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대지설교 작성법

 

  대지설교를 사용하는 이유가 설교작성의 편리함 때문인가 진정 효과적인 방식이기 때문인가를 생각하라!

 

 
다양한 본문, 다양한 형식

설교의 형식을 말할 때 흔히 쓰는 이야기는 설교의 형식은 본문이 결정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바와 같이 성경에는 매우 다양한 형식들이 들어와 있다. 서사서 지혜서 예언서 시가서 묵시서 그리고 서간문 등 대단히 다양한 양식들이 성경을 수놓고 있다. 토마스 롱(Thoma Long) 교수는 설교의 형식을 결정하는 일차적인 기준을 성경이 어떤 형식을 취하고 있는가에서 찾으라고 권면하는데 이 말은 곧 본문의 다양성만큼이나 설교의 형식 역시 다양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된 연역적인 3포인트 즉 3대지 연설 방식은 설교의 영역에 있어서도 지난 300년 이상 설교의 가장 핵심적인 방법으로 자리잡아 왔고 우리 한국의 강단은 지금까지도 대부분 이 방식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내러티브나 스토리텔링, 귀납적 설교구성을 주장하는 라이스, 유진 로우리데니스 윌리스 린더 켁 프레드 크래독 같은 설교학자들은 한결같이 오늘날 교회의 위기를 자초한 것이 바로 이 대지설교 방식이라고 단정할 만큼 이 방식에 대해 폄하적인 태도를 갖고 있기도 하다. 물론 설교의 형식이 설교의 내용보다 우선적인 위기의 주범일 수는 없기에 그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하기도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강단이 이 한 가지 방식을 각기 다른 장르로 이루어진 모든 본문에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해 왔고 그 효과 역시 교회의 침체 주범에 설교를 거론할 정도로 시원치 않았던 게 사실이다. 이 말은 일차적으로는 지금의 경향에서 벗어나 좀더 다양한 설교의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본문의 다양성이 상존하는 한, 그 다양성 속에 포함되어 있는 대지설교에 적합한 본문을 대지설교 방식으로 풀어가는 것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옷이나 패션처럼 설교 역시 어떤 유행을 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설교의 형식과 관련된 진정한 유행은 메시지를 실어나르는 데 가장 적합한 설교 형식을 붙잡는 것이다.




대지설교의 장점과 단점

어떤 형식이든 장점과 동시에 단점을 갖고 있기 마련이다. 설교의 형식을 논할 때 그 형식을 계속 사용하려면 장점은 극대화시키고 단점은 극소화시켜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대지설교의 단점은 무엇인가? 유진 로우리는 대지설교가 자기 이해에 있어 너무 공간적인 패러다임(spatial paradigm)에 둘러붙어 있어 이런 구조 속에서는 아이디어나 명제적인 진리가 설교 전체의 내용이 된다고 지적한다. 그는 전통적으로 3대지와 하나의 시로 된 설교의 형식은 관념화된 성분들의 논리적 토대 위에 설교를 구조화하기만을 강조한다고 지적한다. 즉 완벽한 틀을 짜고 설교자가 이미 만들어 놓은 해답을 일방적으로 회중에게 전달함으로 회중의 참여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흑인 설교가인 미첼은 이것을 가리켜 비인격적인 설교라 평한다. 대지설교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대개 연역적 방식을 고수하고 있으며 설교자가 내려놓은 해답을 각 대지의 앞부분에서 선포적으로 전하는 형식을 밟는다. 이 말은 이 형식 기저에는 선포자 전령으로서의 설교자의 자기 이해가 자리잡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설령 설교가 궁극적으로 선포라 할지라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권위적 강압적 일방적 태도로 다가서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종교적 진리를 전달함에 있어 수용자의 자발적 수용이 없는 전달은 진정한 효과를 거두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회중의 시민의식이 높아지고 주체성이 높아진 오늘날의 경우 이 방식은 회중에게 다가서기가 쉽지 않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대지설교는 나름대로의 장점을 갖고 있다. 일단 성경이 동일한 가치를 지닌 교리나 교훈을 담고 있다 할 때 이것을 설교화하는 방식으로 적극 추천할 수 있는데 이런 본문들은 특히 서신서나 예언서 그리고 시가서 등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즉 만일 성경을 읽으면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든지 아니면 교리를 집중적으로 담고 있는 경우 등은 이 대지설교의 형식을 필요로 한다. 특히 교리적 주제설교 같은 경우는 어느 한 본문이 아닌, 주제를 중심으로 그 주제를 충족시킬 수 있는 내용들을 끌어 모아 설교로 작성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경우 이러한 방식이 큰 장점을 갖는다.

가령 하나님의 속성을 설명한다든지 세례의 의미를 이야기한다든지 하는 경우, 만일 하나님을 믿으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어떤 하나님을 믿을 것인가를 세 가지 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한다면 그 세 가지 대지는 동등한 성격을 지닌 내용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지의 전개가 1.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라 2. 구원자 하나님을 믿으라 3. 인도자 하나님을 믿으라로 구성될 경우, 어느 것 하나 경중을 가릴 수 없는 하나님의 속성이다. 이런 경우 병렬적인 대지는 충분히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

또 어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동일한 가치의 단계들을 하나하나 설명할 경우에도 바람직한 방식이다. 그리스도인이 온전한 성결을 이루기 위해 어떤 단계를 밟아가야 하는지를 설명하려는 의도하에 다음과 같은 3개의 포인트를 본문으로부터 추출하였다고 치자: 1. 먼저 회개하라 2. 성령을 받으라 3. 성결한 삶으로 확증하라. 이것은 한 가지 핵심적인 주제에 도달하기 위한 단계적 접근을 다루고 있다.

어떤 주장에 대한 근거나 이유를 몇 가지로 설명하는 경우에도 이 방식은 바람직하다. 왜 우리는 전도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제기하에 그 해답을 세 가지 대지 속에서 찾으려 한다면 그 대지들은 대체로 동등한 성격을 가진 해명적인 내용을 이룰 것이다. 가령 1. 전도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2. 우리도 복음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다 3.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으로 대지를 전개할 경우 이런 병렬적인 접근은 나름대로 타당성을 가질 수 있다. 회중에게는 이야기하려는 내용을 단계적으로 정리해서 전하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기도 수월하다. 특히 회중의 지적 수준이 비교적 낮은 경우는 이처럼 정리하여 전해주는 대지설교가 효과를 볼 수 있다.



효과적인 대지설교를 위한 제안

그러나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좀더 효과적인 설교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생각해 볼 점들이 있다. 그것은 대지전개의 방식과 관련된 것인데, 앞에서 예를 든 것처럼 대개의 경우 대지를 운용하는 방식을 보면 정언적인 문장이 각 대지의 첫 문장에 사용된다. A는 B이다라는 표현이 그것인데 대개 이 문장은 그 대지의 전체 내용을 함축적으로 담기 마련이다. 물론 이런 방식은 명확해서 좋지만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이런 표현은 설교자가 말하려는 내용을 이미 말한 경우가 된다. 즉 설교자 입장에서는 말할 결론을 대지 첫 문장에 담는 경우이고 회중 입장에서는 들어야 할 내용을 이미 다 들은 경우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즉 말할 것을 함축적으로 다 말했고 들을 것을 다 들었다면 그 다음 단계는 그것을 좀더 알기 쉽도록 설명해 주어야 하는데 그 다음 단계가 회중에게 지리함으로 비쳐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지리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각 대지의 서두 다음에 이어지는 부분이 동일한 명제의 틀 안에서 변화를 주지 못한 채 같은 색깔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렇습니까?라는 물음에 대해 가장 일차원적인 대답은 그것은 이래서 그렀습니다이다. 직문과 직답 사이에는 회중이 생각할 틈이 없다. 생각을 하지 않고 설교자가 정해 놓은 대로 그냥 흘러가게 만드는 설교는 사실 경청을 포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각 대지의 첫 문장 혹은 한 문단 다음에는 반드시 변화를 주도록 하는 것이 좋다. 왜 그렇습니까?... 일전에 제가 어디를 가는 중이었습니다와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또한 한 대지를 설명 일변도로 채운다든지 예화 일변도로 채운다든지 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대략 본문 설명 - 예화 - 경험적 진술 - 정언적 정리 등으로 한 대지에 들어갈 인자들의 변화를 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아가 각 대지는 나름대로의 구성상의 특성과 차이점을 갖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동일한 패턴으로 이루어진 대지를 세 번 연속해 들어야 한다는 것은 고역일 수 있다.


대지설교를 식상함으로부터 구해내기 위해서는 각 대지의 첫 문장에도 변화를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령 정언적인 문장으로 일관함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먼저 이야기하면서 시작하는 방식 일변도를 지양하고 단지 이 대지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방향이 무엇인가를 안내하는 문장으로의 전환 내지는 혼용하자는 것이다:

왼편에 기술되어 있는 방식은 답을 미리 주고 시작하는 기존의 방식이다. 이에 반해 오른편의 내용은 말할 방향만 주고 시작하는 것이다. 즉 무슨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라는 것을 예시해주고 차근차근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으로, 말할 방향만 제시한 채 여전히 무엇을 말할 것인가 하는 결론적인 해답은 감추어진 상태이다. 따라서 정언적 진술과 이야기할 방향을 혼재해서 쓰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우리가 결코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 설교의 도입부일 것이다. 대지 설교는 핵심 아이디어를 중심한 세 개의 포인트로 구성되는 것이니 만큼 각 대지를 도입할 때에는 모든 대지를 감싸안는 핵심 아이디어를 연속적으로 반복해 주는 것이 좋으며 대지가 밑으로 내려갈수록 앞에 언급한 대지를 요약적으로 반복 언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설교의 도입부는 지금까지 설교의 내용에 대한 암시에 치중하였다. 그래서 가급적 서론은 짧게 하도록 강조되었다. 그러나 그 생각을 바꾸자 설교자 입장에서 내가 말할 내용이 무엇이다라는 것을 고지하는 지적 차원에만 만족하지 말고 회중의 입장에서 그래 저 말씀을 내가 꼭 들어야 해!라고 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도록 충분히 공감대 형성에 시간을 할애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씨를 뿌리기 위해 밭가는 작업을 충실히 하자는 말이다. 무엇이 그리 급해서 본론으로 달려가는가? 아직 회중은 당신의 설교를 들을 심적 준비와 동의가 안되어 있다. 아스팔트 위에 씨앗을 뿌리기보다는 잘 간 옥토에 뿌려야 그게 제대로 된 농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