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와 기독교의 토착화

황돈형 박사(서울중앙신학교)

 

1.  들어가는 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기호, 상징, 그리고 이미지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삶의 근간이 되고 있는 경제적 영역과 인간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정치적 영역에 있어서 매스 미디어와 연관된 의미전달 체계가 문화적 상상력을 통해서 기호화되고 상징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 의미를 추구하는 과정에 있어 전통적인 문화와 맺었던 관계에 있어서 변화를 동반하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사회적 의미를 더 이상 주어진 전통적인 규범들을 중심으로 파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전통적으로 주어진 의미와 가치를 자신의 자유를 획득하고 재 형상화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과거와 비교하여 볼 때 현대적인 삶의 가장 분명한 특징은 삶의 문제를 궁극적인 의미의 차원에서 해결하지 않고 자신의 문화적 행위를 통해서 일상적인 방식으로 해결하여 가는 것에서 발견된다.

현대에 있어서 의미의 문제는 궁극적인 것보다 일상적이고 개인적 삶의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현대인에게 삶의 의미는 절대적 의미와의 일치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보다 자신이 스스로 행동의 주체가 되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 그러한 사회적 삶의 과정을 통해서 파악된다. 모든 것을 설정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기술을 기반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구함으로써 자신의 삶의 의미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인이 인간에 대한 전통적인 상과 달리 개방적으로 새로운 자아를 찾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인간은 더 이상 궁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종교적인 차원을 통해서 자신을 이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자신의 삶을 구성하는 문화적 차원에서부터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적 인간은 근본적으로 문화적인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인간의 존재방식이 근본적으로 문화적으로 규정되어지는 상황에서 현대의 대중문화는 매우 중요한 삶의 근거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대중이 문화적 삶의 과정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문화적 흐름을 함께 이루어가는 대중문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주목하게 되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대중문화가 지니는 의미지평의 문제를 복음의 토착화와 연관시켜서 파악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서 대중문화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를 묻는 것과 함께 대중문화의 현상을 통해서 사실적으로 인간이 추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에 관심을 기울이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인간의 문화적 행위 가운데 드러난 의미의 문제와 연관되어진 복음의 상관성을 통해 현대 대중문화를 위한 복음의 토착화 방식을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먼저 대중문화의 특성을 이해하고자 한다. 그리고 대중문화 속에서 발생하는 대중의 성격과 의미 전달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밝히고자 한다. 이를 통해 오늘날 인간이 추구하는 바를 이해하고 그 가운데 복음과 연관되는 적절한 방식을 찾고자 한다. 이것은 복음에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밝힘으로써 대중문화시대를 맞이하는 기독교의 과제를 새롭게 이해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2. 대중문화의 이해

2. 1 문화와 의미의 상관성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되 그 환경의 요구에 종속되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역사적인 기원을 파악할수록 분명해지는 것은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초월적이고 개방적인 방식으로 이해함으로서 자신의 삶을 이루어 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환경을 통해서 존재하지만 언제나 환경을 삶과 죽음 등 모순적인 것을 전체성 가운데 통합적으로 조망하는 신화적 차원으로부터 이해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일적인 차원을 경험의 직접성 가운데 그대로 드러내는 신화적 언어와 함께 종교적인 세계상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삶의 행위는 그가 자신의 삶을 의식적으로 이루고자 할 때 그의 행위는 근원적으로 종교적인 차원에서 형성된 초월적인 의미를 담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행위를 통해서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모든 문화적 행위는 근본적으로 인간으로서의 종교적 특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문화적 행위는 인간의 행위가 단지 생물학적이고 환경에 종속적으로 묶여진 채 폐쇄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고 오히려 환경을 통전적이고 초월적으로 이해하는 종교적 방식에 따라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문화적 행위는 근원적 차원에서 볼 때 자신의 삶의 환경을 초월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의 의미를 제공하는 종교적 차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근대 이후 서구사회로부터 등장하는 문화적 의미는 그 이전에 있었던 문화적인 면과 다른 점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것은 서구를 중심으로 드러난 새로운 현상으로서 인간이 자신의 삶의 환경인 자연과의 분리되어진 형태로서 인간 중심적인 사회적 형태의 문제로서 문화를 이해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우선 이것은 중세기 종교적 세계관을 벗어나 이성을 토대로 설립된 인간 중심적 세계관이 등장함과 함께 나타난 현상이다. 그리고 점차적으로 기술혁명과 함께 등장하는 경제적 차원의 추상화된 세계상과 연관되어진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삶의 의미가 더 이상 세상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방식으로서의 종교만을 전제하지 않고 인간이 이성적으로 목적하는 세계상을 통해서 삶의 의미가 평가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삶의 의미가 사회적 제도의 형식을 보장하는 도덕적인 차원에서의 절대성을 추구하는 것에 있다고 보게 되었으며 인간이 문화적인 행위의 주체로서 또한 문화적 의미의 근거를 결정짓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문화는 인간을 초월하는 종교적 차원의 궁극성을 통해서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적 요구 가운데 인간이 추구하는 사회적 성취의 표현으로서 이해하고 작용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종교적 세계로부터 분리하여 새롭게 기획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인간은 스스로 자신에게 설정하는 보편적 가치와 사회적 의무를 통해서 문화의 의미를 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이성 중심적인 문화의 요구는 시간이 갈수록 산업혁명으로 급격하게 형성된 기계적 문명의 형식에 의해서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다시 말해서 산업혁명은 그 당시 농업과 봉건 제도로 구성된 사회구조의 변화를 가속화시키면서 경제적 면을 중심으로 사회구조를 재구성하였다. 그리고 이와 함께 경제 중심적인 사회적 환경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이 가운데 기술과학적인 면이 사회의 윤리적인 요구와 함께 사회의 문화적 가치를 결정짓게 된 것이다. 이로써 인간의 문화적 요구는 점차로 종교적 이상향으로부터 기술-경제적으로 성취 가능한 관료 중심적 세계상으로 방향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위와 같은 사회의 급격한 변동기에 있어서 새로운 문화형태로서 대중문화가 발생하였다. 대중문화는 산업 혁명기에 등장하는 노동자 계층을 중심으로 발생한 문화로서 이제까지 문화가 추구하고 있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대중문화의 형태는 도덕적이고 윤리적 세계관을 반영하며 삶의 향상된 가치를 지향하는 정신적인 고급문화의 형태가 아니었다. 고급문화가 추구하는 모든 이를 위한 보편적인 가치체계와 미적인 의식은 대중문화에 있어서는 계층의 차이와 그 계층에 속한 다양한 집단들 간의 차이로 인하여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그 대신 대중문화는 이제 경제적 환경의 차이 가운데 드러나는 서로 다른 상황 속에서 각자가 자신들의 욕구를 추구하는 방식으로 형성되어졌다.

여기서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대중문화는 그 기원에 있어 자연적 삶의 과정에 인간이 통합되어지는 방식으로 인간의 존재의미를 나타내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사회의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가치 체계를 형상화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였던 문화적 방식과도 다른 것이었다. 대중문화는 산업혁명으로 인해 발생한 새로운 경제적 구조에 의해 형성되어진 삶의 환경 가운데 다양하게 드러난 문제 자체를 문화적 형태로서 흡수하고 적응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러한 대중문화는 지속되는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서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대규모 생산과 소비 양식에 의해서 새롭게 형성된 불특정의 다수를 주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문화가 된 것이다.

즉 최근에 있어서 대중이란 산업 혁명기의 노동자 계층의 특성을 포함하여 좀 더 확장된 의미에서 대중미디어를 통해서 특정한 영역과 문제에 대하여 관점을 공유하는 집단을 나타내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중이란 특정한 문제에 대하여 특정한 방식으로 공통된 이해관계를 지니며 공동의 가치를 가지고 등장하는 새로운 사회적 집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중문화 자체는 이제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되어지면서 내용적으로 확고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 개념으로서 파악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화의 변화과정을 통해 볼 때 문화를 더 이상 특정 내용을 전제로 규정하지 않고 인류학적 의미에서 시대에 따른 삶의 방식으로서 이해한다면 대중문화는 현대의 문화적 방식으로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고 특히 최근에 들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을 통해서 더욱 세분화되고 막대한 영향력을 인간에게 행사하는 문화적 형태라고 볼 수 있다.

2. 2 대중문화의 특성이해
     대중문화는 위에서 언급하였던 것처럼 산업혁명의 결과로서 드러난 새로운 노동자 계층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문화와 다른 형태의 문화적 요구를 추구하였던 것이고 이것이 자본주의의 팽창과 함께 불특정 다수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문화적 형태가 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포스트모던 시대를 통해서 이제까지 알려졌던 근대시대의 모든 이념적 형태를 부정하게 되면서 복잡성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대중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중문화의 주체는 누구인지 또한 대중문화의 형상화를 위한 어떤 예술적 개념이 요구되고 있는지 그리고 대중문화가 앞으로 인간의 미래와 연관시켜 볼 때 어떤 중요성을 지니고 있는 것인지 논의가 되어야 한다.

이제 먼저 대중문화를 이루어가는 가운데 드러난 대중이 지니는 성격을 파악하고자 하며 둘째 대중문화의 예술적 성격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밝혀진 대중문화의 현실적 모순과 가능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대중문화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의미의 문제가 전달되는지 살펴봄으로써 대중문화의 중요성을 나타내고자 한다.

2. 2. 1 대중문화의 주체로서의 대중
     대중문화의 주체는 누구인가? 이제까지의 문화적 현상은 문화적 행위의 주체에 따라서 확실하게 나누어져 이해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사회를 유지하고 그 가치관을 형성하였던 사회 지배 계층의 고급문화가 있었는가 하면 또한 민중들의 감성적 생활을 표현하는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던 민속 문화라는 것이 있었다. 이러한 문화들은 그 문화적 주체와 영역이 확실하게 드러나며 그 가운데 의도하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중문화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경제적 삶의 방식이 전통적으로 구분되어졌던 사회 신분상의 구분을 철폐하면서 드러난 새로운 계층에 의한 문화적 형태를 지시하는 것으로서 사회 구조의 변화와 함께 이전과는 다른 집단적인 정체성을 구성해나가면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바로 여기서 현대사회에 들어올수록 점점 확장되어가는 대중으로서의 집단적인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는 것이다.

먼저, 대중문화가 처음 발생한 상황에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며 정치적 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한 노동자 계층을 위주로 하는 집단으로서 불특정의 집단이 지니는 익명성과 함께 사회 윤리적 차원에서의 분명한 책임성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차원에서 대중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말 되어진다. 즉 대중이란 윤리적 이념을 추구하는 분명한 문화적 주체의식을 소유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며 따라서 이들은 주로 수동적 차원에서의 소비적이고 퇴폐적인 대중으로서 말 되어질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경제적 구조의 변동 가운데 드러나는 대중 자체의 소비적이고 모방과 감정에 치우친 반문화적 경향을 밝히는 대중 사회론에서부터 최근에까지도 정치-경제 이데올로기의 수단으로 대중문화가 이용됨에 있어서 대중은 그에 대한 정확한 비판적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이해에까지 광범위하게 발견되어진다. 여기에 근대성에 대한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새로운 상황분석이 첨가되어짐으로 대중에 대한 비판적 이해가 나타날 수 있다.

포스트구조주의는 문화를 이해함에 있어서는 언어학적이고 텍스트적인 모델을 사용한다. 이처럼 포스트구조주의가 기호학적으로 현실을 파악하고자 할 때 문화의 자율성을 의미하는 담론을 중시하지만 오히려 그 가운데 역사적이고 문화적 갈등의 영역에서 특별하게 수행되어진 담론에 의해서 인간의 주체성이 성립되어짐을 밝히면서 자아는 담론의 산물이라는 주체의 죽음을 주장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상황에서 밝혀지는 것은 사회생활을 지배하던 전통적인 종교적 세계관이나 유토피아적이고 휴머니즘적인 담론들 자체가 사실적으로는 권력의 수단으로서 사용되어진 것임이 드러나며 이러한 것은 모든 것의 규범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대중문화를 평가하고자 하였던 기준들이 부정되면서 대중문화 자체가 이미 그 스스로 자체를 정당화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Lyotard에 따르면 이것은 모든 것이 허용되는 방식으로서 돈이 가치의 유일한 기준이 되어 작동하는 퇴락하는 문화가 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대중 자체는 그 문화의 수단-목적 합리성의 기술지배에 종속되어 점차 도구적 이성에 길들여진 부정적인 존재로서 파악될 수 있다는 것이다.

J. Baudrillard도 역시 강조하기를 현재의 시대가 소비의 시대라고 강조하면서 소비를 이끄는 상품과 기호, 대상의 유통, 구매, 판매, 사용이 하나의 코드로서 인간의 사회화의 기본적 틀로서 작용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코드가 인간의 현실 자체를 재편성하는 것으로서 인간의 의미적 행위가 인간의 가상적인 코드에 의해서 현실화되는 시뮬레이션과 시뮬라크름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실재 세계의 이벤트들이 오히려 문화의 상상적 영역에 기원을 두고 있는 비 실재적인 신화와 모델을 물질적으로 표현하게끔 되었다는 것이다. 현대가 전제하고 있는 문명의 기술지배적 성격은 이제 사회생활 자체를 과잉현실이라는 방식에 가두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엄밀하게 말해서 인간이 자신의 삶의 현실적인 차원에서 경험할 수 있는 사회적인 것의 종말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런 차원에서 대중이란 더 이상 자신의 삶의 주체성을 추구할 수 있는 존재가 되지 못하며 오히려 인간의 상상력 속에서 코드화되고 있는 소비적 체계의 지속적인 순환구조에서의 가상적 실재에 끊임없이 물질적인 기반을 제공하여 주는 재료가 될 뿐이다. 즉 대중은 기술지배적인 소비사회의 틀에서 체계화되고 있는 상상력을 통해서 가상적 현실을 가장 현실감 있게 만드는 스펙타클과 시뮬라크라의 신화 가운데 소용되어지는 소비일 뿐이다.

그러나 위와 달리 대중의 긍정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입장들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우선 영국의 현대문화연구소의 입장을 통해서 드러난다. 이들의 핵심적 주장은 대중을 계급적인 표현으로 볼 경우 계급은 역사적인 상황을 통해서 변화하는 차원에서 이해되는 것으로서 결코 실재적으로 고정화된 특정 집단을 지시하고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중에 의해서 표현되는 문화도 어떤 저급한 특성을 나타내는 것이나 비판력이나 상상력을 상실하고 사회-경제적 구조 하에서 종속되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대중 자체가 역동적인 상황 속에서 의미의 추구를 이루는 공동적인 행위로부터 알려지는 집단으로 보여지며 이로써 대중의 문화적 행위는 일상적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경험되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서 대중이란 삶의 변화 가운데 자신들의 삶의 요구를 구체화하는 존재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주체적으로 자신들의 삶의 환경들에 반응하며 자신들의 삶의 의미를 사회적 차원에서 형상화해가는 중이라고 한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포스트모던니즘적인 차원에서 이제까지 당연시되었던 모든 가치와 의미를 벗어난 새로운 경험 방식에 대한 강한 긍정과 함께 더욱 분명해지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 등장하는 인터넷과 연관된 새로운 문화적 현상은 문화적 생산물의 다양성에 대한 선택 가능성의 대폭적 증가와 더불어 문화적 생산과정 자체에 영향을 주고 참여할 수도 있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문화적 주체로서의 대중에 대하여 말하게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대중은 매우 능동적으로 사회의 급격한 변화 가운데 자신들의 존재를 적응시키며 새로운 방식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존재로서 평가되는 것이다.

정리한다면 대중은 역사적으로 볼 때 이제까지 타당하다고 믿어진 계층의 구분을 점차적으로 철폐하면서 탄생하였으며 이후 자유경제와 민주정치 제도의 발전에 따라서 특정 이데올로기의 제한으로부터 벗어난 집단으로서 성격화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대중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사회적인 맥락 가운데 얼마만큼 자신들의 정체성을 획득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요 질문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 안에서는 지배계층과 피지배계층의 구분이 끊임없이 영역과 관심에 따라서 변동하고 있으며 이것은 대중 역시 매우 다면적인 방식으로 점차 확장되어 특정 영역에서의 일반화된 시민을 대변하는 방식으로 자리를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것은 대중이 스스로 변화하는 상황 가운데 자신들의 집단적 정체성을 이루어가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선택적인 문화적 형태를 이루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2. 2. 2 대중문화의 예술적 성격
     본 항목에서는 대중문화가 현실적으로 경험되어지는 모습을 통해서 나타나는 현상에 대하여 주목하고자 한다. 이것은 대중문화의 당위성에 대한 논의 대신에 대중문화가 다양한 형태의 문화적 요구를 전개하는 장으로서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상황 가운데 사실적으로 대중문화가 이러한 문화적 요구의 다양성을 순수하게 이루어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을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대중문화는 그 근본적 발생배경과 관련시켜 볼 때 순수하게 예술을 위한 예술로서의 형식을 추구하는 고급문화 양식과 다른 문화적 형태를 추구하여왔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산업혁명으로 형성된 노동과정이 삶의 의미를 나타내는 문화적 방식과는 상관없이 진행되면서 대중이 노동시간 이외의 여가시간을 모든 인간이 바라보아야 할 최고의 가치로서의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적 행위보다 감상적인 오락성의 문화를 추구하게 된 것에 기인한다.

문화적 행위에 대한 성격이 종교적 궁극성으로부터 제한되지 않으면서 대중이 자신들의 여가활동을 자신들의 존재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는 창작적 행위를 통한 기쁨보다도 즉각적으로 만족을 추구하는 오락적 예술로서의 문화 활동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로 대중문화는 종교적 절대성과도 분리될 뿐 아니라 각 개인의 인격적 특성으로서 자유와 개성을 이루는 것보다 오히려 모든 것을 향락적이고 쾌락적인 소비 중심적 취향에 맞추면서 문화 자체를 상품화 시켜 왔다는 것이다. 이리하여 대중문화는 점차로 대중의 요구에 의하여 형태를 이루어가되 평준화의 의미에서 대중적인 것 자체를 기준으로 삼기 시작하였다. 한 마디로 대중의 취향을 따르는 형태를 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거대한 자본과 기술력에 의해 문화적 지평이 지배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거대 자본과 기술력에 의해서 대중이 원하는 방식을 표현하고 재생산해내는 문화적 형태가 대중문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대중문화는 대중적인 취향을 위주로 형성되어 결국 상업적이고 소비적인 오락성의 형태를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대중문화가 대량화된 소비를 위주로 하게 되면서 예술적 형태가 상업적으로 성격화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 가운데 대중문화는 문화적 요구의 획일화와 저질화 그리고 유행으로서의 과도한 감상주의에 의해서 문화적 의미가 손상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중문화의 예술적 형태는 결국 대중문화로 하여금 현실을 깊이 있게 이해하고 대중의 정체성을 새롭게 파악하게 돕는 기능보다 대량화와 오락적 성격으로 인하여 대부분의 경우에는 현실 도피적인 성격을 가지게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도 대중문화의 긍정적 발전을 위해 중요한 계기가 있다. 그것은 고급 전통문화나 민속 문화가 대중문화의 형식과 연관되어짐으로써 대중문화의 다양성이 확대되어진 것이다. 이것은 지속적인 교육의 결과와 계층적 변화를 포함한 사회적 환경의 다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 것으로 대중들이 지니는 다양한 욕구를 개발하고 그것을 통해서 더 많은 수요를 개발하고자 하는 대중문화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고 시장에 내 놓듯이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이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추구하도록 만들어서 대중의 문화적 요구를 확장하여가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보면 대중문화는 다양한 문화적 요구들을 계발함으로써 계속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문화적 상품의 요구가 단지 생산적인 교환가치의 입장에서만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사용적 가치에 따른 판단에 의하여 문화적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것은 대중의 문화적 활동 자체가 거대한 자본주의 체계에 의해 구조화된 세계에 제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예술적 관점이 점차로 자본 환경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성립될 수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일상적 생활에서 끊임없이 자신들의 입장을 사회 체계에 대항하여 전복적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보고 있는 미셀 드 세르토나 대중화된 문화적 기반을 통해서 더욱 다양하게 대중이 자신들의 취향을 선택해 가는 것으로 보는 존 피스크의 입장이 설명되어지기도 한다. 그리하여 대중문화의 예술적 성격은 단지 경제적 가치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평가되어질 수 있는 것만이 아니고 확대되어진 시장의 크기로부터 더욱 다양해진 대중 스스로의 저항적이고 선택적인 기쁨을 추구하는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대중문화의 활동에 있어서 대중적으로 유행하는 예술적 형태일수록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오락적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양적인 면에서 상업적 운영방식에 의하여 제한되어진다는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이러한 예술적 형태가 대중이 부딪히고 있는 현실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제시하는 것보다 그 문제가 되는 현실을 모방하며 대리 만족과 함께 현실의 근본적 문제를 피하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대중매체의 획기적인 발전과 다양한 문화적 요구를 충족시키려는 대중문화의 다양화가 예술의 다양한 형태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대중문화가 긍정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경제적인 조건을 초월할 수 있는 소규모의 예술적 행위가 중요하게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2. 2. 3 대중문화에서의 의미형성과 전달과정의 이해
     일상적인 행위 가운데 언제나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현실 속에서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정확한 대답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것은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자신이 소외되고 상실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일상적 삶의 의미를 구체적 행위 가운데 문화적으로 이루어갈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인간이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문화적으로 구성된 매개적 행위를 통해서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때 그 의미가 파악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대중문화 안에서 충실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

대중문화가 과연 인간의 주체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가? 그렇지 않은가? 만일 대중문화를 통해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 자아에 대한 분명한 의미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인간의 자아에 대한 어떤 분명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인간이 근본적으로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함은 미결정인 상태로 있기 때문에 어떤 이에게는 의미가 없는 것도 어떤 이에게는 매우 중대한 의미로서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대중문화가 과연 인간에게 의미를 제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은 대중문화의 다양성을 통해서 대답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이 무수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적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를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대중문화의 다양성이 대중문화의 의미자체의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다양하게 시도되고 있는 대중문화의 표현들이 서로에게 통용될 수 있는 적극적인 매개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가? 대중문화의 표면적 현상은 분명하게 대량적이고 오락적인 형태의 소비적 문화가 넘쳐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 현재의 사회, 정치, 경제적 구조라고 한다면 그 이외에 또한 대중문화의 대리적인 경험 속에서 자아가 상실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대중문화의 다양한 표현을 차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경우가 인간으로 하여금 자아상실속에 빠지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대중문화는 의미를 조작하고 왜곡하는 사이비 의사소통의 장소로서 자아의 참다운 의미추구가 애매해지는 곳이다.

이 가운데 대중문화가 어떤 방식으로 의미의 형성과 전달을 수행할 수 있게 되는가? 대중문화가 의미의 왜곡이 아니라 소통을 이룰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점 때문이다. 즉, 대중이 대중문화가 전달하는 모든 내용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은 비록 거짓된 세계상에 속아서 잘못된 자아에 대한 이해를 지니게 된다고 할지라도 자아에 대한 생각을 결코 종교적 신념과 같이 불변하는 것으로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중은 대중문화의 일부분들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만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중문화에서 이루어지는 의미의 형성과 전달은 메시지가 전달되는 상황 가운데서 그 메시지 자체에 대한 진리와 거짓에 대한 논의를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으며 그 메시지에 대한 각 개인이 고유하게 판단하는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대중문화의 의미와 전달은 한 개인이 자신의 입장과 경향을 끊임없이 변화시켜가면서 대중문화를 통해 만난 다양한 방식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대중문화의 의미형성은 적극적으로 사람들의 숨겨진 동기를 찾아서 새로운 방식을 제공하는 행위와 이러한 방식들에 대한 선택을 통해서 자신의 동의를 전달하고 집단적인 의미를 구축하는 방식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전달의 과정을 통해서 한 개인의 선택들은 사회적으로 고유한 맥락을 구성하며 이것이 점차 대중의 정체성으로 형성되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중문화의 의미형성과정을 통해서 대중의 정체성이 이루어질 때 그 성격은 인간적으로 납득되는 차원에서 한 개인의 요구를 긍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에서 기존의 관점을 넘어가는 다양한 문화적 전개를 이루어감으로써 의미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중 문화적 행위로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그 핵심에 있어서 주제가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중문화에서 비록 종교나 국가, 사회가 다루어진다고 할지라도 종교적 차원의 절대적인 신념이나 국가와 사회의 보편적 제도에 관한 진리성이 대중문화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단지 한 개인이 자신의 자유를 실현하고 살아가고 있는 외적인 환경으로서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중문화에 있어서 의미 전달과 형성 과정의 핵심은 한 인간 개인에 관한 것이다.

정리하여 말한다면 대중문화의 의미 전달과 형성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대중문화가 인간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대중문화 의미형성과 전달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의미가 추구하는 바가 원칙적인 것이 아니고 구체적인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서 사람의 숨겨진 다양한 면을 드러낼 때인 것이다.

2. 3 대중문화의 중요성    
      대중문화는 어떤 문화가 되어야 하는가? 오늘날 입장에서 본다면 대중문화는 고급문화의 반대도 아니고 특정 계층만을 위한 문화도 아니다. 대중문화란 대중을 상대로 고급문화나 민속문화 혹 종교적 전통을 담고 있는 종교문화 등 모든 형태의 문화적 활동을 매개할 수 있는 문화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대중이 주체가 되어서 자신들의 의미를 추구하고 표현할 수 있는 문화의 장이다. 이것은 정치 경제적인 차원에서 대중문화를 지배하는 어떤 집단이 따로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동시에 대중의 의도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하는 것을 알려준다.

최근에 포스트모던적 시대에 대중문화가 중요하게 강조되어진 것은 대중의 자기 정체성이 유동적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정체성이 성립되지 않았다는 것은 과거에는 윤리적이고 주체적인 문화행위를 수행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인간 자아가 주로 허구적인 정체성에 의해 성립되어진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에 확고하게 정립된 자아와 사회적 이념을 주장하는 것은 아직도 감추어진 형태로 작용하고 있는 권력의 표시라고 본다.

그리하여 현대에 문화적 행위로서 중요한 것은 확고한 사회적 이념을 따르는 것과 달리 일반화되어진 사회적이고 정치적 삶의 형식 가운데 거짓된 면을 밝히고 이에 저항하며 이제까지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형성해가는 것이다. 즉, 정치, 경제, 종교, 사회적 제도에 억압되고 왜곡되어진 자기 정체성을 새로 발견하려는 시도가 중요하고 이러한 입장에서 이제까지 있었던 문화적 형태에 반대하여 자신들의 삶을 새롭게 구성하고자 하는 문화가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문화가 바로 대중문화인 것이다. 만일 문화를 인간 정신의 정수를 이루고 신념을 확신시키는 장소로 보며 문화의 의미를 사회적 질서의 유지와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는 것으로 본다면, 대중문화는 위험하고 사회적으로 해가 될 수 있는 것이라고 평가된다. 그렇지만 그와 달리 문화가 삶의 총체적인 방식으로서 인간이 자아를 형성해가는 다양한 활동이기에, 더 이상 고급문화나 기타 특별한 문화의 차이가 없는 대중문화가 새로운 인간의 자아상과 더불어 대중의 집단적 정체성을 새로이 발견해가는 문화적 활동의 이상적인 형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현상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욱 심화되어질 것이라는 점이다.

대중문화의 활동 안에는 지금까지 감추어진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규정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자아 추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중문화는 앞으로도 인간이 문화적으로 어떻게 자신을 구성하고 어떻게 새로운 공동체적인 집단성을 이루어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리가 될 것이다. 비록 대중문화가 모든 가치관이 경제적 방식으로 결정된 것처럼 보이며 가치의 혼돈과 타락현상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급/저급, 중심/주변의 구분을 철패시킴으로써 이제까지 인종, 성별, 지역, 그리고 관습과 이념을 통해서 왜곡되고 억압되며 실현되지 못했던 인간 자신을 해방시키고 자유를 이루는 공간이 될 수 있는 것이다.
  

3. 대중문화와 기독교의 토착화

기독교는 대중문화와 어떤 관련성을 맺고 있는가? 이제까지 살펴보았듯이 대중문화 자체는 이미 종교적 신념을 벗어난 세계 속에서 발생한 현상이다. 그리하여 비록 문화가 종교의 모태에서 자라났다고 할지라도 대중문화에서는 종교적인 전제 없이도 삶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가 대중문화와 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있는가? 그것은 대중문화가 인간의 자유를 실현하려는 것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는 어떻게 대중문화와 올바른 관계를 이룰 수 있는가?

3. 1 기독교와 대중문화
     이제까지 문화와 기독교와의 관계를 설정하였던 방식들은 여러 가지가 발견된다. 그 가운데 한국교회와 신학계가 대중문화와 기독교의 관련성을 밝히고자 한 것은 최근에 이루어진 것이다. 이제까지 한국 문화와의 연관성을 추구할 때 한국의 전통적 문화에 기독교의 토착화를 시도하는 방식이 있어왔다. 그럼에도 이러한 시도는 보수적인 기독교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대중문화를 세속적인 문화로서 배타시하였던 것이다. 최근에 이르러서야 이러한 입장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중문화를 문화변혁주의의 입장에서 다루고자 하는 시도들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그럼에도 대중문화와 기독교 사이의 올바른 연관성을 이룰 수 있기 위해서는 대중문화를 보는 시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제까지 기독교는 대중문화가 지니는 폐해를 강조하며 대중문화와 대립하거나 혹은 대중문화를 반-종교적 문화로서 타부시하였다. 대중문화는 단지 세속적인 문화의 폐단을 보여주는 전형적 형태로서 이해되었던 반면 현대적 삶의 근본적인 조건이라는 것을 충분하게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대중문화는 모든 종류(경제, 정치, 종교 등)의 의미와 가치를 대중적으로 형성하고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현대적 삶의 자리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는 그동안 종교적 전통의 문화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세속적인 차원에서 형성되어진 대중문화가 이미 인간의 삶의 기본조건이 되어져 있다는 것을 숙고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가운데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영역에서 종사하는 이들은 이미 대중문화를 중시하고 이 문화가 형성되는 과정에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것처럼 대중문화가 경제적인 요구에 의해서 상업적으로 물들어 있으며 또한 정치적인 차원에서는 대중들의 요구를 이용하여 무수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대중문화는 오늘날 기독교적 의미와 가치의 형상화에 있어서도 속히 관심을 가져야 할 영역이 되는 것이다. 특히 복음에 따른 기독교적 삶의 형태를 이루어 나가면서 복음의 전달을 시도하고자 할 때 단지 지나간 전통문화 안에서가 아니라 대중문화 안에 기독교가 올바른 방식으로 육화 되어지는 기독교의 토착화가 절실히 요구되어지는 것이다.  

3. 2 대중문화와 기독교의 토착화
      대중문화 안에 기독교의 토착화를 이루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3단계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먼저 인간의 자기표현을 이루는 대중문화의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둘째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인간을 위한 종교임을 나타낼 수 있도록 하며 마지막으로 복음을 통해 하나님을 말하는 것이 대중문화의 표현들과의 근본적인 차이 가운데 가장 인간적인 것으로 인간을 위한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1. 대중문화 안에 기독교가 토착화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기독교가 대중문화의 계속적인 변화의 흐름에 있어서 주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기독교가 대중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위치를 차지함으로써 가능하다. 이는 무엇보다도 기독교가 대중에게 지적, 도덕적 지도력을 발휘 할 수 있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독교가 사회적 지도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대중문화를 일방적으로 지배하거나 지도하고 바꾸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가 대중문화의 다양성을 최대한으로 존중하고 대중문화가 추구하고자 하는 의도를 배우는 것에서부터 출발할 수 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의미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이제 의미의 다양성을 통해서 모든 사람이 자신을 실현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가 종교적 형식에 갇혀 있는 획일적이고 독단적이라는 종교가 아니라 다양한 인간의 요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인간적인 종교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리고 난 뒤 대중문화를 통해 시도되는 다양한 의미들을 대중적인 관점에서 대중을 위한 것이 될 수 있도록 대중들의 동의를 위한 공론의 장을 이루고 그것을 지지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는 종교적 형식에 제한된 가운데 종교적인 이익만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 오히려 기독교적 가치를 대중적인 요소를 함께 묶어서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기독교는 대중을 위한 종교로서 대중문화 안에 경제적 집단이나 정치적 집단보다도 뛰어난 영향력을 얻고 대중의 정체성을 이루어가는 진로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2. 대중문화는 다종교적 문화형태를 띄고 있다. 이 말은 대중문화가 다양한 종교적 전통문화들을 수용하고 있으며 그것의 표현자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어떤 종교가 올바른 것인가 하는 문제는 교리적이고 철학적으로 이해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종교적 신념 자체에 대한 진리성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대중문화는 절대적인 기준을 가지고 종교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중문화에서 종교에 대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그것이 역사적 상황에서 대중적으로 영향을 주거나 줄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종교 자체에 대한 판단은 대중에게 맡겨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이해하고 기독교는 대중문화 안에서 기독교적 진리를 표현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먼저 대중문화가 세속적인 관점과 다종교적인 관점으로 종교적 주장을 이해하고자 한다고 해서 기독교가 스스로가 이러한 요구를 자신의 진리에 적용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기독교가 세속적인 문화에 따라서 스스로 자신의 진리를 믿지 못하고 자신의 내용을 세속적으로 환원하는 작업을 수행한다든지 혹은 종교적 공통분모를 찾는 것처럼 다른 종교와의 혼합을 수행하는 것으로써 문화적 요구를 수용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대중문화의 요구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대중문화는 종교 자체의 진리성에 대한 논쟁을 하지 않는다. 대중문화는 종교와 철학적인 진리 자체에 대한 거대담론의 형태를 거부한다. 대중문화가 추구하는 것은 다만 종교적 표현을 대중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요구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가 스스로 자신의 진리를 의심하거나 혼합적인 방식으로 가설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기독교가 대중문화 안에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위해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독교가 대중을 위한 진리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진리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대중적인 표현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대중문화의 의미전달과 형성과정에서 밝힌 것처럼 한 사람의 구체적 삶을 중심으로 하는 진리의 표현을 이루는 것이다. 기독교적 진리를 교리나 제도를 설명하는 방식이나 혹 타종교의 진리관이나 세계관을 비교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로지 현실적인 사람에 대해 관련성을 갖도록 구체적이고 실천적으로 표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진리의 실천적 표현이 경제적이나 정치적인 상황과 연관되어질 때도 또한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단지 특정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처럼 이데올로기적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사회의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정의를 실현하고자 할 때도 그것은 단지 이데올로기적 행위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행위로서 갈등의 상황 속에 있는 모든 인간을 위한 행위로서 이해되어지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기독교적 진리는 다른 어떤 이념에 속하지 않으며 구체적으로 한 인간과 관련되어진 것이고 언제나 모든 인간을 위한 것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서 기독교적 진리는 언제나 인간을 위한 진리가 될 수 있고 그 안에서 대중의 판단에 진리의 진술을 시험받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기독교적 진리는 겸손하고 개방적인 진리로서 모든 사람의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자신의 진리성을 견디어 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기독교가 대중들의 살아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로서 하나의 모범적인 형태로서 인정되고 대중적인 이야기로서 구성할 수 있을 때 기독교적 가치관이 대중적으로 인지되고 각인되어지는 것이다.

3. 기독교 진리의 대중화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대중적인 진리를 기독교적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대중문화는 단지 소비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문화적 행위가 소비적인 행태를 이룸에 있어서도 대중은 자신들의 선택을 만들어 가는데 이때 대중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대중들은 현재 사회를 이상적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대중은 아직 결정된 것이 없는 불확실한 자아를 중심으로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대중문화는 ‘결정되어지지 않는 자아’란 불확실한 것을 추구하면서 현재를 비판적으로 실험하는 장소인 것이다. 여기서 기독교는 대중문화가 지니는 근본적인 의미의 결핍에 대하여 인식해야 한다. 물론 이 결핍은 대중문화를 부정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대중문화의 지속적인 역동성을 나타내는 식으로 작용한다. 즉 대중문화 안에서 사용되는 문화적 기호들은 무엇인가를 드러내면서도 근본적으로 상대적인 차원에서 언제나 새로운 것으로 보충되어야만 하는 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대중문화가 추구하는 의미적 기표들은 기본적으로 애매하고 이중적이며 언제나 다른 의미를 내포할 수 있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중문화의 애매성은 인간이 추구하는 바의 ‘아무것도 없음’에 대한 반증이기도 하고 ‘아직 드러나지 않음’에 대한 갈망이기도 한 것이다. 여기서 기독교는 복음을 통하여 대중문화의 의미적 기표들이 지니는 본래적 애매성에도 불구하고 연상될 수 있는 의미지평의 확실성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대중문화의 핵심적 요구인 인간성에 대한 의미적 실체를 분명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복음 안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인간성’을 종말론적으로 밝힘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인간성은 하나님께서 인간과 세상의 창조적인 근거와 미래라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자신의 실존 가운데 세상을 창조하며 구원하심으로서 인간적으로 계신다. 그리하여 인간과 세상의 존재가 근본적으로 하나님 자신의 행위로부터 알려지고 드러나게 된다. 인간과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행위 가운데 언제나 근거를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은 그 자체가 세상적이고 모든 문화에 대하여 토착적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분명하게 표현되어 허무의 위협을 당하는 인간과 세계까지도 사랑하며 역사적 애매성과 모순을 극복하고 부활의 새로운 세계를 가져왔다는 것을 분명하게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이 세상을 긍정하는 것이고 바로 가장 인간적인 진술인 것을 밝히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이 세상의 누구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고귀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의 근거인 것이다.

미래에 대한 전망도 애매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미래적 가능성으로부터 희망적으로 알리는 것이다. 이렇게 복음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인간성이 인간과 세상을 위한 것으로서 분명하게 알려지게 될 때 대중문화가 추구하는 의미의 애매성과 갈등의 요소가 근본적으로 인간을 위한 희망가운데 세위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인간을 인간되게 만드는 인간적인 말씀으로서 대중에게 참된 문화적 행위의 전개를 돕고 이루어주는 내용이 되는 것이며 이렇게 해서 대중문화 가운데 복음의 토착화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4. 나가면서

인간은 문화적 행위를 통해서 자신을 이해하고 표현하며 사회적 삶을 이루어간다. 따라서 오늘날 현대적 삶의 기초적 조건을 이루는 대중문화를 이해함으로써 삶의 의미 추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 가운데 대중문화를 이해함으로써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은 경제와 정치적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제까지 기독교는 대중문화를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종교적 의미를 지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밝혔듯이 대중문화는 인간의 자아추구를 위해 모든 것을 개방적으로 만들고 있는 문화적 매개의 현장인 것이다.

그렇기에 대중문화를 거부하거나 혹은 일방적으로 변혁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대중문화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오히려 대중문화의 특성을 파악하여 기독교의 토착화의 과제를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독교가 대중문화를 이해하고 복음을 그 가운데 실현시켜 나갈 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 그 사랑의 진실과 함께 대중문화가 추구하는 모든 의미를 보다 더 인간적으로 세우는 것이 될 수 있으며 세상을 보존하고 구원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토착화는 대중문화를 지배하는 것도 아니고 대중문화와 타협하는 것도 아니다. 대중문화를 복음의 말씀가운데 긍정함으로써 대중이 된 한 인간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대중문화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을 위한 말씀으로서 가장 인간적으로 들려지는 기독교의 토착화가 이루어질 때 기독교는 대중문화가 추구하는 것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고 대중들의 다양한 문화적 성취를 함께 기뻐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