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를 위한 예배  

  

어쩌면 다음의 질문들이 우리에게 약간의 놀라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의 교회는 주일 예배에서 교회력을 따라 성서일과를 사용하는가? 복음서를 봉독할 때 예배자들이 일어서는가? 어린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드리는 주일 예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헌금위원들이 헌금 접시를 앞으로 가지고 나갈 때 예배자들에게 어떤 신호를 주는가?

주일낮 예배에서 점차 평신도가 인도하는 대표기도 순서가 생략되고 있는 경향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고백기도를 침묵으로 진행하는 것은 어떤가? 설교, 헌금, 그리고 광고 순서의 바람직한 위치는 어디인가?                                      

때때로 위와 같은 문제들을 다룰 때 예배에 대한 개인적 차원과 공동체적 입장 사이에 균형을 이루는 것이 쉽지 않다. 우리는 자신에게 이미 익숙한 예배 방식을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점이 예배의 변화를 시도할 때 고려되어야 한다. 예배에 대한 새로운 생각이 있다하더라도 예배의 변화는 조심스럽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새로운 예배에 대해 생각할 때 최근 각 교단의 예식서와 교회들의 실제적인 예배에서 많은 변화의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예배의 변화가 그들이 바라는 방향을 제공함으로 즉, 교인들의 예배 참여를 증가시키고 성서적이며 역사적인 예배의 뿌리를 회복함으로 흥분을 일으킨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새로운 예배에서 나타난 변화가 종종 그 본래의 예배 표현이 부족함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예배 갱신은 개 교회들이 사용한 후에 따르는 예식서에 대한 비평과 개정을 필요로 한다. 아무리 잘 준비된 성서적, 역사적, 세계적, 현대적, 그리고 한국적인 예배를 드린다해도 여전히 새로운 질문들과 가능성들이 일어난다. 물론 그렇게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은 우리가 기계적으로 행하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관습과 중요한 전통도 단순히 반복됨으로 끝나지 않는다. 모든 예배는 언제나 모든 교회에서 각기 드려지는 독특한 것이며 실제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새롭게 경험되는 영적인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한국 성결교회에서 제정되어 실행되어온 예배, 그리고 우리의 예배 생활로부터 나온 예배에 대해 계속 대화를 나눌 필요가 있다. 우리 예배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에 관한 대화가 지금 시작된 것은 아니며 또한 여기에서 끝나서도 안될 것이다.   

최근에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은 성경적 통전성 회복이다. 어떻게 복음의 개인적인 차원과 공동적인 차원을 연결할 것인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개인과 동시에 세상에 전할 것인가? 어떻게 예배 공동체로 모인 자들이 예배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세상에서 그 하나님을 증거해야 할 선교적 책임을 준비하게 할 것인가? 우리의 예배가 개인뿐만 아니라 그들이 생활하는 사회까지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는가? 이와 같은 질문들은 한국 교회의 예배 갱신이 공동체 예배를 회복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함을 암시한다.  

    

예배의 공동체성  

양적 성장을 향한 한국 교회의 끊임없는 열정은 주일 예배의 공동체성을 상실하게 하였다. 바른 예배가 없이 사람들을 모으기만 하는 우리의 집회(예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예배는 매우 개인주의적이며, 사유화되고, 주로 종교적인 욕구를 찾는 자들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대형 교단에 속한 교회의 소속감이나 대형 교회에 속한 교인들의 소속감은 더 이상 바른 예배를 위한 필수조건이 아니다. 아직도 교인들의 유동성은 높다. 과거와 같이 사람들은 여전히 교회를 찾아다닌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교회의 겉모습에 빠지지 않는다. 그들은 공동체를 형성하는 바른 예배를 통하여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다.  

20세기 우리의 예배에서 무시된 것은 예배의 공동체성이다. 개인주의적 구원에 대한 강조가 복음의 공동체적 성격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듯이 개인적인 구원이나 목적을 강조하는 예배도 공동체의 사명을 희생할 수 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함께 모인 자들은 공동체 예배를 통하여 새로워져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세상으로 보냄을 받는다. 그러므로 이사야가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통해 새로워져 하나님을 위해 세상으로 간 것처럼, 예배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한 증인이 되도록 선교 공동체를 형성한다.   

예배의 공동체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예배의 기본적 내용, 구조, 형식을 성서적, 역사적, 그리고 신학적 통일성에 근거하여 새롭게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첫째, 예배 갱신은 많은 시대의 경험과 역사적 전통이 상실되지 않고 보존되는 예배의 구조를 회복해야 한다. 예배 갱신의 신학과 실제는 서구의 예전 전통에 의해 깊게 뿌리를 내리고 형성되었다. 그리고 이 서구의 예배 전통은 1세기의 교회 역사에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러므로 예배 갱신에 관심을 가진 자들은 우리의 예배가 초대교회의 예배와 동시에 세계교회의 예배에 빚을 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예배가 초대교회가 물려준 예배의 공통성과 동시에 세계교회가 경험하고 있는 예배의 다양성을 추구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어떤 시대의 예배보다 더 많은 공통성을 지닌 초대교회의 예배를 회복하려는 노력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웨슬리의 예배신학과 상치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 갱신을 위한 신학은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의 예배보다 초대교회의 예배에 기초해야 한다.   

우리가 초대교회의 예배로부터 회복할 수 있는 것은 예배의 4중 구조--날마다 모여, 사도의 가르침을 받고, 떡을 떼고,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세상으로 나가는--이다. 초대 교회는 예배를 하나님에 의해 부름을 받은 공동체의 모임으로 이해하였다. 그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함께 모일 때 하나님의 백성들로 아버지의 집에 초청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함께 행할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함께 떡을 뗌으로 서로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로 연결됨을 경험하였다. 그들은 예배를 통해 최고의 사도 공동체가 되어 성령의 능력을 받아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도록 세상으로 보내진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예배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경험으로부터 그리고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로서 그의 증인이 될 것을 다짐한다. 예배는 다양한 사람들을 한 곳에 모아 그리스도의 지체로 변화시켜 공동체를 만든다.  

둘째, 예배 갱신은 선교 공동체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초대교회의 예배와 용어들은 예배가 선교적인 확신을 뒷받침한다. 초대교회는 4세기까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사건을 “Mass"라고 불렀다. 이 용어는 저(低) 라틴어(Low Latin; 고전 라틴어가 아닌) Missa(”보냄“)로부터 왔다. 그러므로 예배의 본래 의미는 보내는 의식과 관계가 있었다. 초대 교회의 의식들은 예배자들이 하나님의 일군들과 그리스도의 증인들로 세상으로 보내지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A. D. Muller가 말한 것처럼 ”[예배]에서 세상을 밝힐 빛이 점화된다.“ 그러나 중세기에 와서 예배의 선교적인 관심이 교회 내에 속한 자들의 구원을 위하여 축소되기 시작하였다. 이런 예배의 변화는 복음을 축소하는 결과를 낳았다. 21세기의 문턱에 서 있는 한국 교회는 1세기의 교회가 직면하였던 것과 같은 도전을 맞이하고 있다. 오늘 우리는 초대교회의 예전이 지녔던 선교적 의미를 회복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 우리는 예배 갱신을 통하여 급속도로 변하고 있는 사회 속에서 어떻게 교회가 선교적인 교회가 될 수 있는지를 발견해야 한다.  

셋째, 예배 공동체의 참여가 확대되는 방향으로 예배의 내용이 갱신되어야 한다. 우리 예배의 역사는 예배가 성직자의 역할에 의해 지배되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주일 예배에서의 회중의 역할이 찬송을 부르고, 교독문을 읽고, 사도신경이나 주기도문을 암송하는 것에 제한되었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바람이 우리의 성전 안에 불기 시작하면서 성직자의 역할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점차 예배는 성직자가 아니라 모든 예배자들에게 속하고 관계된 하나의 공동체 행위로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주일 낮에 드리는 예배를 “공예배”로 부르는 이유는 그 예배가 개인이나 몇 사람에 의해 지배되어 사유화된 예배가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참여하여 역할 분담을 함으로 이루어지는 예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21세기를 위한 예배갱신은 종교개혁 때와 같이 예배를 탈성직자화하여 그 예배를 하나님의 백성들(예배공동체)에게 돌려주려는 것이다. 공동체 예배에 담긴 기본적인 예배 이해의 하나는 예배(liturgy)라는 단어가 원래 헬라어(leiturgia)가 암시하는 대로 “사람들의 일”(the work of the people)이라는 것이다. 헬라어 “Laos"는 “하나님의 백성” 즉, 전문인에 반대되는 일반인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의미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의 예배 이해에서 어느 것보다 더욱 의미심장한 변화 한 가지가 있었다면 그것은 평신도에 관한 새로운 이해이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예배를 실제적으로 계획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참석하는데 그들 나름대로 역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예배에 관한 대화에도 그들 나름대로 역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바람직한 예배 갱신의 의도이다. 이 시대에는 예배의 균형을 계획하는데 중요한 여러 그룹들에 관한 관심들이 너무 많다. 이런 대조적인 그룹들에 부자와 가난한 자, 남자와 여자, 어린이와 어른, 시골사람과 도시인, 작은 교회와 큰 교회, 지식인과 문맹인, 북도와 남도, 그리고 총회와 신학교 등이 포함된다. 우리는 이런 관심사들을 알고 있으나 또한 그 모두를 해결하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공동체 예배 계획  

수년 전 Life Magazine과 다른 언론들은 일요일 오전 11시를 한 주간의 가장 차별화된 시간으로 언급하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주일 예배 시간을 한 주간의 가장 지루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많은 사람들에게 예배는 마치 관중을 끌기 위한 스포츠와 같이 자신들의 기호에 맞는 것을 선택하라고 경쟁하는 것 같다. 많은 예배가 “나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예배에서 나와 내 가족이 얻을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내 교회가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 못한다면, 나는 다른 교회로 갈 것이다.”  

예배에서 관중은 없다. 하나님은 마음, 영, 힘, 생각을 다해 때로는 조용하게, 때로는 큰 소리로, 때로는 자연스럽게, 때로는 형식을 갖추어서 축하하도록 우리를 부르신다. 예배는 기쁨과 슬픔, 두려움, 혼동, 분노 가운데서 생명으로 이끄는 축하이다. 축하는 위로하며 문제를 직면하게 한다. 예배는 삶의 모든 차원, 생존의 모든 면을 축하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의 일(연기)과 같다.   

그렇다.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는 일” 또는 그들이 맡은 역할을 하는 연극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예배위원들의 조그만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얼마나 자주 예배가 목사에 의해 만들어지는가. 많은 사람들의 생각에는 예배를 효과적으로 인도하든 그렇지 않든 아직도 목사가 유일하게 중요한 예배 인도자이다.  

이 글은 회중이 예배에 참석하도록 계획한 다양한 방법들을 제공한다. 바람직한 예배는 준비, 바라기는 8주에서 10주정도 이른 준비를 필요로 한다. 성서일과를 따르면 가능한 일이다. 다음의 예배 안내는 이른 계획에 도움이 될 것이며 동시에 독자 자신의 창조적인 계획을 자극할 것이다. 먼저, 적극적이며 자극적인 축하를 계획하기 위해 예배에 관한 신학적이며 실제적인 개념 이해를 생각해보자.  

  

신학적 이해  

  1. 키에르케고르(Soren Kierkegaard)는 예배 장면을 연상하며 다음과 같이 예배를 드라마와 비교하였다.  

  드라마

  예배

  키에르케고르의 비유 

  관중  

  회중

  예배에 종사되는 하나님 

  배우  

  목사, 예배위원 등

  예배에 관여되는 회중 

  감독    

  하나님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 

 키에르케고르의 생각에 의하면, 그리스도 안에 계신 하나님은 성령께서 예배 시간뿐 아니라 우리 삶의 모든 시간에서도 위로하시며 문제를 직면케 하심을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신다. 시편 23:6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철저하게 연관됨을 설명한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경찰견이 범인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것처럼.  

2. 이사야 6:1-8은 성서적 예배 장면을 제공한다. 그 성경 구절을 조심스럽게 그리고 종종 읽어 보라. 이사야가 경험한경배(adoration), 고백(confession), 감사(thanksgiving), 그리고 헌신(dedication)의 흐름에 주의하라. 예배는 우리와 더불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시작된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3절)” 그 다음,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 자신이 누구인가를 보게 된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5절)” 이사야는 백성의 죄를 고백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죄를 느꼈다. 고백은 용서와 감사로 인도되었다: “보라. 이것(숯불)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7절)” 그리고 마지막으로 깨끗함을 입고 새로워진(완전해진 것이 아니라) 이사야가 자신의 사명을 확인한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8절)” 물론 감사와 헌신 사이에 관중이 아니라 참여자로서의 모든 회중에게 속하는 말씀 선포(proclamation)가 온다.  

 

실제적 적용  

삶을 변화시키는 예배는 모든 나이 그룹에 대한 상상력, 창조력, 민감성을 요구한다. 우리는 예배에 관여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 심지어 하나님을 포함하여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고 오히려 성가시게 구는 자들까지도 모두가 참여하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사건이 매 주일마다 일어날 것을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러 오는 이유를 우리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는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러 오지 않는 이유만 알뿐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제외한다면 어느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포함한다면 우리는 모든 이에게 책임이 있다.  

 

1. 예배 준비  

언제부터 그리고 어떻게 예배를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너무 다양하다. 예를들어, 성경을 봉독할 자가 아프다든지 예배위원 중 한 사람이 예배에 참석할 수 없는 일이 생긴 경우에는 예배 시작 몇 분전에 준비가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상적인 예배 준비는 주초에 시작된다. 예배위원들은 교회력과 성서일과에 따라 예배의 주제에 대해 의논하고 부를 찬송 등을 선택한다. 예배 준비는 주중에 진행되는 성경공부나 예배 전에 진행되는 교회학교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각 가정에서의 예배 준비는 토요일 저녁에 옷을 다리거나 구두를 빤짝빤짝하게 닦아놓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어떤 교회들은 돌아오는 주일에 사용할 공과교육을 하며 예배를 준비한다. 다른 교회들은 토요일에 주보를 만든다. 예행연습을 하는 교회도 있다. 가족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찬송을 부르면서, 또는 아침 식사시간에 아이들에게 읽은 성경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예배를 준비할 수 있다. 어떤 준비는 성전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기도를 하면서, 교회로 모이는 사람들을 바라보거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성경 본문을 읽으면서, 부를 찬송을 찾으면서, 실내 장식을 음미하면서, 예배에 관한 상징들에 대해 묵상하면서, 조용히 음악을 들으면서 이루어질 수 있다.  특별히 예배를 계획하고 인도하는 자들은 교회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준비들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다음에 가능한 준비들을 열거해 본다:  

첫째, 예배에 필요한 여러 가지 역할들을 조정하고 예행 연습을 하고 시간표를 정한다. 예배 참석자들과 예배위원들이 일어서는 순서를 확인하고 일어서는 공간을 결정한다. 특별히 이와 같은 준비는 대형교회에서의 예배나 세례와 성만찬 같이 움직임이 필요한 예식이 거행될 때에 도움이 된다. 회중은 예배가 자연스럽게 흘러가며 품위를 잃지 않도록 시간을 투자하며 준비할 필요가 있다.  

둘째, 회중을 대표하여 예배위원을 선택할 때 특별히 나이, 성별, 인종 등에 주의하며 예행 연습을 한다. 예배위원들 가운데 예배를 준비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또는 함께 시간을 가질 자들을 구분하고, 누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재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예배를 드릴 장소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한다: 강단용 성경, 꽃, 촛대, 설교단과 성만찬상보의 색상을 포함하여 교회력에 따른 제단의 장식, 기(banners), 또는 다른 미술작업, 찬송가 비치, 예배위원들이 마실 물잔, 마이크의 음량과 음조 등을 확인한다.  

넷째, 모든 회중과 특별히 방문자들이 안내위원들과 주보에 의해 환영받을 것을 확인한다. 안내위원 제도는 중요한 목회이기 때문에 안내위원에게는 특별한 은사가 요구된다. 안내위원은 교회를 방문하는 자나 도움이 필요한 자가 만나는 첫 번째 사람이다. 안내위원의 일은 방문자에게 예배를 소개하거나 안내하는 일까지 포함할 수 있다.  

다섯째, 특별한 순서를 위해서는 회중과 함께 예배 전에 예행 연습을 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와 같은 준비를 위해서는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예배에 대한 안내하는 것이 적절하며 이 때 자연스럽게 회중을 환영하는 순서를 진행할 수 있다. 또한 이 때 외부로부터 초청한 손님을 소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배를 준비하기 위한 예행 연습이나 광고는 분명한 종결이 필요하다. 집례자는 “이제 조용히 묵상함으로 예배를 준비합시다”와 같이 분명한 선언으로 준비 순서를 종결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섯째, 준비 순서를 진행할 때 집례자(사회자)가 회중과 교제를 나눔으로 자연스럽게 예배를 준비할 수 있다.  

일곱째, 전형적인 방법으로 예배를 준비할 수도 있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한 평신도가 강단용 성경을 설교대나 봉독대로 가지고 들어가는 의식을 진행할 수도 있다. 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어떤 순서를 진행하든지 중요한 것은 예배의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다.  

주일 아침이다. 지난주일 이후로 한 주일 동안 지내던 각자의 생활로부터 사람들이 교회로 모여든다. 주일 낮 공예배에 참석하기 위해 서로 주위에 모인 자들은 서로가 잘 알기도 하지만 모를 수도 있다. 그들은 제각기 다양한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예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 모두가 그 이유나 방법을 말할 수는 없겠지만 각자에게 중요한 것은 다음 한 시간동안 진행될 예배에서 무엇이 일어날 것인 가이다. 그들에게 예배는 중요한 관심사이다. 그러므로 예배를 인도하는 책임을 지고 있는 자는 누구나 다음과 같이 질문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다양한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모여든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을 찬양하려는 공동의 기대와 관심사에로 하나로 묶어 예배를 시작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질문이 예배를 시작하는 부분이나 “모이는 교회”의 예배 순서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모이는 교회의 예배 순서는 신앙의 상징들로 둘러 싸여 있는 곳의 고적함을 찾아 모인 회중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의 공동체 속에서 자신들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내어 맡기도록 인도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잘 계획된 예배라고 해도 모든 예배자들이 그 예배를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는 교육과 훈련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충분하지 않다. 모든 예배자들이 점차 예배의 주인의식을 경험해야 한다면, 그들에게는 예배 안내에 의한 도움이 필요하다. 그 동안 각 교단이 예식서를 통하여 예배 진행에 도움을 주려한 대상은 주로 성직자들과 제한된 예배위원들이었다. 그러나 예배는 모든 예배자들을 위한 것이므로 예배 안내 역시 그들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다음에 공동체 예배를 준비하는 몇 가지 방법들을 제시한다.  

첫째, 예배 전과 후에 설교에 대하여 대화하라   

설교하기 전에 6명에서 10명 정도를 초대하여 설교본문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눠라. 예배가 끝난 뒤에는 누구라도 모두에게 대화 모임에 참석할 기회를 제공하라. 그들이 말하는 것을 경청하라. 필요한 것들을 적어라. 명확하게 만들라. 그 모임에서 결코 또 다른 설교를 하지 말라. 목사는 무엇인가 설교에 도움되는 것을 그들로부터 얻기 위해 그 모임에 참석한 것이다. 참석자들은 목사에게 정보를 제공할 것이며 설교 사역을 강하게 만들 것이다.   

둘째, 예배를 돕는 소그룹들을 만들어라  

 1) 기도 그룹(Prayer group)은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며 그리고 변화하도록 기도한다. 몇 개의 기도 그룹들은 특별한 시간을 배정 받을 수 있다.  

 2) 배너 그룹(Banner group)은 교회력을 따라 계절마다 배너(예배용 기치, 현수막)를 만들뿐 아니라 매 주일의 예배 주제에 맞는 그림이나 글을 짠 배너를 만든다. 교회에서 바느질이나 수를 잘 놓는 여성들을 활용한다.  

 3) 미술 그룹(Artist group)은 매 주일의 예배 주제를 반영하는 주보의 겉 표지나 상징을 그린다.  

 4) 감각 그룹(Senses group)은 보고 듣는 것뿐 아니라 때로는 만지는 것 등, 예배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을 사용하는 방법들을 계발한다.  

 5) 드라마 그룹(Drama group)은 예배 연극하기를 좋아하는 자들로 구성된다. 예배 연극은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특별히 연극하는 것을 즐긴다. 성경도 전통적으로 성경을 단순히 읽는 것 이상인 드라마를 요구한다. 젊은이들에게 성경을 자신들 언어로 표현한 드라마를 쓰게 하라.  

 6) 무용 그룹(Dance group)은 성경과 찬송을 해석한다. 이들은 예배에 새로운 차원을 제공할 것이다.  

 7) 수화 그룹(Sign group)은 귀 먹은 자들을 위하여 예배를 통역한다.  

 8) 평가 그룹(Evaluation group)은 예배의 결과를 점검한다. 비판의 눈으로 평가할 필요는 없다. 비판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모든 백성과 하나님 안에 있는 모든 백성을 포함할 새로운 가능성들을 발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셋째, 주보(예배 순서를 포함한)를 활용하라  

예배를 위해 주보가 필요하지만 때로는 주보를 사용하지 않고 예배를 드리는 회중의 반응에 놀랄 것이다. 주보는 목사와 예배 인도자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가장 교육적인 도구이다. 그러나 예배가 끝나면 상상이나 성서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많은 주보들은 주인 없이 바람에 날려 다니거나 구겨져 버려지는 “거룩한 세탁물”이나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교회는 매 주 주보를 만들 때 찬송, 성경, 고백기도문, 설교제목, 그리고 광고와 통계나 바꾸면 된다. 모든 것이 설교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예배 순서에서 나머지 부분들은 설교를 위하여 준비되거나 받쳐주는 순서들이다. 회중은 기계적으로 그리고 원격조정을 받으며 예배의 관중으로 반응한다. 그래서 만일 회중이 설교로부터 아무 것도 얻지 못하면 예배로부터 아무 것도 얻지 못한 것이 된다.  

  

2. 공동체를 포함시키는 방법  

(부름 받은 자들의 예배 또는 믿음, 소망, 사랑, 정의, 평화의 공동체 예배를 위하여)  

첫째, 교회력을 따라 각 절기를 반영하는 예배 주제나 방향을 바꿔라. 주일 예배 순서의 머리에 또는 주보의 겉 표지에 사용할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1) 대림절(Advent): 세상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자주 만나 세상으로 흩어집니다;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계절을 축하합시다  

 2) 성탄절(Christmas): 구주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오셨습니다; 구주께서 다스립니다; 하나님께서 세계를 다스리심을 축하하기 위해 매 주 예배에서 만납시다  

 3) 주현절(Epiphany):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매주 기쁜 소식을 축하합니다; 주현절에 세상 사람, 동물, 자연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눕시다  

 4) 사순절(Lent): 갱신의 계절; 우리의 존재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모이는 공동체; 예수의 부활을 위하여 준비합시다  

 5) 부활절(Easter): 부활하신 주의 권능 안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는 누구의 것인지,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우리는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발견하는 부활의 계절  6) 오순절(Pentecost): 살아 계신 그리스도의 교회는 오순절에 그리스도의 사랑에 관한 기쁜 소식을 교육, 쉼, 경제, 정치, 가족, 이웃, 그리고 그 이외의 모든 세계와 나누기 위해 만납니다  

둘째, 각 예배 순서의 시작과 마지막에 그 날의 주제를 나타내는 간단한 글을 넣어라.  이 글은 한 주 동안 회중들에게 기억될 것이다. 많은 성도들이 다시 읽고 묵상할 자료가 될 것이다.  

셋째, 교회력에 따라 각 절기를 설명하는 주제로 예배 순서의 머리 부분을 바꿔라.   매 주일마다 그 주일에 적절한 주제를 설명하여 특별한 예배가 되게 하라.   

넷째, “광고” 또는 “알림”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말라.  그 대신, 주보에 별도의 난을 할애하여 “오늘을 위한 기회들,” “이 주간을 위한 기회들,” “이 달을 위한 기회들” 등과 같은 제목으로 변화를 주라.  

다섯째, 예배의 모든 부분을 “특별하게” 계획하지 않는다면, “특별 음악”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말라.  어떤 한 순서가 특별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 날의 예배와 관계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무리 특별한 음악이라도 연습이 부족하거나 회중이 이해하지 못하여 관중으로 남는다면 적대 행위가 될 수 있다. 그 대신, 음악을 보통 예배 순서에 대한 한 응답으로 사용하라.  

여섯째, 새로운 찬송들을 소개하기 위해 “이 달의 찬송”을 이용하라.  대부분의 나이 많은 교인들이 매 주일에 부를 애창곡으로 선정한 10곡은 어린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는 거의 의미가 없을 것이다. 간단한 설명과 함께 모든 연령의 자녀들과 함께 부를 수 있는 찬송이나 복음송들을 소개하라. 불행하게도 목사나 어른들은 어린아이들의 언어로 된 모든 것들을 거의 회피할 수 있다. 주보나 교회의 통신란을 통하여 새로운 찬송의 역사를 제시하라. 한 해의 마지막에, 아마추수감사절에 회중이 그 해에 배운 새로운 찬송들을 중심으로 예배를 진행하라.  

일곱째, 복음서를 봉독할 때에는 회중이 일어서도록 요청하라.  이것은 오랜 동안 잃어버렸던 또는 무시되었던 기독교의 한 전통이었다. 동시에 회중 가운데 연극이나 무용을 하는 자들로 성경봉독과 다른 예배 순서들을 극화하도록 시도하라.  

여덟째, 회중이 적절한 예배 언어를 사용하도록 교육하라.  예를 들어, 우리는 헌금을 받는다고 말하지 현금을 걷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예물(은사)을 드리는 것이지 기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헌금을 선교를 위해 사용하는 것이지 예산을 위해 쓰는 것이 아니다. 예산은 마지막에 수입과 지출을 따지나 선교는 항상 열려있다.   

아홉째, 다음 주일 또는 몇 주일의 성경본문을 주보와 교회 통신란에 미리 소개하라.  많은 교인들은 주어진 주일에 예배 이상의 무엇인가를 행한다. 교인들에게 예배를 드리러 오기 전에 그 주일의 성경본문을 읽도록 격려하라. 그리고 주일 예배를 드리기 전과 후에 자신들이 얻은 것을 서로 그리고 목사와 나누도록 하라.  

열째, 교인들 가운데 어떤 악기라도 연주하면 예배를 위해 사용하도록 격려하며 악기를 가지고 오도록 하라.  예배에서 사용되는 모든 음악을 연주하는데 참여하도록 요청하라. 연주할 악기가 없다면 허밍이나 휘파람을 불도록 하라: “호흡하는 모든 것들로 여호와를 찬양하라!”  

    

공동체 예배 순서  

다음에 소개하는 “공동체 예배”의 기본 형식은 기독교 예배에 관한 성서적, 역사적, 신학적 이해에 근거한다. 이 기본적 형식은 예배를 계획하고 진행하는 자들과 회중에게 다양한 예배의 기본적 내용과 구조를 이해하는데 안내 역할을 한다. 공동체 예배의 4중 구조--모이는 교회, 말씀듣는 교회, 응답하는 교회, 파송받는 교회--가 구체적인 예배순서는 아니지만 다양한 예배순서들의 기초가 될 수 있다. 공동체 예배의 4중 구조 각 부분으로부터 예배자들이 기대하는 경험과 분위기는 다음과 같다: 1) 기쁨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공동체, 2) 묵상하는 자세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공동체, 3) 성만찬을 통하여 축제를 경험하는 공동체, 그리고 4) 세상으로 파송받는 공동체. 이 기본적 예배 구조는 다양한 예배들 배후에 있는 공통성을 보여준다. 기본적인 예배 구조를 중심으로 다양한 시범예배나 실험예배를 통하여 개 교회의 특성에 맞는 예배형태를 제시할 수 있다. 비록 여기에 소개하는 공동체 예배가 성서적, 역사적, 신학적인 예배라 하더라도 새로운 예배는 교육이 따라야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공동체 예배를 진행하는데 필요한 원고 전문과 예배 안내서를 제시한다.   

  

 대림절 세 번째 주일을 위한  공동체 예배  

예전색깔: 보라/파란색  

복음서: 마태복음 11:2-11  

주제: 하나님의 약속  

오늘처럼 T.V. 문화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안에서조차 우리를 위하여   

놀라운 일을 행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잊어버렸다. 우리는 오늘의 예배에서  

상실한 하나님의 약속을 되찾고 놀라운 일들을 일으킬 능력 또한 회복할 것이다.  

(*표는 일어납니다) 집례/○○○ 반주/○○○  

 

I. 모이는 공동체   

 모임 찬양/ 다같이 (먼저, 성서일과에 따른 시편 146편을 읽고 오늘 주일예배의 주제를 중심으로 이 예배의 관심과 방향을 설명하며 예배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이에 적절한 찬양을 인도한다. 모임 찬양으로는 묵상을 위한 간단한 복음송이 적절하다. 또한, 모임 찬양을 부르면서 필요에 따라 예배안내, 교회소식, 성도의 교제, 환영사, 묵상기도 등과 같이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순서들을 진행할 수 있다. 이런 순서들은 예배당으로 모이는 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예배를 준비하고 참석하도록 만든다.)  

"오늘 주일예배를 위한 시편 146편은 하나님께서 관심을 가지시고 일하시는 것들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일들을 매일 구체적으로 행하십니다. 그 일들이 무엇입니까?" (할렐루야 시편의 하나인 146:5-10을 읽는다)   

*입 례 송/ 다같이 또는 성가대 (예배위원이 입장한다)  

*예배 부름/ 집례자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에게 예배드리기 위해 이 곳에 함께 모인 사랑하는 주안의 형제 자매 여러분, 주님의 사랑으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절을 축하하면서, 두 주일 전에 하나님의 평화를 위한 대림절 첫 번째 촛불을 켰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하나님의 정의를 위한 대림절 세 번째 촛불을 켰습니다. 오늘 우리는 치유와 행복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밝히는 대림절 세 번째 촛불을 밝히려고 합니다." (화관 모양의 대림절 세 번째 촛대에 빛을 발하게 한다)   

"어느 곳에 있든지 누구나 건강, 안전,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의 촛불을 밝힘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육체와 정신의 고통을 겪는 자들, 마땅히 살아야 할 곳에서 일해야 할 곳에서 공부해야 할 곳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자들, 그리고 위험이 가득한 생활을 하는 자들을 기억하며 예배드리려 합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이들이 우리와 함께 기뻐 춤추며 행복하게 노래부를 한 날을 약속하셨습니다. 어쩌면 그 약속된 날이 오늘일지도 모릅니다. 자, 우리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를 이 한 곳에 불러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아서 찬양합시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만방의 족속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시 96:1, 7)"  

*경배 찬송/ 다같이 (예배 부름에 대한 응답으로 회중은 “아멘!”으로 화답하며 곧 이어 경배에 관한 찬송을 부른다)  

*예배 기원/ 집례자 "온 피조물들로부터 예배를 받으시기에 마땅하신 우리의 하나님! 우리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모두어 이 예배를 드리옵니다. 먼저 주의 영이 임하시어 우리를 정결하게 하시옵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데 합당한 아름답고 깨끗한 심령을 허락하시옵소서.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한 귀한 예배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아멘." (곧 이어 성가대의 응답송이 따른다)  

*고백 권면/ 집례자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계명과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상기할 때마다 우리의 허물과 죄가 가득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각자 하나님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는 침묵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침묵 기도/ 다같이 (침묵기도를 위해 악기 연주를 멈추며 자비송 반주가 시작됨으로 침묵기도가 끝난다)

*자 비 송/ 다같이 (자비송 “하나님의 어린양”을 성가대가 1,3,5소절을, 회중이 2,4,6소절을 서로 나누어 부른다)  

*용서 선언/ 집례자 "하나님의 말씀이 여기 있습니다. 우리 중 누가 정죄하는 자리에 설 수 있습니까? 오직 그리스도,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주님 뿐 이십니다. 그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이제 여러분의 죄는 용서되었고 평화가 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생활은 지나가고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요 8:11, 고후 5:17) 아멘.“  

*영광 찬송/ 다같이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을 부른다)  

*공동 기도/ 가정들과 회중 (해당 주일을 위한 성서일과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공동기도문을 만든다. 다음은 이 주일의 시편 146:7-10을 사용하여 만든 공동기도문이다. 공동기도를 반드시 사회자와 회중으로 나눌 필요는 없다. 기도문 내용에 따라 적절한 사람, 가정, 또는 그룹이 사회자 부분을 담당한다)  

가 정: 주님, 이 아침에 저희는 질병과 사고로 고통을 당한 자들과 걸을 수 없는 자들, 그리고 전쟁으로 불구가 된 자들과 가족을 잃은 자들을 기억합니다.  

회 중: 주님, 저희는 더 이상 자신을 지탱하기가 힘든 노인들과 육체적 정신적 지체 부자유아로 태어난 어린아이들을 기억합니다.   

가 정: 주님, 저희가 당신과 함께 그들을 높일 수 있는 길을 찾게 하옵소서.   

회 중: 주님, 그들을 치료하고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과 함께 하옵소서. 또한 약한 자들과 병든 자들의 온전한 삶을 위해 수고하는 자들과 함께 하옵소서.  

함 께: 언젠가 저희 모두가 당신의 나라에서 기뻐 춤추며 행복하게 노래할 것이라는 당신의 약속을 믿음으로 참고 기다리는 자들과 함께 하옵소서.  

  

II. 말씀듣는 공동체

 성경봉독/ 구약: ○○○, 서신서: ○○○, 복음서: ○○○   설교/ ○○○목사  

구약 봉독/ (이사야 35:1-10) "이 이사야의 시적인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나라에게 정복당해 그 나라로 끌려갈 때 쇠고랑을 차고 뜨겁고 메마른 사막 지역을 지나가고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자신의 백성들과 함께 끌려가면서 그들에게, 어느 한 날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출하시어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질문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하실 때가 무엇과 같을 지를 우리에게 말해주시오!" 이사야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약한 자들과 불구자들이 노래하며 춤추면서 걷게 될 것이며, 모두 함께 안전하고 행복하게 꽃이 만발한 사막을 지나 하나님의 도시로 돌아갈 것이라. 이사야의 말을 더 들어봅시다." (봉독자가 봉독대 앞으로 나오든지 회중석에서 큰 소리로 구약 본문을 읽는다)  

말 씀 송/ 다같이 (구약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말씀송 “주님의 말씀을” 두 번 반복한다)  

서신 봉독/ (야고보서 5:7-10) "이 본문은 개인적으로 직접 하나님의 치료와 도우심을 구하는 자들에게 필요한 인내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의 신앙생활에 인내가 필수적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야고보의 대답을 들어봅시다." (봉독자가 서신서 본문을 읽는다)  

말 씀 송/ 다같이 (서신서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말씀송 “주님의 말씀을” 두 번 반복한다)  

*복음서봉독/ (마태복음 11:2-11) "예수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지도자인지를 알고 싶어했을 때,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고 있는 것들을 열거했습니다. 그가 하신 일들은 하나님의 약속들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행하는 것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알라. 나는 메시야의 일을 하고 있다. 모두 일어서서 복음서의 말씀을 경청합시다." (복음서를 봉독할 때는 회중이 일어서서 들으며 복음서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성가대의 찬양이 따른다)  

찬    양/ 성가대  

말씀 증언/ 설교자 (설교를 위한 본문을 따로 읽을 필요는 없다. 이미 봉독한 성경 중 하나를 중심으로 설교를 하며 다른 성경은 보조로 사용된다)  

  

III. 응답하는 공동체  

 응 답 송/ 다같이 (설교에 대한 응답으로 응답송 “이 말씀 따라 사는 동안”을 세 번 반복한다)  

묵상 기도/ 다같이 (설교에 대한 응답은 다양할 수 있으나 회중이 들은 설교에 대하여 직접 응답 또는 결단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   

봉   헌/ 다같이  

감사기도/ 집례자  

*평화 인사/  

집례자: 우리는 다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으며 각 사람은 그 지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희생하여 평화를 이루셨으니, 이제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가 되십시다.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하소서.  

회 중: 주님의 평화가 또한 목사님과 함께 하소서.  

집례자: 서로 평화와 축복의 인사를 나눕시다.  

회 중: [주위 사람들과 "평화/샬롬"의 인사말을 나눕니다.] (믿음, 소망, 사랑 등 그 날 예배 또는 설교의 주제를 인사말로 나눌 수 있다)  

  

IV. 파송받는 공동체  

*파송 찬송/ 다같이 (주기도문송)  

*파송 말씀/   

집례자: 지금부터 예배공동체인 우리는 모이는 예배, 말씀 듣는 예배, 응답하는 예배를 마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상에 흩어지는 예배로 나아갑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여러분은 죄, 마음의 질고와 육신의 질병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제 세상에 나아가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용기를 내십시오. 선한 일에 앞장서십시오. 아무에게든지 악을 악으로 갚지 마십시오. 마음 약한 이들을 도와주십시오. 병든 자들을 위로하십시오. 모든 사람을 존경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성령의 능력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늘 감사하며 살아가십시오.  

회 중: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갔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 따라 순종하며 은혜를 감사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소서. 아멘.  

*축복 기도/ "야훼께서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고 여러분을 지켜 주시며, 야훼께서 여러분을 밝은 얼굴로 대하시고,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야훼께서 여러분을 고이 보시어서 여러분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빕니다." (민수기 6:24-26) 아멘.  

 

공동체 예배를 위한 송영들  

1. 자비송(하나님 어린양)   

2. 말씀송(주님의 말씀을)   

3. 응답송(이 말씀 따라 사는 동안)    

4. 파송송(주기도문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