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자유주의의 사조의 특징과 평가

 
이상직(호서대 교수)

  

Ⅰ. 서론

자유주의는 두개의 날을 가진 칼과 같다. 하나의 날은 변화하는 인간의 사회와 문화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하여 신학적으로 답변하려는 변증적 신학의 날이며, 또 하나의 날은 성경 전통적 교리 제도 그리고 신앙고백과 같은 외적 권위를 무조건 받아들이는 대신 역사적으로 합리적으로 재해석하는 비판적 신학의 날이다. 여기서 변증적이라는 말은 틸리히(P. Tillich)가 말한대로 사회와 문화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제기되는 질문들에 대하여 답변하는 신학의 방법들을 말한다.1 이 변증적 신학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신앙을 새로운 철학이나 과학적 세계관에 맞추어 재해석한다. 자유주의는 동시에 또 하나의 날을 사용하여 우상타파적인 정열을 가지고 전통에 대한 철저한 비판을 수행한다. 성경과 교리를 역사적이며 인간적인 삶의 정황에서 우러나온 신앙고백 내지는 삶의 고백으로 간주하고 문학적 사회학적 편집사적 구조적인 비평의 대상으로 삼아 연구한다.

인간의 다양한 삶의 양식이 제기하는 질문들에 대한 답변으로서의 변증적 관심과 전통적 교리와 권위에 대한 비판적 관심은 언제나 동시에 수행되어 왔다. 문화와의 대화가 시도되고 타협적 태도가 높아질수록 교리의 상대화의 정도도 높아져 왔다. 따라서 19세기의 자유주의와 20세기의 자유주의는 그 정도와 강조점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근본적인 신학의 변증적 방법과 비판적 방법에 있어서는 동일한 방법론적 공통점을 염두에 두고 슐라이에르마허(F. Schleiermacher)이후 바르트(K. Barth) 이전까지 19세기 자유주의를 전기로 신정통주의의 과도기를 거쳐 나타난 다양한 신학적 운동들은 정통주의를 제외하면 대부분 후기 자유주의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이 신학적 방법론에 있어서 교리적 전통보다. 시대적 상황을 중시 한다는 점에서 고전적 자유주의와 후기 자유주의는 공통점을 잃지 않고 있으나 이 공통점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후기 자유주의의 독자적 특성이 무시될 수는 없다. 오히려 후기 자유주의와 슐라이에르마허 이후 바르트 이전까지 전개된 고전적 자유주의와의 연속성 보다는 불연속성이 더 크다고 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근원적 은유(root metaphor)의 전환 또는 범례전환(paradigm shift)이라고 불리우는 변화가 그들 사이에 일어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범례전환이 어떠한 정도로 그리고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이해하기 위해 이 글은 전기와 후기 자유주의의 서로 다른 특징들을 비교하고 이어서 후기 자유주의의 여러 사조들을 소개 평가하고 결론적으로 자유주의 신학의 100년의 역사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 미친 영향을 검토할 것이다.

 

Ⅱ. 전기와 후기의 자유주의의 특성

슐라에르마허 이후 바르트 이전까지 전개된 전기 자유주의는 칸트(I. Kant) 남긴 비판 철학의 유산을 이어 받는다. 슐라이에르마허는 합리적 근거 위에서 인식의 가능성을 찾다가 비판적 견해로 끝난 칸트의 비판철학이 남긴 신학적 의미를 이해하였다. 하나님 인식을 포함한 종교적 지식은 합리적 탐구를 통해 얻어지지 않는다. 결국 신학은 새로운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하며 이 토대는 인간 자아의 내면 속에 있는 종교적 직관이다. 이 종교적 직관은 인간에게는 보편적인 것인데 하나님에 대한 절대의존감정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근거이다. 절대의존감정 또는 신의식 속에서 슐라이에르마허는 무한과 유한 하나님과 인간의 연속성을 강조하였다. 칸트와 마찬가지로 슐라이에르마허는 반이성주의자가 아니었다. 다만 종교적 지식은 합리적인 지식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있는 종교적 직관의 영역에 속한다고 슐라이에르마허는 본 것이었다. 칸트가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을 분리하여 종교를 실천이성의 영역으로 분류하였으나 슐라이에르마허는 경건주의의 영향을 받아 종교를 절대의존감정이라고 불리워지는 신의식의 영역으로 분류함으로써 합리적 지식과 직관적 지식의 서로 다른 두 영역을 인정한 셈이었다.

슐라이에르마허의 뒤를 이어 리츨(A. Ritschl)과 하르낙(Avon Harnack)등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기독교와 문화 하나님과 인간과의 연속성을 강조하였다. 이들은 기독교적 구원을 역사와 사회 안에서의 윤리적 진보와 alf접하게 연결시키려고 하였다. 그리스도와 문화의 연속성 윤리적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 그리고 역사비판적 성서연구 등이 19세기의 자유주의의 특성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의 초기에 등장한 바르트도 처음에는 자유주의 신학의 전통에서 교육받았으나 그는 자신의 신학 초기에 자유주의 신학과의 결별을 결정적으로 선언하였다. 바르트는 인간의 타락성과 죄성을 강조하고 하나님과 인간 그리스도와 문화의 단절을 강조하였다. 신학은 인간의 이성이나 직관 또는 도덕적 의무감에 기초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 바르트의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큰 반향을 일으켜서 신정통주의라는 신학의 조류를 형성하였고 초기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력은 결정적으로 쇠xhl하였다

그러나 qk르트가 자유주의와 결별을 선언하였다고 해서 그가 자유주의의 문화적 변증적 과제와 비판적 과제와 결별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다른 신정통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실존주의와 같은 문화적 요인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키에르케고르(S. Kierkeggard)의 무한과 유한의 질적 차이를 강조하는 입장을 바르트는 받아들였다. 한걸은 더 나아가 바르트는 초월적 진리의 절대성에 비추어 볼 때 모든 인간적인 종교와 진리는 상대적인 것이어서 전통적인 기독교의 교리나 종교로서의 기독교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계속적인 비판과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확신했다. 초월적인 가치에 의한 역사적인 것의 비판의 필요성은 신정통주의의 비판적 과제로서 바르트와 니이버(Reinhold Niebuhr)의 신정통주의적 사회변혁운동의 중심적 원리가 되었다.

19세기의 고전적 자유주의는 바르트(K. Barth) 이후 나타난 신정통주의에 의하여 비판을 받은 이후 많은 신봉자를 잃었다. 인간의 내면세계에 있는 신의식과 윤리적인 결단으로는 너무 쉽게 악과 타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유주의는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신정통주의 이후 19세기의 고전적 자유주의는 그 영향력을 상실하였으나 시대적 정신 문화와 기독교의 복음을 연결시키려는 변증적 과제와 교리와 성서에 대한 비판적 과제를 신학의 중심과제로 보는 자유주의 신학의 유산은 오히려 폭넓게 확산되고 있다.

1960년대 관심을 모았던 세속화신학과 신죽음의 신학 기계론적 세계관을 비판하고 대신 유기체적 생성과 관계성을 강조하는 과정신학 억압과 종속의 사회구조를 비판하고 해방과 실천을 강조하는 해방신학 논리적 실증주의를 극복하고 종교적 언어의 유의미성을 재천명하는 언어분석학적 실존주의적 언어신학 다원화된 세계 안에서 타종교와의 대화를 다루는 대화신학 환경오염과 생태계의 파괴를 다루는 생태신학 등 현대의 신학적 운동은 현대의 정신적 사회적 환경적 상황에 대한 고려에서 나온 시조들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신학적 사조들을 통털어 후기 자유주의라고 한다.

후기 자유주의는 세속정신의 확산으로부터 시작됐다. 역사나 자연 너머에 있는 어떠한 권위도 세속정신을 소유한 인간은 받아들일 수 없다. 현대인은 자신을 실존의 결정자 가치의 창조자 그리고 의미의 출처로 경험한다.세속신학은 신죽음의 신학과도 연결되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신죽음의 의미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초월적 신을 배격하는 입장을 말한다. 세속신학은 초월적 신은 부정하나 인간의 자유와 인간의 희생적 삶을 통해서 나타나는 내재적 신경험은 인정되고 있다.

후기 자유주의의 두번째 특성은 다원성의 강조이다. 현대는 신학의 다양성 뿐만 아니라 인종, 문화, 경제, 종교 등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있어 다원화된 사회이다. 19세기 유럽의 비교적 단일한 문화 단일한 인종 단일한 성 등을 전제로한 전기 자유주의 신학은 다원성을 강조하는 후기 자유주의 신학의 입장에서 볼 때 유럽의 백인 남성의 신학으로 규정된다. 후기 자유주의는 특히 종교간의 대화문제에 다원주의적 입장에서 접근한다. 여기서 다원주의적 입장이란 개종을 목표로한 접근이 아니라 타종교의 궁극적 진리성을 인정하는 태도를 말한다.

셋째로 후기 자유주의는 관계성과 상호의존성을 강조한다. 자연과 인간은 상호의존해 있다. 고립된 절대 시공간을 가정하는 일이 이제는 불가능하다. 존재한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이다. 하나님도 관계를 떠나서 홀로 존재하는 그런 분이 아니다. 한 나라가 가난한 것도 중심부의 제1세계에 가난한 제3세계가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태계와 인간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는 생태신학 과정과 관계성을 강조하는 과정신학 그리고 해방신학의 종속이론 등은 이러한 관계성을 강조하는 사조들이다.

넷째로 실증주의에 입각한 세계관의 퇴색과 함께 새롭게 부각된 동양종교 신비경험 종교적 상징 심층 심리학에 의해 발견된 초이성적인 “거룩”의 경험에 대하여 신학자들이 폭넓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을 들 수 있다. 신학자들은 더이상 이성만이 인간의 지식의 유일한 도구라는 독단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시적 표현과 이야기 신화와 상징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인간의 종교적 경험의 심층에 대한 해석학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이야기신학과 현대해석학의 상징이론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마지막으로 후기 자유주의는 고정된 실체로서의 세계관을 배격하고 되어감을 강조하는 미래성 개방성 희망을 강조하는 신학이다. 이 세계는 새로운 사회 새로운 인간 새로운 구조를 필요로 한다고 후기 자유주의는 강조한다. 하나님도 과정 속의 하나님이시며 앞에서 부르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은 억압된 사회구조로부터 인간을 해방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후기 자유주의자는 주장한다.

이상에서 후기 자유주의는 변증적 과제와 비판적 과제라는 자유주의의 기초를 유지하면서도 전기 자유주의와는 달리 현대의 문제들에 대하여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다음 장에서는 이러한 후기 자유주의의 기초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 되었는가를 각 신학적 사조들을 통해서 검토하고 평가해 보겠다

 

Ⅲ. 후기 자유주의의 사조들에 대한 평가

정통주의가 전통적 교리의 보수에 힘쓰고 사회적 변화에 대하여 비교적 초연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 자유주의는 변화된 세속적 가치관과 새로운 학문적 성취가 신앙의 내용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탐구하고 전통적인 신앙의 형식과 내용을 떠난 사람들에게 이해될 수 있는 새로운 신앙의 언어와 신앙체계를 형성하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심지어 이러한 자유주의의 노력은 정통주의가 전통에 무조건 안주하지 않고 현대인들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신학운동으로 나타나도록 자극하기도 했다. 소위 신보수주의자로 불리우는 버쿠어(G. C. Berkouwer), 브로밀레이(G. W. Bromiley),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칼 헨리(Carl Henry), 카넬(F. J. Carnell) 등은 현대 문명세계가 던지는 질문들을 외면하는 대신 복음의 메시지를 그 질문들과 연결시키되 복음의 영원성을 해치지 않는 신학적 노력을 계속해 왔다. 복음의 영원성은 실제로 지켜지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뿌려지고 자라나서 열매를 맺는데 있기 때문에 교리적 전통 뿐만이 아니라 현대문명의 여러 문제들에 대하여 책임적으로 응답하고 비판하는 일을 수행하는 과제는 신보수주의 운동에 있어서도 신학적으로 중요한 과제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또한 바르트가 지적했던 바와 같이 그 자체로서 많은 문제점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즉 기독교 신앙의 초월적 측면을 간과하고 내재적인 측면만을 강조함으로써 하나님의 초월성 창조성 역사의 심판자로서의 거록성이 훼손되게 되었다. 또한 설교 강단과 거리가 먼 즉 다수의 기독교인들에게 아직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신학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미국교회의 경우 장로교 감리교 회중교회 등 교회협의회에 가입한 자유주의적 주요 교단들의 교인수가 꾸준히 감소한 현상이 통계에 나타난다. 신자들로 하여금 기도와 찬송 헌신의 뜨거움을 갖도록 하는데 실패하였다는 지적도 있다. 자유주의 교회에서는 선교적 열정이 사라지고 타종교와의 혼합주의가 만연되고 있다는 비난도 있다. 성경을 상대화시키고 역사화시킴으로써 자유주의는 결국 어떠한 신적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역사적 상대주의에 빠지고 말았다는 비판도 있다. 본 장에서 자유주의가 갖는 위의 장점과 단점을 구체적으로 평가해 보자.

 

 1. 세속신학의 과제와 평가

세속신학은 히틀러의 독재에 대항하여 투쟁하다가 옥중에서 죽은 본회퍼(D. Bonhoeffer)의 “이세상에서 하나님없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 제자의 길이라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발단이 되었다. 본회퍼에 따르면 이세계는 성인이 될 세계이다. 성숙한 세계라는 말은 초기 자유주의의 낙관론에 되돌아가자는 뜻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다. 인간의 상황이 더 나아졌다는 것을 뜻하는 말도 아니다. 이 말은 책임적인 존재로서 인간은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그에 응답해야 된다는 것을 뜻한다. 경건성 또는 종교성과 같이 이 세상에서의 도피를 뜻하는 말을 본회퍼는 거부했다. 그리스도는 타인을 위한 존재로 그리고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무력하신 분으로 경험된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죽음의 순간까지 감옥에서 형제자매들을 위로하고 목사의 직분을 담당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세상이라고 하는 고난이 있는 현장에서 책임적으로 타인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우리에게 가르친다

본회퍼의 신학적 작업은 불행하게도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켰다. 그의 사상은 체계적인 것이 아니라 단편적이었으며 고난의 삶의 현장에서 씌어진 삶의 기록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세상을 절대화시켰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인간의 책임성을 강조함으로써 중세의 공로사상에 빠졌다는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비난의 내용들은 본회퍼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그는 루터의 십자가 신학을 현실에 적용한 것이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무력하신 분으로 숨겨진 분으로 고난당하시는 분으로 자신을 나타내신다는 루터의 신학을 세속성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것이었다.

본회퍼의 의도와 다르게 전개된 세속신학의 한 형태가 있다. 신죽음의 신학이 그것이다. 반 뷰렌(P. M. van Buren)은 본회퍼가 제시한 이 세상에 대한 분석을 받아들여 초월적인 절대자 하나님의 경험의 가능성을 철저히 부인한다. 현대는 절대자의 해체의 시기라고 반 뷰렌은 말한다. 하나님에 관한 언어는 무의미하고 오래를 불러 일으키는 담화일 뿐이라고 그는 말한다. 기독교는 자유를 전수시키는 한 탁월한 자유인 즉 예수에 관한 이야기이다.

본회퍼가 제기한 세상성이라는 신학의 논제는 책임적 존재로서 인간의 고난 가운데서 그 고난에 동참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예언자적 목소리였다면 신죽음의 신학자들의 논제는 기독교에서 초월을 제거하고 자유라고 하는 생의 방식으로 기독교를 축소시킨 잘못을 번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의 참된 자유는 오히려 인간의 질서를 넘어서는 초월로부터 오는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우주의 포기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2. 과정신학의 과제와 평가

세속신학이 초월성을 부인하고 이 세상에서의 책임과 자유를 신앙의 내용으로 삼았다면 과정신학은 현대 과학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아 불변의 실체(substance)로서의 세계를 부인하고 역동적인 성장과 자아실현에 초점을 맞춘 세계관을 강조한다. 모든 만물은 활동을 통해서만 자기자신이 되어가며 이러한 자아실현의 과정은 다른 모든 사물들과의 상호교섭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모든 만물은 거미줄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철학자 화이트헤드(A. N. Whitehead)의 상호의존성과 되어감을 강조하는 철학이 미국에서 과정신학으로 나타났으며 그 영향력은 현재에도 확대되어 가고 있다.

하나님도 관계를 떠나서 홀로 존재하는 그런 분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만물들의 자아실현과정에 동참하는 신이며 새로운 가능성으로 초대하는 신이다. 그러나 과정신학의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자아실현과정에서 강제권을 행사하는 분이 아니라 자유롭게 자아를 실현해 가도록 설득하는 신이다.

모든 사물이 상호의존하고 있으며 새로운 자아실현과정에 있다는 과정신학의 세계관은 현대인의 고립주의를 극복하고 희망과 새로운 자아실현을 위해 애쓰도록 자극하는 신학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환경오염으로 나타난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로부터 자연과 인간 그리고 신이 함께 어울러 사는 봉건적 세계관을 회복시켜 줄 것이다. 그러나 문제점으로는 하나님의 궁극적 승리를 확신할 수 없다는 점이다. 모든 과정은 상호교섭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지도 모든 것의 결과를 의도하신대로도 이끌 수가 없게 된다. 이 세상의 악이 제거되는 궁극적인 하나님의 악에 대한 승리를 굳게 믿는 성서적 신앙이 훼손되게 된다. 또한 세속신학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초월성이 과정신학에서 좀더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3. 해방신학의 과제와 평가

해방신학은 남미의 가난한 민중들의 억압 당하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한 교회의 역할을 목회적으로 정립하는 운동으로부터 태동했다. 남미의 가톨릭교회의 사제들이 이 운동을 주도했으며 복음은 정치적 역사적 영적인 해방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고 구티에레즈(G. Gulierrez)는 말한다. 정치적 해방이란 부유한 국가들과 억압하는 계급의 지배에서부터 벗어나기 위한 피압박민들과 사회집단의 갈망과 노력을 의미한다. 역사적 해방은 정치적 해방의 과제인 “새로운 인간과 전적으로 다른 사회의 실현”의 영역을 인간생활의 모든 차원으로 확산시켜 가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더 깊은 차원에서 볼 때 해방은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불의와 억압의 토대를 근절하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필요로한다. 해방신학자들은 구원이란 이론이 아니라 억압이 있는 현실을 해방시키는 실천이라고 보았다. 해방신학은 남미뿐 아니라 북미의 흑인해방신학 여성해방신학 아프리카의 신학 민중신학 등 여러 대륙의 억압의 현실을 해방시키자는 운동으로 확산되었다.

해방신학은 실천을 강조하고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의미에서 정의로운 사회건설을 위한 많은 기여를 해왔다. 특히 제도적인 교회가 불의한 지배자를 지지하는 경향성이 있는 현실을 볼 때 하나님의 의를 이 세상에서 실현해 가야하는 과제를 교회에 일깨워 주고 있다. 그러나 해방신학이 전술적인 측면을 강조하면서 혁명적 전술을 내세우고 억압자의 폭력에 대응하는 폭력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신앙운동의 틀을 벗어났다는 비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억압의 현실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마르크스의 계급갈등설을 채용하는 것 등이 비판의 초점이 되어왔다

 

 4. 언어신학의 과제와 평가

언어신학이라는 말은 공식화된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언어의 문제가 신학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게 된 것은 논리적 실증주의자들이 종교적 언어를 무의미한 언어로 비판하면서 부터이다. 감각경험으로 검증불가능한 언어는 무의미한 언어인데 그 가운데 종교적 언어가 포함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자체가 감각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 주장이 아닌 무의미한 주장이라는 반박 이후 비트겐쉬타인(L. Wittgenstein)의 언어분석학을 거쳐 많은 학자들이 종교적 언어의 의미성을 기능적인 면에서 즉 종교적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의 실존적인 변화와 참여를 겨냥한 의미있는 언어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현대해석학에서 언어의 상징적(symbolic) 기능을 심층적 종교경험에 대한 농축된 표현으로서 종교적 언어로서 과학적 언어보다. 적합하다고 보고 있다. 예수의 비유들은 이야기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러한 담론적 성격의 종교언어의 특성을 연구하는 신학이 이야기신학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언어신학은 종교언어가 무의미한 언어가 아니라 참여와 변화를 강조하는 기능을 가진 의미있는 언어라고 하는 사실을 밝힌 점에서 신앙의 언어가 일상생활에서 의미있는 언어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또한 과학적인 사실언어 외에도 인간은 심층적 종교적 체험을 상징어로써 이야기체로써 비유로써 표현하는 것이 더 기능적인 것이며 더 유용하다는 것을 언어신학은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인간의 지식은 사실언어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해서는 시적 표현으로 신화적 표현으로 이야기와 비유로 상징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언어의 가능성과 용도만을 강조하고 실존적 의미만을 강조할 때 역사성과 사실을 놓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종교언어가 사실성에 기초하고 있을 때 더욱 신빙성과 의미성이 부여된다면 사실성의 문제를 종교언어에서 어떻게 수용하느냐 하는 것이 과제가 될 것이다.

 

 5. 대화신학의 과제와 평가

현대는 다원성의 시대이다. 문화의 다원성 뿐만 아니라 종교의 다원성도 현대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다원성의 사회에서는 하나의 사상 인종 습관이 다른 것에 비하여 우월성을 주장할 수 없게 된다. 신앙의 문제에 부딪히면 이러한 상대주의는 문제를 일으킨다. 왜냐하면 신앙은 궁극적인 실재 절대적인 규범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신학자들이나 교회의 설교자들에게 있어서 다른 시대적 과제들은 직접 피부에 닿지 않는 문제들인데 반하여 다원성의 문제만은 심각하게 생각되는 것은 신앙의 규범과 가치들이 상대화가 되면 교회의 존립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는 교회의 이기주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신앙이 예배와 헌신을 동반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상대화되면 그러한 헌신과 예배의 행위가 약화되기 때문이다. 서구의 교회의 공동화 현상도 이런 맥락에서 보아야할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타종교와의 대화의 문제이다. 타 종교인을 인정하는 태도를 갖는 것은 바람직하나 과연 대화의 이름으로 자신의 신앙의 상대화를 주장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 하는 반성을 할 수 있다.

다원성의 장점은 자신의 상대적인 가치를 절대화시키지 않는데 있다. 백인의 시각 과학적 방법론만이 절대적이라는 주장은 진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다원성의 관점이다. 다원주의 아래서 많은 소외된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줄어들고 관용주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신앙체계들 사이의 대화를 위해서 무조건적인 상대화는 바람직하지 않다예수 그리스도의 독특성과 구주이심을 고백하면서 대화를 해야만 진정한 주체성을 가진 대화가 될 것이다. 흑인이 백인이 될 때 주체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참다운 흑인이 될 때 참 인간도 되는 것이며 주체성도 갖게 되는 것이다.

 

 6. 생태학적 신학의 과제와 평가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이라는 국제회의가 개최된 것은 그만큼 오늘날의 생태적 환경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에 대한 관리권을 남용하여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오염시킴으로써 인간 스스로가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되어 가고 있다. 기술문명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기독교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자연보존에 대하여 관심을 자극함으로써 하나님의 창조활동에 동참하는 신학적 과제가 후기 자유주의의 중요한 과제로 떠 오르고 있다.

신학적으로 환경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책임성을 강조하는 생태학적 신학은 후기 자유주의 뿐 아니라 정통주의의 과제이기도 하다. 특별히 창조신앙에 대한 바른 생태신학의 정립은 시급히 요청되는 과제이기도 하다. 또 무분별한 개방정책과 인간의 편리주의에 근거한 성장정책 대신에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생태학적 환경의 조성을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다만 신학적으로 검토해 볼 때 구원론과의 관계 문제가 있다. 창조론은 전통적으로 구원론에 종속되어 왔다. 창조질서가 인간의 죄악으로 본래의 가치를 상실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우선적인 신학의 과제로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사역은 그에 종속적인 위치에 놓이게 되엇다. 그러나 만일 삼위일체적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구원사역뿐만 아니라 창조사역에도 연관시킨다면 창조론의 중요성은 바르트와 같은 그리스도 실증주의자에게도 인정될 수 있을 것이다.

 

Ⅳ. 마무리

후기 자유주의가 바르트 이후 과학의 발전과 가치관의 변화에 대하여 책임적으로 응답하는 변증적인 과제를 수행해온 노력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여러 부문에 걸쳐 결실을 맺었다. 슐라이에르마허가 시도했던 대로 자유주의는 변천하는 세계관의 영향을 받고 전통적 신앙을 포기하는 사람들을 우선적인 목표로 기독교 신앙의 변증에 나섰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문화와 세계관을 변혁시켜야 하는 과제를 포기하고 지나친 타협주의로 나간 것이 자유주의의 변증적 과제의 중요한 문제점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변증적 과제와 함께 비판적 과제는 교회 안의 갈등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성서에 대한 비평학의 도입과 발전 그로 인한 신앙의 참여적이고 주체적인 헌신과 예배를 등한시하고 성서가 갖는 신앙의 규범으로서의 권위를 자유주의가 강조하지 못한 것은 교회 강단과 자유주의 신학이 유리되게 된 원인이라고 보여진다비판은 새로운 종합으로 나아가야만 된다는 것이 자유주의의 변증법적 법칙이기도 한데 분석적이고 비판적인 방법에만 의존하는 것은 학문적으로도 균형이 잡히지 않은 것이다.

복음주의는 실제로 자유주의가 발전시킨 신학의 결과로부터 자극을 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일부 보수주의 교단에서도 성경해석학의 중요한 교재는 자유주의의 교재이며 그것을 비판하는 교수방법론을 선택하고 있다. 또 앞에서 말한대로 신보수주의는 복음의 영원성을 변하는 시대에 적용하는 변증적 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자유주의가 책임적 신앙인으로 고백하는 신학적 과제를 중요시 했던 것을 수행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지라도 신앙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은 틀림이 없다

 

주)

1. P. Tillich, Systematic The ology, vol l, Introduction,(Chicago: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1)

2. Thomas Kuhn, The Structure of Scientific Revolutions(Chicago, 1970)

3. 윌리엄 호오던(이정욱 역), [프로테스탄트 신학개요], 대한 기독교서회, 1986.

4. E. Farley, The modernist Element in Protestantism Theology Today, vol, XLVII, No2 July, 1990, pp 131-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