 부흥사경회에서의 회개에서 불씨가 되었다. 미스바 성회의 주제도 회개운동이였다.

둘째는, 성결교회에 전도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요한 웨슬리가 보여준 열정은 “세계가 나의 교구다”라는 전도대헌장이다. 교회는 전도하는 것이 교회의 중요 표적이요, 본질이다. 김상준, 정 빈이 무교동에서 시작한 노방전도의 북소리를 다시 울려야 한다. 성결가족 전체가 함께 해야 할 전도운동이다.

셋째는, 성결교회에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어린이부흥운동이다. 교단이 이미 관심을 가진 것은 다행한 일이다. 다음 세대를 위한 비전과 준비가 없으면 안된다.

<활천 2004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