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봉 목사 탄신 100주념 기념 지역순회 세미나(2000.11.8-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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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일으키는 설교

- 이야기를 말할 때 -

 허도화

   

 교에 의한 기적은 갑자기 청중의 분위기가 변할 때 일어난다. 설교에서 일어나는 기적은 다음과 같은 분위기에서 감지할 수 있다: 청중이 갑자기 설교자를 향하여 쳐다볼 때, 갑자기 아주 조용해질 때, 이런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약간 고개를 돌려 옆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살필 때, 기대감을 가지고 한 손을 턱에 받칠 때, 그리고 주보에 그림이나 낙서를 하다가 강단을 향하여 올려다 볼 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청중은 기침하고, 코를 훌쩍이며, 꿈틀거리는 것조차 잊어버린다. 바로 이런 기적 같은 변화들은 설교자가 갑자기 대단한 전달자가 되어 이야기나 한 장면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기 시작할 때 일어난다. 이야기나 그림을 생생하게 전달할 때 갑자기 설교가 청중과 완전히 연결된다. 청중은 설교자에게 집중되며 그의 모든 말을 들으려고 주의를 기울인다. 갑자기 청중은 설교자가 이야기하는 것에 정말 흥미를 가지게 된다. 청중에게 설교를 하는 자에게 이보다 더 흥분을 일으키는 것은 없을 것이다. 설교자와 청중은 모두 이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설교에서 이와 같은 기적은 그리 흔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설교를 정말로 경청하는 자들이 매우 적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설교자들은 계속 설교를 해야 한다. 설교자들의 공통적인 불평은 청중이 이야기들만 기억하지 요점들은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청중이 성경의 진리를 듣는 일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청중이 너무 깊이가 없고 어린아이와 같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효과적으로 말씀을 전달하는 일은 대체로 청중이 아니라 설교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림 언어들과 이야기들은 좋은 대화 전달에 필수적일 뿐 아니라 성경에서 하나님을 계시할 때에도 본래부터 사용되었다. 우리의 신앙은 역사적인 것이다. 우리가 믿는 것은 역사 속에서, 특별히 특별한 사건들, 구체적인 장소들, 하나님을 만난 자들의 삶과 말들 속에서 알려져 왔다. 우리의 신앙은 철학적인 알림, 신비, 비밀 또는 신학적인 형식으로 우리에게 오지 않았다. 오히려 하나님은 보통 사람들 그러나 그들의 삶 속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관계하심으로 특별하게 된 자들의 경험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셨다.

우리의 신앙은 그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나님은 인간의 경험에 관한 언어로 말씀하신다. 그 보통 사람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와 장면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무엇을 행하시는지를 배운다. 우리는 그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그 때 하나님은 거기에서 일어난 것의 의미를 우리에게 깨닫게 하신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에서 창조의 하나님을 마주 대하게 된다. 예수의 생활 속에서 우리는 전에 결코 보지 못한 하나님을 보게 된다. 그 곳에서, 즉 실제로 하나님 자신이었던 한 인간의 인생에 관한 이야기인 "복음"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신다.

만일 하나님의 계시가 장면과 이야기로 우리에게 오게된다면, 그 계시에 관한 설교는 그와 같은 이야기 형식으로 청중에게 주어져야 한다. 물론 이것은 설교자가 오직 이야기를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설교자는 하나의 해석자이기도 하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말할 뿐 아니라 청중을 위해 그것들의 의미를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설교자는 이 세대를 위해 새로운 이야기들을 말해야 하며 새로운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것들 속에서 청중은 자신들의 시대의 장소와 생활 속에서 재연된 성서의 이야기들의 진리를 보게 될 것이다.

 

I. 이야기설교를 하는 이유

새로운 시대를 위한 설교 방법은 그 시대에 효과적인 설교의 형태(Style)를 말한다. 이런 점에서 설교의 형태는 변하는 시대의 사람들을 일정한 형식에 맞추려는 공장의 기성복이 아니라 옷을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맞추려는 양복점의 맞춤복과 같아야 한다. 설교의 형태는 설교에서 무엇을 말하고 행할 것인가와 무엇을 계속 연결시킬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한 조직적인 계획으로 설교의 의미를 더해 준다. 설교의 형태는 청중들의 신앙을 형성시킨다. 일반적으로 바람직한 설교의 형태는 편리하고 연결성 있는 내용배열과 청중들로 하여금 특별한 형태에 따라 내용에 귀 기울이도록 초청하고 요구하는 방법 등을 포함한다.

1. 새로운 설교학 패러다임

 

1) H. Grady Davis의 Design for Preaching(1958)

데이비스의 책 설교를 위한 설계(Design for Preaching)은 북미 설교학회의 "코페르니크스적 혁명"(Copernican Revolution)이라고 불릴 수 있다. 이 책에서 데이비스는 "설교는 하나의 나무와 같다"고 표현함으로 설교를 위한 새로운 은유를 소개하였다. 이 이미지는 처음으로 설교를 어떤 형식을 가진 생물체에 비교한 것이었다. 설교를 하나의 나무로 표현한 비유가 설교의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그 이전 수년동안 우리는 설교를 건축을 하듯 조직하고, 조립하고, 세우고, 합치는 등 설교 건축술을 배워 왔었다.

만일 설교 한 편이 근본적인 의미에서 나무의 생명과 비슷하다면, 그 때에는 시간(time), 성장(growth), 그리고 연속성(sequence)이 설교에 새로운 의미를 더한다. 그 새로운 의미가 무엇일까? 적절한 설교 구상은 하나의 시간적 연속성에 근거한 구상으로 설교의 개요를 따라 말하기 보다 설교의 연속성과 움직임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연속성과 움직임이라는 두 용어는 이야기식 구성을 묘사하는 것이다.

만일 하나의 설교가 건축과학보다 못하지만 원예기술보다 낫다면, 우리가 어떻게 설교 기술을 배울 수 있는가? 분명히 중요한 것은 실제적인 문제이다. 만일 설교 한 편이 "나무와 같다"고 한다면, 어떻게 가지치는 기술을 갈고 닦는가? 이것이 단지 소수에게만 새로운 패러다임인가 아니면 이 설교학적 변화가 새로운 세기에까지 광범위하고 일어나는 운동이 될 수 있는가?

2) Fred Craddock의 As One Without Authority(1971)

지난 25년 동안 북미설교학회는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설교학 패러다임을 찾는데 고심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크래닥(Fred Craddock)의 첫 번째 설교학 저서 As One without Authority의 출판을 새로운 설교학의 출발로 여긴다. 이 책은 "우리 모두는 설교를 다루는 법정에서 수 없이 많은 의견들로 설교를 심의하였으며 그 결과 이미 선고가 내려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판정이 1971년에 나왔기 때문에 우리 중 얼마는 그 당시의 분위기를 잘 기억하고 있다. 크래닥은 이어 "이 작은 책은 다른 증언이 있을 때까지는 집행정지를 요구한다"고 말한다.

설교학에 영향을 준 이 작은 책은 성경해석학(본문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으로부터 신학용어(복음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거쳐 설교기술(어떻게 아이디어의 흐름을 조성할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다루었다. 크래닥의 특별한 관심은 설교자와 회중의 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청중이 설교자가 이끄는 설교 여행에서 그냥 방관된 상태에 있지 않고 그 여행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세계의 강단들이 이 주장에 귀를 기울였다. 크래닥이 발로 차 새롭게 열려진 문은 이제 더 이상 닫을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후기현대주의 사상과의 대결뿐 아니라 또한 성경의 내러티브 상실에 대한 재평가를 감안할 때 더 이상 그 문을 닫을 만한 돌쩌귀들은 없다고 본다.

2. 새로운 설교 이미지와 형태

 

크래닥이 열어 놓은 새로운 설교학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귀납적(inductive) 설교, 현상학적(phenomenological) 설교, 이야기(storytelling) 설교, 증언(eyewitness)으로서의 성경 설명, 그리고 설화체(narrative) 구성. 이와 같은 용어들은 설교가 무엇인지에 관하여 새로운 이미지와 새로운 정의를 이끌어 냈다: Davis의 나무, Craddock의 여행, R.E.C. Browne의 제스처, David Buttrick의 움직임, Henry Mitchell의 축하, Lucy Rose의 대화, David Schlafer의 연극, Paul Scott Wilson의 상상의 불꽃, Eugene Lowry의 구성(줄거리)

설교학에서는 새로운 설교 또는 새로운 설교 방법 등에 관하여 대화하고 있다. 굳이 이전에 사용하던 것과 다른 "새로운 것"을 찾아야만 하는가? 새로운 설교와 새로운 설교 방법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설교자의 입장에서 볼 때, 바쁜 한 주간의 목회에서 많은 설교를 준비하는 시간과 노력을 조절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이 절실히 요구된다. 오늘날 특별히 한국 개신교의 목사는 자신이 설교할 수 있는 적절한 회수보다 더 자주 설교한다. 매일 설교를 해야 하는 목사는 마치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하루살이와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설교자가 한 번에 새로운 설교를 만들 수 있는 최대한도는 다섯 내지 여섯 편이다. 어떻게 한 주간의 목회 사역에 필요한 그 많은 설교들을 성실하게 만들 수 있을까?

둘째, 변하는 시대와 문화(다원적 사회)에 따라 새롭게 변하는 인간의 의식 세계에 맞추어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점차 복잡한 사회 속에서 사는 청중들은 교육적인 설교 방법에 의해 여러 개의 대지들을 암기하도록 강요당하기보다는 단순한 형태를 원한다. 단순한 형태의 설교라도 다양한 청중들이 같은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각도에서 한 사물을 보는 드라마같이 최소한 3-4가지의 이야기들(노년, 장년, 청년 등을 위한)이 필요하다. 하나의 초점, 중심 주제를 중심으로 구성되는 설교가 필요하다. 현대인들의 단일 주제에 대한 주의 집중은 약 4분 정도로 20분 정도의 설교에는 준비된 3-4가지의 움직임으로 구성될 수 있다.

1) 과거의 설교 방법

우리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주된 설교 방법은 포인트 설교 즉, 설교의 대지를 첫째, 둘째, 셋째 등으로 구분하는 방법이다. 이 포인트 설교는 18세기 이성주의 영향을 받아 본문으로부터 화제를 추출하는 방법에 근거한다. 이 설교 방법은 먼저 설교할 특별한 주제를 다른 주제들로부터 분리(isolation)하여 과학적이며 이성적으로 관찰(observation)한 후 대지와 소지(points)를 추출하는 분류 단계(categorical)에 의존하는 교육적(didactic) 교훈 중심의 설교 방법이다. 특별히 이 포인트 설교 방법이 한국 개신교 설교자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그들이 설교 중심의 예배에서 설교가 지니는 기능을 청중들에게 교훈(edification)을 주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경험하였듯이 포인트 설교의 방법이 청중들의 삶의 변화를 일으키기보다는 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려는 교육적 기능에 치중하게 되는 주된 이유는 설교자가 포인트 즉, 논리적 개요를 따르기 때문이다. 이 논리적 개요를 따르는 설교는 단일 양식을 따르는 선적인 논리로 구성되기 때문에 설교 전체를 위한 연결성과 창조성이 결여되어 부분적이며 정적이고 과장된 설교를 생성해 내는 경향이 있다. 설교의 구조가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실제로 청중들과 함께 움직이기보다는 설교자의 논리에 의존한다. 마치 피상적으로 3개의 항목들 사이를 움직이는 연약한 전환표현들로 연결되기 때문에 한 편의 설교라기보다는 "작은 설교 세 편을 가까스로 풀로 붙여 놓은" 개요 중심의 설교라고 말할 수 있다. 요점들 가운데 연결점이 있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움직여 나가는 하나의 움직임이 없음으로 "마치 요점들은 판자에 박힌, 길이나 서로간의 거리가 같은 세 개의 대못"과 같다(Fred Craddock).

포인트 설교 형식을 짜집기식 설교라고 부르는 이유는 먼저, 설교자가 주제나 논제를 잡아서 적절하게 3가지로 자르고 그 다음, 그 부분들을 어떤 논리적인 순서에 따라 구성할 것인가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포인트 설교는 "건축과학적 사고와 구성 방식을 따르는 건축식 설교" 같다(Eugene Lowry). 또한 포인트 설교 방법은 정보제시의 성격을 띠게 될 수 있어 청중과 의사소통을 위한 본문의 이야기와 수사학의 구조 속에 있는 전체적인 의미의 흐름(movement)을 상실함으로 탐구력을 가진 청중들이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하여 관심과 흥미를 잃게 된다.

이와 같은 위험은 강해설교에도 따른다. 강해설교가 성경의 구석구석을 뒤져서 의미들을 발견하는데 창조적이지 못할 경우는 "개가 뼈를 씹듯이 성경 구절을 씹는 것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 될 수 있다(John Stott). 분석은 너무 많은데 답변은 너무 적은 경우, 지나치게 비인격적이고 명제적인 설교들은 삶과의 관련성이 부족하다. 이런 설교는 커뮤니케이션이 양쪽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한 쪽 방향으로만 움직일 때 일어난다. 또한 이전의 아이디어들이 소화되고 흡수되기도 전에 새로운 개념과 의무들을 청중에게 공급하는 설교는 계속해서 전달되는 내용을 따라잡을 수 없게되어 듣기를 포기하게 만든다.

많은 아이디어들을 사람의 머리에 주입시키는 것은 단지 물을 채워 넣는 것과 유사하다. 많은 시간을 책과 주석과 옛 설교자들의 설교 노트에서 물을 긷는데 보내지만 귀중한 자원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문제를 거의 고려하지 않는다. 청중의 머리는 열려 있지도 않고 비어 있지도 않다. 머리는 단단히 조여져 있는 뚜껑을 가지고 있어서 아이디어들을 억지로 집어넣을 수 없다. 마음이 그 소유자가 머리를 열 필요가 있음을 감지할 때 비로소 열린다. 그 때에도 아이디어들은 경험과 습관. 편견, 두려움, 의심이라는 층들을 통과하여 여과되어야 한다. 만일 아이디어들이 통과되고 있다면 그것은 설교자와 청중간에 피드백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2) 오늘의 설교 방법

새로운 시대를 위한 설교에는 설교 과정의 발전적인 본질을 제대로 평가하고 인식하는 새로운 이미지가 필요하다. 설교는 한 개념에서 다른 개념으로 이동해 가는 언어의 움직임이다. 형태에 있어서 책보다는 연극이나 소설에 더 가까운, 공간적이라기보다는 시간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event-in-time)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교사, 엔지니어링 과학자, 또는 건축가가 아니라 전문적인 기능을 갖춘 이야기꾼이다. 최상의 설교는 실체(reality)가 담긴 진짜 이야기와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설교는 이야기(The Story)라고 말할 수 있으며 설교자의 임무는 이야기를 형성하고 만들며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지 조직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설교자의 작업은 극작가, 소설가, 또는 텔레비전 작가의 업무와 관련이 있다.

청중들의 의식 속에 믿음을 심어 주기 위한 설교의 개념은 청중들의 의식을 통하여 전개된다. 인간의 마음은 카메라와 같이 작동한다. 설교자는 일련의 흥미 있는 광경을 찍기 위해 작업 준비를 하고 청중들로 하여금 그 광경들의 사진을 찍도록 권하는 사진기사의 조수와 같은 존재이다. 성경을 해석하며 청중이 이해할 수 있는 장을 발견한 후 청중의 마음 속 필름에 잡힐 수 있도록(형상이 떠오르도록) 설교자가 먼저 발견한 것들을 제시한다. 전개되는 설교는 생생한 감각을 가지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이해로 구성된 긴 영사 슬라이드와 같은 단일의 청사진과 같다.

설교의 움직임에는 사고, 이미지와 사건의 흐름 속에서 일어나는 의미가 중요하다. 먼저 객관적으로 관찰한 사실로부터 의미를 찾아 생각, 이미지, 사건의 흐름에 따라 전개한다. 마치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서로의 공통적인 실마리를 중심으로 주제가 흐르도록 한다. 현대인의 의식에 적절한 대화 방식의 관점으로부터 변화를 일으키는 언어를 사용한다. 청중의 의식 속에 신학적 의미를 형성하는 구조로 복음을 우연히 들게 하는(Overhearing the Gospel) 설교 전략이 필요하다.

3. 청중의 반응

설교를 들은 청중은 본문이 설명하려는 핵심(point)을 아는 것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설교자는 청중의 인식 변화로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본문의 의미를 이해시키고 부여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체험하게 한다. 이야기는 청중의 마음속에 반응과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씨앗을 남긴다. 설교에서 전달되는 이야기는 청중의 삶과 맺고 있는 포괄적인 연관성, 관련된 일상적인 경험들의 실체, 또는 어떤 새삼스런 보편적 실체를 드러낸다. 이야기는 이야기의 표면에 드러난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한 무엇을 상기시킨다. 이야기 속에서 일어난 사건 안에 인간의 보편적 경험이 축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청중은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이야기 속에 나오는 인물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야기는 다양한 기대와 판단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청중들로 하여금 최대한 방해를 받지 않으면서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도록 노력하게 한다. 그러나 설교에서 전달되는 이야기가 단순히 청중의 주위를 환기시키거나 잠시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설교자가 이야기 속에 나오는 모든 것을 현실에서 직접 경험해야할 필요는 없다. 청중은 이야기를 통하여 충분히 감정이입을 하며 그럴만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이야기는 설교자와 청중 모두에게 폭넓은 수용력을 가지게 한다. 이야기설교를 하는 설교자는 자신의 마음에 두고 있는 결론과 다른 결론을 고려할 가능성을 넓히며 청중은 설교자와 대립적인 태세를 취하지 않게 만든다. 청중은 덜 방어적이 되고 설교자는 덜 권위적이 된다. 이야기는 미학적인 즐거움을 줌으로 청중이 극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며 의심을 기꺼이 접게된다. 이런 이유로 이야기는 설교자에게 핵심적인 내용의 범위를 정하는데 더 많은 재량권을 부여한다.

 

II. 이야기설교 방법

 

1. 이야기 설교의 구성(Plot)

 

설교는 설교자가 먼저 묵상하여 감지된 모순, 즉 설교의 곤경상황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줄거리이다. 설교자가 느꼈던 흥분, 사로잡던 긴장감은 아마도 드러나지 않은 모순의 증거이다. 이 모순은 바로 해결점을 향해 움직여 가는 줄거리(구성)를 가진다. 설교는 줄거리를 따라 아직 공중에 떠 있어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복음을 비추어 해결해 주며 청중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이다. 실제로 설교는 언제나 가려움에서 시작하여 긁어 주는 쪽으로 옮겨간다. 이런 점에서 설교하는 것은 인간의 곤경에서 복음에서 나오는 해결점을 향해 옮겨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며 그래서 설교는 이야기 형태를 취하게 된다.

 

Eugene Lowry가 제시한 이야기설교의 5단계 구성은 다음과 같다:

 

1단계: 모순되는 문제 제기로 평형을 깨뜨림(갈등과 긴장 소개, 뒤집기; Oops 놀람) : 청중에게 모호한 문제를 제시함으로 그들을 설교의 주제 속에 참여시켜 그들이 늘 가지고 있던 생각 같은 평형감각을 뒤집어 놓는 단계. 2-3분 동안 문제를 다루는 설교의 가려운 부분이 청중의 가려움이 되어야 청중의 주의력을 사로잡을 수 있다. 청중의 관심과 사고는 심각한 문제를 만난 그 순간에 시작된다.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생동감이 넘치거나 위험한 현상보다 모호함을 더 강하게 산출한다. 모호함은 지적인 모호함으로만 이해되지 않고 실존적으로 느껴지는 정신적 모호함으로도 경험된다.

이런 점에서 이야기설교의 제목과 첫 문장은 "설교학적 누전"(short circuit)을 피해야한다. 설교 제목은 설교가 무엇에 대하여 말하려고 하는지를 궁금해하도록 모호하고 평형을 뒤집어 놓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제목이 설교의 결론에서, 즉 가려운 부분에서가 아니라 긁어주는 곳에서 나온 것이라면 설교의 첫 부분으로 거꾸로 되돌아가야 하는 어려움이 따른다. 설교의 첫 문장은 핵심적인 곤경의 상황이나 모순으로 나아가야 한다. 주의할 것은 모호함으로 향하는 방향은 제시하되 줄거리의 해결은 주지 말아야 한다.

 

2단계: 모순 분석(문제진단, 복잡한 구성; Ugh 긴장) : 뒤집어진 평형감각을 엄밀히 탐구하며 분석 또는 진단하는 단계로 가장 긴 부분이다. 이 단계에서 "왜 그런가?"를 물어보면서 근본적이고 중심적인 모순으로 직접 뛰어들어가야 한다. 설교 분석 과정의 목적은 문제가 발생하는 내적 동기의 영역을 파헤쳐서 어떤 치유책이 설정될 필요가 있는 동기의 배경을 드러내는데 있다. 동기는 극도로 복잡하며 행동의 선택에는 엄청난 내적 동기들이 얽혀 있다. 그러므로 적절한 분석을 하려면 행동의 단순성을 넘어서서 인과관계의 복잡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유를 아직 모르고 있는 긴장이 설교자에게 진단하면서 고뇌하는 기회, 곧 신학화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인간 상황의 다국적인 모호함으로 파고드는 구체적인 인식의 통찰력이 필요하다.

이 단계의 목적은 단순히 해결점에 다다르도록 하는 것뿐 아니라 해결의 준비가 전개되도록 해야 한다. 엄밀한 분석은 복음과 인간 상황의 상호관계를 결정한다. 설교자는 청중과 함께 분석의 과정을 경험해 나가야 한다. 3가지 방법이 있다: 1) 피상적인 분석에서 깊이 있는 진단으로 옮겨가기 2) 해결의 준비가 되도록 청중을 막다른 골목으로 세워 가기 3) 따라서 말씀이 선포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주의할 것은 분석과 진단이 자주 묘사나 예화로 대체되지 말아야 한다.

3단계: 문제 해결의 실마리 제시(복음에 의한 해결책; Aha 깨달음) : 역전의 원리를 적용하는 단계로 청중이 기대하고 있지 않았던 곳으로부터 도착하는 단계. 모든 것을 뒤집어 놓는다. 이 역전의 과정은 어떤 사람이 앉아 있는 자리에서 양탄자를 잡아 당겨 빼는 것과 같다. 역전의 원리는 4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1) 원인-결과의 역전 2) 변화된 원인의 역전 3) 변화된 가정의 역전 4) 변화된 논리의 역전. 복음과 세상의 지혜 사이에는 그 자체가 중요한 역전의 구성요소가 되는 근본적인 불연속성이 있다.

 

4단계: 복음 경험(제시; Whee 기쁨과 흥분) : 갑작스런 전환으로 듣는 상황과 더불어 말씀을 경험하는 것이 사건으로 발생되는 단계. 복음을 선포하는 실제적인 내용은 선포보다 앞서는 진단과 일치해야 한다. 2, 3단계의 진단과정이 해결의 실마리로 귀착되면 문제는 조명을 받아 밝아지게 되고 듣는 상황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기 위해 준비될 것이다.

 

5단계: 결과 기대(새로운 미래 투사; Yeah 환호) : 복음에 의해 새롭게 된 미래와 관련되는 단계. 해결의 실마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해결이 가능하도록 해줄 뿐이다. 설교의 결말의 마지막 국면은 복음을 통해 새로운 문을 열어주고,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준다.

2. 이야기설교의 구성 요소

 

1) 귀납적 접근

과거의 형태는 연역적(전제로 시작하여 그것을 설명하는)이었으나 현대의 형태는 귀납적(설명으로 시작하여 결론으로 유도하는)이다. 연역적 접근은 이미 확신하는 자들에게 좋으나, 귀납적 접근은 아직 결정을 하지 않았거나 적대감을 갖은 자들에게 더욱 좋다. 설교자들이 석의 과정에서 적용했던 창조적인 발견의 과정과 동일한 방법을 따라서 설교가 형성되어야 한다. 청중이 설교자가 경험한 것을 함께 공유하고 결론 부분에서 설교자의 탐구/발견과정에 동참하여 그들의 마음과 삶 속에 어떤 해답을 얻는다(Fred Craddock).

그러나 이야기설교는 귀납적 접근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귀납법이 다소 긴장감을 줄 수 있지만 놀라움은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역법은 일반적으로 긴장과 놀라움 모두를 주는데 부족하다. 그러나 이야기는 긴장과 놀라움을 모두 제공한다. 청중은 설교자가 말하는 것을 일일이 생각해 가며 듣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설교 한편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는 어떤 장면을 떠올리게 하고, 사건을 환기시키고, 사건의 추이를 묘사함으로 논리적으로 잘 짜여진 주장보다 더 큰 호소력을 갖는다. 이야기에서 시각적 청각적으로 묘사된 세부사항들로 인하여 청중은 핵심을 놓칠까봐 설교에 더욱 주목하며 매달리게 된다.


2) 이미지

설교에서 이야기와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이 증명하고 있다. 귀로 듣는 것에 의해 생각을 만들고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하던 매스 미디어 시대는 이미 지나 갔다. 21세기는 청중들이 컴퓨터와 TV 등 멀티 미디어의 영향력 아래에서 보는 것에 의해 의존하고 있다. 생생하고 살아 있는 묘사와 움직이는 그림을 그려주지 못하는 설교는 청중을 상실하게 된다. 오늘날 설교의 과제는 스피드와 색채, 그리고 변화로 경쟁하는 문화 속에 사는 청중들의 마음속에 어떻게 다가갈 수 있는가를 다루는 것이 되었다.

요점(points)보다는 이미지(images)로 생각하는 21세기의 세대를 위한 설교 형태는 특별히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고착시키며 쉽게 기억하게 하며 쉽게 자신과의 일치감을 갖게 한다. 예수님의 대화는 일상적 일들과 실제들과 연관된 이야기들로 가득하였다. 말씀을 현대인들에게 적용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한정하거나 속박할 필요가 없다. 설교자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 직장, 버스 안, 화장실, 걷는 길, 자연, 아이들, 학교, 설거지를 하는 중 등 시공간을 초월하여 적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미지도 시공간을 초월하여 제시된다.

이미지는 어떤 인상이 마음에 새겨져 있는 것으로 사물로 그린 그림, 말로 만들어진 그림, 혹은 언어의 회화라고 말할 수 있다. 설교에서 이미지를 제시하라는 것은 정확한 표현을 하라는 것이다. 막연하고 모호한 표현이 아니라 자신에게 적용된 삶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야기는 이미지와 갚은 관련이 있다. 그 이유는 이야기가 이미지를 가장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5년 이상 설교학자들은 점차적으로 설교자의 상상력이 가지는 중요성을 발견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로 인해 이미지가 인간의 의식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글들이 많이 나왔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21세기에도 계속적으로 이미지가 설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예상하게 한다. 이미지는 청중의 마음속에 신학적인 틀을 형성하는데 영향력을 미쳐서 이미지를 계획 하에 조심스럽게 사용하면 설교자가 신학적 이해를 이룰 수 있다. 이미지는 어떤 인상이 마음에 새겨져 있다는 뜻으로 언어에 의해 청중에게 일어나는 마음과 상상의 그림을 말한다. 이런 이유로 이미지를 사물로 그린 그림, 말로 만들어진 그림, 혹은 언어의 회화라고도 한다. 설교에서 어떤 이미지는 사진을 끌어낸다. 설교에서 이야기는 시간적 행동이 포함되는 마음의 그림 (활동 그림)을 가져온다. 이미지와 이야기는 모두 청중으로 하여금 비유적인 특징을 반영하여 자신들의 신앙에 관련하여 생각된다.

이미지는 설교에서 성경 본문을 읽으면서 머리 속에 나타나는 그림을 좀더 보완하고 섬세하고 다듬어서 분명한 그림으로 기억되게 한 후 그림의 내용을 그림을 그리듯이 전달하는 영상적인 방법을 말한다. 그러므로 설교에서 이미지를 제시하라는 말은 정확한 표현을 하라는 것이다. 막연하고 모호한 표현이 아니라 자신에게 적용된 삶을 분명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미지를 제시할 때 어휘를 명백하게 그러나 평범하고 직설적인 표현 방법을 사용할 것, 구체적인 명사가 있으면 추상명사는 사용하지 않을 것, 즐거웠다는 표현보다는 다른 사람이 적용의 삶을 관찰할 때 즐거웠다는 체험을 하도록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좋은 문학작품이란 독자가 그 작품 속에 담긴 체험에 동참할 수 있도록 보편성 있는 특질이 스며있게 하는 작품이다. 이런 보편성을 종교적으로는 신앙의 영향력이라고 말한다. 시를 쓰는 것은 그 자체가 가치 있는 체험이다. 즉 시작(詩作)한다는 말은 무엇에 관해 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시라는 형태로 글을 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설교자에게는 성경을 통해 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문학적인 양식으로 삶을 객관화하는 적용의 훈련이 필요하다.


3. 이야기설교의 준비

 

어떻게 갈등-->복잡화-->갑작스런 전환-->예상되는 결론과 같은 구성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설교를 준비할 것인가? 전형적으로 이야기설교를 준비하는 일은 광범위하게 집중하기(attending), 상상하기(imagining), 그리고 만들기(shaping)의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1) 주의하여 살펴보기(Attending)

해설자가 아니라 훌륭한 수사관의 위치에 서는 단계이다.

첫째, 성경 본문에 깊이 빠져라: 설교를 준비하면서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성경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설교는 말하기 전에 먼저 듣는 일이다. 충분히 듣는 설교를 준비하는데 가장 좋은 접근은 주일 아침이 다가오고 있음을 잊어버리는 것이다. 단순히 주일 설교를 만들기 위한 수단과 목적으로 성경을 보려는 합리주의를 버려라.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처음으로 나타나는 장애물은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성경본문에서 효과적이고 익숙한 표현을 찾아내는 것으로 설교 준비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미리 대답을 마련해 놓고 유혹하는 전문가(주석가)들에게 의지해서 자신이 미처 던져보기도 전에 그리고 던져보지도 않은 질문들에 대해 아는척하는 태도를 버려라. 무엇보다 먼저 성경에 대해 열린 태도를 가지고 성경에 직접 귀를 기울이라. 미처 생각하거나 의도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을 발견할 자세를 가지라. 설교를 준비하려는 의도를 잠시 잊고 성경 본문 속에 깊이 빠져라.

본문을 큰 소리로 반복해서 읽어라. 본문의 소리를 들으면서 본문을 보라. 생각은 귀를 통하여 그리고 눈을 통하여 각기 다르게 작용한다. 조용히 생각하는 것과 말로 표현하는 것은 매우 다른 지각과 인식의 실체들이다. 소리를 내어 읽을 때 한 구절의 의미를 생각하며 목소리를 조절하라. 여러 가지로 번역되고 다른 표현들을 사용한 성경들을 사용하라. 이것은 성경에 좀더 귀를 기울이기 위한 것이다. 아직은 성경의 단어나 구절 연구는 잠시 미루고 성경본문을 전체로 받아 들이라. 그리고 읽은 것을 자신의 말로 말해보라. 지금은 성경과 대면하며 대화를 준비하는 단계이지 아직 이야기를 생각할 때가 아니다.

 

둘째, 갈등을 일으키는 것들을 찾아라: 본문에서 쉽게 흐르는 것 같지 않는 이상한 것, 성경본문의 이슈, 골칫거리 문제를 일으키는 예수의 견해, 바리새인들이 이해해야 할 말 등을 찾아라. 모순되는 문제를 제기로 균형 감각을 깨라. 속담과 같이 상식을 뒤집듯, 동전을 뒤집듯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라. 처음 성경을 접하는 새 신자의 눈과 생각으로부터 나오는 문제들이 가장 창조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대답을 구하려고 본문을 살펴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찾아내기 위해 살펴보는 것이다. 쉽게 받아들인 것, 일상적으로 인정된 사실, 안이하고 희미한 지식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타성을 깨는 단계이다. 그 이유는 그러한 것들로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셋째, 자신을 놀라게 하라: 가능성 있는 개념과 이해를 극대화하라. 밑줄 쳐진 중요한 부분들보다 밑줄이 쳐져 있지 않은 부분들에 주의하라. 가능한 본문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기 위해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라. 실제로 설교할 단서를 '그것은...이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그것은...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더욱 쉽다.

*공통점: 열린 태도 1) 본문을 새롭게 경험하기 위해

2) 개방적 태도와 주의로 이상한 것을 찾기 위해

3) 들을 수 있는 위치를 위해 눈, 귀, 마음, 생각을 열어라.

2) 상상하기(Imagining)

훌륭한 예술가의 위치에 선다. 주일을 향하여 의도적으로 움직이며 밑그림을 그리는 단계.

첫째, 중요한 이슈, 이미지, 사건들을 정하라: 본문 속에 무엇이 있는가?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 특별한 갈등에 집중하기 전에 본문의 일반적 경향들(자주 나타나는 사상, 이미지, 이야기의 흐름)을 드러낸다.

둘째, 가능한 연결을 찾아라: 설교자의 관심이 청중에게로 옮겨진다. 주일 설교가 모습을 드러내고 본문이 받침이 된다. 청중에 대한 주석으로 본문과의 연결 시도 1) 간지럽게 한다(itch) 2) 긁어 준다(scratch) 3) 본문 4) 청중

셋째, 청중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로 나서라: 청중의 입장에서 본문을 이해하고 본문의 입장에서 청중을 이해한다.

3) 구체화하기(Shaping)

첫째, 설교의 초점과 전략을 정하라: 초점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은 본문에서 중요한 것, 성경의 관심, 가장 먼저 알려야할 사항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하는 요구에서 나온다. 본문의 이슈가 직접적인 형태로 충분히 드러나지 않은 경우 특정한 본문의 앞뒤 문맥을 읽어본다. 또는 그 말씀을 처음 들었던 사람들의 반응을 상상해 본다. 주일예배에 참석한 성도들의 반응이 어떨지 떠올려본다.

테마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것은 설교의 내용을 한정시키는 경향이 있다. 설교의 목적이 교훈적인 방향으로만 한정된다. 사실을 전하고 그 의미를 분명히 한 다음, 현실에 적용시켜 보고 다시 부연하는 식으로 진행되어 설교 평가는 의미를 잘 전달하는 인상적인 문장 여부로 결정된다. 테마를 빨리 결정하면 설교가 보고서 같이 되어 청중의 감흥을 차단한다. 그 이유는 테마 중심의 설교는 설교자를 단지 교훈과 해답이 무엇인가를 알아보는 견지에서만 사고하도록 제한한다. 테마 문장을 작성함으로 설교문을 만들 경우 연역적으로 결론을 내려버리는 경향이 일어난다. 결론을 내렸다는 안도감에 안주하지 말고 다른 가능성들에 대하여 마음의 문을 열어놓음으로 설교자 자신이 가진 능력을 극대화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먼저 설교의 결론을 어떻게 내릴까가 아니라 어떻게 질문을 던지며 설교의 의도를 어디에 둘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전략: 주장, 이미지, 이야기 선택]

둘째, 극적인 전환을 인식하고 복음을 제시하라: 성경본문에 전환점이 어딘가에 분명히 있음을 주지한다. 다른 길을 취하게 하는 힘, 깨는 논리, 뒤집히는 이미지, 갑작스럽게 굽어지는 이야기의 길. 급한 변화를 복음과 연결하라.

복음의 기쁜 소식을 엮어내려면 설교자만 만족시키는 훈계로 끝나면 안 된다. 일반적인 설교 형태는 복음을 직접 언급한 다음 복음이 내리는 명령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식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복음이 직접적인 설교가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제시될 때 청중이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대답과 동시에 복음을 접하게 된다. 복음은 청중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타나 있고 이야기를 통해 더욱 강조된다.

셋째, 설교의 전개 과정을 계획하라: 갈등(conflict)-->뒤 엉킴(complication)-->갑작스런 방향 전환(sudden shift)-->예상되는 결론(unfolding)

복잡화의 필요성은 설교자가 단순한 행위에서 그 이면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동기로 이동할 때 불가피하게 일어난다. 동기에는 밀물과 썰물처럼 들고남이 있다. 동기를 둘러싼 상황은 유동적이고 복잡하며 가치라는 측면에서 보면 때로 모호하기도 하다. 따라서 행동에서 동기로 이동해 가는 것은 줄거리의 복잡성을 증가시키는 주요 방법이 된다. 그러나 시시콜콜 동기를 캐내면서 줄거리의 흐름을 복잡하게 이끌어 갈 필요는 없다. 청중은 설교자가 얼마나 예민하게 분석해 낼지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인간의 행동 뒤에 숨어 있는 원인들을 성급히 일반화하려고 손쉬운 분석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야기가 단지 설교를 위한 이야기로 여겨진다면 설교가 궁극적으로 이야기하려는 것을 신뢰할 수 없게되어 의심을 받게 된다. 청중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보다 설교자가 그들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고 믿기 시작할 때는 일종의 친교가 형성된다.

넷째, 설교의 목표를 정하라: 주일 설교로 어떤 결과가 일어나길 바라는가? 경험과 행동의 변화

4. 이야기설교의 형태

 

1) 이야기 진행(Running the story)

가장 간단하고 기본적인 형태로 성경본문의 이야기를 본문 자체가 제시하는 실제 내러티브의 흐름 속에서 구성하는 것

2) 이야기 보류(Delaying the story)

본문이 설교의 이슈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는 경우, 즉 본문이 매우 짧거나 간단하여 청중의 현재 관심사를 꺼내면서 그 해결책을 구하기 위해 본문으로 관심을 돌리는 경우 또한 본문에 제시된 기사가 너무 잘 알려져서 그것의 놀라움과 힘을 제대로 전달할 수 없을 경우에는 본문 제시를 보류하고 다른 소재를 가지고 설교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

3) 이야기 유예(Suspending the story)

가장 많이 사용되는 형태로 이야기 흐름 선상에 있는 본문을 떠났다가 설교를 마무리 짓기 위해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는 기법으로 단지 어떤 단서를 얻을 때까지 중심이 되는 성경 이야기의 진행을 잠시 멈추는 것이다. 이야기 진행상 다른 무엇이 돌출할 수 있는 경우, 즉 본문이 제시하는 혼란을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 현재의 상황이나 다른 성경본문으로 돌아갈 수 있다. 또는 본문의 앞뒤부분이 해결의 단서가 될 수도 있다.

4) 이야기 전환(Alternating the story)

이야기 흐름이 부분별로 삽화별로 또는 짤막한 사건들로 나누어지면서 다른 소재들로 풍성해진다. 이야기 전환으로 성경본문으로 직접 가지 않고 본문을 통해 성경 이야기 뒤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로 들어간다. 청중이 등장 인물을 다른 분위기 속에서 만나보도록 인도할 수 있다.

위에 소개된 4가지 형태 중 어떤 방법으로 이야기설교를 설정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다음의 3가지를 질문한다.

 

첫째, 본문의 초점(focus 또는 issue)이 무엇인가?

둘째, 가장 중요한 설교의 전환(turn)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셋째, 설교의 기본 의도(aim)는 무엇인가?

어떤 방법을 사용할 것인가는 주어진 성경 이야기의 초점과 전환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성경본문으로부터 먼저 찾아야 할 것은 교훈이 아니라 초점이다. 초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전환에 대한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어떻게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며 어디에서 이 해결책이 발견될 것인가, 그것은 본문 안에 있는가 등 이런 질문들에 신속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답하게 되면 최종적으로 구체적인 메시지 형태가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마지막으로 명확하게 설정된 설교의 초점과 전환이 어떻게 설교 의도를 분명히 하는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5. 이야기설교 방법

 

1) 풀어 말하기(Paraphrasing)

첫째, 한 번 더 다룸으로써 본문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기 위하여

둘째, 이야기가 처음에 보였던 것처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전해 주기 위하여

셋째, 청중의 기대가 이후의 면밀한 마무리로 가게끔 시작하기 위하여

설교자가 첫 문장을 수식이 많은 문장으로 시작하면 청중은 즉시 시간이 얼마 걸릴 지부터 계산한다. 설교가 설교자의 견해가 배제된 바꿔 말하기로 시작한 후 청중은 잠정적으로 계속해서 들을 것을 결정하면 그 다음 상세한 묘사가 가능하다. 청중이 본문에 대해 의아해하면 이제 설교자는 이야기 진행을 지연시키거나 더 나아가 일시적으로 우회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모든 것은 청중이 이야기 안으로 들어온 이후에나 가능하다. 미리 앞질러 시도하면 청중을 헤매게 할 우려가 있다.

2) 설교자의 위치

첫째, 등장인물의 내면에서 둘째, 이야기 안에서 셋째, 등장인물을 바라보는 넷째, 이야기 자체를 바라보는 다섯째, 이야기로부터 떨어져서

성경의 이야기를 토대로 설교를 할 경우, 두 번째와 다섯 번째 시점이 적절히 섞일 때 명료하고 설득력 있게 된다. 이런 설교의 신뢰성은 설교자가 청중들을 주요 등장인물의 내면으로 끌어들이는 여부에 달려 있다. 등장인물과 시선을 같이 하기 위해서는 등장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가야 한다. 등장인물의 내면에 들어가게 되면 같은 편이냐 반대편이냐는 양극단의 한 쪽에 서려는 경향을 극복하고 등장인물의 행동에 대해서 성급한 판단을 유보하게 된다. 외부에서 바라보았을 때와는 달리 놀라울 정도로 다른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밖에서 행동을 보는 것이 아니라 동기를 이해하게 되며 관용을 베풀 수 있게 된다. 행위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면 동기는 더욱 주관적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확실한 단정을 내릴 수 없다. 그러므로 설교에서 어떤 행위를 비난하기 전에 그 행위를 친한 친구가 했으면 어떻게 했을지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릇된 행동 이면에 놓인 훌륭한 동기를 제시하면 설교의 긴장이 고조된다. 선택의 기로에 선 청중은 어디에 서야할 지를 알게된다.

이야기설교에서는 설교자의 입장에 따라 위치 변동이 용이하다. 단순히 이야기를 함으로 설교를 시작하면 청중은 설교자와 성경 한 부분의 대화를 엿듣는 것 같은 처지에 놓인다. 이야기를 말하는 힘은 부분적으로 돌려 말하는 감각에 있다. 이것은 거의 청중을 속이는 것 같기도 하다. 청중이 더 많이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설교자가 바로 청중에게 고개를 돌렸을 때 청중과의 의사소통에 충격을 줄 수 있다. 청중은 먼저 그것을 눈으로 알게 되고 그 다음에 감지하게 된다. 이야기 속에서 진행하는 것과 그것을 논평하는 것은 다르다. 후자의 경우는 의사소통의 방향을 조금씩 달리할 때 사용된다.

성경에 대해 아무 질문도 던지지 않고 그저 말하기만 한다면 그 설교는 긴장감을 잃고 만다. 본문에 대해 의문을 갖는 과정은 다른 광범위한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설교자가 자신이 묻고 싶어하던 것을 과감하게 물어볼 때 많은 청중은 안도감을 느낀다.

이야기설교에서 설교자는 대화와 연기를 사용할 필요가 있다. 한 번 혹은 두 번까지도 등장인물의 말을 직접 인용하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그 다음에는 편집자로서 "그가 말했다'라고 하지 않는 경우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전환(Transition)을 위하여는 평서문 형태의 진술보다는 질문이 효과를 나타낸다.

3) 제목 정하기

이야기설교에서 제목은 정적이거나 원론적인 문장으로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제목이 최소한의 단서는 제공해야겠지만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 바람직한 제목은 갈등 제시와 그것의 해결에 청중을 동시에 참여시킬 수 있는 참신한 것이어야 한다. 주제에 관한 어떤 것도 폭로하지 말라. 갈등의 기미가 보이는 제목을 제시하라. 선언적인 의도가 요약된 한 줄의 제목이 필요하다. 독특한 제목은 T.V. 광고가 나올 때마다 설교도 같이 떠오르길 바라는 마음으로 정하라.

제목은 한 단락의 설명을 필요로 한다. 1) 중의적인 단어를 사용하도록 광고를 지속적으로 유심히 보라 2) 설교의 핵심 단어에 대한 동의어를 찾아 보라(성스러운 것을 표현하기 위해 세속적인 용어를 사용한다) 그 두 번째 용어가 활용될 정황을 상상하고 그 용어와 연관된 경구를 찾아낸다. 그러나 제목은 다른 상황과 철저하게 관련이 있어야 하며 설교에서 시도하려고 하는 것과 정확히 부합되어야 한다. 부정적인 표현보다는 긍정적으로 표현한다. 좋은 제목은 설교가 시작되기 전부터 내용을 드러내지 않고도 문제의 해결책을 암시할 수 있다. 설교자의 역할은 잘된 작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환기시켜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