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찬 : 박명수 박사의 발제에 대하여


송기식 목사(수원교회)


발제자 박명수 박사는 대부분 신학자들이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성결교회의 신학적 뿌리와 정체성을 연구하는 일에 추종을 불허하는 업적을 남겼다.

따라서 본 주제에 대한 그의 발제에 논찬을 가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한 일이라 생각된다. 다만 밀레니엄의 전환시점에서 더불어 이야기하는 자리라는 점에 의미를 두고 논찬의 부탁에 응하게 되었다.

발제자는 성결교회 신학의 뿌리는 개신교 복음주의와 웨슬레안 신학, 그리고 19세기 미국에서 일어난 성결운동이라 밝힌다. 또한 성결교회신학의 특징은 성서의 권위와 체험주의, 그리고 영육의 온전한 구원을 주장하는 데 있고, 선교지향적 교회론과 종말론적 역사이해, 그리고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에 있다고 말한다.

1. " 온건한 복음주의"는 잘 그려진 자화상이다.

성결교회의 복음주의는 극단적 자유주의처럼 성서의 권위를 부정하지 않으면서 극단적 보수주의처럼 모든 것을 정통교회의 자로 재려고 하지 않는 온건한 복음주의라고 규정한 것은 비교적 잘 그려진 자화상이라고 생각한다.

혹자는 우리의 선인들의 글에서 극단적 보수주의를 읽었다거나 또는 낭만적이고 감상적이고 부정확한 성결파의 가르침 때문에 신학결핍증 외에 볼 것이 없다는 자기비하를 서슴치 않는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가 설사 자기 자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천방지축하였다 해도, 뒤늦게 나마 자신의 모습을 밝혀주는 일은 신학자의 올바른 역할이며 결코 지나친 미화라고 생각지 않는다.

단 복음주의 혹은 온건한 복음주의라는 것이 분명치 못한 입장을 호도하는 용어일 가능성이 있다. 성서관의 문제, 타종교에 대한 태도 등에서 근본주의나 자유주의(다원주의) 등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밝혀나가야 할 것이다.

2. 성서의 권위와 학문적 발전의 문제제기에 대하여

성결교회의 신학은 전통적인 성서관을 고수하자니 학문적인 발전이 없고, 새로운 비평학을 받아들이자니 우리의 전통과 맞지 않아서, 이것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하는 성서신학적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논찬자는 소위 "학문적 발전"이라는 용어와 개념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한다. 학문적 발전은 계몽주의 이래 인간이성에 의한 관념들의 집적물로서 세계와 역사에 대한 맹목적인 진보관을 내포하여 왔다. 포스트모던 시대는 종래의 학문에 대한 이해 및 방법론 전체에 대하여 근원적 반성을 요청하고 있다.

차제에 복음주의 성서신학은 비평학에 대한 역비평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서신학자들의 분발할 과제일 것이다.

3. 선교지향적 교회론이 퇴조하고 있다.

발제자는 성결교회 신학이 선교지향적 교회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도적 융통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감독제에서 의회제도로 상황에 따라 바꿀 수 있었다는 역사적 예를 들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와서 성결교회는 선교지향적 교회가 예전적 교회의 형식을 닮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19세기 미국 감리교회가 생동력있는 선교지향적 교회에서 전례에 매인 형식적인 교회로 굳어짐에 대한 반작용으로 성결파가 감리교회에서 분리하여 나왔다. 그런데 지금 한국 성결교회는 19세기 미국 감리교회의 전례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해방후 감독제에서 장로제도로 바뀐 것이 당시의 시대적 한국적 상황에 의한 융통성이라고 한다면, 지금 시대 상황이 많이 바뀌었는데, 오늘에 적합한 선교지향적 교회구조를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4. 온전한 구원은 생태계까지 확대할 수 없는 것일까?

웨슬리의 구원론은 칭의에 머물지 않고 성화에 의하여 세상을 이기는 능력에 이르는 것이라면, 19세기 성결운동에 의한 신유는 영혼구원뿐 아니라 육체의 구원을 포괄한다고 한다. 육체는 자연계에 속한다. 신유가 육체에 대한 치유를 의미한다면,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이 속량받고 치유되기를 원하신다는 점에서 성결교회 신학은 온전한 구원의 개념 속에서 생태계를 포함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5 성결교회와 사회참여 문제에 대하여

발제자는 본래 미국의 성결운동이 가난한 자와 여성 등 약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에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성결운동은 죄를 용인하는 신학이 아니라 죄를 제거하는 신학이기 때문에 기존의 그 어떤 신학보다도 강력한 개혁적인 모티브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혹자는 비평하기를 한국 성결교회 역사가 사회참여에 소극적이었고 영혼구원에만 치중하였다고 하여, 복음주의 내지는 성결운동 자체가 사회적 관심을 배척한다고 한다.

그러나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성결운동은 선교지향적 교회론을 가지고 있으며 교회의 제1차적 목표는 복음전도이며, 사회개혁은 복음전도에 수반하는 상황이다.

일제의 강압정치 치하에서는 교회가 사회개혁보다 복음전도에 전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도덕적으로 극히 혼미하고 불결한 시대에 성결운동은 복음전도와 함께 사회정화의 근원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본다.

오늘의 한국 교계에 만연한 오해가 있다. 사회개혁은 오직 진보적 기독교의 전유물로 보는 견해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피면, 어느 시대나 참된 사회참여 운동은 복음주의자들의 몫이었다.

6. 종말론적인 역사이해와 전천년설

성결교회의 역사관은 종말론적이다. 성결교회의 전천년설은 역사를 비판적으로 본다.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인류는 진보할 것이라고 보는 견해를 비판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종말이 온다고 믿는다. 따라서 성결교회는 순진한 낙관주의를 거부한다. 동시에 시한부 종말론자처럼 역사를 도피하지 않고 역사 속에서 긴장하며 사명을 수행한다는 발제자의 견해에 동의한다.

그러나 전천년설의 세부사항에 이르기까지 교회적으로 경색화할 필요는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19세기 말의 선교열정이 종말론적 열기에 힘입은 것이라면, 오늘의 도덕적 혼란의 풍조에 맞서서 종말론적 인식으로 문화선교에 힘을 쏟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