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자부심과 사명

- 교단창립기념일을 맞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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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철|새순교회 목사, <교회와 역사> 연구소장

 

한국 기독교에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선교사가 오기 전에 성경이 이미 번역되었다는 것, 둘째, 유불선 등 타종교뿐 아니라 수많은 교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전쟁이나 희생이 없이 공존하는 것, 셋째, 100년 남짓 역사에 전세계 교단의 가장 큰 교회가 모두 있다는 것, 넷째, 한국인에 의해 생겨난 자생교단이 건전하게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필자가 성결가족이기에 구색맞추기용으로 넷째를 첨가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성결가족이 성결교회를 평가절하하거나 그 가치에 대해서 숙고하지 않고 다른 중소교단쯤으로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자기 부정이다. 1907년 김상준, 정 빈 두 사부에 의해서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으로 시작한 성결교회는 역사, 교회, 인물이라는 세가지 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 한국사적으로 성결교단의 탄생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가? 성결교단이 탄생한 때는 제국주의의 팽창정책으로 아시아와 서구열강의 문명과 가치가 격돌하는 시대였다. 그때에 우리나라는 뇌관이었고, 전장(戰場) 그 자체였다. 중화문명권이 해체되고 세계사로 편입되는 그 시점에서 성결교회가 출현했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종교적인 변화사건이 아니라 한 사회의 문명사적이고 역사적인 도전에 대한 응전이요 반응인 것이다. 성결교회와 선진들은 서구의 성서와 복음을 받아들였고, 거기에 역사적인 해방과 평화를 꿈꾸는 재림신앙, 그리고 신문명, 신생활 방식으로 성결의 은혜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제시했던 것이다. 이것은 종교적 해석의 차원을 넘어서 사회와 민족의 미래를 위한 시민의식의 한 모형을 기독교적으로 제시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째, 교회사적으로 성결교단의 탄생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모두가 알고 있듯이 교파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하나요, 다른 하나는 성결교회가 국내외적으로 매우 건전하게 성장하는 것이다. 교회사적으로 보자면 성결교회가 웨슬리일 수도 있고, 혹자처럼 만국성결운동의 영향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한국인 김상준, 정 빈 사부가 주도하는 한국의 성결교회가 아주 건전한 방향으로 부흥했다는 것은 교회사적으로 인정받고 연구할 만한 가치 있는 중대한 일이다. 역사적으로 민족의 역사를 꿰뚫는 단군교나 천도교, 증산교가 하나의 신화에 머무를 뿐, 민족종교로 될 수 없는 까닭은 세계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고, 남묘호렌교나 아니면 중화권의 다양한 토착화라는 신앙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상식 이하이기 때문에 지지를 받지 못한다. 또한 중국의 삼자교회, 독일의 제국교회 등을 비롯한 기형적이고 지나친 상황화를 시도한 교회도 인정을 받기 어렵다. 과연 이런 교회들이 과연 자기 나라 외에 다른 나라에서 전도가 되고 성장이 된 경우가 있는가? 그러나 성결교회는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시작되었지만 전세계에서 인정을 받을 뿐 아니라 고르게 선교활동을 하고 신학교를 세우고 쓰임받는 것은 국내에서는 성결교회가 유일한 것으로 이것은 교회사적으로 매우 기념비적인 일이다.

마지막으로 인물을 놓고 봤을 때에 성결교회의 탄생이 왜 중요한가? 성결교회의 사부인 김상준, 정 빈, 이명헌, 이명직, 이장하 등 면면이 모두 한학을 공부한 전통적인 한국의 지식인이었다. 당시는 사회 전반적으로 지식인층보다 서얼과 하층민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시기였는데, 이것이 한편으로는 득이 되지만 한편으로는 약점도 있었는데, 바로 한국적인 독창성과 주도적인 목회 내지는 선교적 한계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성결교회는 이런 점을 이미 초기부터 스스로 해결했다. 김상준이 1907년 귀국할 때 이미 번역된 자체 찬송가를 가지고 들어왔고, 1910년에는 우리나라 최초 부표관주신약전서를 집필하여 부호와 붉은색 글씨를 이용해 성경을 이해하기 쉽도록 했다. 이를테면 학습자중심의 교육과 복음전도인 셈이다. 무조건 선교사들에게 배우고, 시킨 대로 전도하고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니라 끝까지 자기의 의식과 자주적인 사고를 가지고 전도하고 가르친것이다. 이런 전통으로 성결교회는 교파중심, 권위주의 교회가 아니라 전도중심, 현장중심, 필요중심적 목양의 교회가 되었다. 교세확장이 아니라 복음전도가 목적이었고, 경쟁과 프로그램이 아니라 천막이든 시장이든 전도를 통한 부흥을 이루었고, 정치와 체제가 목적이 아니라 현장에서 호흡하고 쓰임받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했다.

우리 교단은 이런 한말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지식인들의 세계사적 응전에서 나온 가장 한국적이면서, 동시에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통할 수 있는 세계적인 복음화와 토착화, 그리고 선교적인 열매가 되는 자랑스러운 교단이다. 이런 교단의 자랑스러움이 어찌 웨슬리에서만 나왔으며 어찌 만국성결운동에서만 나왔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오르고 오르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요, 내리고 내리면 나로 이어져서 또 세계로 퍼져나갈 것인데, 그 장소는 한국이라는 것이요, 그 사람이 한국인이요, 지금도 한국에서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교회사적이고 복음적 정통성과 함께 역사적, 민족적 정통성을 가진‘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세계적인 교회’가 바로 성결교회이다.

<활천 2009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