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과연 교단은 있는가

교단창립일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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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상봉 목사
(동대전교회)


늦은 감이 있지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필자는 종교와 문화의 경계가 무너지고, 거룩한 교회에서 예배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를 대신하여 기획된 이벤트와 메시지와 다양한 행사가 문화를 통한 선교라는 이름으로 교회에서 종교의 역할과 자리를 차지하는 경향이 심해지는 현상을 보며, 개신교의 종교적 영성이 훼손되고 있음을 감지하며 미래 교회의 위기를 느낀다.

사람들은 특별한 것 또는 예외적인 것을 추구하며 하늘의 영광보다는 지상의 최고를 추구하고, 내세에 받을 상급과 면류관보다는 현세에 받을 축하와 인정에 목말라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성직의 고귀함보다는 전문적인 직업의 탁월함을 추구하는 지도자를 높이 평가하는 성향이 있다. 그 결과 이제는 성직자를 청빙하는 시대이기보다는 유능한 목회 전문가를 채용하는 시대가 되었다.

바른 신앙, 바른 성결은 성결교회의 자랑이며, 교단에 속한 성직자들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주님 오실 때까지 유지하며 추구하여야 할 신앙생활이다.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사중복음은 혼돈의 시대에 교단의 위상과 품격을 높이며 열방을 향하여 전하여야 하는 위대한 유산이자 성결인의 사명이다. 이를 위하여 교단과 교단에 속한 신학대학은 정체성을 회복하여야 한다.

교단의 지도자들과 신학대학의 교수들은 성결교회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교단에 속한 교회들과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갖도록 영적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교단의 기품을 세우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조직이나 공동체가 구속력과 집행력을 잃어버린다면 머지않아 붕괴될 것이며, 이탈자가 많아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이나 공동체는 끊임없이 회원들에게 소속감과 자긍심을 심어주기 위한 연구와 노력이 있어야 하며, 공동체에 대한 의존성과 자부심을 공유할 수 있는 필요를 공급하여야 한다.

총회본부는 지방회의 발전과 지방회에 속한 지교회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총회의 원활한 운영을 위하여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으로 상회비 선납금을 인상하거나, 개교회의 분규에 개입하여 한 편의 손을 들어주며 승패(?)를 가름하여 주는 곳인가? 또 특정인에 의하여 주도되는 사안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하는 곳인가?

신학대학은 교단을 위하여, 개교회를 위하여 무엇을 하는가? 더 나아가 글로벌 시대에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위하여 무엇을 하는가? 혹시 교단의 울타리 안에서 충원되는학생들을 일정기간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존속시키다가 때가 되면 알아서 졸업이라는 이름으로 학교 밖으로 내보내면 되는 체류장은 아닌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 정체성과 자긍심이 교단에 필요하다. 한동안 신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되었던 자생(自生)교단의 여부를 뛰어넘어, 그런 자긍심이 교단에 있다면 자긍심과 소속감을 갖도록 총회는 지교회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배출하게 될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에게 교단의 정체성을 심어 주려면, 서울신학대학은 교단 신학대학이라는 소속감을 확실하게 갖고, 교단의 역사를 계승하는 전통과 신학의 기틀을 바르게 잡아 줄 책임과 사명이 있어야 한다.

지금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가 있는가? 교단적으로 누가 총회장이 되고, 누가 총무가 되고, 누가 총장이 될 것인가에 너무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로 인하여 지역주의와 파벌주의를 형성하지는 않는가? 차제에 총회장은 지방회장들이 모여 그 가운데서 선출하는 것은 어떨까? 총무는 전총회장들과 지방회방들이 후보를 검증하고, 복수추천하여 총회에서 선출하는 것은 어떨까?

개척의 현장은 생사의 문제가 걸려 있는 곳이다. 누가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으며, 개척의 모양을 벗고, 거룩한 교회의 모습을 지역사회에서 보일 수 있도록 이끌어 주고 있는가 생각해 보자. 과감하게 총회 상납금을 줄이고, 총회적으로 교회성장전략을 수립하여 지방회에 업무를 이관하고 가능성 있는 교회에 재력을 모아주는 것은 어떨까?

신학대학은 양질의 졸업생을 배출하기 위하여 기능성을 개혁하자. 교수는 교단의 울타리에 안주하지 말고 글로벌 시대에 맞는 경쟁력을 강화하여, 그에 맞는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를 배출할 수는 없을까? 정보화시대에 줄업생의 진로를 위하여 취업을 준비시키고, 취업의 기회를 다양하게 제공해줄 수 있는 전문기관을 학교에 두고, 이를 위한 전문가를 배치할 수는 없을까?

종교와 문화의 개념도 정립이 안된 모습으로 교역자가 되어 배움이라는 이름으로 방황하는 목회자가 너무 많다. 한 연구소에서 조사한 결과만을 가지고 지도자들이 교단의 경쟁력을 이야기하지만, 조직의 하부에는 실패의 아픔과 상처가 깊어진 모습으로 구령의 열정이 식어가고, 목회에 지친 이들이 너무 많다.

누가 이들을 품에 안고 희망과 용기와 혜안을 제시할 것인가? 실력 있는 자는 살고, 실력 없는 자는 죽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교단은 왜 있어야 하는가? 함께 살고, 함께 일어나는 환상과 신앙의 의리를 회복하고, 다시 모두 교단의 소속감을 공유하고 함께 일어나 복음을 위하여 교단의 부흥과 개교회의 성장을 향하여 달려가기를 소망한다.

<활천 2008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