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이 곧 행복이다

 

강종철 목사


 

인간은 본능적으로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종종 그것을 획득하거나 발견하는 데 실패한다. 그것은 판도라(Pandora)의 전철을 밟기 때문이다. 신들에 의해 지음받은 최초의 여인 판도라는 참된 행복을 신들과 함께 하는 친밀한 관계 안에서 찾지 못하고, 신들이 그녀에게 준 특별한 상자, 즉 외적인 곳에서 찾고자 신들이 금한 그 특별한 상자를 열어 버린다. 그 상자의 내용물을 통하여 행복을 찾고자 하는 지칠 줄 모르는 그녀의 행복추구 때문이었다.

그러나 판도라에게 주어진 내용물은 행복을 선사해주기는커녕 근심과 고통과 불행을 가져다준다. 행복의 자원에 대한 판도라의 오해로 빚어진 결과이다. 그녀의 이러한 오해는 “행복은 참으로 어디서 오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아무튼 행복의 출처에 대한 판도라의 오해, 그러한 오해에 근거한 행복추구적인 행동은 인간을 점점 소유지향적인 존재로 만들어간다. 돈(물질), 많은 친구, 아름다운 용모, 인기와 명성, 건강, 권력, 업적의 소유에 경쟁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러한 판도라적인 상자의 내용물에서 나오는 듯한 행복은 어느새 단명하고 마침내는 땅 끝으로 추락하고 만다.

그러므로 이러한 외적인 요소를 통하여 행복을 발견하고자 하는 이상 그 어느 누구도 시지푸스적인 비극에 접할 뿐이다. “ 행복을 잡았다!”라고 외치는 순간 이내 추락을 경험하는 시지푸스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좌절을 경험하게 될 것이며 마침내 그 옛날 전도서 기자가 토로한 동일한 탄식을 하게 될 것이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전 1:2-3)라는 그러한 탄식을 말이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안에 있다. 성결은 이러한 친밀한 관계를 형성시키고 심화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이다. 따라서 행복과 성결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두 가지 축이다. 이런 이유로 거룩하신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씀을 주신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들도 거룩할찌니라!”(레 11:45)라고 말이다. 이 말씀은 인간에게 스트레스를 주시고자 함이 아니요, 더 친밀한 관계 안으로 사람들을 이끌어가 성결을 통하여 그 가운데서 참된 행복을 선물로 제공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와 심정을 담고 있다.

교회의 전통에서 요한 웨슬리(John Wesley)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행복이 성결에서 나온다는 것을 깊게 통찰한 영적인 지도자요 선각자이다. 실제로는 성결한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참된 행복을 발견하고 느끼며 살아간 진정한 의미의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 옛날 성결한 삶의 컨텍스트 안에 서 행복을 발견하며 살아간 모세, 다윗, 이사야, 예수 그리스도, 바울과 베드로처럼 그렇게 행복을 추구하며 누리며 살다간 자였다.

요한 웨슬리에 의하면 행복과 성결은 그리스도인의 살아 있는 믿음의 열매이다. 말하자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죄는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해를 한다. 성결은 양자를 깊은 관계로 묶어주며 그리스도인은 마침내 성결의 컨텍스트 안에서 어둠에서 빛으로, 죄와 두려움에서 행복을 선물로 얻는다. 행복에 대한 웨슬리의 분명한 인식은“성결이 행복”이라는 위대한 명제를 발언하기에 이른다. 『기독자의 완전에 관한 부가적인 설명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그는 성결한 삶이 곧 사랑의 삶이며 사랑의 삶은 세상의 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법에 온전히 순종하며 사는 삶이라고 피력한다. 그러기에 이러한 삶을 사는 자는 구별될 수 밖에 없고 웨슬리는 이러한 성결한 사람을 ‘메소디스트’(Methodist)라고 부른다.

그의 여러 저작물을 검토해보면 성결한 사람은 다음과 같은 이미지를 얻는다. 성결한 사람은 습관적으로 하나님과의 연합을 이루고자 추구하는 자이며, 자신의 죄를 기꺼이 폭로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이다(롬 7:22). 성결한 사람은 또한 언제나 마음의 순수성을 견지하며 사는 자이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섬기는 사람이다. 그들은 언제나 겸손으로 하나님을 따르며, 생명 있는 모든 존재와의 관계나 임무에 있어서 언제나 성실하다. 그들은 또한 언제나 타인에게 사랑과 자비로운 마음으로 나아가고, 언제나 영적으로 예민한 감성을 가지고 영적인 일에 집중하며 살아간다.

더 나아가 성결한 사람은 참된 행복이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 안에서 나온다는 것을 확신하고 하나님께 행복을 구한다. 이러한 성결한 삶의 일련의 과정 속에서 그들은 참된 행복을 실제로 발견하며, 모세와 다윗과 솔로몬처럼 삶의 자리에서 그들이 발견한 행복을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증언하며 살아간다.

웨슬리는 그의 설교“산상수훈: 여덟 가지 행복”에서 성결과 행복 간의 관계를 지적한 후, 참된 행복의 조건이 다름 아닌 성결이라고 운을 뗀다. 그런 후 성결이 곧 행복이라는 저 유명한 명제를 이끌어 낸다. 설교에서 웨슬리는 행복을 산출하는 여덟 가지 성결한 삶의 차원을 소개한다. 마음의 가난, 죄로 인한 애통, 온유한 마음, 긍휼, 마음의 청결, 굶주림과 갈증 차원의 의로운 삶의 추구, 평화를 갈망하고 평화를 위한 실천, 의로운 삶과 그로 인한 박해가 그것이다.

웨슬리에 의하면 이러한 성결한 삶의 다양한 차원은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행복을 창출하는 내적인 조건인 셈이다. 바꾸어 말하면 참된 행복은 바로 이러한 여덟 가지 성결한 삶의 컨텍스트 안에서 창출된다는 것이다. 결국 웨슬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행복이 다름 아닌 성결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성결한 삶, 거룩한 길에 들어선 자에게 주어지는 행복한 삶을 노래한 그 옛날 예언자 이사야의 말씀과 같은 맥락이다(사 35:8, 10).

 

“대로가 그곳에 있을 것이다. 그 길은 거룩한 길이라 불릴 것이다. 깨끗하지 못한 자는 건너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받은 자만이 그리로 행할 것이다... 영원한 기쁨, 기쁨과 즐거움은 속량을 받은 자들의 머리에 영원히 있을 것이다. 이 대로에는 샤론의 백합화마저 행복에 겨워 노래하게 될 것이다.”

 

산상수훈의 여덟 가지 행복에서 통찰하듯, 웨슬리는 이렇게 성결이 곧 행복이라고 믿는다. 이런 이유로 그는 성결한 삶을 유지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몇 가지 중요한 임무를 매일 실천하기에 이른다. 그것은 성결의 컨텍스트 안에서 언제나 행복한 삶을 살고자 바라는 웨슬리의 깊은 갈망에 기인한다.

웨슬리는 매일 자기를 정화시키는 훈련, 하나님께 대한 경건한 삶의 실천, 자기를 부인하는 훈련, 하나님을 바라보는 훈련, 그리스도의 현존 안에 머무는 삶의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아주 엄격할 정도로 말이다. 이러한 삶의 실천은 항상『자기검토의 쉐마』의 거름망을 통과했다.

웨슬리의 자기 검토의 쉐마는 다음과 같다.

 

 하루 중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행동한 적은 없는가?

 겸손, 믿음, 소망, 사랑의 삶을 위하여 기도했는가?

 묵상을 실천하였는가?

 선한 일을 행하는 데 힘써왔는가?

 복음을 낯선 자에게 전했는가?

 다른 이에게 불친절한 적은 없는가?

 이웃의 덕스런 삶과 행복한 삶에 함께 기뻐하고 그들의 고통과 죄에 대하여 울어 주었는가?

 

지금까지 필자는 그리스도인의 행복의 본질과 행복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말해왔다. 그 이슈의 한복판에 성결이라는 키워드를 가져와 행복한 삶을 반성해 보았다. 성결한 삶이라는 컨텍스트 안에서 발견되고 누리는 행복은 외적인 요소, 말하자면 판도라적인 상자의 내용물을 통하여 나오지 않는다.

그러기에 소유하고 있는 물질이 없어도, 드러낼 명예가 없어도, 함께 할 친구가 없어도, 행사할 권력과 배경이 없어도, 남에게 가르침을 줄 만한 지식이 없고, 설사 건강을 상실한다 해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성결한 그리스도인은 행복할 수 있다.

주의 사자와 씨름하며 절름발이가 되었어도 야곱은 행복했다. 모든 것을 상실한 영혼의 어두운 삶의 국면에 있었던 욥도 주님 때문에 행복했다. 저 극한의 고통스런 십자가의 자리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사랑하는 사람들 때문에 행복을 느끼며 당당하게 돌아가셨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다가 고난받고 지병으로 고통을 앓는 그 순간에도 바울은 행복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예수 공동체의 핵심리더로서 유대주의자들의 박해 상황에서도 언제나 베드로는 행복했다. 그들은 모두 주님과의 깊은 관계를 시작케 하고 강화시키는 성결한 삶의 컨텍스트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엄청난 위로와 용기로 작용한다.

희망찬 2008년,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에게 행복의 메시지를 전한다. “웨슬리가 말한‘성결이 곧 행복입니다’라고 말한 그 메시지를 가슴에 새겨 보십시오. 성결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리고 행복하십시오!”

 

<활천 2008년 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