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놈 프로젝트의 신학적 의의

[활천 2001년 8월] 

 

당초 10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여겨지던 인간의 유전자 해독이 수년을 앞당기면서 이미 지난해에 완성되었다. 소위 게놈 프로젝트라고 불려졌던 이 사업은 왓슨(J. Watson)과 크릭(F. Crick)이 유전자를 형성하는 DNA라는 분자단위의 구조를 밝혀냄으로써 시작된 분자 생물학의 개가라고 할 수 있다.

분자생물학에 따르면 대략 인간의 몸 안에 있는 10만 개의 유전자를 이해하게 될 경우 이 세계에 존재하는 각 생명 개체의 발생 원리를 찾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는 다름 아니라 각각의 유전인자들이 특정한 단백질을 형성하고 그 단백질이 우리 인간의 신체구조와 신경구조의 기본적인 물질을 형성하게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즉 유전인자를 분석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인체의 기본 설계도를 이해하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됨으로써 우리는 개체 인간의 종합적인 설계도를 지니게 된 것이다.

인간 이해의 한 새로운 길이 열렸다는 것은 시작일 뿐이다. 더 나아가 분자 단위의 유전자들을 그 형성에서부터 이해하고 파악하게 됨으로써 이제 기술적으로 해당 유전자를 조작하여 변경 혹은 대체시키는 등, 더 편리하고 우성적인 유전인자를 대량화할 가능성이 생겼고 최근에는 이 기술이 가지고 있는 경제적 성과에 대한 기대가 점점 커지게 되었다. 더욱이 엄청난 자본의 도움은 이런 일련의 기술적 성과를 경제적 이익과 부를 위한 매개체로 만드는 일을 가속화시켰으며 그 결과 한때 꿈같이만 여겨지던 여러 가능성들의 실현이 가시권 속으로 급속하게 들어오게 되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우리는 혁명적인 변화의 폭풍 앞에 서 있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적 진보와 자본의 결합이 가져온 게놈 프로젝트의 완성을 우리는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가? 게놈 프로젝트는 단순히 기술적 문제와 형이상학적 문제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윤리와 그 자본에 의한 이데올로기적 변형의 문제를 다시 제기하게 만든다. 즉 인간이 누구인가라는 고전적인 문제를 자본에 의한 논리에 종속시킬 위험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당면한 이 상황을 신학적으로 올바르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 상황에 대한 기술적 이해와 더불어서 이 새로운 현실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인간들의 기대를 창조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신앙 안에서 볼 때 이 세계를 창조된 세계로 재발견하는 것은 이 세계가 자기 안에서 스스로 존재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족적인 존재가 아님을 밝히는 것이다: 피조된 세계로서 이해된 우주는 언제나 세계 외적 초월의 힘과 근원으로부터만 가능한 의존적이며 상대적인 존재인 것이다. 성서에 의하면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유지되고 있다. 모든 존재는 누구도 스스로 존재할 수 없으며 “지속적 창조”(creatio continua)라고 불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에서 그 존재의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 우주 안의 모든 존재자들을 본질적으로 이해하고자 할 때 언제나 그 존재자들을 초월적 타자에게 개방시키는 그 개방의 사건에서부터 이해하여야 하며 그 개방의 사건이 바로 우주 생명 현상의 절대적 근거라고 말하게 된다. 인간이 누구냐에 대한 참된 대답은 바로 이 개방적 사건을 이해하고 그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윤리적이며 도덕적 행동 지침을 마련하는 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게놈 프로젝트가 우리로 하여금 갖게 하는 첫 번째 이데올로기적 환상은 인간 및 모든 존재자들을 유전자의 정보에 의하여 구성되는 기술적 관점에서만 이해하도록 하는 데 있다. 따라서 이 게놈 프로젝트가 가져온 기술의 혁명적 발전과 연관해서 유전자만이 인간성의 총체적 유산의 결집으로 인정되는 새로운 환원주의의 망령을 경계하여야 한다: 즉 인간의 정체성을 인간의 세포 속에 주어져 있는 일정한 유전적 정보의 양으로 환원하여 이해하는 잘못된 기술주의를 경계하여야 하는 것이다.

비록 이 환원주의는, 유전자가 곧바로 한 인간의 개성이나 인격을 형성하는 최종원인이 될 수 없고 오히려 그 개체가 문화적이며 사회적 관계 속에서 역사적인 존재가 될 때에만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질 때 자동적으로 사라질 오해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잘못된 사고의 전제를 무의식적으로라도 따르게 될 때 인간은 단지 자본의 도구와 대상으로 전락될 뿐이며 인간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실존적 깊이의 차원에서 주어진 타인과 초월을 향한 개방성의 사건과 구조는 완전히 가려지게 되는 폐해를 피할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게 되는 그 결정적 사건이 기술적인 정보의 양에 의해서 예단되어 가려지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게놈 프로젝트의 효과를 바르게 비판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정당한 지평은 인간들의 기대가 가지고 있는 전제를 밝히는 일과 연관되어 있다. 인간들은 과연 이 게놈 프로젝트를 통하여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 인간들은 이 게놈 프로젝트를 통하여 무엇을 인간의 선(善)이라고 규정하게 되는가? 그리고 그것의 숨겨진 전제는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이것을 창조의 목적과 일치시켜 생각할 수 있는가? 이 게놈 프로젝트가 제공할 수 있는 선의 기준이 과연 창조의 종말론적 목적과 일치될 수 있는 것인가?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게놈 프로젝트가 함께 가져 올 새로운 기술적 진보를 말하고 그것으로 인하여 올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테면 지금까지 불치병으로 알려진 여러 유전적 병리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지금까지 인간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야기하면서 단지 인간에게 인내를 강요했던 비인간적 상황의 종말을 의미할 수 있다. 병리학의 혁명적 변화를 통한 희망의 발견은 분명히 이 게놈 프로젝트가 가진 인간적인 부분이다. 더욱이 이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의와 목적 역시 그 피조물들의 구원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이 새로운 희망은 하나님의 은총의 전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게놈 프로젝트는 특정한 병리현상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그 인간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인간을 열등한 존재로 평가하려 하는 부정적 효과도 가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한다. 한 인간의 고유한 가치가 그가 유전적으로 지니고 있는 유전자의 정보에 의하여 평가받게 되는 그런 가능성이 항존할 뿐 아니라 그것이 더 큰 유혹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요사이 영국의 여대생들이 미국에 건너가 자신들의 유전자를 팔겠다고 나서고 있으며 그 유전자에 대한 요구는 매우 큰 것으로 보도된 바 있다. 인간성의 고유한 가치가 자본에 의하여 평가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비인간적 상황을 야기하고 그것을 확대시킬 수 있는 구조와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우리가 공기처럼 호흡하고 있어서 거기서 떨어져서는 어떻게 존재해야 할지 모르는 자본주의가 가져온 이상과 깊은 연관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현대의 이상들이 과연 성서의 이상과 일치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 앞에 서 있음을 알게 된다. 자본주의가 게놈 프로젝트를 통하여 가능하게 한 이상적인 인간존재는 어떤 존재인가? 모든 사람이 고유하게 바라는 바 건강과 장수를 자본의 논리로 확대 재생산 할 때 그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가 누리고 향유할 수 있는 생명은 무슨 의미가 있게 되는가?

인간이 누리려고 하는 모든 유토피아의 모든 환상들이 하나님의 섭리 밖에 있을 때 그것들은 언제나 가난한 것이었음을 우리는 인류사를 통하여 충분히 경험하였다. 하나님의 진리 바깥에 존재하는 모든 유토피아는 모든 존재의 공존이 아니라 수탈과 억압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가 가진 모든 선한 것은 언제나 그 하나님의 역사적 행위,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자기증여와 연관이 있다. 우리 인간의 궁극적 목적인 개인의 가치가 존중받는 사건은 언제나 그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주어지는 것이다. 한 인간이 건강하든 아니든 간에 개별 인간 존재의 고유한 가치는 그가 이 절대자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자신의 존재의의를 새롭게 인식하는 데 있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 자체로서 이미 선하고 아름다우며 그 현실이 비참한 것으로 여겨지더라도 그 모든 삶의 현장은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에 직결되어 있으며 그를 성취하기 위한 섭리의 과정 안에 이미 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창조가 갖는 구체적인 목적은 언제나 각 인간존재의 삶과도 직결되어 있으며 이는 언제나 그런 것처럼 인간의 자기 정체성의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이 게놈 프로젝트가 낳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오해와 편견은 한 인간의 개성을 강조할 바로 그 자리에 우생학적으로 나누어진 유전자의 우열의 정도에 따른 편견에 찬 차별화를 당연시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그의 고유한 개체성을 그의 고유한 자본적 현실로 간주하여 그의 개성을 물량화하고 대량화하려는 유혹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상존하게 된다.

그 우려가 우리에게 국가적 경쟁력이라는 이데올로기로 무장한 우생학적 종의 계량 계획일 것이다. 한 국가가 일률적으로 특정한 종류의 유전자에 의한 고유한 형태를 더 우량한 것으로 평가하여 그것을 넓게 확대시키려는 것이다. 일찍이 이미 나치에 의하여 실시되었고 지금도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계획하고 있는 그 문제가 게놈 프로젝트에 의하여 기술적인 지원을 얻으면서 첨예한 현실의 문제로 당면하게 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개인적으로는 우리들이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존재의 특징들을 다 갖춘 “맞춤-인간”의 가능성이 현실화될 수 있는 가시권 안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분자생물학의 기술적 진보는 우생학의 적극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만들고 결국은 대중 소설 속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으로 여겼던 “맞춤-인간”의 등장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혁신적인 새로운 변화의 상황은 우리 인류가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고 이제 우리 인류의 미래를 결정해야 하는 중대한 윤리적 질문 앞에 우리가 서 있게 된 것이다. 즉 인위적으로 조작된 나는 누구인가의 문제이다. 더욱이 나의 유전자를 다른 이와 대량으로 공유한 것을 보게 될 때 나와 그 사람들은 어떤 관계에서 존재하는 것인가를 다시 물어야 하는 상황에 당면한 것이다.

 

정리해 보면, 게놈 프로젝트가 완성됨으로써 먼저 인간성이란 공통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졌으며 두 번째로 개인의 고유한 가치와 정체성에 대한 탐구가 신학적으로 중요한 물음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의 가치는 한 구체적인 인간의 책임적 행동에서 찾아질 수밖에 없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나 개인의 온전함을 통하여 인간이란 공동의 가치와 이념뿐 아니라 나 자신이라는 정체성에 대하여 올바른 규범을 제시할 수 있다는 상황이 더욱 분명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의 정체성의 문제와 책임의 문제를 온전하게 해결할 수 있는가? 그것은 이 프로젝트 속에 숨겨져 있는 자본주의적 이상을 하나님의 형상론을 통하여 재정립함으로써 성취된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바른 이해는 인간의 한 특징적 요소에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전체 인류에 대하여 독립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개별적 인간이 자신의 인간 됨을 책임적으로 지킴으로써 동료 인간에 대하여 참된 인간 존재의 공동의 가치를 확인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될 것이고, 그 참된 이웃으로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안에서 찾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