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수도원 영성에 있어서의 덕목의 삶

- 사막교부들의 금언을 중심으로 -

 

방성규 박사


I. 머리말

"영성"이란 말이 우리 시대의 교회 현장을 진단하는 말이 되었다. 이 말이 유행을 타게된 것은 오늘의 영적 빈곤에 대한 반성과 아울러 새로운 21세기를 여는 전망의 핵심 요소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교회의 가르침과 삶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에 역동적 힘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하는 것이다. 영적 빈곤에 대한 여러 가지의 자성의 소리는 축약한다면 믿음과 삶이 함께 가지 않는다는 아픈 고백이다. 해결책으로서의 영성을 말하는 것은 다른 방식으로 - 새로운 것이든 옛 것으로 되돌아가든 - 신앙적 내용을 만들고 이를 현장화하는 훈련을 시도하자는 뜻이다. 이런 시도의 한 가지 방식으로 이 글은 초대 교회가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었던 수도원의 영성을 소개하고자 한다. 초대 수도원 영성은 크게 말해 두 가지 특징을 띤다. 첫 번째는 수덕주의(修德主義: asceticism)1)이고 두 번째는 신비주의이다. 이 글은 첫 번째 수덕주의의 측면에서만 수도원 영성을 소개하고자 한다.

기독교 영성을 말하면 당연히 그 원천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의미해, Matthew Fox는 기독교 영성을 "세계 내에서의 존재의 뿌리됨"2)으로 정의하면서 뿌리로 되돌아갈 것을 권하고 있다. 수도 원주의의 수덕주의가 초대교회 영성의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지만 그 시대의 어느 형태의 교회 삶이나 신학에서 배우게 되는 영성보다는 훨씬 크다고는 할 수 있다. 물론초대교회의 모든 신학적 저술이 삶과 유리되어 순수 이성적 차원에서 쓰여진 적은 없다. 이 시기의 모든 저술이 다 역사적 상황 아래서 만들어진 영적 삶을 반영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요즈음 초대교회의 영성을 찾아보자는 교회사 학계의 일각의 관심은 신학을 단지 한 개념의 발전사로 보지말고 이런 개념을 쓰는 저자의 영적 삶에 주의를 돌리자는 생각으로 바뀌고 있다. 신학을 만들어내는 저자의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에 유의해보자는 생각이다.3) 이런 학계의 관심의 변화는 교회의 외적 삶보다는 내적 성찰과 훈련을 강조했던 수도사들에게 관심을 두는 것을 더 용이하게 한다. 조직된 교회의 예전적이 고교리적인 삶이나 이단으로부터의 도전에 대응해 쓴 신학적 변증에서보다는 수도원적 삶에서 영적 훈련과 삶을 실제적으로 더 배울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초대교회에서 영적 지혜를 얻고자 전통적 교리신학을 바라다보는 관점의 변화까지 주문하는 바에 영적 삶의 원 바탕이 되는 수도원적 삶에 관심을 돌리는 것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이는 초대교회의 영적 근원을 들여다보고 배우자는 갈구가 된다. 이런 관심을 우선 영성에 대한 관심이라고 말한다면 이 즈음에서 영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를 내리는 일이 필요하다. 영성이란 하나님과의 직접적이고 배타적인 영적 관계를 통해 얻게되는 신앙적 삶의 특정한 태도나 행동을 형성하는 정신 구조를 의미한다. 이 정의에 의하면 수도사 개개인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 신앙의 태도와 삶의 자세를 묶어주는 공통적 정신 구조가 있다는 것이다. 종교사회학자 피터 버거의 표현대로 이들이 살았던 세계 전체를 덮어주는 어떤 "거룩한 덮개" (The Sacred Canopy)4)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으로 이 글이 의도하는 바는 우선 이런 덮개가 무엇이었는가를 밝혀내는 일일 것이고 이 덮개를 구성하는 요인들이 무엇이었는가를 추적해내는 일이 된다.


II. 수도원적 영성

초기 수도원주의의 영성을 찾고자 우리가 추적해 들어갈 수 있는 문헌적 자료가 많지만 사막교부들의 금언5)이 그중 대표가 된다. 이 책은 3세기 후반에서 6세기까지 이집트 사막에서 시작해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지에 흩어져 수도하던 사람들의 짧은 이야기, 가르침을 모아놓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가 한 사람이 아닌 것이 이 책이 정치적, 교리적 편견이나 선전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게 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 한 걸음 뒤가 사막 삶의 구체적 현장감을 견지해 사막에서 수도사들이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를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 이런 현장감이 이 책에 서 초기 수도원 영성의 원류를 찾아내고 분석할 수 있도록 해준다.

수도원적 영성이란 완전을 추구하는 삶에 있었다. 수도원적 영성을 한마디로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지만 모든 수도사들의 궁극적인 관심이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 되었고 ([금언] Anthony the Great 1, Sisoes 19 등),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완전한 삶을 살고자하는 끝없는 노력으로 나타났다. 오늘 우리의 반문은 구원을 얻기 위해 삶의 완전을 이루어야만 되느냐 는 것이다. 특히 구원의 완성이 이들 수도사들처럼 세상과 격리되어 평생을 독신으로 사는 데에서 얻어지는 것이라면, 오늘 우리가 그 것을 실천할 수 있든 없든 상관없이, 이것이 과연 성서에서 말하는 구원이고 기독교적이냐는 질문을 하게 된다. 이 질문에 먼저 대답하고 이 글을 진행하는 것이 아무래도 생길 수 있는 불필요한 오해를 막을 수 있을 것같다. 수도사들이 추구하던 구원은 오늘날 언어로 한다면 "성화"(sanctification)에 해당하는 말이고 닛사의 그레고리(Gregory of Nyssa)의 언어로는 epektasis(해소되지 않는 신적 본성을 향한 인간의 끝없는 추구)6)에 맞는 말이지, 초보적인 단계인 중생으로서의 구원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완전에 대한 갈구는 니그렌의 용어사용법을 차용한다면 agape적이지 eros적은 아니다.7) 인간 을 찾아오시는 agape의 신적 사랑과 신을 향한 eros의 인간적 사랑 사이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막 교부들의 완전을 추구하는 영성을 eros적으로 쉽게 해석해 버린다. 인간이 노력해서 하나님에게 가고자하는 훈련이라고 비판받기 쉽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초대교회의 헬라철학을 신학의 도구로 채용하던 동방교부들 전체를 근본적으로 잘못 이해하는 말이 된다. 그들이 신적 신비에 도달하 기 위해 전심을 다해 노력하는 것은 사실 그들에게 비추어 오는 신적 빛에 그들 자신을 노출하는 것과 다름없다. 기독교 신비주의 원천 중 하나로 불리는 僞-디오니시우스의 설명을 들어보자. 배 에서 바위에 줄을 매고 당기면 기분은 마치 바위를 배에게로 끌고오는 것 같아도 사실은 배가 바위에게로 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8) 하나님의 내려오심과 인간의 올라감을 인간의 수동성과 능동 성으로 바꾸어 설명한 것이다. 인간이 능동적으로 하나님을 자기에게 끌어오려는 시도가 사실은 수동적으로 하나님에게 끌려가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역사적으로는 사막 수도사들이 아타나시우스와 아리안의 기독론 논쟁의 와중에서 예외적으로 집단적으로 아타나시우스의 기독론을 지지했다 9)는 사실이 사막 수도사들의 구원론이 에로스적이 아니라 아가페적임을 분명히 해준다. 아리우스주의는 기독론적 설명에서 예수를 반신 반인간으로 이해하고 인간인 예수의 절대복종에 의해서 성부가 양자로 삼았다고 주장해서, 이 기독론에 의하면 구원이란 인간의 복종의 의지와 행위에 있을 수밖에 없다.10) 이런 신학을 거부하였다는 자체가 이미 이들 수도사들의 구원관이 인간의 훈련에 의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준다. 수도원의 창시자로 불리는 안토니는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에 의존"(안토니의 생애 138)한다고 확실히 말한다.

수도사들의 완전에 대한 갈구는 그 근원이 성서에 있다. 완전에 이르게 하는 훈련의 목적과 방법 등의 원천은 성서였다. 사이프러스의 감독이 되었던 아바 에피파니우스는 구원이 성서를 모르고서 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음을 강조한다(Epiphanius, the Bishop of Cyprus 11). 성서는 어떻게 살아야 되며 어떻게 해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에(Ibid., 9) 성서에서 벗어나는 일은 구원에서 멀어지는 것이 된다. 혹 몇몇 수도사들이 성서의 가르침 밖으로 나갔을 수는 있지만 기독교 초기 수덕주의 전체가 성서의 가르침 밖의 그 무엇을 추구한 것으로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성서의 완전에 대한 가르침은 어떠한 제한된 시대의 해석학이 아니라 모든 시대를 걸쳐서 요구되는 영속적 성서의 요구이다. 다만 이 가르침에 대하여 사막 수도사들의 해석학적 관점이 다른 이들과 달랐다는 것은 강조할 필요가 있다. 수도사들의 태도는 두 가지 면에서 다른 이들과 달랐다. 우선 이들은 성서 읽기에 조심을 했다는 점이다. 마음을 쏟지 않고는 성서를 쉽게 읽지 못하도록 했다. 환경적으로 성서 자체를 얻기가 어려웠을 뿐 아니라 글을 읽을 수 있는 수도사들이 많지도 않았다. 이런 환경의 외부적 요인보다 더 중요하게 내부적으로 지침이 있었다: 실천 이 수반되지 않는 성서 읽기는 안 읽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였다(Amoun of Nitria 2). 황실에서 황제 자녀들을 가르치던 알세니우스는 당대의 글의 사람이었지만 이집트 사막으로 들어와 수련을 시작하면서 자신은 수도원적 가르침의 알파벳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였다(Arsenius 6). 글로 성서를 읽고 그 뜻을 깨닫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 글이 자신의 가슴에서 살아 현실적인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바들은 성서를 가슴으로 읽도록 했다. 아바 팜보는 "만약 네가 가슴을 가졌다면, 구원을 받을 수 있으리라"(Pambo 10)고 단정한다. 이들이 "가슴"이라고 명명하는 단어는 이성과 감정과 의지로 인간의 기능(faculty)이 구분되어 이 세가지 중 하나인 감정을 지칭하는 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슴"이라는 단어는 "인간의 내적 생명의 중심이며 영혼과 정신의 기능과 힘이 자리하고 있는 자리 또는 원천 "11)이라고 본다. 가슴으로 성서를 읽는 사람들에게, 다시 말해, 온몸으로 성서를 읽는 사람들에게 머리로만 글을 읽는 사람들은 위험하기가 짝이 없어 보였다. 이들은 전적인 삶의 헌신이 없을 때 성서는 그 깊은 차원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 전적 헌신이 있을 때에야 가슴 속에서 신적 불이 일어나게 되고, 소멸하시는 하나님(히브리서 12:29)과 대면하게 된다.

아바들과 아마(Amma, 여수도사)들의 해석학에서 다른 이들과 차이나는 두 번째 관점은 성서의 해석과 주석이 바로 자신들에게 가르침을 제공하는 선생들의 삶이었다는 점이다. 아바 안토니는 해마다 한번씩 자기를 찾아와 배우는 제자들에게 성서의 문제를 내고 토론과 질문을 하게 했다. 그 중 한 명이 두 해나 아무런 질문이나 대답을 하지 않기에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자신은 그저 선 생님 뵙는 것만으로 족하다는 것이었다. 공부에 대한 무관심도 아니고 신학적 질문의 무딤도 아니었다. 단지 그 제자에게 선생의 삶이 성서의 본문을 해석해주고 있기에 자명하였던 것이다. 그러 기에 어떤 아바는 자신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제자에게 자기를 보고 배우지 못한다면 어떻게 듣고 서 알겠느냐고 꾸지람을 주게 된다. 이런 점에서 사막 수도원 영성은 예수를 닮아가자(the imitation of Christ)는 말을 현실적으로 선생을 닮자(the imitation of the abba)는 말로 바꾸어 이 해하고 있었다. 선생들의 삶이 어떤 경우에는 주석을 넘어 심지어 본문 그 자체가 되기도 하였다. 이렇게 스승 닮기가 일반 대중에게는 우상이 될 소지도 있었고, 반대로 자신의 실천이 빠진 영웅 숭배가 될 여지도 있었지만, 스승의 삶을 내 삶으로 바뀌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지도(mapping)의 역할을 해주는 셈이었다.


III. 덕목의 신학

사막 수도사들은 영성의 근간이 되는 구원의 가르침이 현실적 삶의 현장에서 일어난다고 보았다. 완성을 향한 열정이 영성이었다면, 이 영성을 지속적으로 만들어주는 신비적 체험이 필요하였고, 이 체험은 항상 현실세계에서의 덕목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므로 덕목이란 구원의 삶을 담고있는 전달 수단(vehicle)이었다. 덕목이란 말은 헬라어에서 시민적 정치적 삶을 뜻하는 πολιτε?α 와 철학적 종교적 덕행을 말하는 αρετ?에서 나온다. 수덕주의를 위해서 원래 αρετ?가 쓰였다. 이 용어가 소크라테스에게는 지식과 이해와 지혜를 뜻하는 말로 쓰이면서 자랑스런 인간의 품격과 도덕적 성품으로 이해되던 말이었다. 당시의 수덕주의적 문헌(ascetic literature)에서는 종 교적인 의미로 확대 해석되어 쓰이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 말이 시사하는 바는 수덕주의의 덕이란 일반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덕목과 분리되어 특정의 종교적인 내용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던 덕이었다. 성과 속의 구분이 없고, 교회 안과 밖의 갈등 없이 쓰고 있던 말이었다. 한편 πολιτε?α는 정치적인 의미에서 시민적 덕이었지만 이 정치적 시민을 기독교적으로 확대 해석해서 "천국 시민의 삶"에서 누리는 덕으로 의미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덕목의 용어에 대한 논의가 길어진 이유는 수덕주의의 덕목이 일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덕목과 다른 것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수도원에서만 할 수 있는 덕목이란 별로 많지 않 았다. 오히려 어떤 수도사는 수도 생활을 할 때보다 사제가 되어 목회 현장으로 나가서 더 수도원적 덕의 삶을 위한 훈련을 했다. 수도원적 덕목이란 수도사들만이 할 수 있는 몇 가지의 특수한 덕목을 빼고(가령 독신, 출가 등)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해야하는 신앙적 덕목과 사람이면 누구나 해야하는 도덕적 덕목이었다. 수도사들에게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신앙적 신비적 체험과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는 신유의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신앙 훈련 과정에서 생기는 부수적인 현상이었고 더 중요한 것은 이웃에 대한 사랑이었다. 예를 들어 많은 아바들이 신비적 체험의 하나인 황홀경(ecstasy)과 예언의 능력을 체험하였다. 그러나 영적 통찰력이 있는 아 바들은 이 경험 자체는 자기 내면에 소중히 담아 두고 이 경험으로 어떻게 이웃을 도울 수 있는지를 더 중요시하였다. 사실 이런 이웃에 대한 도움과 사랑은 보통 사람들이면 누구나 하는 신앙의 덕목이었다. 단지 다르다면 이 사랑에 이르는 방법에 차이가 났고, 사랑을 위해 육체와 정신을 어떻게 훈련하느냐가 달랐다.

초기 사막 수도사들이 처음부터 이웃 사랑을 위해 사막으로 들어갔다고 보기는 너무 의도적인 해석이다. 사실 그들은 우선 남과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해 사막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자신의 삶의 방식과 덕목의 최종 목적지에 대한 정리를 하게 되었다. 수덕주의적 삶이 처음부터 어떤 목적을 놓고 이의 실행을 위해 조직을 만들고 실천에 들어간 것이 아니라 성경 말씀에 따라 온전한 삶을 살고자 노력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삶의 형태였고 이것이 대중화되면서 내부적으로 목적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였다는 것이다. 우선 아바들은 자신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정 함으로 스스로의 삶을 다짐해야했고 제자들에게 어떤 덕의 가르침을 집중적으로 줄 것인지도 알 아야했다. [금언]에 보면 거주 환경마다, 사람마다 다른 목적을 말하곤 했지만 이런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내적으로 일치하는 것이 있었다. 표면적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단순함"을 추구했다. 헬라어 의 수도사란 말이 monochos인데 이는 "하나"를 뜻하는 말이다. 즉 하나의 단순한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수도사들 가운데 특히 학문적인 성향을 보인 아바 이시도레는 수도원적 덕목과 철학을 "신중함이 있는 단순성"(Isidore of Pelusia 4)이라 명명하였다. 이 단순성은 고대 시리아어에 shafyut와 ihidaya에 해당한다. shafyut 가 "맑음, 순수성, 투명성, 평온, 마음의 진지함"12)이고 ihidaya는 "단일적이고 개인적이고 독특하 고 단순한 마음..."13)을 뜻한다. 환경과 여건의 차이를 하나로 묶는 정신적 구조, 지역과 시간의 차이를 뒤덮어 하나로 보이게 하는 영적 통일성은 우선 단순성이란 단어의 어의학적 의미가 밝혀주고 있듯이 갈라지지 않고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마음의 순수성에 있었다. 모든 수도사들이 갈구하던 영적 훈련의 목표는 마음의 순수성이었다.

마음의 순수성을 수도원적 영성에서는 apatheia라고 불렀다. 초기 수덕적 문헌에서 pathos(초기 문헌에서 영어의 passions은 바로 이 pathos를 뜻한다)는 죄된 감정, 그 어떤 죄된 것에 의해 삐뚤어진 격정을 뜻하고 apatheia는 이 격정에 반대되는 상태를 말한다. 무정념과 무감각의 상태에서 영이 하나로 모인 상태를 뜻한다. 욕정과 탐심, 증오와 분노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 apatheia에 이르는 길이지만 동시에 무관심과 포기, 좌절 또한 극복해야할 과제였다. 왜냐하면 apatheia는 단순히 소극적인 차원에서 자연적인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apatheia는 기독교 자체의 용어이기보다는 스토아주의 등의 헬라철학에서 쓰이고 있던 용어로 보인다. 헬라철학 에서 어떤 사실을 부정하는 방법으로 부족과 결여를 의미하는 접두어 α를 붙여 신의 속성을 설 명하는 시도를 했었는데(예: 불멸, 부동 등)14) α-παθε?α는 바로 이런 시도 하에 만들어진 신적 상태를 표현하는 단어였다. 그런데 이 단어는 철학에서는 신의 부동의 정적인 상태를 표시하 고 있다. 이것을 잘못 이해하여 기독교 수도원 운동 내에서 후에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음을 기억한다. Apatheia를 감정을 배제한 이성의 상태, 감정이 없는 의지의 결집으로 이해하게 되어, 후에 Origenism 논쟁이 벌어졌을 때 한편에서는 오리겐을 따라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인동형동성론(anthropomorphism)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했고15) 즉 감정적인 차원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을 두려워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의 감정적 이입이 없는 상태의 하나님이라면 더 이상 인간과 관계없는 것으로 한탄했음을 본다.16) 다른 종교에서도 헬라철학에서와 마찬가지로 명상의 최정점에 도달하기 위해 몰개념과 몰감정을 방법적 도구로 쓰고 있음을 본다. 그러나 기독교 수도원의 apatheia는 능동적이고 실천적 감정을 의미하였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한다. 이 점이 왜 이 글이 수도원 영성의 신비주의보다 덕목을 더 선택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된다. 단순히 감정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삐뚤어진 감정을 바로 해서 바르게 쓰자는 것이다. 감정이 바르게 쓰이기 위해서는 감정이 이성의 통제를 받아야하고 이성이 일관된 의지의 도움을 받아야 되었다. 플라톤의 마차의 비유를 보자. 말은 우리 육체와 연관된 감정이고, 마부는 훈련된 이성이었다. 말을 훈련시키자는 것이지 말을 죽이자는(eradication) 것이 아니었다. 마부의 통제를 통해 말이 방향성을 가지고 달리게 하자는 것이다.

훈련된 감정으로 이루어진 apatheia를 정적인 상태보다는 좀더 능동적인 언어로 바꾼다면 사랑의 완전을 위한 삶이 된다.17) 이 경우 apatheia는 사랑의 실천을 위한 시작이며 동시에 이 실천을 지향하는 목적이 된다. 비유로 들자면 마치 마른 사막에서 잘 말려놓은 장작이 되어서 불탈 때 한 가닥 연기 없이 온 삶을 불꽃으로 소진시킬 그런 장작이 되는 것이었다. 마른 장작이 됨을 사랑을 시작할 때의 상태를 표현해주는 수동적 언어로 본다면, 불꽃이 됨은 사랑을 위해 온 삶을 소진하는 능동적 언어로 볼 수 있다. 그래서 Joseph of Panephysis의 "소멸하는 불이 되지 않고는 수도사가 될 수 없다"(Joseph of Panephysis 6)는 말이 그 무게를 더하게 된다. Poemen은 이렇게 불 꽃으로 타는 삶을 다음의 비유로 설명한다. "그릇이 불 위에 놓이면 파리라든가 다른 동물들이 접근하지 못하지만 식으면 그릇 속으로 들어온다. 마찬가지로 수도사가 영적인 활동을 하면 대적이 수도사를 넘어뜨릴 어떤 방법도 찾지 못한다"(Poemen 111). 수도사들에게 이 영적인 활동의 최정점이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다.

최근의 학자들은 수도원적 영성의 목적이 무엇이었겠는가 하는 질문에 사랑이었다는 공통적 대답을 한다. 평이한 글로 초대교회와 현대인들의 대화를 모색해보는 Roberta Bondi는 모든 수도사들은 사막의 영성을 하나로 묶어 사랑으로 설명한다. 즉 사막의 모든 영적 노력의 목적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자는 시도였다는 것이다.18) 수도원 영성의 목적을 사랑으로 설명하는 시도는 최근에 사막 수도사들에 대한 지도적인 연구를 하고 있는 Douglas Burton-Christie의 말 에서도 분명하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대명령을 "사막 교부들의 세계에서 의 해석학적 중력의 중심"19)으로 삼는다. 사막교부들 연구의 또 다른 학자인 Graham Gould도 사랑을 사막 영성의 중심으로 삼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20)

사막 아바들이 추구하던 초월적인 종교적 체험과 사랑은 자신의 내부에 담아두었고 남들이 볼 수 있는 사랑의 추구는 일상 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덕목으로의 실천의 사랑이었다. 내부에 담겨 진 사랑이 강하면 강할수록 밖으로 이웃에 대한 사랑의 폭과 깊이가 더했다. 그러기에 아바들의 영성의 깊이는 이들이 보여준 일상적 덕목의 실천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다. 난쟁이 아바 요한은 수도 초보 시절 모든 일상적 의무에서 벗어나 정말 천사같이 살고 싶었다. 일상적 일을 하지 않고 쉬지 않고 예배만 드리는 요한에게 함께 수도하던 아바들이 관심을 두지 않자 요한은 자기의 훈련이 잘못된 것임을 알 게 되었다. 이 때 요한에게 주어진 교훈은 너무나 당연하고 일상적인 것이었다. "먹고살기 위해 일해야하는 인간"21)이라는 깨달음이다. 설사 수도사들이 처음부터 자신이 살고 있던 공동체 자체를 위해서 일하고자 헌신한 것은 아니었지만 성서를 바르게 이해하여 자신이 연약한 인간이기에 이웃과 더불어 사는 일이 필요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면적 영적 체험의 깊이는 이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을 통해 완전으로 갈 수 있었다. 지리적으로 깊은 사막으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사랑으로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지리적 거리와 마음의 거리가 역비례하기 시작하였다.

실질적으로 이웃과 떨어져 세상을 등지고 산 사람들이 어떻게 이웃을 사랑할 수  있었는가 하는 질문은 적절하다. 사랑이란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행동의 관계이지 추상적인 명상이나 사고는 아니지 않는가 하는 질문이 수도사들의 이웃 사랑에 관한 비판으로 주어진다. 이점에서 다시 수도원의 초기 모습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말에 "수도원"이란 "園"이라하여 울타리에 쌓인 모습을 말한다. 수도를 위해 세상과 담을 쌓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초기에 수도를 하던 사람 들에게 인공적인 담이란 없었다. 홀로 훈련을 하는 사람들은 각기 서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인공적인 폐쇄의 담은 없었다. 이들 홀로 훈련하던 사람들의 삶은 독수 또는 은둔의 삶이라고 하는데, 이들에게 상인들이 자주 왕래하였고 이들 또한 노동해서 만든 물건을 팔러 장에 나가곤 했다. 또한 후기에는 이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상담을 하려고 멀리 로마에서 황제까지 온 적이 있을 만큼 대중적으로 사람들이 사막으로 몰려들었다. 멀리 사막에서 수도하던 이들에게 무엇보다도 동료들이 가까운 이웃이었고, 또 시장에 드나들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수도사들을 물질양면으로 돕던 사람들, 상담을 위해 찾아오던 사람들 모두가 이들 수도사들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물론 Upper Egypt에서 파코미우스를 중심한 공동체 훈련을 하던 수도원들은 인공담을 칠 수 밖에 없었지만 우리가 중세기에 보게되는 폐쇄된 장소가 아니었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수도 훈련 장소가 "원"이 되면서 인공담이 쳐진 것은 아마 칼케돈 회의 이후였을 것이다. 칼케돈 회의는 초대 교회가 기독론 논쟁으로 대립이 첨예한 상황에서 안디옥 교회와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대립은 서방 교회의 정치적 도움으로 해결한 회의였다. 서방 교회의 레오 1세의 교서를 근간으로 칼케돈 신조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 때 서방 교회는 semi-Pelagism으로 씨름하고 있던 때였다. semi-Pelagism의 선두주자 가운데 한 사람이 다름 아닌 John Cassian이었다. 이 사람은 이집트 수도원에서 훈련을 하다가 돌아와 서방에서 자신의 수도원을 하던 수도원 운동의 대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서방 교회에서는 이 논쟁을 잠재우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이 운동을 뒷받침하는 수도사들을 굴복시키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 칼케돈 회의의 힘을 빌어 모든 수도사들을 교회 감독의 권한 아래로 종속시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런 결정의 또 다른 뒷배경은 도시의 교회 지도자들의 불편함이 자리하고 있다. 즉 수도원이 광야에서 대도시로 (수도인 콘스탄티노플) 진입하기 시작했을 때 일반 교인들에게 수도사들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극한 훈련을 받은 수도사들이 성자로 추앙받으며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자 인기 경합을 불편해하는 교회 지도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수도사들의 행동을 제약해야만 했다.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가 인공담을 치는 일이었다.

수도사들은 별 저항 없이 이런 통제에 따랐다. 이렇게 인공적인 담을 치고 정치적 제약에 순응했 다는 것이 이들을 정치적으로 보호한 일이 되었다. 기독교 역사에서 우리가 익히 아는데로 이단이란 말이 Orthodox(바른 가르침)라는 말의 신학적 함축에 비해 오히려 heresy라는 말로 a sect 또 는 school을 의미하는 사회학적이고 정치적인 함축이 있음을 본다. 그 무수한 이단들이 있었음에도 수도원이 이단이 되지 않은 기적같은 일은 바로 타의적, 자의적으로 쳐진 인공담 안에서 납작 엎드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수도사들이 살아남기 위해 이런 태도를 가졌다고 판단하는 것은 단지 훗날 역사를 되돌아보는 역사적 결과이지 애초에 그들이 이런 동기를 가졌거나 노력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이들은 남들의 인기라든지 정치적인 갈등이라든지 하는 것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이웃 사랑의 실천은 먼저 개인의 육체와 감정의 훈련으로 시작하였다. 수도원 운동을 "수덕"보다는 "금욕"으로 이름이 지어진 것은 수도원적 훈련이 모진 육체적 고행을 수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수도사들은 자신들의 육체에 폭력을 가하는 사람들이었다.22) 혹 육체의 연약함으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막고자 아바 Longius는 자신의 육체보고 아프면 그냥 죽으라고 명령하고 있다(Longius 2). "마음이 원이로대 육체가 연약하여" 넘어지는 현실적 삶에서 그 연약해진 육체 먼저 훈련하는 일이 마음의 원을 이루는 길이 되었다. 사막 수도사들은 육체가 자기고집, 훈련을 저버린 휴식과 그릇된 습관)으로 인해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Theodore of Pherme은 수도사들이 하나님이 허락하 시기 전에 자신들이 스스로 쉬고 있음을 한탄하고 있다 (Theodore of Pherme 16). 아바들이 이렇게 육체의 훈련을 강조하는 이유는 휴식의 필요성을 몰라서가 아니라 휴식을 통해서 파고 들어오는 마음의 해이해짐을 경계하기 위해서이다. 육체에 폭력을 가하기 않고는 편안함에 길들여진 육체를 훈련의 과정으로 끌어내기가 어려웠다. 그러기에 아바 다니엘의 말 "영혼이 약해지는 정도로 육체가 강해지며, 육체가 약해지는 정도로 영혼이 강해진다"는 것은 영과 육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온 말이 아니라 육체를 통해 안주하고자 하는 영혼의 해이해짐을 책망하며 훈련을 권장하는 말이 된다.

이미 말한 것처럼 감정의 훈련 또한 중요한 수덕의 과정이었다. 현대인에게 이성보다 감정이 더 중요한 것처럼23) 초기 수도원 시절에도 감정이 중요하였다. 이미 아리스토텔레스가 감정의 조화를 이룰 것을 강조한 것처럼 감정이 인간의 의지와 이성에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수도사들에게 문제는 불끈 일어나는 감정의 부조화였다. 그러기에 육체의 훈련은 반드시 감정의 훈련과 함께 묶여있었다. 감정 훈련의 최종적 목표는 통전적인 인간으로 영혼, 이성, 감정, 육체가 조화를 이루는 일이지만 훈련의 과정으로 육체와 마찬가지로 감정 또한 폭력이 필 로 되었다. 이미 삐뚤어져 있는 감정(격정, passions)으로 조화 얻기를 기대할 수 없었다. 다이어트와 금식, 철야를 통한 기도생활, 훈련의 목적으로 불편을 감수하는 육체적 고행들은 항상 영적으로 성숙해가기 위해 영적 분별력이 요구되었다. 육체와 감정의 폭력은 이웃 사랑을 위해서 다른 말로 표현되었다. 즉 "이웃에 대하여 죽으라"는 것이다. 이웃에 대하여 죽기 위하여 훈련의 목적으로 모욕과 편애를 주기도 하였다. 이웃의 칭찬에도 교만에 빠지지 않고 이웃의 비난과 시기심에도 움직이지 않는 "돌이 되라"는 것이다.

훈련을 통한 사랑은 통상적인 사랑 방법과 달랐다. 우선 수도사들은 준비되지 않은 사랑을 말할 수 없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의 조언은 조언자의 수 없는 실패를 통해서 얻은 보석이었다. 땀과 눈물을 통해 쪼개내고 갈아 닦은 보석이었다. 자신의 실패를 통해 경험해보지 않는 것을 남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줄 수 없었다. 남을 도와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이들은 과감히 벗어났다. 값싼 동정심의 노예가 아니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의 피상적 요구에도 둔감하였다. 나르시스적 자기 도취 사랑도 수도사들이 경계했다. 남을 도와주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 남을 사랑하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올바른 영적 태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수덕의 대표적 실패로 간주되었다. 사랑은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양자가 다같이 영적 성숙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어야 했다. 받는 이를 위해서는 주는 이의 영적 분별력과 겸손이 필요했다.

겸손이란 모든 육체와 감정, 또는 종교적 훈련 뒤에서 이 훈련들이 바로 영적인 성장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촉매제였다. 겸손이 빠진 훈련의 성공이란 없었다. 겸손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 아바 마카리우스에게 사탄은 패배를 인정하며 자신의 패배의 원인이 마카리우스의 겸손에 있 었음을 말한다. 사탄은 크나큰 영적 능력을 행하고 초월적인 역사를 보이거나 혹은 겸손을 가장할 수는 있었지만 참된 겸손만은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후기 수도원 운동에 있어서 수도사들의 유품들이 일반 교인들에게 미신적으로(cultic) 숭배된 것을 보고 초기 수도사들의 영성까지 이렇게 컬트적으로 연관짓는 것은 정당한 평가가 아니다. 초기 수도사들이 유명해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겸손이었고, 사람들 입에 회자되는 그들의 유명도는 본인에게는 오히려 부끄러움이었다. 이렇게 겸손을 바탕으로 한 사랑만이 하나님이 사랑하심같이 이웃을 사랑하게 하였다.

수도사들에게 사랑의 완전은 평생을 걸친 추구이다. 이 추구는 목표의 어려움 때문에 시작부터 포기하는 추구가 아니라 작든 크든, 적든 많든 실천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추구였다. 완전을 향 한 끝없는 추구를 말하는 Gregory of Nyssa의 epectasis는 바로 이 수덕적 사랑의 신학적 표현이 었다. 동방 교회의 일반적 구원관인 deification이 (partake of the divine nature, 베드로후서 1:4) 결과로서의 성취가 아닌 추구로서의 완성을 말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결과의 예상되는 실패 때 문에 미리 포기하는 사랑이 아니다. 단지 사랑이란 평생을 걸쳐서 이루어야할 과제이며 목표가 되나 조금씩 살아가는 것이었다. 성취 못할 목표가 아니라 이미 여기서 사랑에 따라 사랑을 성취하 며 그러다가 실패했다가는 또 앞으로 나가는 그런 사랑을 의미한다. 수도원 영성은 바로 이 사 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수도원 밖에 있는 우리에게는 마음과 삶의 훈련을 통해서 장소적이고 지리적인 거리를 극복해야할 과제가 남아있지만 이들 수도사들이 실천했던 덕과 사랑의 삶이 접근하지 못 할 것은 아니다.


IV. 꼬리말

짧은 글을 통해 수도원 영성의 핵은 사랑의 온전한 삶을 살고자하는 훈련에 있음을 말했다. 깊은 사막에서 훈련된 영성은 같은 훈련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감추어져 있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결과적으로 드러나진 영적 삶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에 있었다. 영적 훈련의 깊이가 깊을수록 사랑의 깊이와 넓이가 더해갔다. 이 사랑은 덕(virtue)이라고 불리는 일상생활의 바른 태도와 실천을 통해 확인되었다. 수도원적 영성이란 사람과 멀어지면 질수록 사랑으로 더 가까이 다가오는 그런 것이었다. 버리면 버릴수록 더 많은 사람을 얻게 되는 그런 삶이었다.

오늘의 영적 빈곤 문제가 단지 옛날 수도원적 삶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겠지만 되돌아간다고 다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근본이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할 때는 언제나 가장 기초적인 것으로 되돌아가는 일이 필요하다. 특히 신앙과 삶의 일치가 깨져서 곳곳에서 영적 삶의 열매를 갈급해 하는 때, 더욱이 사랑이 식어져 사랑의 시도조차 아예 포기까지 하는 시대에 수도원적 삶은 우리의 실제적 삶에서 어떻게 우리의 육체와 감정으로 사랑과 덕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가르쳐 준다. [금언] 서두에서 이 책의 저자가 밝히고 있듯이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어주는 길을 가고자 할 때에는 앞서 산 사람들의 삶을 본받음으로"([금언] Prologue) 가는 것이 이 영적 어려움을 이겨나는 한 가지 길이 될 것이다.

 

1) Asceticism을 수덕주의라고 명명한 이유는 asceticism이 본래 ascesis(훈련, 즉 덕을 훈련한다 는 뜻)에서 왔기 때문이다.

2) Matthew Fox, "Introduction: Roots and Routes in Western Spiritual Consciousness," Western Spirituality: Historical Roots, Ecumenical Routes, ed. Matthew Fox (Notre Dame: Fides/Claretian, 1979), 12.

3) Bernard McGinn, The Foundations of Mysticism: Origins to the Fifth Century, The Presence of God: A History of Western Christian Mysticism 1 (New York: Crossroad, 1994), xii. Bernard McGinn은 이전의 신학자들이 기독교 신학의 본질적이고 불변한 진리를 찾는데 관심 이 있었다면 근래의 역사 학자들은 그 신학이 가지고 있는 내적 의미를 찾거나 교리 배후에 있는 실천적 삶의 역사에 더 관심을 두고 있음을 지적한다.

4) Peter Berger, The Sacred Canopy: Elements of a Sociological Theory of Religion (Garden City: Doubleday, 1967). 이 책은 이 글의 내용과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지만 이 제목이 시사하는 바는 역사 연구의 한 방법론인 mentality의 연구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고 보인다. 어느 한 시대를 덮고 있는 정신적 canopy를 그 시대의 공통의 정신 구조를 가리키는 mentality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5) 이 책은 대략 세가지 형태로 내려오고 있다. 어떤 구분없이 이야기나 명언들을 수록한 무명의 모음집, 아바들의 이름을 알파벳 순서로한 알파벳 모음집, 그리고 주제별 모음집이 있다. 이 책의 보다 상세한 장르별 및 언어별 역본들을 알기 위해 본인의 논문 "Rediscovery of the Fear of God: A Study of The Sayings of the Desert Fathers (Ph. D. diss., Emory University, 1999), 39 에서 특히 미주 50번을 참고하라. 알파벳 순서로 된 모음집은 은성출판사, 주제별로 된 모음집은 분도출판사에서 우리말로 옮겨 출간하였다. 이 글을 위해서는 Benedict Ward, ed., The Sayings of the Desert Fathers (Kalamazoo: Cistercian Publications, 1975)을 따라 아바들의 이름을 인용 하고 있다.

6) Gregory of Nyssa, The Life of Moses, trans. Abraham J. Maltherbe and Evert Ferguson, The Classics of Western Spirituality (New York: Paulist, 1978), 29-32 (Prologue).

7) Anders Nygren, Agape and Eros (Philadelphia: Westerminster, 1953). 나는 니그렌이 희랍철 학을 eros적 사랑이라 말해 인간의 노력으로 신을 찾는 것이라는 설명에 동의하지 않는다. 희랍 철학의 eros는 신적 본성의 유출이고 절대 美의 순간적 현현이지 일방적으로 인간이 노력해서 신 성에 도달한다는 개념은 아니다. 진선미로 표현되는 신성의 절대치에 도달하는 것에는 순간적 신 적 현현에 어찌 못하는 인간의 수동성이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8) Pseudo-Dionysius, "The Divine Names," Pseudo-Dionysius: The Complete Works, trans. Colm Luibheid, The Classics of Western Spirituality (New York and Mahwah: Paulist Press, 1987), 680D/68 (원전 칼럼 번호/번역판 페이지).

9) 아타나시우스, 안토니의 생애, 안미란역 (서울: 은성출판사, 1993), 131 (단락 69).

10) 아리우스주의의 구원론적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를 위해 다음의 글을 참고하라. Robert C. Gregg and Dennis E. Groh, "The Centrality of Soteriology in Early Arianism," Anglican Theological Review LIX, no. 3 (July 1977)와 같은 저자의 Early Arianism- A View of Salvation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1).

11) Gerhard Kittel, ed.,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trans. Geoffrey W. Bromiley (Grand Rapids: W. 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65), 611. [금언]에서 "가슴 "이란 말의 헬라어는 καρδ?α로 νο??나 δι?νοια와 의미상 차이가 나지 않는 말로 쓰 고 있다.

12) Sebastian Brock, "Introduction," The Syriac Fahters on Prayer and the Spiritual Life (Kalamazoo: Cistercian Publications Inc., 1987), xxviii. 이 단어가 이사야 26:7에 "의인의 길은 정 직함이요"에서 '정직'이란 단어에 해당되고 누가복음 8:15에서는 "착하고"라는 뜻이다.

13) Ibid., xxii.

14) Jaroslav Pelican, Christianity and Classical Culture: The Metamorphosis of Natural Theology in the Christian Encounter with Hellenism (New Haven & London: Yale University Press, 1993), 40.

15) 오리겐의 스승인 클레멘트를 보라. 그는 하나님은 "전적으로 감정이 없기 (?παθ??) 때문에 감정의 어느 움직임에도- 쾌락이든 고통이든- 접근할 수 없다"고 보았다. Clement of Alexandria, Stromata, VI. xi.

16) John Cassian, John Cassian: The Conferences, trans. Boniface Ramsey (New York: Paulist Press, 1997), X.ii-iii. 아바 Paphnutius는 "그들이 내 하나님을 빼앗아 갔다. 내게 더 이상 붙들고 있을 하나님을 없어졌다. 나는 누구에게 경배를 드리고 말을 걸어야할지 모르겠다"고 한탄한다.

17) 나는 여기서 수도원적 영성의 두가지 큰 줄기를 통합하는 시도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한 줄기 는 사랑이라는 목적을 보다 중요하게 여기고 실천하는 공동체적 수도원들이고 (베네딕트, 바질 등) 또 한 줄기는 명상을 중요시하는 신비주의적인 에바그리우스 수도원인데 {Evagrius Ponticus, The Praktikos and Chapters on Prayer, trans. John Eudes Bamberger (Kalamazoo: Cistercian Publications, 1981) 참조} 이 둘을 하나로 묶고 있는 셈이다. 기독교 신비주의 역사에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행동에 대한 가치 판단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어 사회적 행위와 관상적 명상 이 두가지가 항상 대립, 균형, 보완의 관계로 설명되어 왔다.

18) Roberta C. Bondi, To Love as God Loves: Conversations with the Early Church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7), 9-40.

19) Douglas Burton-Christie, The Word in the Desert: Scripture and the Quest for Holiness in Early Christian Monasticism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3), 262.

20) Graham Gould, The Desert Fathers on Monastic Community (Oxford: Clarendon Press, 1993), 103. Graham Gould는 명확한 명제로서 사랑을 말하지 않고 있지만 그의 저서 전체를 관통 하는 공동체 형성에 관한 연구는 바로 이 사랑의 영성을 바닥에 깔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다.

21) John the Dwarf 2. 아마 이런 갈등은 역사적으로 Messalians의 이단과의 갈등을 시사해주는 부분이다.

22) 아바들이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일이 사막 수도원 영성의 한 모습이었다. 이 일을 현대의 관점에서 혹 영적 masochism으로 보기도 하나 오해이다.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는 일은 자신에게 는 훈련이며 동시에 이웃에 대한 보다 큰 배려를 위해 자신을 자제하고 있는 것이다. 아바 난쟁이 요한은 이웃을 얻기 위해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다고 한다 (John the Dwarf 18). 폭력을 통한 훈련을 여러 다른 수도사들에게서도 본다. Amma Theodora 3와 abba Zacharias 1 등을 참고하라.

23) Carl E. Schorske, Fin-de-Siecle Vienna: Politics and Culture (New York: Vintage Books, 1981)의 서론을 참조하라. Schorske는 유럽 역사에 있어서 근대의 합리주의가 무너지고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이 돌발하고 있음을 잘 설명하고 있다. 포스트-모던니즘에서 이 감정을 어떻게 정의하고 정리할 것인가는 더 두고 볼일이지만 감정이 이성 대신에 등장하고 있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