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중복음의 선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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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국

 

서론

성결교회는 다른 복음주의적 교회들보다는 늦게 그렇지만 다른 교회들과는 달리 외국 선교사들에 의해서가 아닌 일본에서 신학 수학을 받은 한국인들에 의하여 시작된 교회이다. 성결교회는 처음에는 교회를 세우기보다는 어떻게든 많은 사람들에게 순수한 복음을 전하여 구원하려는 뜻을 가지고 복음 전도관을 중심으로 한 직접전도로 시작되었다 (1907년). 전도 받은 사람들은 다른 교회로 보내어 졌지만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전도관을 중심으로 계속적인 복음 전도와 교육에 주력하다가 그후 14년만에 성결교회라는 이름으로 정식으로 교회가 조직되었다. 그리고 약 20 여 년이 지난 후 일제의 기독교 탄압의 희생타로 성결교회가 강조하는 종말론이 일제의 체제와 상치된다는 이유로 강제 해산되었다가 다시 해방과 함께 재건하기에 이르렀고, 육이오 동란과 교회 분리(1962년 성결교회는 기독교 대한성결교회와 예수교 대한 성결교회:이후는 성결교회는 전자를 가르친다)라는 아픔을 거쳤고, 70년대 80년대의 한국 정치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비록 아주 간략하게 성결교회의 굴직한 매듭들이 될만한 역사를 말하였지만 그 역사 뒤에는 그러한 역사적 실재를 가능케 한 가장 중요한 힘이 있다는 사실에 주의하여야 할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성결교회의 정체성과 역할을 밝혀주고 있는 사중 복음에 입각한 설교며 그 설교와 함께 큰 일을 이루신 하나님의 역사가 있어 왔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대한 기독교 성결교회의 설교 유형과 특징을 말할 때 그 같은 사실에 주목하여야 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사중 복음의 선포자들"이라는 특징적 제 하에 이 글을 써 나갈 것이다 (그것은 대한 기독교 성결교회의 헌법에서 성결교회의 전도적 사명과 교육적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그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은 사중복음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과 일체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 글은 그와 같은 각도에서 쓰여지고 있기 때문에 객관성의 결여 (성결교회 밖에서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견해의 결여)라는 필연적인 제한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그 같은 제한성을 가지고 있지만 가능한 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지식 사회학(버거와 룩크만의 이론)의 근간인 지식체계와 사회내의 현상적 실재의 변증적 상관 작용을 분석하는 이론적 견해를 도입하여 다루어 보려고 한다. 위의 이론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전제를 가능케 한다. 설교의 내용을 성결교회의 지식 체계로 보며 그 지식 체계로 말미암는 사회의 종교적 실재로서의 성결교회의 탄생과, 보존과, 전수 그리고 그 역작용으로 성결교회라는 실재의 변천에 의한 지식 체계로서의 설교의 변천과 전수가 이루어 지고 있다는 전제이다.

이와 같은 전제를 가지고 성결교회의 역사와 설교의 관계를 논하면서, 그 관계 속에 표출된 설교의 유형적, 내용적 특징, 강조점이 무엇이었나를 살필 것이다. 그리고 현재에 나타난 문제점, 약점 등을 개진한 후 보완되어야 할 점등이 있다면 그 점에 대하여 다루므로 이 글을 끝맺을 것이다. 이 글을 이끌어 나감에 있어 지면의 제한 때문에 이 글에서 다루는 인용 자료들의 출처는 제외될 수밖에 없는 아쉬움을 금치 못한다.

 

1. 성결교의 역사와 설교의 관계

복음 전도관으로 시작되어 성결교회가 조직되기 전 초기 지도자 두 사람은 (김상준, 정빈) 일본에 있는 동양 성서학원에서 심프슨의 사중복음에 영향을 받은 카우만과, 길보른 그리고 일본인 나카다의 지도하에 신학 수학을 한 후 귀국하여 동양 선교회가 견지하고 있는 신학 사조와 전도 방법을 도입하여 사중복음에 입각한 복음 전도를 시작하게 된다. 심프슨의 사중 복음의 골자는 1)중생하게 하는 그리스도, 2)성결케 하는 그리스도, 3)치료케 하는 그리스도, 4)재림하는 그리스도가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의 골자요 완전한 복음이라는 것이다. 이상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중적 복음의 요소를 근간으로 하여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표방하게 되었다. 이 같은 사중적 복음의 요체가 성결교의 사회적 실재를 가능케 한 지식 체계가 되었고, 그 지식 체계는 전통적으로 계속 그 맥락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서 최초의 지도자들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노방 전도든지 또는 전도관내에서의 복음 전도 설교는 우선적으로 중생에 대한 강조임을 말해두고 싶다. 중생에 대한 설교는 믿음에 초점이 주어졌고 (전도하는 사람들은 한 사람은 장 등을 들고, 한 사람은 북을 치면서 "믿기만 하오, 믿기만 하오"하였다고 한다). 그 같은 설교는, 예를 들면, 김상준의 설교는 모여든 사람들이 통회 자복하는 능력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원시적인 전도방법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굿증패," "남사당패," "뛴패"라는 조롱도 받게 된다. 그리고 신유에 대한 설교(예, 정빈의 "의사에게만 의지하면서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기도하는 일은 요새의 신자들은 모른다"라는 설교 내용의)는 온갖 중상모략을 받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초기 복음 전도자들은 열정적인 복음 전도는 물론 그 복음 전파의 사명을 이국 만주 땅에까지 전하는 최초의 선교사로의 헌신적인 삶을 살게 됨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사중 복음 설교에 입각한 직접 복음전도의 열정, 헌신적인 삶과 성결한 삶의 실천, 치유의 능력 그리고 재림에 대한 철저한 소망 등은 다른 교회와 달라서 많은 다른 교회의 직분 자들이 복음 전도관으로 이명하게끔 영향을 주기도 했다. 이 같은 초기 복음 전도관 시대의 설교와 그에 따른 삶의 전통은 앞으로 성결교회의 부흥설교 운동과 신학 교육의 내용과 목회적 설교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지식 체계로서의 자리를 굳히게 된다.

전도관 전도의 14년이 지나서야 교회 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1921년 "조선 예수교 동양 선교회 성결교회"라고 교회 조직을 완료하면서, 지금까지의 사중복음을 근간으로 교리 체계를 설정한다. 그리고 초기 전도자들은 교회 조직의 핵에서 사라지고 뒤를 이은 몇몇의 지도자들이 조직의 핵을 차지하게 된다. 몇몇 지도자들 중 1970년대 초반까지의, 1921년 성결교회의 조직, 활천지 창간, 1933년 총회 조직, 1943년 교회의 해산, 1945년 재흥, 6.25사변, 교회 분리 그리고 몇 차례에 걸친 합동이라는 성결교회 역사의 산 증인이요, 교부이요, 사부와 같은 이명직 목사가 발전시키고 가르친 내용을 통해 성결교의 전통 특히 설교의 특색을 살펴 볼 수 있게 된다. 또한 1925년 25세의 나이로 신학교에 들어와 이명직 목사의 신학교에서의 성경 강해와 설교에 영향을 받은 한국 성결 교단이 낳은 세계적 부흥사 이성봉 목사의 부흥 설교를 통해 우리는 성결교회의 부흥 설교(전도 설교를 포함한)의 특색을 찾아내게 되고 어떻게 후대의 목회자적 부흥사들의 설교의 원형을 제공하고 있는지 발견할 수 있다. 교회 조직후의 성결교회의 설교의 특징은 이렇듯 두 주류에 의해 이어지는데 이것들은 다음의 성결교회의 설교의 유형, 내용, 강조점에서 논할 것이다. 그것을 논하기 전에 성결교회의 설교가 특히 1943년의 교회 해산이라는 역사와의 관계성과 재흥기의 설교에 대하여 간단히 알아본다.

1943년 성결교회가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된 것에 대하여 이명직 목사는 성결교회가 "총독의 정치나 시사에 관하야는 일체 논설을 한 일이 없고 오직 성서 해석에만 충실"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박현명 목사는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피력하고 있다. 성결교회에서 설파하는 "창조론, 신관, 종말론은 일본국에 배치된다"는 것이고 또한 "성경을 고집하며. . . .성경 그대로 믿는"이유때문에 대표적 희생물이 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너희 성결교회가 특히 죄 있는 것이 아니라 너이는 모든 기독교회의 대표적 희생인줄 알라"라는 취조관의 말 인용). 이러한 대표적 희생으로서의 교회 해산을 박목사는 "대다수의 조선 기독교를 아끼시고 소수의 성결교회를 십자가에 못박음"이며 "사랑이신 하나님의 애로서 사랑하시는 줄 알고 감사히 달게 받았다"라고 거시적인 하나님의 구속사의 일환으로서의 손길로 받아 드리고 있다. 이로 보건대 성결교회에서 설교하고 있는 성결한 사랑이 역사적 아픔과 가시밭길에서 어떻게 초월적으로 나타났는가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랑에 대한 강조는 다시 교회 분열과 합동이라는 성결교회의 희로 애락의 시기에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1965년 합동 총회에서의 "주를 사랑하자"라는 이성봉 목사의 마지막 설교는 사랑을 강조하며 설교한 표본이다 (설교의 끝에 "형제여, 서로 사랑하자.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거든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지어다" 라고 간청하고 있다). 그 이후의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설교는 이명직 목사의 성결을 강조한 강해적 설교와 이성봉 목사의 부흥사적 설교의 양대 줄기(박현명 목사에 의한 또 하나의 줄기--설교의 시대적 통찰과 방향 제시--형성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6.25때에 남북 되지 않았다면 그 같은 영향을 미칠만한 시대가 그에게 왔을 것이고 그 시대적 특성과 함께 그 같은 형성이 가능했다고 필자는 그의 몇 편의 논설을 통하여 결론을 내린다)에 따라서 갈라진다고 말할 수 있다. 이명직 목사의 설교 유형과 특징을 이어가는 두드러진 인물의 결여로 (이 말은 전무하다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과 같은 영향력 있는 인물을 말하며, 이러한 현상 또한 시대적 흐름과 그의 신학적 사조와도 관계가 있다고 봄) 그후의 성결교회의 설교 원형적 유형으로서 제대로 전수돼지 못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 반면 이성봉 목사의 부흥사적 설교는 성결 교단은 물론 타 교단의 개 교회 부흥회가 교회 성장에 미친 긍정적 영향 때문에 성결 교단에서 개 교회의 목회를 담당하고 있는 부흥사들에 의하여 그 명맥이 전수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제 그 두 줄기의 설교의 전통을 살피면서 성결교회의 설교의 특징과 유형 등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2. 설교의 유형, 내용, 강조점

이명직 목사의 설교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돼야 한다. 첫째는 그의 신앙적 경험에 있다. 그의 신앙적 경험은 중생의 체험이후 성결의 체험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그는 10년 가까이 중생의 경험을 잊고 살면서 (그는 "나는 처음의 은혜는 잃어버리고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보다는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인기 있는 목사가 되는 것에 만족하여 애국을 주창하고, 자유시대를 부르짖으며"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1921년 그는 자신의 그같은 무력과 허물과 실수를 깨닫고, 자신의 성결의 체험의 필요를 절감하고 그것을 위한 기도에 힘쓰게 된다. 그의 성결의 체험은 자신의 모든 신앙적 갈등과 삶의 이중성 및 모순에 대한 종지부를 찍는 경험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신학교 및 성결교회의 부흥운동으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그의 설교와 성서 강해는 많은 후대의 지도자들을 키워내는 신학적 기틀을 마련하였다. 두 번째는 그의 신학적 이해와 성서 해석학적 사중 복음이해에 있다. "그의 성서 이해는 분석적 이해나 문법적 이해보다는 구원론에 일치한 구조적 이해에 있었다. 사중 복음의 집약적 교리에 대한 신념이 견고"하여 그는 구원의 통로와 완성으로서의 사중 복음을 이해하였다. 즉 중생은 "복된 출발," 성결은 "복음적 중간 지점," 신유는 "복된 이적," 재림은 구원의 완성으로서의 "복된 종말"로 이해되어 졌다. 그리고 그는 신약을 사중 복음적 입장에서 이해하게 되었다. 이 같은 그의 경험과 신학적 이해는 그의 설교의 중심을 이루고 있으며 내용이며 강조점이었다 (그는 교단 해산 후 활천 지가 폐간되었다가 해방과 함께 교회 재건에 힘쓰면서 부활시킨 활천지에서 "창간의 목적은 성경 강의, 설교 간증, 전기 등인데 그 중심은 신생 [중생], 성결, 재림, 신유의 복음을 고조하야 성경의 진리를 보수하자는 데 있었던 것이다. 부활한 활천은 이상의 원칙과 원형을 부활"하는데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의 신학 학문이념도 그 같은 이중적 구조에 의하여 형성된 것을 알 수 있다. 학문은 사변적이며 추상적인 학문을 위한 학문에 머물지 않고 경험적이며 목회 현장과의 접목이 되어 실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설교는 사중 복음의 전개와 경험에의 강조로 집약된다. 그 같은 구조 위에서 그의 설교의 유형은 제목을 정해 놓고 그 제목에 대한 성경 여러 곳에서 귀납법적 추론을 이끌어 내는 교리적 설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성봉 목사가 교단에서 파송 받은 전임 부흥사라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설교의 유형과 특징이 어떠한 지 짐작케 된다. 그가 부흥집회에서 설교한 후 스스로 보고한 내용을 보면 그의 설교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여 예수를 믿고 중생의 경험을 하게 된 것과 신유와, 이사와 기적들이 도처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의 설교의 내용을 보면 사중 복음의 선포를 포함하여 불신자들이 어떻게 예수를 믿어야 할 것인지 그리고 예수 믿어야 하는 이유와 권면과 신자들의 신앙 생활에 도움과 유익이 되는 거의 모든 항목이 포함돼 있다. 그의 부흥사로써의 부르심은 그가 독실한 어머니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비 신앙적 생활과 타락한 생활로 점철된 청년기에 신유를 경험하고 철저한 회개와 성결의 체험을 통한 신앙적 체험이 전제되고 있다. 신학 시절부터 부흥회를 인도하며 부흥사로써의 자질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가운데 예레미아서를 통해 부흥사로서의 소명을 받게 되었다. 그의 천로 역정 강화와 그의 찬송은 뭇 사람의 심금을 울리며 많은 은혜를 끼친다. 그의 부흥회 설교는 주로 설교의 골격을 가지고 그에 따라 자유롭게 설파하며, 부흥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깨닫고 간증한 내용들을 예화로서 간증하는 형식을 가진다. 그의 설교의 유형을 말한다면 제목설교로서 어떤 주제를 설정하고 그 주제에 초점을 맞춰 그 주제를 설명해 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리고 각 주제에 대한 서술적 명제를 가지고 성경의 본문에서 그 서술적 명제에 대한 증거를 찾는 대표적 제목 설교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제목 설교는 이미 이명직 목사에게서 나타난 유형이었고 이성봉 목사에게 그 유형이 전수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결교회의 설교의 양대 줄기인 이명직 목사와 이성봉 목사의 설교는 자신들의 신앙적 삶에 있어서 공유되고 있는 체험이 있는데 그것은 중생후의 성결이다. 그들의 강조점은 공히 체험적 신앙이며 유형적으로 볼 때 제목 설교의 유형을 공유하고 있다. 설교의 내용은 사중 복음이 근간을 차지하고 있다. 다른 점은 하나는 신학교의 교육자며 다른 하나는 전문적 부흥사라는 것이다. 신학교의 교육자이기 때문에 설교 전달이 논리적이며, 조직적이며, 교리적이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부흥사이기 때문에 내용이 간결하고 순발성이 있으며 신앙의 실제적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나타난 간증적 경험) 근거로 전개된다는 차이가 있다.

그들의 전통은 후대에게로 전수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르게 뒤틀려졌다고 보여진다. 물론 뒤틀려진 배경에는 사회의 조류라고 하는 외적 요소와 내적 요인이 상호 작용한 것으로 필자는 이해하고 있다. 그러면 사회적 외적 요인 (지식 사회학적 견해)은 무엇인가. 그것은 급격한 세속적 사회 변천으로 말미암는 세속 주의적 교회 부흥론의 득세와 그에 대한 관심의 고조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것은 교리와 경험과의 괴리현상 즉 교리는 교리대로 개교회의 경험은 교리와 거리가 있는 실용주의적 추구현상 임을 뜻함) 내적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중 복음 교리 (특히 성결)와 그 교리의 정통성을 경험적으로 유지 시켜주는 사회적준거의 바탕 (이를 성결을 유지 전수시키는 교단 공동체로서의 plausibility structure라고 함)이 사회 변천 과정에서 제대로 마련되지 못하여 그 교리와 그에 따른 경험이 하나의 지식 체계로 또한 사회적 실재로 전수시키는 결정적 유지 구조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개인적 노력과 경험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아니고 공동체가 공유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를 말하는 것임). 그와 함께 그 같은 성결의 사회 공동체적 유지 구조가 약화된 것은 분열기로 시작되는 지도력의 약화와 함께 교단 정치의 출현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의 눈에 성결의 교리적 의미와 그에 따른 경험이 회의적으로 노출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외적 내적 요인으로 말미암아 두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성결의 경험 (필자는 성결의 경험이야말로 사중 복음의 실재적 의미의 중심부이며 이것의 붕괘는 사중 복음의 퇘색이라고 본다)이 성결 교회라는 성결의 특징을 유지 전수하기 위해 명명되어진 교회로서의 공동체내에서 그리고 설교의 핵심에서 목회 현장에서 신학교에서 퇴색돼 왔다고 본다 (이것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지도력 약화와 곧 이은 타계로 말미암아).

특히 이명직 목사의 성서 주해적 사중 복음의 설교 내용은 경험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사변적으로 흘러 갈 수 있으므로 후대 사람들에게는 실재의 목회 현장에서 실효성이 없는 진부한 사변에 불과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고, 시대적 조류와 함께 표류하는 운명을 갖게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성봉 목사의 부흥회적 설교 형태는 후대에도 계속 표면적으로는 잘 전수된 것으로 보아진다. 후대의 부흥회 자체도 부흥회가 갖는 고유한 교회 성장적 특성으로 인하여 또는 내용의 평이함과 간결함 그리고 눈에 보이게 피부에 와 닿는 정적 요인 등으로 내용 면보다는 외형적 형태로 전수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내용 면에서는 역시 뒤틀리게 전수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오랜 동안 개 교회 부흥회가 교회 부흥차원에서 (궁극적으로는 물질적 숫적 성장의 면) 한국인의 저변에 깔려있는 무속적 의식 구조에 맞춰져 왔고, 그 내용도 그렇게 표적 되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후대는 지도력 상실과 역사의 변천 과정에서 설교의 특징적 전통을 잃어버린 채 각자 각자가 자기 기호에 맞는 설교의 유형과 내용을 만들어 내는 소위 설교의 사사 시대를 맞고 있다고 본다.

 

3. 현재의 설교에 나타난 문제점

위에서 설교의 유형과 내용 면에서 어떤 특징적 유형을 따라가지 못하고 나름대로의 유형과 내용을 만들어 내는 설교의 사사 시대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와 함께 부흥사들도 이성봉 목사와 같은 전적으로 부흥회만을 위하여 교단에서 파송된 (교단에 대하여 내용 면이나 경제적 면이나 결과에 대하여 보고의무가 있음) 부흥사들이 아니라 목회를 겸직하고 있는 부흥사들이므로 순수 부흥회의 설교와 목회 현장에서의 설교가 서로 엇갈리며 교단에 대한 또는 소속돼 있는 교회에 대한 법적인 보고 의무도 없으므로 공동체적인 특징을 대표하는 내용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신학적 취향에 따라 달라져 왔다는 사실도 그 같은 시대적 조류와 함께 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그렇듯 사사 시대에서 설교의 유형을 지배하는 사사와 같은 사람들이 여기 저기에 나타나 교단적인 특색 없이도 많은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 대표적인 흐름은 첫째, 슐러주의의 입각한 교회 성장중심의 설교, 둘째, 풀러 신학교의 교회 성장이론에 따른 성장 중심의 설교, 셋째, 신 오순절 운동의 영향에 의한 축복을 강조한 성장 중심의 설교, 넷째, 교회 밖의 운동의 영향에 의한 제자화 중심의 설교, 다섯째, 최근에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강해 설교중심의 설교로 나눌 수 있다, 여섯째, 사회 문제에 대하여 지적하고 그리스도인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사회 윤리적 설교, 일곱째, 현대의 많은 긴장과 정신적 업악에 심리적 치유 내지는 위안에 초점을 맞춘 심리적 설교 등이다.

이러한 흐름은 전체 기독교회들이 교단적인 배경이나 특색 없이도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현대가 만들어낸 생산품이라는 사실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설교 유형의 사사 시대적 사회 실재는 지식 사회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첫째, 기독교회가 사회 변천의 현상에 의하여 자본주의적 경제 원리를 도입하고 있다는 사실, 이것은 둘째, 기독교회는 이제 교단과 교파와 신학적 특색 없이 동일한 도구를 소유하게 됨으로 그것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용하느냐에 따른 무한 경쟁 관계에 이미 들어왔다는 사실, 셋째, 그러므로 기독교회들은 본연의 복음 전파 (그리스도의 겸비와 고난과 영광에 근거한)를 외면하며 현상적인 교회 형태에 의하여 그 가치가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 넷째, 그러므로 기독교회는 설교 속에 나타난 메시지와 그에 상응하는 삶에 의하여 사회 속에서 그 도덕적 영향력과 불신 세계를 향한 도전이 있는 법인데 그 권위와 도전을 잃어가고 있으며, 다섯째, 현실주의적 실용주의에 입각한 기독교 제도내의 정치 권력구조에 의하여 대 교회의 영향력이 증대되며, 그로 말미암아 대 교회의 스타일, 메시지, 방법론, 그리고 삶의 형태가 다른 군소 교회 들의 모방적 좌표가 되고 있다는 사실 (때로는 대 교회 구조에만 맞는 것도, 그리고 때로는 비 성서적 요소도 눈감아 가면서), 여섯째, 이와 같은 사사적 현상은 많은 이단적 교회들의 출현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바탕을 마련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끝으로, 이 같은 거대한 조류에 휩싸일 수밖에 없으므로 많은 설교자들이 고통과 씨름 없이 쉽게 타인의 성공적 설교 자료를 표절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윤리적 인간성을 잃어갈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기독교 전반에 공유되고 있는 사회적 실재로서의 설교 유형과 내용은 성결교회의 설교에 깊이 뿌리를 박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의 가정이 아니라 타교회의 저명한 설교자들의 설교와 성결교회의 중진 설교와를 비교하고 얻은 발견이다). 아주 뼈아픈 이야기지만 우리의 설교 속에 죄인들이 통회 자복하고 주께 돌아오게 하는 초기 전도자들에게서와 그 명맥을 이어온 선진들의 뼈를 찌르는 듯한 내용과 위력이 보이지 않는다. 성결의 내용과 경험에 관한 강조와 삶이 엿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치유로서의 경험과 그에 따르는 사회적 질병의 치유자로써의 사명을 고취시키는 내용도 결여돼 있다.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이 정산되겠다는 두려움과 소망도 결여돼 있는 것 같다. 도덕적 설교, 율법적 설교, 심리에 위안을 주는 설교, 교회 성장에 초점을 맞추는 설교,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영향을 받아 우리 것이라고 내 세울만한 것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요즈음 한창 인기를 높여가고 있는 강해 설교를 통달한 듯한 강해 설교도 거의 보기 힘들다. 공통적으로 보여지는 것은 제목 설교로서, 성서 주석적인 예리함으로 제목을 이끌어 가는 논리의 빈약이 보이며, 과도 단순화라는 오류에 쉽게 빠지는 것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필자의 견해로는 성결교회의 존재를 가능케 한 사중 복음의 시대 조류와 내적 요인으로 인한 희석에 기인하는 것이다. 특히 사중 복음의 핵인 성결이 교회 공동체내의 삶의 사회 실재에서 그 위력을 잃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성결교회의 공동체 일원들이 정체성을 잃고, 역할에 대한 의식이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분위기는 신학 교육의 현장에서, 목회의 현장에서, 선교 현장에서, 성도들의 삶의 현장에서 파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4. 성결교회의 설교의 미래

그렇다면 과연 성결교회의 설교의 미래적 발전은 어떠해야 할 가? 위에서 언급한 것들이 성결교회가 처해 있는 현주소며 그 속에서 안주하고 있다면 과연 성결교회는 어디로 갈 것인가? 우리의 후진들에게 물려줄 신앙적 유산은 사라져 버리는 것인 가? 라는 질문들이 자꾸 되살아 온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안으로서 필자는 한 마디로 성결교회의 선진들이 그들의 메시지와 삶을 통하여 성결의 성서적 사상을 다시 회복하여 우리의 설교 내용이요 유형으로 삼아 그것을 힘있게 전하는 새로운 운동을 일으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그 사상이 하나의 지식 체계로 전수 받아 약 한 세기의 역사 속에서 그 지식 체계를 실재의 사회 속에서 외면화 시켜 하나의 객관화된 사회적 실재 화를 이룩해 성결교회가 오늘의 사회 현상 속에서 다시 객관화된 사회 실재로 설교와 삶을 통하여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서적 대 명제를 구체화시켜 성결을 경험한 기독 공동체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할 구체적 내용과 그의 실천을 위한 하나의 원초적 모형을 제시한 초기 지도자들의 운동을 통해서 성결을 경험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인지해야 할 것이다. 이명직 목사에게서 나타난 성결의 경험과 능력 (개인의 영혼과 교회 그리고 신학교 그리고 주위를 변화시키는 능력)은 그의 설교와 삶에 그리고 후진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성결을 우리의 것으로 다시 찾아와서 성결의 결과로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과, 형제 사랑과 또한 자기 사랑의 역동적 능력을 우리의 설교와 삶 속에서 다시 구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역동적 구현을 위해 무엇보다도 가장 시급한 것은 중생을 통한 죄인들의 구원에 대하여 설교하여야 할 것이다. 이 경험이야말로 하나님의 죄인을 조건 없이 사랑한 사랑의 가시적 경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의 눈을 교회의 제 일차적 사명으로 되돌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중생의 경험의 경험이 없다면 어찌 성결의 깊은 데로 사람을 이끌 수 있겠는가. 중생은 오로지 전도라고 하는 수단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므로 이것의 강조는 교회로 하여금 전도운동을 극대화시키며 구체화시키는 일에 심혈을 기울이게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초기 지도자들의 전도 설교를 통한 교회 탄생이라는 역동적 능력을 다시 우리의 것으로 삼는 것이며 설교의 내용과 방향이 정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이성봉 목사의 부흥사적 설교의 능력을 다시 우리의 것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결의 외형적 표현은 사랑인데 그러한 사랑은 죄로 말미암아 죄인들의 영혼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경우 영혼의 상처는 육체의 질병, 가정의 상처, 사회 속의 질병, 이웃과 이웃 사이의 상처, 사회 불평등으로 인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의 소외로 인한 질병, 불운에 의하여 생기는 무수한 피해자들의 고통과 상처, 일부 층의 부당한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끼치는 여러 가지 상처 등을 파생시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성결을 경험한 사람들 속에 심겨진 하나님의 사랑의 역동적인 능력은 구체적인 손길을 통하여 그러한 질병과 상처들을 치유하는 놀라운 힘이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치유의 개념은 우리의 사회 내에서의 역할이 무엇일지를 정해주는 강력한 설교의 내용이 될 것이다.

그 같은 성결의 실천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신다는 약속 때문에, 그리고 더 나가서 그때까지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몸을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르는 거룩한 무리들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그 때에 우리에게 영광스런 보상이 있을 것이다. 그 때에 우리 주님 만나서 자랑스럽게 이 땅에 사는 동안 주께서 아버지의 뜻을 실현하사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처럼 우리도 주님의 사랑을 그렇게 퍼침으로 주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주님 다시 오시는 그 때까지 그 같은 선교적 사명이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의 선교 운동은 그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이 같은 소망과 기대에 찬 삶이 우리 앞에 있음을 설교로 선포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사중 복음을 마음속 깊이 인식하고 그것의 실천을 위하여 헌신하며 전하는 교회 이것이 성결교회의 이 사회 속에서의 정체성이요 역할인 것이다. 성결은 이러한 의미의 중심이요, 동력이다. 중생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시작이요, 신유는 그것의 효과이며, 재림은 이 모든 삶의 완성 점이다. 그러므로 성결 교회는 이러한 영광스런 복음의 모든 것을 소유한 교회로서 있는 힘을 다하여 이 땅에서 그것을 선포하여야 할 것이다. 이렇듯 경험적 삶과 그에 따른 역동적 설교의 능력을 다시 찾기 위하여 우리는 선진들이 추구하였던 사중 복음의 구체적 가르침과 경험을 우리의 삶 속에서 의식화하고 경험하도록 애쓰며 경험적 실재로서 선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할 때 설교의 기술은 제 이차적 중요성을 갖게되며 제 일차적 내용을 더 효과 있게 전하는 수단으로 올바른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것의 본 말이 전도 돼서는 안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