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멘 선언 제1항과의 관련성 속에서 본

자연신학의 문제


정 미현

 

1. 들어가는 말

자연신학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것이 별, 달, 해, 나무, 흙 등과 같은 자연에 대한 신학일 것이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그러한 추측은 그야말로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그 용어 자체가 개념상 혼돈을 일으키기가 그만큼 쉽다는 뜻일 것이다. 이 글에서 의도하는 바는 오늘날 우리의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생태학적 신학, 환경을 염두에 두는 신학이라는 뜻에서 자연의 신학(Theologia naturae)이 자연신학(Theologia naturalis) 그 자체와는 구분되어져야 함을 밝히고자 하며, 자연신학의 신학적 문제를 성찰해 보는 것이다. 특히 자연신학문제에 대하여 1930년대 K.바르트의 신학적 노력들, 무엇보다도 당시의 시대적 배경속에 바르멘 신학선언 제 1 항과 연관된 문제를 중심하여 고찰하고자 한다. 자연신학의 문제를 먼저 1930년대 독일의 역사적 특수상황과 결부시켜 이해하여 보고 이에 준하여 문제의 시각을 좀 더 확대하여 보고자 하는 것이 이 글에서 내가 의도하는 바다.

2. 왜 1930년대에 자연신학이 문제화 되었는가?

바르트는 1930년대 독일 기독교인들의 역사적 오류와 관련하여 "독일 개신교의 현 위치에 대한 신학적 성명"의 초안을 작성, 1934년 독일 고백교회는 이 총 6항의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바르멘 총회는 여러가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즉 종교개혁 이후로 독일 개신교가 처음으로 종교개혁의 유산과 더불어 한 자리에 모였기 때문이었다. 이 총회를 중심으로 그들은 각 교파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동의 사회적 과제앞에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바르트는 바르멘 선언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바르멘 선언은 ... 하나의 순수한 교회적 신앙고백문이었다. 왜냐하면 이 선언의 문장들이 단지 공허한 신학적 토론에서가 아니라, 교회공동체의 구체적 행위와 고백의 연관성 속에서, 증언할 구체적 대상에 대한 열정속에서, 하나의 실천적 필연적 책임성에 따른 이론으로써 표현되어졌기 때문이다." 바르멘 제 1 항은 자연신학의 문제에 대한 개혁교회의 고백적 논쟁의 문서이다. 그것은 바르트의 모든 신학적 열정으로 쓰여졌고 그의 신학적 사고구조를 잘 반영하며 바르멘 선언자체의 핵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면 왜 1933년과 1934년 독일에서는 바르멘 선언 제 1 항과 자연신학의 비판문제가 등장하게 되었는가? 바르트는 세계가 교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요구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즉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안에서의 하나님의 계시외에 하나의 하나님의 계시를 자연안에서, 역사안에서, 이성안에서 그리고 인간마음의 감정안에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1933년과 1934년 독일에서는 자연신학 문제배후에 정치적 힘과 물리적 완력의 문제가 깔려있는 것이었다. 바로 이와같은 위험성을 바르트는 옳게 보았던 것이고 그래서 자연신학의 문제가 교회뿐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도 악용된다고 경고하였던 것이다. "나찌주의가 교회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외에 하나의 신 적인 계시를 나찌주의 자체에서나, 아돌프 히틀러의 인격속에서 그리고 1933년 나찌주의 혁명의 전제하에 이해되어지는 독일민족의 실재성과 역사에서 파악해야 된다고 하였던 것이다." 자연신학적 입장에 대한 이러한 단호한 거부와 더불어 바르트의 모든 교회적 투쟁이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1933년의 위협적 정치적 상황에 직면하여 바르트는 "신학적 원칙으로서의 제 1 계명"이라는 제목으로 코펜하겐에서 강연을 하였다. 바로 그 강연에 분명히 드러난 바대로 바르트에 의하면 바로 제 1 계명의 기반위에 신학과 교회가 서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강연에는 그의 개신교 신학사분석의 요점이 들어있다. 바르트는 종교개혁자들처럼 제 1계명과 연관지어 말한다. 그에 의하면 상황분석을 시도할 때 특정한 교회적 처지에서 현실감있게 받아들여 질 수 있으려면 시대성을 고려해야한다. 그러므로 바르트의 서술들은 정치상황의 분석이었을 뿐 아니라, 개신교신학사의 분석을 전제하고 있다. 바르트는 바르멘 선언 제 1 항을 언급하면서 히틀러와 독일 기독교인들과 관련하에서와 19세기 개신교 신학과의 비연속성에서 그의 신학적 논지를 펴고있다. 바르트가 그의 본격적인 교의학 저술을 시도하기 이전에 먼저 그가 단절하고 극복하고자 했던 19세기 개신교 신학을 총체적으로 연구했다는 것은 기억되어 질만한 것이다. 그것은 바르트가 19세기 개신교 신학을 일방적으로 거부한 것이 아니라, 충분한 검토위에 극복하고자 했음을 알려주는 자료이기 때문이다.

바르트가 구약성서가 철저히 무시되어진 시기에 구약성서, 특히 십계명 중 제 1 계명을 강조하고 나섰다는 것을 주목 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제 1 계명을 위한 반 신화적 투쟁의 노력은 신약과 구약의 연속성안에서의 하나의 하나님의 말씀을 위한 노력의 차원에서 이해되어 질 수 있다.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제 1 계명의 주석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는 출애굽기의 사건과 말씀의 성육신됨사이의 연관성을 본다. 바르트는 이 소 논문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그리고"라는 접속사를 통하여 다른 말과 연결지으려 할 때 야기되는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예를들어 계시와 국가, 민족, 문화, 이성, 질서, 역사 등등) 여기에서는 하나님외에 다른 신들을 세우는 위험성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19세기 프로테스탄트 신학에 거슬러 그리고 종교개혁주의자들의 의미에서 바르트는 "다른 신들을" 섬겨서는 안된다는 것, 즉 "어떠한 자리에도 계시를 이성에 의해서나 자연에 의해서나 역사에 의해서나 다스려지게 해서는 안되고 언제나 역으로의 경우라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바르트는 제 1 계명을 중요한 신학적 원리로 삼아야 된다고 간주한다. "추상적으로 자연에서 읽어질수 있는 원리는, 그것이 어떤 것이건간에,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고, 신학적 원칙이 아니다. 신학적 원칙은 하나님이 그의 사람에게, 선택한 이들에게 그리고 부르신 이들에게 향하신 말씀이다." 제 1 계명이 하나님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을 금함으로써 그것은 다른 모든 신학적 명제들에 대한 규범이며 전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제 1 계명은 제 1 바르멘 선언명제와의 관련성에서 이해될수 있는 것이다.

바르트의 반복되는 강조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계시된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매달리기 위하여 자연신학과 결별해야 된다는 데에 있다. 그 외의 모든것은 그 하나님에게로가 아니라, 그에게서 멀어지게하는 자유의지(Willkür)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하나님의 자기계시이다(요한 14, 6).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 대한 철저한 집중이다. 바르트는 우리가 복음이외에 어떠한 다른 세력도 길, 진리, 힘으로서 경외하고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한다. 이 복음, 이 하나의 말씀은 신,구약 성서를 통해 증언되는 예수 그리스도와 다를 바 없다. "이 하나의 말씀은 먼저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이미 찾도록 주어져 있는 것이다. 이 하나의 말씀이 영원에서 영원에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렇게 구약과 신약성서에 증언되어 있다. 이렇게 교회는 세워졌고 보존되고 새로와지고 다스려지고, 이렇게 교회는 계속해서 구하여진다. 이것이 살던지 죽던지 교회의 위로이며 길잡이이다. 달리는 안되고 바로 이렇게!"

이와같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철저한 집중은 "독일 기독교인"과의 투쟁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져야한다. 자연신학에 대한 문제는 독일 개신교가 자연신학의 새로운 형태, 즉 1933년의 정치적 형태에서 그리고 특히 아돌프 히틀러의 형태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과 관련된다. 이러한 부당한 요구에 대항하기위해 알려진 바 대로 교회의 투쟁이 시작 되었던 것이다. 바르트의 자연신학에 대한 거부는 이러한 배경하에서 이와같은 새로운 계시의 선포에 대한 거부에서 비롯된 것이다. 독일 고백교회의 각각의 실천적 문제들이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바르멘 제 1 선언과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바르멘 선언은 고백교회의 대헌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바르트 자신이 표현하듯이 "앞으로 향한 부름으로써" 중요하다. 그것은 독일기독교적 역사철학(Geschichtsphilosophie)에 대한 명백한 거부이다. 바르트는 신학이 역사철학으로 해체되지 말아야 할 것을 힘차게 역설하였다. 그것은 바로 이러한 역사철학이 다름아닌 자연신학의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 것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나찌주의에 대한 바르트의 항거는 1차적으로 정치적으로 동기부여 된 것 이 아니라, 신학적 이유들에서 행하여졌다. 그러나 이 항거는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바르트는 이러한 의미에서 1933년 말하기를: "내가 지금 설교자라면, 매주 토요일 아침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나는 제 3 제국에 대한 나의 관점이 아니라, 성서에서, 내 원고에서, 증언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된다." 바르트는 성서외에 제 2 계시의 근원을 역사에서, 이성에서 그리고 자연에서 찾으려는 것을 거부하였다. 바르트는 역사철학, 자연철학, 인간학과 섞여져서는 안되는 근본적인 성서주석을 요청하였다.

바르트는 독일 기독교인들의 이론을 잘못된 이론으로 간주하였다. 왜냐하면 교회가 인간에게이지, 독일 민족에게 봉사해야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는 혈연에 의해서나 종족에 의해서 결정될 수 없다. "독일 기독교인들의 잘못된 이론에 대한 항거는 아리안 원칙에서, 구약성서의 경멸에서, 독일 기독교적 기독론, 독일 기독교적 칭의론과 구원론의 자연주의와 펠라기안주의에서, 독일 기독교적 윤리의 국가 숭배에서 비롯될 수 없다. 그 항거는 근본적으로 (모든 개별적인 과오들의 원천에 대항하는 것으로서) 독일 기독교인들이 유일한 계시의 근원으로서 성서이외에 독일 민속, 그들의 역사 그리고 그들의 정치적 현재성을 하나의 제 2 계시로서 주장하며 그럼으로써 하나의 다른 신을 믿는 것으로 인식되어진 것에 맞서는 것이어야 한다."

바르멘 제 1 선언은 자연신학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방향제시를 하였던 것이다. 이것을 나는 바르트와 부른너와의 논쟁의 이해를 위한 범위내에서 다루기로 한다. 간단히 말해 이들 논쟁의 배후에는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인식하는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없이 자연이나 역사일반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계시를 인식하는가 하는 계시이해의 차이가 있다.

바르트는 E.부른너의 자연신학의 해석이 독일 기독교인들의 잘못된 이론의 신학을 뒷받침 하게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바르트는 그의 옛적 친구인 부른너에게 간결하고 명확하게 "아니오!"(Nein! Antwort an Emil Brunner)란 제목으로 1934년에 하나의 논쟁적 글을 썼던 것이다.

그럼 왜 바르트는 "자연과 은총"에 대한 부른너의 견해에 그렇게 격렬하게 비난했는가? 부른너는 자연신학의 문제가 계시신학의 전제하에 해결되어져야 된다고 가르쳤다. 부른너는 이 이론을 변증법적 신학자로서 전개했지, 카톨릭의 신학자로서나 자유주의 신학자로서 한것이 아니었다. 이와같은 신학적 논쟁으로 인해 부른너와 바르트 사이의 관계는 그들이 변증법 신학 운동내부에서 결별 한 이후 더욱 악화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자신이 썼듯이 바르트는 부른너와의 논쟁을 개인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그가 부른너적 사고에서 그 당시 교회와 사회를 위협하는 위험성을 보았기 때문에 시작했던 것이다.

이 논쟁의 중심에 자연신학(theologia naturalis)의 문제가 있다. 자연신학에 맞선 투쟁은 제1 계명의 관점에서 볼 때 신학적 원칙으로서 불가피한 것이다. 그것은 신학에서 "올바른 순종을 위한 투쟁인 것이다." 자연신학에 맞선 바르트의 태도는 분명히 다음과 같다: "우리는 계시를 은혜로서 은혜를 계시로서 이해할 것을 다시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모든 '바른' 혹은 '그른' 자연신학에 대해 새로운 결단과 회심에서 단호히 돌아서야 하는 것이다." 바르트의 자연신학에 대한 엄격한 거부는 다음의 문장에서도 잘 인식 될 수 있다. :"자연신학은 내가 참으로 신학으로 간주하는 -또한 그 부정때문에서라도-독립적인 주제가 되어질 수 있는 그 어떤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신학과 씨름하는 사람이라면 소위 자연신학이라는 것에 단지 떨어지지 않으려면 조금이라도 발을 들여 놓아서는 안되는 그러한 심연과 같이 지나쳐야 하는 것이다."

바르트는 칼빈에 의거하여 자연신학과 결별하려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께 도달하려면 성서가 인도자와 교사이어야 한다(Ut ad Deum creatorem quis perveniat, opus esse Scriptura duce et magistra)." 바로 이러한 칼빈의 의도에 따르면 하나님 인식은 신앙에 있지 바라보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칼빈에게 있어서 창조주 하나님의 인식은 오로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믿는 신앙에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모든 자연신학의 거부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1560년 스코트랜드 고백문과의 일치에서 바르트는 종교개혁론에 따른 하나님 인식과 예배를 자연신학과의 대립으로써 말하였다. 종교 개혁적 신 인식의 처음이자 마지막 말, 즉 가장 중요한 원칙은 하나님은 인식되어져야하는데 무엇보다도 하나님에 의해 인식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그의 계시를 통해서 그리고 그의 계시에 대한 믿음의 깨어짐을 통하여, 육신이 되신 영원한 말씀을 통하여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인식되어 져야 한다. 종교개혁론에 따르면 그 고백을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내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거기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계시를 향한 기도와 믿음을 위한 기도와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우리가 옳은 하나님 인식과 옳은 예배를 위한 최선의 노력에서 인간이 언제나 잘못할 수 있는 것을 잘 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고유의 행위를 위한 간구가 문제인 것이다." 자연신학이 그러한 기도없이 하나님과 세계, 인간에 대해 안다고 자만하기 때문에, 그것은 종교개혁의 의미를 저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3. 바르트에 있어서 자연신학 비판의 의미

바르트의 자연신학의 거부는 결코 인간적 사회적 문제들의 거부로 오해되어 져서는 안된다. 그러나 혹자들은 바르트가 자연신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비인간적 성향을 지닌다는 식으로 빈번히 오해하고 잘못된 편견과 선입견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나는 J.M.로흐만의 말에 동의하는데: "바르트는 자연신학에 대한 거부를 비인간애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인간애차원에서 (디도 3,4) 하는 것이다. 자연신학이 인간에 대해 너무 많이 말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너무 적게 인간에 대해 말하기 때문이다: 자연신학이 복음을 축소화하며 인간을 축소화한다. 때문에 바르트의 분노에 찬 부정은 본래적으로 부정의 부정, 고로 무엇보다도 매우 긍정적인 것이다." 바르트가 자연신학을 문제화 하는것은 인간을 빈약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깊이있고 풍요로이하는 길을 자유롭게 하려는 것이다. 이같은 바르트의 의도가 인간의 가치와 일을 강조해내는 자연신학 옹호자들의 근원적 동기와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출발점들은 모두 다른 것이다. 자연신학의 옹호자들이 인간의 창조적 자연적 입장에 대한 언급과 인간의 가능성들과 능력들에 대한 언급과 더불어 인간의 가치를 예찬하려 든다면, 바르트는 인간의 참된 가치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의 정착에서 찾는다. 자연신학이 오히려 인간을 이상적으로 미화시키면서 도리어 인간자신을 축소화한다. 즉 인간의 정신적 자질을 높이 평가함으로써 인간의 육체성의 넓은 영역과 인간의 물질적 욕구의 차원을 도외시하게 된 것이다.

바르트의 30년대의 철저한 자연신학거부와 그의 바르멘선언의 의도들은 확실히 나찌주의와의 정치적 투쟁의 수단이었다. 그러나 그 배후에는 하나의 원칙이나 이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집중하려는 바르트의 철저한 신학적 의도가 있다. 그의 자연계시에 대한 거부는 기독교적 반유대주의와 국수주의적 반셈족주의에 대항한 투쟁의 맥락에서 또한 이해되어져야 한다. 자연신학은 교회의 아리안주의 원칙에 대한 긍정일뿐 아니라, 아리안족의 국가적 절대화에 대한 근거가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한층 더 나아가 자연신학의 거부는 "부르조아 신학" 앞에서의 경고로써 이해되어 질 수 있다. "계시를 흡수하고 길들임으로써 묘사된 자연신학의 승리는 아주 단순한 복음의 시민화의 과정이다." 바르트의 자연신학과 자연계시의 거부는 시민주의적 우상화의 거부로써 이해될 수 있고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다. 바르트는 19세기 시민주의적 신학에 철저하게 저항하였다. 하나님을 해석하려드는 시민적 자만심에 대한 투쟁을 일관성있게 밀고 나갔던 것이다.

바르트는 다음과 같이 자연신학을 정의하였다. "자연신학은 인간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철저히 벗어날 수 없는 그리고 오히려 그리스도인으로서 특별히 승리적이고, 형식상으로 완벽하게, 나타내는: 시민화의 과정에서, 즉 해 될것없이 만들어 가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본래적으로 가장 깊이있고 심연한 실재인 은혜에 맞선 투쟁을 위한 복음의 도구화에서 인간 그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서 나타내는 그러한 신학이다."복음의 시민화의 위협앞에서의 바르트의 경고는 기독교가 "시민종교"로서 작용하는 서구 복지국가에 우선적으로 해당된다고 할 것이다. 바르트의 시민적 신화론에 대한 비판은 그의 자연신학에 대한 비판을 분명히 해 준다. 그는 복음을 부르조아지로서의 기독교인이 자기보존과 자기방어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부르조아지의 스스로 강하고 소유하는 태도에 맞서서 비판적으로 말하였다. 이와같은 시민화된 복음은 교회의 영역에서 자연신학을 해결하고 독점하는 입장이다. 자연신학은 그럼으로써 바르트에 따르면 방법이 아니라, 부르조아지의 자연스러운 하나의 태도이다. 이러한 태도는 자신을 신격화 하려는 태도이며 하나님을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 하려는 태도인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바르트의 경고는 그 당시 그랬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신학적 논의에서 주목될 필요가 있다. 계시를 강조하는데 맞선 인간의 교만함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다. 그것은 모든 것을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인간에게로 귀결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자신의 자기 드러냄과 자기묘사로써 하나님을 자기고유의 척도에 따라 생각하고 묘사하려는 모든 인간적 시도들에 대비된다. 바르트 자신이 그의 신학을 성령에 대한 간구로서 이해하듯이, 끊임없이 잘못된 길로 가지않기 위하여 성령에 대한 간구가 필요시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도 의식적으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제기하였다. 즉 어느 특정한 성서 본문들이 자연신학에 대한 얘기를 하지않나 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서 무엇보다도 시편 19, 롬 1,19f; 2,12f). "...각각의 구절뿐 아니라, 성서 전체를 통털어서 하나의 흐름이 있다. 바로 거기에 직면해서 우리는 성서 자체로 인하여 자연신학에로 초대되어 지고 자연신학이 필요시 되어진 것이 아닌가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 있고 그리고 더 나아가서 올바른 답을 찾기위하여 그러한 문제를 던져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성서적 "중심선"에서 벗어나고, 중심선에 종속적이나 그것을 해명하고 뒷받침 해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주변선"이 문제이다. 바르트는 생각하기를 주변적 진술들이 중심적 진술들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고, 단지 그것을 뒷받침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연신학에 대한 요구와 요청, 자연신학을 근거짓고 가능케하고 정당화하는 성서적 이론 또한 이러한 주변적 진술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1961년 바르트는 부뤼더게마이네(Brüdergemeine 체코 보헤미안형제단 운동의 일환)와의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사람들이 논쟁에서 말한 것에 꼭 연연해서는 안된다. 내 아버지의 성서적 말씀들이 나를 마침내 자유주의신학에로 이끌었으나, 그 다음시기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에 봉착했다. 때문에 예를들어 내 로마서주석에서: 거리를 가지고서! 그렇게 해서 1934년에는 부른너에 대한 날카로운 부정이 나오게되었던 것이다...나중에 나는 자연신학을 기독론을 통하여 다시 불러들였다. 오늘날 내 비판을 표현한다면: 그것을 단지 다르게, 즉 기독론적으로 말해야만 한다." 내 의견으로는 이 문장을 바르트가 다시 자연신학으로 귀향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여기에서는 바르트의 신학사상내에서의 초기사상과의 단절이나 변절이 아니라, 그의 삼위일체적-기독론적 집중의 심화가 드러난 것이다. 왜냐하면 바르트는 "기독론의 굳건한 기반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기독론적 집중은 바르트에게서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일관됨을 드러낸다.

바르트의 자연신학 거부를 그 자체로 자연의 거부로 이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바르트는 자연신학의 거부에서 "자연" 이라는 말로서 태양, 달, 땅, 하늘 등과 같은 자연 현상을 뜻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본본성, 즉 하나님에 맞선 인간의 자기 높임에 대한 거부이다. 바르트가 "그 자체로서의 자연"과 환경 문제를 등한시 했다는 식의 비판은 이러한 의미에서 부당한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신학의 거부를 어떤 경우에도 자연거부 그 자체로 이해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자연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은 오늘날 상황에서 너무나 당연하고도 필요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자연 그 자체는 계시의 능력을 가진것으로서나, 피조물의 신격화로서 평가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더우기 환경 문제는 바르트 당시에 꼭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만했던 아주 긴박한 문제가 아니었다. 때문에 우리는 바르트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고백교회투쟁에서의 바르트의 태도, 무엇보다도 바르트의 자연신학의 거부는 교의학과 역사의 시간적으로 제한된 합성물로써 구체적인 때를 가졌다. 바르트가 부른너에게 냉철히 "아니오!"를 말해야 했던 위험한 시간은 오래 전에 끝이 났다. 우리 모두는 "한 분 위대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우리 모두에게 향하신 자애로운 긍정"에 의하여 사는 것이다. 그렇지만도 그의 자연신학의 거부가 의미하는 내용과 1933년의 필연적인 시대적 요청은 주목되어져야 할 것이다.

교회 교의학 IV/3 ,§69는 바르멘 선언 제 1 항의 마지막 주석으로서 중요한데, 이에대해 마지막으로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이것은 소위 "빛들의 이론"(Lichterlehre)으로서 자연신학문제에 대한 바르트의 신학내에서 단절이 아니라 심화로서 이해되어 져야 할 것이다. 교회 교의학 IV/3의 주제는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중재자의 영광이다. 위에 언급한 1933년의 강연과 1959년에 쓰여진 이 교의학적인 전개 사이에는 글의 주제적 구조에서만이 아니라,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서로 상응하는 것이다: 1933년의 코펜하겐에서의 강연은 바르멘 선언의 맥락에서 쓰여졌으며, 바르멘의 의미를 담보하고 있는 것이다. 1959년의 IV/3, ,§69는 바르멘 제 1 항을 전체 §69장의 주요 명제로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 장은 바르멘 제 1 항의 마지막 주석으로서 역사적인, 사회적인, 자연적인, 종교적인 경험의 관점이 제시되어 있다. 바르트는 신학적 원칙을 우선 1933년에 자연신학에 대한 부정적 경계의 형태로, 그리고나서 1959년에 계시의 경험에로의 긍정적인 관계설정의 형태로 나타낸다.

바르트는 "엑스트라 칼비니스티쿰"(Extra Calvinisticum)이라는 교의에서 자연신학의 기독론적 자리매김을 찾아본다. 그의 화해론에서 F.W.마르크바르트의 이론에 의하면 "엑스트라 칼비니스티쿰"이라는 교의와 더불어 그의 자연, 역사와 사회에 대한 신학적 관심을 그의 사고의 기독론적 집중과 관련하여 연결시켰고 더 나아가 그의 빛들의 이론에서 소위 자연신학적 가설을 다시 불러내었던 것이다.내 견해로는 바르트가 그의 빛들의 이론에서 자연신학을 갱신시키려 하고자 한다는 인상을 주기를 피하였던 것이다. 때문에 소위 "빛들의 이론"의 중요성은 H.J.크라우스의 견해처럼 자연신학에 대한 긍정적 보충으로 인식되어야지 자연신학에로의 회귀로 이해되어질 수 없다.

4. 나오는 말

우리나라와 같이 다양한 종교 형태가 공존하는 곳에서 특히 자연계시와 자연신학에 대한 문제를 고려하는 것은 뜻깊은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유사한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역사에 귀 기울여 배우는 자세또한 우리에게는 필요한 작업이라 여겨진다. 나는 이 글에서 1930년대의 특수한 독일 상황과 관련된 자연신학 문제를 간추려 보고 다시 숙고하여 보고자 했다. 또한 기득권자들의 자기 합리화의 신학이념적 도구로써의 자연신학에 대한 바르트의 비판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서 오늘 우리에게도 설득력 있는 것으로 들린다. 그 비판은 기복종교로서의 기독교의 모습이 특징적인 우리나라에서 또한 하나님을 각자의 취향에 따라 물 적, 정신적 욕구 충족의 대상으로 우상화하려드는 우리 기독교인의 생활에서 복음을 이해하게하는 하나의 지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