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결의 사회적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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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국

 

머리말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 글에서는 "성결"(聖潔)이라고 하는 어휘에 함유된 기본적 의미는 성결 교회라고 하는 신앙 공동체의 정체성(identity)과 역할(role)이라고 하는 사회성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하여 개진하려고 한다.

"성결"이라는 어휘는 히브리어의 어휘 중 어근 zdq로부터 파생되는 명사형, 동사형, 형용사형의 단어들 또는 헬라어의 어휘 중 AG-군의 명사형, 동사형, 형용사형의 단어들을 번역한 한글 어휘 중 하나 - 다른 하나는 "거룩" - 이다. 1921년 "동양 선교회 전도관"이란 이름에서 "조선 예수교 동양 선교회 성결교회"란 이름으로 교회가 조직될 때 이미 한국 성결교회는 "성결" 이라는 어휘속에 담겨 있는 성서적 웨슬리 운동의 가장 중심적 이념을 받아들여 그 이념을 우리의 역사 내에서 실재화함으로 새로 시작되는 교회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지표(指標)를 정해 주는 핵심적 어휘로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렇듯 교회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지표를 정해주는 "성결"이 오늘날에 와서 우리가 관심을 덜 갖거나 아니면 아예 무관심거리로 제쳐놓고 있다고 보아진다. 이러한 현상이 계속될 때 현재의 성결교회는 그 뿌리와 정체성 그리고 사회적 역할에 있어서 처음 교회를 조직할 때의 교회 설립의 근본 이념으로 부터 이탈(離脫)된 공동체로 변질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은 우리의 "성결"의 사회적 의미의 논의에 있어 다음과 같은 전제를 요구하게 된다. 즉 현재의 성결교회의 정체성과 역할을 추론하기 위하여는 "성서적 성결 운동"의 요체인 성서적 성결의 의미에 대한 이해와 또한 웨슬리 운동이 어떻게 성결의 의미를 상황화시켰는가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현재 성결교단의 정체성(identity)과 역할(role)에 대한 재조명이 수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성결에 대한 이중적 논의

성서적 의미

구약에서 zdq 근본적으로 세속적인 것과의 차별을 의미 하는 것으로 성전, 제사장들, 제물들, 절기들, 안식일, 이스라엘 백성, 예루살렘, 가나안 땅, 성서, 등을 구별하여 부를 때 거룩한 혹은 성결한 것으로 부른다. 이 어휘가 하나님의 거룩과 관련하여 사용될 때는 첫째, 존재론적으로 다른 모든 피조물과 다른 홀로 무죄한 하나님의 본질 중의 본질을 언급할 때 사용된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거룩은 모든 피조물을 초월한 완전한 존재임을 시사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스스로 거룩한 분임을 계시하신다. 이 거룩성은 부정한 것, 즉 죄를 파괴시켜야만 하는 본질을 함유하고 있음과 동시에 하나님이 생명의 근원되게 하는 창조적 본질을 함유하고 있다. 아울러 하나님만이 인간을 성결케 하는 주체인 것이다.

둘째, 관계론적으로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과의 계약 관계에서 하나님의 거룩성이 이해되어진다.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에 의하여 자신의 택한 백성 중에 거하시므로 이스라엘은 거룩한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 중에서 유일한 하나님으로 경배받게 되는 관계가 형성된다. 자기 백성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위해서 하나님의 거룩은 그 백성들의 성결한 상태를 요구한다. 백성들의 성결한 상태는 제의적 정결(祭儀的 淨潔: cultic purity)을 요구하는데, 제의적 정결은 다시 그 구성원 개개인의 개인적 정결을 요청한다. 이것은 한 마디로 레위기 19:2 "...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하니라" 라는 요구에 함축적으로 잘 표현돼 있다. 그러나 요구되는 정결이 더럽혀 졌을 때 레위기에서 보듯이 은혜 - 초인적 사랑(suprahuman love) - 로 그에 대한 구속의 길이 열려져 있음을 안다. 즉 제의적 희생물의 요청인 것이다. 이 같은 관계는 사실상 하나님의 존재론적 거룩의 개념에서 파생되는 것으로, 심판의 행위와 은혜의 행위(하나님으로 부터 소외된 백성의 하나님과의 화목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길)는 자기 백성과의 계약 관계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와 같은 성서적 하나님의 거룩성을 후대의 유대교에서는 지나치게 물질화(materialization)시킴으로 근본적 의미로 부터 이탈을 초래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는 거룩의 구속적 또는 윤리적 측면을 외면하고 외형적 부정(不淨)과 정결케 되는 제의에 초점이 맞춰짐으로 부정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방인들을 포함한)로 부터의 분리와 제의적 형식에 치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약에서의 하나님의 존재론적 거룩성은 직접적인 표현은 그리 많지 않지만, 구약적 사상이 신약 전체에 걸쳐서 저변에 깔려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성에 대하여는 약간의 언급이 있는데 그의 거룩성은 더러운 귀신들을 멸하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억눌린 사람을 해방시키는 새 시대가 하나님과 동일하게 거룩한(눅 1:35; 요 6:69)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되었음을 선포하고(막 1:24; 눅 4:35), 하나님께서 그를 거룩하게 하여 세상에서(요 10:36) 아버지의 뜻을 이루게 하고(요17:4), 거룩한 제물로서 드려짐으로 사람을 거룩하게(히 9:13; 13:12) 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거룩한 영(聖靈))은 그리스도와 불가분으로서 깨우치며(요 16:8),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여 깨끗해진 그리스도인을 성전 삼고(고전 3:16), 성령의 소욕을 그리스도인들이 지속적 따름으로 성결한 열매(갈 5:22)를 맺으며, 그의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게 하는(행 1:8) 것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에서의 거룩성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 1:16)라는 한 마디에 집약될 수 있다.

그것은 후기 유대교에서 나타난 거룩의 물질화가 아닌, 첫째, 존재론적으로,마음의 청결(淸潔)함을 통한 성결한 상태의 유지(살전 3:13), 둘째, 사회적 의미의 역할로서 성결한 각자의 몸이 하나님께 드려짐으로 하나의 거룩한 기독 공동체가 하나님의 구속 사업을 위한 사명을 완수하는 역할(롬 12)을 함유하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웨슬리의 이해

성서적 성결 사상을 중심으로 한 웨슬리의 운동에서 성결의 경험을 뒷받침하는 신학적 해석과 경험에 따라 파생되는 여러 가지 부정적 증상이 나타나고 또한 많은 질문에 대한 웨슬리의 변증을 통하여 그리고 성결에 대한 설교를 통하여 웨슬리가 어떻게 성결의 의미를 이해하였고 또한 어떻게 실재적으로 상황화시켰는가 알 수 있다. 그에 대하여 이미 많은 연구와 논문들이 나와 있음으로 이곳에서는 웨슬리의 이해와 상황화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것들을 이 글의 목적을 달성하는 방향으로 취사선택할 것이다.

웨슬리의 성결관은 "신자 속에 남아 있는 원죄"와 "마음의 할례"에 대한 설교에서 아주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성결은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의 할례를 받아 죄, 즉 육체와 영혼의 모든 더러운 것(from all filthiness both of flesh and spirit)으로부터 정결함을 받아 그 결과로 신자의 존재 자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덕들로 가득 채워지는 것,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상으로 새롭게 되어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가 완전한 것처럼 완전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신자가 성결함을 받으면 그의 마음은 온전히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것으로 가득 채워지고, "모든 행위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영광만 생각하는 순수한 마음의 동기를 갖게 된다." 그는 그의 "감리교인의 성격에 관하여"란 글에서 다음과 같이 그 운동이 지향하는 성격을 말함으로 성결 사상을 요점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 모든 일에 감사 드린다. 항상 마음이 하나님께 향한다. 이웃을 자신의 영혼처럼 사랑한다. 마음이 청결하다. 하나님 한 분만이 지배하신다. 모든 계명을 지킨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이 되게 한다. 모든 일에 하나님에 관한 생각으로 장식한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마음의 순수한 상태야말로 성결 사상의 중심으로, 마음이 모든 시기, 악의, 분노, 모든 종류의 혈기, 교만으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에 의하여 정결하게 되고, 그렇게 된 마음 속에 모든 소욕이 자신을 이 땅에 두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는 것으로 가득차게 되며 더 나아가서 모든 동기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아닌 하나님만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으로 채워져 있는 상태가 성결한 상태인 것이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이웃과 동료 신자들과 자신을 향한 사랑의 동기가 된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했기에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며, 더 나가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 이웃 사랑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필연적인 열매로 간주된다." 이웃 사랑은 사변적으로만 그치지 않고 구체적 실천을 전제로 한다. 다음의 말로 이웃 사랑의 실천이 어떠해야 할 것인지 밝혀 주고 있다.

우리 모두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합시다. 정의, 긍휼과 진리가 우리 모두의 마음과 행동을 주장하게 합시다. 우리의 넘치는 것으로 이웃이 유익되며, 우리의 유익으로 이웃의 필요를 채우게 하며, 우리의 쓸 것들이 이웃의 궁핍을 메우도록 합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또한 동료 신자들을 - 모든 사람이 포함된 이웃과 전혀 다른 - 향한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형제들을 향한 특별한 사랑의 동기가 된다. 성결을 경험함으로 경험되어진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연합의 기초가 된다.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는 형제애에 기인하며 그 사랑은 교리적, 제의적, 교회 제도적 모든 차이들을 뛰어넘게 하며 모든 파벌 의식을 제거한다.

성결에 의해 마음 속에 채워진 사랑은 자기 자신에 대한 적절한 사랑을 수반한다. 그것은 죄가 아니라 논란의 여지가 없는 의무인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께와 이웃에게처럼 자신에게도 의무를 가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자기-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경쟁자로 여겨져서는 안된다. 후자는 전자를 합법적인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이웃 사랑처럼 자기-사랑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라는 틀 안에서 작동한다. 그러므로 성결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이 사랑이기도 하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웨슬리의 성결관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마음의 할례의 결과로서 마음의 죄의 속성, 즉 더러운 것들을 정결케 하고,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채워져, 수직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모든 동기와 소욕이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는 것으로 나타나며, 수평적으로 이웃과 동료 그리스도인 그리고 이기적이 아닌 자기-사랑의 구체적 실천을 가능케 하는 상태라고 결론짓게 된다.

 

성결의 사회성과 그 의미

이상에서 우리는 성서적 성결 사상이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보았고, 역사와 사회 속에서 경험적으로 실재화된 웨슬리의 성결 운동 속에 자리잡고 있는 성서적 성결 사상의 핵심이 무엇이었는가 살펴 보았다. 그 성서적 성결 사상이 구체적으로 그 운동의 지식 체계(stock of knowledge)를 형성하였고, 그것이 역사적 사회 정황(plausibility structure) 속에서 하나의 객관적 실재화(objectified social reality)가 되어 많은 사람들의 내면 세계에 하나의 세계관을 구성하여(internalization) 그들이 역으로 그러한 세계관을 그들이 처해 있는 사회 속에서 외면화함(externalization)으로 성서적 성결 사상은 하나의 사회적 실재로서 제도화(institutionalized social reality)되어 한국의 사회 속에까지 전수되어 이 사회 속에 성결교단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경험적으로 전수된 세계관, 즉 성서적 성결 사상은 여러 가지 사회적 요인에 의하여 변질 내지는 수정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며는 현대의 사회적 요인과 성결 사상과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현대 사회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지게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사회 현상은 산업 자본주의에 의한 세속화 현상이라는 것이다. Berger에 따르면 한마디로 "세속화는 사회와 문화의 각 분야가 종교적인 제도들과 상징들의 지배로부터 이탈되는 과정이다." 이것을 확대 해석하여 종교적 제도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세속화는 종교적 전통과 그 속에 있는 세계관에서 이탈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종교적 전통의 세속화는 세속주의로 이끌어 가며 세속주의가 교회 안에 퍼지면 교회는 기업화되며 교회는 다른 교회와 경쟁적 관계가 형성되며, 성공을 위해서는 시장성의 향상과 유효적절한 광고술에 의존하는 시장 경제 원리가 적용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전통적인 고백과 객관화된 세계관은 상실되고 주관화된 실재로 자리잡아 개인적인 종교로 전락되며, 그 결과는 실존주의 또는 심리 치유주의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세속주의의 힘이 가시적으로 실현되는 사회적 기반은 소위 종교의 제도권이다. O'Dea는 종교의 제도화는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그 제도화에 의하여 원래의 전통적 고백과 세계관의 변질로 인한 치명적 손상을 입을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하여 지적하고 있다.

위와 같은 보편적 사회이론에 입각하여 볼 때, 현대의 성결교단의 사회 내에서의 입지는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일 오늘의 성결교회가 위에서 지적한 대로 세속주의와, 개인주의적 성공과, 제도주의적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면, 결과적으로 성결교회의 성결사상은 객관화된 사회 실재로서의 전통성이 상실되고, 그러므로 역사 속에서 실현된 성서적 성결사상은 역사의 현장에서 그 실체를 잃어 버리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 실체를 잃어 버린다는 말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성결교회라는 명칭은 성결교단이라는 조직체의 상징적 의미부여 이외는 다른 교회들과 다를 것이 없는, 즉 성결교회의 독특한 정체성과 그에 따른 역할을 간직함이 없이 표류될 수 있다는 말이된다. 그렇게 될 때 목회 현장에서의 목회 철학 및 목회의 실천, 기독교 교육을 위한 이념과 실천, 선교사 훈련을 위한 훈련 철학과 실재적 훈련 계획, 목회자들의 연장 교육을 위한 내용과 프로그램 그리고 장래 목회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육의 이념과 구체적 실천, 더 나가서 급변하는 세계 사회 속에서의 성결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역할을 심어 주는 일 등 모든 면에 있어서 방향을 잃은 채 표류하게 된다는 말일 것이다. 성결교회가 그 독특한 정체성과 역할을 상실하게 될 때 따르는 또 다른 문제는 다른 교회와의 무한 경쟁의 돌입에 직면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경쟁력에 있어서 다른 교회에 뒤지는 성결교단의 장래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제기 된다는 말일 것이다.

위와 같은 현상 속에서 성결사상이 우리의 사회 속에서 본래 가지고 있는 의미를 찾기 위하여는 그것이 현재의 역사적 사회 속에서 하나의 객관화된 사회적 실재로서의 기능 - 잃었던 - 을 회복하는 길 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하여는 그 사상을 하나의 지식 체계로 전수받은, 그리고 약한 세기의 역사 속에서 그 지식 체계를 실재의 사회속에서 외면화시켜 하나의 객관화된 사회적 실재화를 이룩해 온 성결 교회가(성결 사상의 실재에 대한 사회적 바탕) 오늘의 사회 현상 속에서 다시 객관화된 사회 실재로 다시 찾는 길 밖에 없다.

그 같은 목적을 위하여 성결교회는 성결사상의 성서적 의미를 진지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모든 최종적 권위의 출처가 성서 위에 있기 때문이고 그 성서적 의미가 기독교 윤리관에 대한 하나의 사변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웨슬리 운동을 통해서 인간의 역사 속의 사회 현장 - 성결교회의 역사를 포함하여 - 에서 구체적으로 경험되어졌던 객관적인 사회 실재의 핵심 사상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살핀 대로 성결의 어휘 자체는 분리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초월자인 하나님과 그렇지 못한 인간과의 분리, 도덕적으로 무흠한 하나님과 죄인과의 분리, 그리고 신성한 것과 비신성한 것과의 분리, 교회와 세상과의 분리 등이다. 그러한 분리는 존재론적으로 하나님이 거룩하기에 근본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관계론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새로운 계약 백성으로서의 기독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하나님의 구속 사업의 지속을 위해 하나님께 분리된 기관임과 동시에 그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그 공동체 내에 내주하는 성령님의 역사로 그 공동체 존재 자체가 본질적으로 성결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서적 대 명제를 구체화시켜 성결을 경험한 기독 공동체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할 구체적 내용과 그의 실천을 위한 하나의 원초적 모형(原初的 模型)을 제시한 웨슬리의 운동을 통해서 성결을 경험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인지(認志)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성결의 결과로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과, 형제 사랑과 또한 자기-사랑의 역동적 능력을 우리 안에 다시 구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성결의 외형적 표현은 사랑이라고 했다. 하나님의 거룩과 사랑은 일차적으로 죄로 말미암아 상처받은 죄인들의 영혼을 치유한다. 많은 경우 영혼의 상처는 육체의 질병, 가정의 상처, 사회 속의 수없이 많은 질병, 이웃과 이웃 사이의 상처, 사회 불평등으로 인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의 소외로 인한 질병, 불운에 의하여 생기는 무수한 피해자들의 고통과 상처, 일부층의 부당한 욕심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끼치는 여러가지 상처등을 파생시키기도 한다. 그러므로 성결을 경험한 사람들 속에 심겨진 하나님의 사랑의 역동적인 능력은 구체적인 손길을 통하여 그러한 질병과 상처들을 치유하는 놀라운 힘이 되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성결의 이중적 의미, 즉 체험을 통한 본질의 변화와 본질이 하나님의 속성을 닮음으로 근본적으로 성별된 존재로서의 교회를 통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이룩하시려고 했던 사랑의 실천이라는 사명이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사명일 것이다. 여기에 우리 성결교회의 정체성(성결을 체험한 본질적으로 거룩한 공동체)과 사회 속에서의 역할(사랑의 실천을 통한 사회의 제반 질병을 치유하는 사랑의 공동체)이 있는 것이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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