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시대를 위한 설교 방법


허도화(미국 Drew University, Ph.D.)

새로운 시대를 위한 설교 방법은 그 시대에 효과적인 설교의 형태(Style)를 말한다. 이런 점에서 설교의 형태는 변하는 시대의 사람들을 일정한 형식에 맞추려는 공장의 기성복이 아니라 옷을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맞추려는 양복점의 맞춤복과 같아야 한다. 설교의 형태는 설교에서 무엇을 말하고 행할 것인가와 무엇을 계속 연결시킬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한 조직적인 계획으로 설교의 의미를 더해 준다. 설교의 형태는 청중들의 신앙을 형성시킨다. 일반적으로 바람직한 설교의 형태는 편리하고 연결성 있는 내용배열과 청중들로 하여금 특별한 형태에 따라 내용에 귀 기울이도록 초청하고 요구하는 방법 등을 포함한다.

과거의 설교: 포인트 설교(Points-making Sermon)

우리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주된 설교 방법은 포인트 설교, 설교의 대지를 첫째, 둘째, 셋째 등으로 구분하는 방법이다. 이 포인트 설교는 18세기 이성주의 영향을 받아 본문으로부터 화제를 추출하는 방법에 근거한다. 이 설교 방법은 먼저 설교할 특별한 주제를 다른 주제들로부터 분리(isolation)하여 과학적이며 이성적으로 관찰(observation)한 후 대지와 소지(points)를 추출하는 분류 단계(categorical)에 의존하는 교육적(didactic) 교훈 중심의 설교 방법이다. 특별히 이 포인트 설교 방법이 한국 개신교 설교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그들이 설교 중심의 예배에서 설교가 지니는 기능을 청중들에게 교훈(edification)을 주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경험하였듯이 포인트 설교의 방법이 청중들의 삶의 변화를 일으키기보다는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려는 교육적 기능에 치중하게 되는 주된 이유는 설교자가 포인트, 논리적 개요를 따르기 때문이다. 이 논리적 개요를 따르는 설교는 단일 양식을 따르는 선적인 논리로 구성되기 때문에 설교 전체를 위한 연결성과 창조성이 결여되어 부분적이며 정적이고 과장된 설교를 생성해 내는 경향이 있다. 설교의 구조가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실제로 청중들과 함께 움직이기보다는 설교자의 논리에 의존한다. 마치 피상적으로 3개의 항목들 사이를 움직이는 연약한 전환표현들로 연결되기 때문에 한 편의 설교라기보다는 3개의 작은 설교들로 구성된 개요 중심의 설교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포인트 설교 방법은 정보제시의 성격을 띠게 될 수 있어 청중과 의사소통을 위한 본문의 이야기와 수사학의 구조 속에 있는 전체적인 의미의 흐름(movement)을 상실함으로 탐구력을 가진 청중들이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하여 관심과 흥미를 잃게 된다.

새로운 설교 방법이 필요한 이유

설교학에서는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새로운 설교 또는 새로운 설교 방법 등에 관하여 대화하고 있다. 굳이 이전에 사용하던 것과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아야만 하는가? 새로운 설교와 새로운 설교 방법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설교자의 입장에서 볼 때, 바쁜 한 주간의 목회에서 많은 설교를 준비하는 시간과 노력을 조절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이 절실히 요구된다. 오늘날 특별히 한국 개신교의 목사는 자신이 설교할 수 있는 적절한 회수보다 더 자주 설교한다. 매일 설교를 해야 하는 목사는 마치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하루살이와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설교자가 한 번에 새로운 설교를 만들 수 있는 최대한도는 다섯 내지 여섯 편이다. 어떻게 한 주간의 목회 사역에 필요한 그 많은 설교들을 만들 수 있을까?

둘째, 변하는 시대와 문화(다원적 사회)에 따라 새롭게 변하는 인간의 의식 세계에 맞추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점차 복잡한 사회 속에서 사는 청중들은 교육적인 설교 방법에 의해 여러 개의 대지들을 암기하도록 강요당하기보다는 단순한 형태를 원한다. 단순한 형태의 설교라도 다양한 청중들이 같은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각도에서 한 사물을 보는 드라마같이 최소한 3-4가지의 이야기들(노년, 장년, 청년 등을 위한)이 필요하다. 하나의 초점, 중심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설교가 필요하다. 현대인들의 단일 주제에 대한 주의 집중은 약 4분 정도로 20분 정도의 설교에는 준비된 3-4가지의 움직임으로 구성될 수 있다.

새로운 설교: 이동 설교 (Moves-making Sermon)

설교는 한 개념에서 다른 개념으로 이동해 가는 언어의 움직임이다. 청중들의 의식 속에 믿음을 심어 주기 위한 설교의 개념은 청중들의 의식을 통하여 전개된다. 인간의 마음은 카메라와 같이 작동한다. 설교자는 일련의 흥미 있는 광경을 찍기 위해 작업 준비를 하고 청중들로 하여금 그 광경들의 사진을 찍도록 권하는 사진기사의 조수와 같은 존재이다. 성경을 해석하며 청중이 이해할 수 있는 장을 발견한 후 청중의 마음 속 필름에 잡힐 수 있도록[형상화] 설교자가 먼저 발견한 것들을 제시한다. 이동 설교는 생생한 감각을 가지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이해로 구성된 긴 영사 슬라이드와 같은 단일의 청사진과 같다.

이동 설교에서는 사고, 이미지와 사건의 흐름 속에서 일어나는 의미가 중요하다. 먼저 객관적으로 관찰한 사실(fact)로부터 의미(meaning)를 찾아 생각, 이미지, 사건의 흐름(movements of thought, image, event)에 따라 전개한다. 마치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서로의 공통적인 실마리(clues)를 중심으로 주제가 흐르도록 한다. 현대인의 의식에 적절한 대화 방식의 관점으로부터 변화를 일으키는 언어를 사용한다. 청중의 의식 속에 신학적 의미를 형성하는 구조로 복음을 우연히 들게 하는(overhearing the gospel) 설교 전략이 필요하다.

설교의 이동 요소: 여는 말(Opening Statement; 움직임의 중심개념 소개와 초청)-->진전(Development; 중심 개념 설명; 명료화, 예증)-->닫는 말(Closure; 움직임의 완성; 청중의 카메라 셔터 닫힘; 다음의 움직임 준비)

이동 설교의 구성 요소

1. 귀납적 접근: 과거의 형태는 연역적(전제로 시작하여 그것을 설명하는)이었으나 현대의 형태는 귀납적(설명으로 시작하여 결론으로 유도하는)이다. 연역적 접근은 이미 확신하는 자들에게 좋으나, 귀납적 접근은 아직 결정을 하지 않았거나 적대감을 갖은 자들에게 더욱 좋다. 설교자들이 석의 과정에서 적용했던 창조적인 발견의 과정과 동일한 방법을 따라서 설교가 형성되어야 한다. 청중이 설교자가 경험한 것을 함께 공유하고 결론 부분에서 설교자의 탐구/발견과정에 동참하여 그들의 마음과 삶 속에 어떤 해답을 얻는다. (Fred Craddock)

2. 대화식 전개: 과거의 설교 형태는 웅변적이고 형식을 따르며 큰 소리로 설교하며, 세련되고 열정적이며, 중요한 역사적 예화들을 사용하고 무엇을 할 것인지를 청중에게 말했으나, 현대의 설교 형태는 Tonight Show 또는 The Late Night Show를 이끄는 사회자들의 독백과 유사한 것같이 한층 더욱 대화적이다. 공식적으로 청중 앞에서 말할 때는 설교자보다는 대화자, 강의보다는 대화형식이 더욱 편하다. 대화적인 설교를 위해서 설교자는 설교의 처음부터 끝까지 청중을 의식하며 부름과 응답을 유도하고 눈과 마음의 접촉을 일으키는 설교가 되도록 한다. 대화식 전개에서 청중은 단지 설교를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설교를 만들어 가는 일에 참여하게 된다. 대화식 설교 전개는 개인적인 문제까지도 일반적인 것으로 느끼게 할 수 있다. (Report-talk보다는 Rapport-talk/개인적인 문제를 다룰 때 일반적인 여성의 우정을 기초하여 자신의 친근함을 나타내는 the back-and-forth conversation [Oprah Winfrey])

3. 설득력 있는 결론: 오늘의 설교는 논리적인 설명이나 증명보다 점차 적용을 강조한다. 과거의 설교 형태는 청중들에게 의무적인 언어("ought," "should," "must" "need to")들을 사용하여 무엇을 행하도록 강요했으나("Dobetter" preaching), 새로운 형식의 설교는 논점들을 설명하고 대안을 제시하며 설득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결정하는 것을 분명하게 청중에게 맡긴다. 설득은 바른 결정과 반응이 따른다면 "일어날 수 있다(It could be; You can)"는 식으로 말해질 때 일어난다("TrustGod" preaching). 설교에서 다 끝내지 못한 이야기들을 청중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경험 이야기를 하게 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마무리짓도록 유도하기 위 해 설교는 의도적으로 미완성적이어야 한다. (Wayne McDill)

4. 이미지와 이야기: 요점(points)보다는 이미지(images)로 생각하는 21세기의 세대를 위한 설교 형태는 특별히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고착시키며 쉽게 기억하게 하며 쉽게 자신과의 일치감을 갖게 한다. 예수님의 대화는 일상적 일들과 실제들과 연관된 이야기들로 가득하였다.

1) 설화/이야기 설교의 5 움직임/단계: (1) 모순되는 문제 제기로 평형 깨뜨림(갈등, 불안정 제시) (2) 모순/불일치 분석(문제진단) (3) 문제 해결의 실마리 제시(아하!; 복음에 의한 해결책) (4) 복음 경험 (5) 결론 기대(새로운 미래 투사) (Eugene Lowry)

2) 이야기설교의 5 구성단계: Situation(The setting, background, characters), Stress (trouble for dynamic), Search(for various solutions), Solution(resolving the stress), (New) Situation (for prevalence) (Wayne McDill)

이미지와 이야기

지난 15년 이상 설교학자들은 점차적으로 설교자의 상상력이 가지는 중요성을 발견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로 인해 이미지가 인간의 의식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글들이 많이 나왔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21세기에도 계속적으로 이미지가 설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예상하게 한다. 이미지는 청중의 마음속에 신학적인 틀을 형성하는데 영향력을 미쳐서 이미지를 계획 하에 조심스럽게 사용하면 설교자가 신학적 이해를 이룰 수 있다. 이미지는 언어에 의해 청중에게 일어나는 마음과 상상의 그림을 말한다. 설교에서 어떤 이미지는 사진을 끌어낸다. 설교에서 이야기는 시간적 행동이 포함되는 마음의 그림 (활동 그림)을 가져온다. 이미지와 이야기는 모두 청중으로 하여금 비유적인 특징을 반영하여 자신들의 신앙에 관련하여 생각된다.

이미지와 이야기가 설교에서 중요한 이유들은 무엇인가?

첫째, 현대인은 텔레비전의 영향으로 시각 중심적이다.

둘째, 상상하도록 영향을 주어 의식 속에 머무르기 때문에 쉽게 기억된다. 청중이 들은 설교의 주제와 본문을 기억하지는 못해도 예화는 기억한다. 청중이 설교자의 말에 의해 생긴 정신적 그림을 가지고 가지만 설교의 제안(논리, 교훈 등)은 기억으로부터 빨리 사라진다. 그러므로 이미지와 이야기는 설교 메시지에 중요한 열쇠이다. 청중이 우리의 설교를, 이미지와 이야기를 기억하기를 원한다면 설교의 초점과 기능을 전달하는 이미지와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사용할 필요가 있다.

셋째, 그림 언어는 상상을 자극하고 반응을 일으킨다. 제안은 생각에 호소하지만 이미지는 전인격(지식, 정서, 의지)에 호소한다. 더구나 말에 의한 이야기와 그림은 상상을 일으키어 설교 속에 참여하게 한다.

넷째, 상상은 우리의 생활을 위한 가능성들을 잡는 수단이다. 청중의 변화를 원한다면 그들 자신이 아닌 어떤 것으로, 다른 사람의 이미지로, 하나님의 자녀로 상상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인간의 의식은 상상을 통해 변화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 또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가 먼저 상상되어야 한다. 설교가 청중으로 하여금 자신들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들을 상상하도록 도울 때 그들을 변화시킨다.

다섯째, 이미지와 이야기는 두 가지 근본적인 특징들을 통해 의식을 형성하는 힘을 얻는다.

1) 모든 이미지와 이야기는 우리의 경험 세계와 같이 특수하며 구체적이고, 시간적이며 공간적이기 때문에 신앙과 생활에 특수성을 더한다. 일반화보다는 특수성을 통해 더욱 쉽게 배운다. 특별하고 구체적인 것이 생활에서 특별하고 구체적인 경험이나 진리를 생각하도록 초대한다. 특수한 것으로부터 일반적인 것을 끌어오지만 일반적인 것은 특수한 것에 근거한다. 생활에 관한 일반화는 2차 화법이다. 이미지와 이야기가 1차 화법이다. 우리는 세계의 특수한 것 안에 살고 특수한 것을 통해 배운다. 성경의 이야기들과 상상의 그림들은 히브리인들과 초대 그리스도인들에 관한, 그들의 종교적 신앙이 알려지고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 속에서 살았던 특수성들이다. 그들의 특수성 속에서 그들은 우리를 환기시켜 우리의 일상 경험들을 생각하도록 한다.

2) 이미지와 이야기는 모호성을 통해 힘을 얻는다. 이미지가 모호하거나 이야기가 분명한 해결 없이 끝날 때 각각은 새로운 차원을 취한다. 그런 이미지나 이야기는 많은 가능성들과 다양한 의미들을 가진다. 비유에는 항상 비교되거나 비교되지 않는 의미가 있다. 비교는 비슷함과 차이 모두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청중의 생활에 타당성을 가진다고 생각하는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때로는 우리의 경험에서 상이함이 비슷함보다 더 중요하다. 모호성을 통해 청중은 그것이 일으키는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생각하고 그것의 의미를 찾으면서 이미지에 연관된다. 그래서 이미지는 비교의 풍성함(언어의 혼합), 이야기는 연결의 풍성함(설화의 혼합)을 이용한다. 이미지는 이야기로부터 가장 자주 나온다.

이야기 사용

이야기는 신학 형성을 위해 필수적인 상상력이 풍부한 그림을 마음속에 그리게 있다. 신학적 작업에서 이야기가 이미지보다 더 강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대체로 이야기가 시간성과 활동성을 포함해서 청중이 마음속에 원하는 그런 행동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래서, 활동사진의 성격이 이미지보다는 이야기에서 더 잘 나타남으로 청중이 자신들의 경험과 관련하여 신학적 주제를 생각하도록 이끈다.

1. 성경의 이야기 재진술

성경 이야기들은 설교에서 중요한 어떤 것들을 전해준다. 오래된 형태의 이야기들에서 신학이 현실감각을 갖게 된다. 성경 이야기들이 초대 교회의 청중들의 신앙을 형성시켰다면 지금도 성경 이야기를 현대인들에게 다시 말하는 일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1) 성경 본문의 이야기를 재 진술하는 이유들

첫째, 점점 사람들이 성경의 이야기들을 모르기 때문에. 현대인은 점차 성경 이야기 같은 전형적 설화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다. 더 이상 우리의 현대 청중이 친숙하고 사랑 받는 이야기들을 듣게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없다. 그러나 성경 이야기들이 기독교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믿는다면 그것들을 강조할 것이다.

둘째, 성경 이야기들이 성경의 신앙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 성경 이야기들은 성경의 신앙이다). 이야기는 케이크를 장식하는 당의처럼 더 이상 신앙에 관해 제안하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말로 이해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야기는 우리의 실체를 분별하고 정의하는 하나의 수단이며 그래서 신앙은 제안적인 방법으로보다는 더욱 자주 이야기체로 표현된다. 그래서 성경 이야기들은 여러 면에서 성경의 신앙 그 자체의 본질이다. 실체에 관한 히브리인과 초대 그리스도인의 견해는 이야기 형식의 언어로 나타난다. 이런 이야기들이 오늘날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며 우리의 정체를 하나님의 사람들로 만드는 힘이다.

2) 성경 이야기들을 새롭게 경험하게 하는 방법들

첫째, 성경의 언어로 성경의 세계로 이야기한다. 성경 본문이 가진 힘을 존경하여 독서라기보다는 청중에게 개인적으로 말하는 것이 되도록 한다.

둘째, 성경의 세계를 우리의 세계와 부분적으로 연관된다는 입장에서 이야기한다. 이 경우 성경 이야기는 성경의 언어와 현대 언어가 섞여 우리 시대의 특수한 언어와 개념으로 양념을 치면서 이야기된다. 그런 노력이 성경의 세계와 우리 세계가 교차되도록 유도하여 청중이 그 이야기 속에서 자신들을 발견하고 또한 그 이야기가 현대와 타당성을 찾는다는 것을 발견하는 일을 시작하게 한다.

셋째, 성경 이야기를 철저하게 현대화하여 우리 자신의 말로 번역한다. 성경 이야기를 청중의 세계로 옮겨 현대의 이야기로 말한다. 그런 현대화는 청중으로 하여금 성경의 이야기가 어떻게 그들의 세계를 들여다보도록 하는지 아닌지를 알아보도록 만든다.

넷째, 설교자는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인물의 역할을 맡아 그 등장인물의 입장에서 1 인칭 독백으로 이야기를 말한다. 이 방법이 잘 되면 관심을 끌고 효과적이지만 청중을 방관자가 아니라 참여자로 유지해야하는 노력이 많이 따른다.

성경 이야기를 재 진술할 때 모든 다양한 방법들이 사용되어야 한다. 청중이 성경 이야기를 자신의 세계에서 상상하도록 인도해야 한다. 그들이 스스로 그 일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실, 모든 성경이 구약의 율법서나 신약의 사신서와 같이 이야기체는 아니다. 그러나 다른 문학적 양식에서도 설교자는 암시적인 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이야기가 설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 설교자는 성경 본문 속에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이야기를 찾아내는 기술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성경 본문 뒤에서 성경 이야기를 발굴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2. 일반 이야기를 사용하는 이유

첫째, 이야기는 생활과 경험을 세우는 가장 공통적인 방법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활을 이야기를 통해 구축한다. 경험의 단편들은 매우 자주 하나의 이야기로 함께 모여진다.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들은 자주 층을 이루어 발전되고 각 층은 각 관점을 확대시킨다: 개인, 국가, 인종, 세계, 우주의 이야기들이 모든 다른 것들을 포함하는 외부 구조를 제공한다.

둘째, 이야기들은 상상력이 풍부한 가능성들을(<만일 ... 이라면?> 질문들) 가지게 한다.

셋째, 이야기들은 인간의 의식을 형성한다. 또한 이야기들은 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자신들의 생활 속에서 그 이야기를 발견한 다른 사람들과 우리의 생활을 결합시킨다. 이야기는 공동체 의식을 만든다. 이야기들은 공동체를 형성하며 우리와 청중들 가운데 변화를 일으키는 하나의 수단이다.

넷째, 이야기는 글(written/literature)의 시대와 말(oral/post-literature)의 시대 사이에 있는 간격을 연결한다. 현대인은 점차 글보다는 말의 경험으로부터 그리고 그 주위에 자신의 생활을 이룩한다.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말은 대중매체, 대부분 텔레비전과 컴퓨터에 의해 형성된다. 그림 같은 말이 이야기와 이미지 속에 젖어 있다. 우리는 점차 우리의 정체를 글에서가 아니라 이 새로운 말의 경험을 통해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