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과 우리에 대한 몇 가지 질문

이용원 목사

 

우리 자신과 성결교회 그리고 한국의 기독교는 다음 몇 가지 질문에 정직하게 답변하지 않으면 안될 때가 되었습니다.

첫째 우리는 성결하고 경건한가? 성결과 경건은 하나님께 향한 마음과 태도이며 마지막 심판과 축복의 기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세상과 사람, 물질을 더 의식하고 있어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스스로 잃어가고 있습니다.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는 영적이기보다 육적인 경향을 너무나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물량주의가 목회의 기준과 교회 성장의 목표가 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섬기는 종으로 오신 주님의 종인데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정직하고 솔직하지 못하여 가식과 꾸밈과 외모치장에 급급하며 내적 정화에 등한해진 우리는 아닌가, 무엇이 되어야 하고 모든 사람의 칭찬의 대상이 되고 높아지려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둘째 교회가 지역사회에 진정 ‘주는’ 교회가 되고 있는가? 우리 주님께서는 인간이 영과 마음과 몸으로 되어 있는 것을 아시고 영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셨고 마음을 위하여 가르치셨으며, 육체를 위하여 먹이시고 치료하는 전인(全人)구원을 하시었습니다. 주님과 같이, 이를 실천한 시대의 교회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고, 사회의 존경을 받았는데 지금은 설교가 강조되고 있는 만큼 사회를 가르치지 못하고 나누어주지 못하여 교회와 신자는 많지만 사회와 민족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목회의 대상은 교회 안에 있는 이미 구원받은 성도가 아니라 교회 안에 들어오지 않은 교회 밖에 있는 길 잃은 영혼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지역사회에 교회가 없으면 안된다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교회가 지역사회의 빛과 소금이 될 때에 교회의 위상은 높아질 것입니다.

셋째 민족목회는 포기하였는가? 왜 우리 사회는 성결교회를 무서워하지 않습니까! 온갖 부정과 불법이 판을 치고 난무하던 시대에도 우리는 따끔한 충고 한 번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어둠의 세력을 정당화시켜주는 역할을 하지는 않았는지요. 어느 평신도의 탄식어린 얘기입니다. “오늘, 한국에 교회와 목사는 많지만 민족 목회자는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하면 목사들이 외치는 말씀이 위대하니까 존경하는 것이지 존경할 신앙 인격을 가진 경건하고 성결한 분은 없습니다. 왜, 그렇게 명예심은 많으며, 왜 그렇게 돈에 약합니까? 강한 자와 많이 가진 자에게 약하고, 약하고 없는 자에게 강하다면 그것은 비겁한 것 아닙니까?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을 불쌍히 여기셨는데 우리 사회와 민족에 주기철 목사, 조만식 장로, 이성봉 목사 같은 참목자가 없는 것이 비극입니다.”

넷째 우리의 미래는 밝은가? 본래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회개와 성령운동, 신유 그리고 강해 설교 등을 가지고 크게 부흥하는 교회가 생겨나는 것을 보고 놀라 당황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학교에서 양질의 교육을 받고 좋은 목회자들이 배출되면 우리의 미래는 밝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신학교에서 훈련 중에 있는 학생들의 목표와 꿈은 훌륭한 민족 목회자 되는 것이 아니라, 물론 일부이겠으나, 외국 유학하고 교수 되는 것이라는 말은 우리의 미래를 오히려 어둡게 합니다. 훌륭한 목회자의 꿈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야 교회도 살고 민족이 사는데, 교수만 되려고 하는 것은 우리 신학교육의 허점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왜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까? 목회 경험 없이 공부한 교수들이 학생들과 강의실에서 나누는 것은 공부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 신학교의 교수는 목회 경험 이는 될 수 없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기본적인 것에도 너그러운 것입니까?   하루속히 우리 교단 안에 일반대학이 독립하여 생기고, 신학교는 사명감 넘치는 신학생들로 영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성결교회 과거의 영광이 살아날 것입니다. 우리 교단의 역사도 이제 100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양질의 민족 목회자를 키워내는 신학교육이 되어야 우리 교회의 미래와 우리 민족의 미래는 밝을 것입니다.

<활천 2000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