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지 전개의 일곱 가지 요소

 

설교를 구성하는 요소의 적절한 배치와 변화를 도모하는 것은 내용전달에 매우 중요한 기능이다.


 

설교가 진부해지는 것은

설교의 본론을 전개하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어떤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은 토마스 롱(Thomas Long)이 지적하듯 일차적으로 본문이 지닌 구조가 어떤 구조인가 하는 것에 의해 결정되지만, 그렇다고 설교자가 항상 성경본문의 문학적 양식에 따라 설교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개의 경우 설교자가 의도적으로 그 방식을 바꾸어 작성한다. 물론 설교에서 형식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고 내용의 전달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데 매우 중요한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연설에서 주로 사용되는 논지 전개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예를 들어 인과적 조직방식이 있는데 이 방식은 연설을 원인과 결과의 두 가지 축으로 놓고 만들어 가는 방식이다. 즉 어떤 사안이 현상적으로 나타난다 할 경우 그것의 원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전반부에 놓고 그것의 결과를 뒷부분에 위치시키는 방식이다.

또 즐겨 사용되는 방식 가운데 문제 해결식 조직방식이 있는데 이것은 현재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을 열거하고 이것을 해결하는 방식을 제시하는 구성법이다. 연대기적 조직방식은 시대적 변화를 추적해가며 해결을 시도하는 방식이다. 공간적 조직방식은 공간적인 배치를 기준으로 먼데서부터 가까운 곳으로 혹은 가까운 데서부터 먼 곳으로 배치시키는 방식이다. 이 모든 방식은 특히 설교에 있어 일차적으로 본문의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설교자가 작위적으로 구성하는 것 역시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성서본문에 충실한 설교임에도 불구하고 회중의 관심을 모으는 데는 실패하는 설교가 의외로 많은 것은 일차적으로 형식의 문제라기보다는 내용이 천편일률적이라든지 혹은 내용의 흐름이 한 가지 색으로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대개 극도의 논쟁적 요소를 띤 설교로 회중이 논쟁의 해결에 함께 동참하도록 유도하는 설교라든지 전혀 새로운 정보를 담고 있는 설교 또는 본문의 깊이를 들춰낸 고민의 흔적이 배어 있는 설교는 회중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모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필요충분 조건을 모두 채운 설교를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인가? 매번 안타를 친다든지 홈런을 치고 싶은 기대와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물론 설교자는 타자가 반드시 진루하고 말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타석에 들어서는 것 이상의 비장함을 갖고 설교단에 오르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런 자세를 성공적인 설교와 연결시키기 위해 설교자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 바로 논지 전개 요인이다.

 

설교의 논지 전개 요인들

한 편의 설교를 세밀히 분석해 보라! 그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아니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설교자가 골방으로 들어갈 때 도대체 몇 권의 책과 자료를 준비하는가? 가만 생각하면 설교자가 참조하는 자료라는 것은 성경, 주석서, 원어사전, 원어성경, 예화집, 설교집 등에 불과하다. 또 설교 한 편을 이루고 있는 구성 요소를 관찰해 보면 의외로 지극히 고정적인 몇 개의 인자에 불과할 뿐이다. 심지어 매우 논리적이고 제기된 의문의 진지함이 설교 전편을 주도하는 설교라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다.

따라서 설교가 지루하고 구태의연한 것은 일차적으로는 내용의 진부함이 주된 요인이지만 이차적으로는 변화 인자를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기도 하다. 설교를 구성하는 요인들로는 - 그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논쟁적 구조의 설교가 아니라면 - 다음과 같은 7가지 요소들을 들 수 있다.

첫째는 성경 다시 읽기이다. 가령 우리가 개역성경을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본문들이 생각보다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 현대인에게 낯선 문어체에다 장엄체로 이루어져 있어 전달이 용이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설교자는 충분히 연구했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을지 모르지만 회중의 입장은 다르다. 따라서 이런 경우 회중이 본문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본문 다시 읽기’를 시도할 수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 본문 전체를 다룰 수도 있지만 가급적 현안의 구절을 다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설교자가 택할 수 있는 방식은 공동번역이나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등 좀더 의미파악이 쉬운 번역본을 읽는다든지 아니면 원어에 자신이 있는 경우 - 대단히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 스스로 사역(私譯)한 내용을 읽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방식을 쓸 때에도 마치 개역성경의 번역이 잘못되었다는 식의 오해를 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따라서 이런 시도가 본문에 대한 좀더 풍성한 이해에 목적이 있음을 분명히 해야 한다!

둘째는 본문에 대한 설명이다. 이것은 우리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식으로 전후 맥락의 소개, 당시의 문화적 배경, 단어에 대한 설명, 등장인물에 대한 보충하는 등 그 본문에 대해 해석해 주고 설명해 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바로 이 요소가 너무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또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반복함으로 인해 회중의 식상함을 초래함을 주의해야 한다. 따라서 설교자는 다양한 주석을 통해 좀더 새로운 정보를 발굴하고 전후 맥락을 통해 본문의 자리를 분명히 부각시키는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셋째는 본문같이 읽기이다. 설교자가 회중과 성구를 같이 낭독하는 이 방식은 매우 널리 이용되는 방식이지만 가급적이면 회중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설교중반이나 후반에 의도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좋다. 임상실험에 의하면 설교가 시작된 후 8분, 13분 18분 25분 정도에서 특히 회중의 집중력이 이완된다고 하는데 이런 데이터를 염두에 두고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설교의 중반 이후에 설교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일반적인 현상 속에서 회중의 집중력을 환기시키는 데 유용한 방식이 될 수 있다.

넷째는 예화의 사용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진리를 경험의 차원으로 끌어내린 예화는 가장 대표적인 논지전개의 변화요인이다. ‘성경을 이야기하면 잠을 자던 회중도 예화를 이야기할 때는 잠을 깨는 것’이 예화이고 보면 그 위력은 대단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예화는 반드시 설교의 진행맥락에 맞는 것이어야 하며 메시지의 수용에 긍정적이어야 한다. 흔히 설교자가 좋은 예화를 발견하게 되면 어떻게든 그 예화를 사용하고픈 유혹을 떨쳐 버릴 수 없게 되고 따라서 설교의 전반적인 흐름을 그 예화를 중심으로 구성하게 된다. 이럴 경우 자칫 성경본문이 들러리가 된다든지 아니면 성경을 예화에 맞추어 억지춘향격으로 해석할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

또 예화의 사용이 주장하려는 논지에 대한 실증적인 보기 일변도로만 흐르는 것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 즉 예화를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하자는 말이다. 가령 서론에서 언급한 예화를 설교 종결시에 다시 한 번 언급하게 되면 회중은 설교 전체의 구조와 흐름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 한 편의 예화를 두 개로 쪼개어 논지 전개의 흐름에 따라 배분하는 것 역시 회중에게 전달상의 순기능을 할 수 있다.

다섯째 중요한 변화요인이 경험적 진술이다. 경험적 진술은 구체적인 사건이 아닌 인간이 살아가면서 흔히 느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사안을 진술한다는 점에서 구체적인 사건을 다루는 예화와는 다르다. 특히 핵심 메시지가 회중에게 수용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감성적인 동의와 감정적 터치가 필요한데 경험적 진술은 바로 이 효과를 거두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사람은 사람 사는 이야기에 마음을 열게 되어 있다. 관념적이고 공허한 이야기가 회중의 감정을 노크하지 못함을 기억한다면 경험적 진술이야말로 설교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아래문장은 경험적 진술의 한 예이다:


“처음 아이들을 낳으면 그 울음소리 때문에 잠을 설치는 때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저 녀석이 어서 빨리 크면 덜 고생할 텐데... 라는 생각을 하기 마련입니다마는, 그러나 사실은 아이가 누워 울기만 할 때가 가장 속을 덜 썩일 때입니다. 조금 커 기어다녀 보십시오. 말썽부리는 범위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걸어다니고 학교 다님에 따라 부모가 염려해야 하는 양과 폭은 늘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 녀석이 잘 커야 할텐데... 그래서 가끔 꾸중하기도 하고 회초리를 들기도 합니다마는, 여러분 그 아이들 그리 혼내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 아이들 하는 것 가만 들여다보면 그 속에 여러분들 어릴 때 모습이 그대로 들어 있질 않던가요?”


“사람이 산다는 게 사실 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엄청 기쁜 일이 생겨 가슴이 설레서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 기쁨이 얼마나 가던가요? 그저 며칠 지나면 덤덤해지지 않던가요? 너무 슬퍼서 밤새 울었습니다. 그러나 그 슬픔도 며칠 지나면 또 덤덤해집니다. 그 사람 아니면 도저히 못 산다고 울고불고 했습니다마는 여러분 지금 잘들 살고 계시지 않습니까?”


여섯째 통상적인 경우는 아니지만 특히 본문이 어떤 질문제기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경우 그 문제를 끄집어내어 논쟁점을 도출시키는 방식도 중요한 논지전개의 변화요인이 될 수 있다. 즉 일정한 설교의 흐름을 정면으로 막아서서 논리의 흐름을 역류시키는 것이다. 가령 이삭의 두 아들인 에서와 야곱을 비교하면서 당시 환영받기에 적합한 에서는 한껏 치켜세우고 야곱은 그 부도덕성을 집중 거론함으로 몹쓸 인간의 전형으로 몰아세운 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이 사람들이 환영하는 에서를 버리고 오히려 사기꾼 야곱을 택하셨는가 하는 것을 전환점으로 삼음으로 설교의 해결점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논쟁점 제시 후 설교의 전개가 구태의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이것에 실패하면 부풀어오르던 논쟁적 긴장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금새 탄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일곱째는 정언적 정리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을 3-5개의 문장을 통해 핵심적인 문장으로 요약 정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말하자면 설교의 핵심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설교자는 이 정언적 정리를 한 문단 이상 지속시키지 않는 것이 좋다. 핵심은 핵심이어야 하며 설교 전체가 핵심이어서는 곤란하다.

 

성실하고, 진지한 자가 성취한다!

이와 같은 몇 가지 변화요인들은 설교의 형태가 어떤 것이든 반드시 적절하게 배치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강해식 설교를 해 나가는 경우라면 1대지에서는 ‘본문 다시 읽기 - 예화 - 본문에 대한 해석 - 경험적 진술’의 순서로 내용전개를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반면 2대지에서는 ‘본문에 대한 해석 - 경험적 진술적 설명 -결단의 촉구’ 등으로 변화를 줄 수 있을 것이며, 3대지에서는 ‘본문 다시 읽기 - 예화 - 본문해석 - 경험적 진술’ 등으로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대지에 너무 많은 변화를 주는 것 역시 그리 바람직하지는 못하다. 충분히 섭취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과도한 것 역시 그 못지 않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또 각각의 요인들의 배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요인들의 질적인 가치를 얼마나 높게 가져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결국 설교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많이 생각하고 묵상하고 연구해야 하는 책임의 끈을 매 설교마다 더욱 조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