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요청으로서의 이야기식 설교

 

 

이야기식 설교에 대한 개념적 이해

설교는 스타일과 내용이라는 그 자체의 문제뿐 아니라 변화하는 회중이라는 상황적 요인으로 인해 끊임없이 안주의 틀을 깨고 나올 것을 요청받아 왔다. 즉 기존의 전통적 설교로는 더 이상 말씀의 종교로서의 기독교의 정체성을 온전히 유지할 수 없다는 인식이 편만하게 되었다.

이런 위기 상황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이야기식 설교(Narrative-Preaching)이다. 이 설교 방식은 매우 다양한 형식상의 폭을 보여주면서도 공히 이야기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교훈식, 강의식 설교와는 구별된다. 이야기를 새로운 설교의 대안으로 주장하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이야기와 인간의 밀접한 관계, 그리고 의사전달에 있어서 이야기의 놀라운 효력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라이스(Charles Rice)에 따르면 성경은 지구 위에서 함께 살아가기를 바라는 인간들에 의해 쓰여진 것으로 하나님의 자기 현현(顯現)의 이야기는 특정한 인간의 경험에 관한 특정한 이야기 속에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성서가 이야기를(The Story) 표현하는 이야기들에(stories) 대한 증언이기 때문에 성경을 해석하는 데 이야기의 중요성은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나아가 라이스가 옳게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경험을 주석하는 데 있어서도 필수적이다. 인간의 삶은 이야기로서 가장 잘 이해될 수 있으며 또 우리 경험을 이해하는 데 좋은 수단이 된다.

이야기에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신앙의 성격과 그것의 수용 사이의 상관성 때문이기도 하다. 흑인 설교가인 미첼(Henry Mitchell)은 설교자들이 오랜 기간 설교를 사람들과의 이성적인 사안(a matter of reasoning)으로 인식해 왔지만 그러나 이성적 의식은 인간성 가운데 철저한 신앙을 위한 가장 최소한의 측면에 불과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성적인 호소를 통해 정보는 제공될 수 있지만 그러나 신앙은 인식과는 다른 것이다. 신앙은 전 인간과 그의 모든 것 일체를 다 포괄한다. 합리성이 할 수 없는 것을 신앙이 일깨우고 준비하는데 이 신앙은 직관적인 영역에서 발생하며 직관과 연관될 때 그 신앙은 가장 효과적인 것이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야기가 신학의 주요 주제로 부상하게 된 것은 1970년대 이야기신학(Narrative Theology)이 발생하면서부터인데, 이야기식 설교학이 설교학의 한 부분으로 나타나게 된 더 직접적인 원전은 크라이테스(Stephen Crites)의 세미나 원고인 “경험의 이야기 특성”(The Narrative Quality of Experience)이다. 크라이테스로부터 촉발된 이야기와 설교의 만남은 그후 미국 및 서구의 설교학자들간에 새로운 화두로 등장했으며 활발한 논의와 연구를 촉발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중요성을 발견하고 동조하는 것이 비교적 무리 없이 진행된 데 반해 이야기와 설교의 조합은 그 개념과 성격을 정리하는 것에서부터 형식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당장 이야기인가 이야기식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견해가 엇갈리고 있다. 원래 우리가 택한 ‘이야기식 설교’라는 명칭은 이야기 설교, 이야기체 설교, 설화체 설교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이런 용어들은 story preaching, story-telling preaching, narrative preaching 등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이처럼 명칭이 다양한 것은 아직 이 분야에 대한 학문적 정리가 완성되지 않았음을 반영하는 것이고 여전히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불일치는 일차적으로 ‘story’와 ‘narrative’라는 두 단어를 동의어로 볼 것인가의 여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로우리는 내러티브를 특정한 스토리나 특정한 사건을 나타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단어로 보면서 이야기에 있어 공통적인 것 즉 줄거리의 흐름 수수께끼에서 시작하여 반전을 거친 다음 좋은 결과로 맺게 되는 과정은 항상 일정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즉 전혀 다른 두 개의 프로를 보아도 줄거리 진행의 측면에서 변하지 않는 흐름을 갖고 있는데 그는 이것을 내러티브라고 본다. 사실 통상적인 용법에서 내러티브라는 말은 어느 특정한 스토리를 가리킬 수도 있으며 또는 어떤 구술용 대본의 기초가 되는 진행의 흐름이나 전형적인 줄거리 전개 양상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로우리는 내러티브 내용을 말할 때에는 스토리를, 내러티브의 형식을 말할 때에는 내러티브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본다면 이야기식 설교라는 것은 인물 사건 배경을 필수적인 요소로 갖는 ‘이야기’를 설교의 중심 축으로 하는 스토리텔링보다는 훨씬 광범위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즉 이야기식 설교는 이야기를 포함하는 형식을 취할 수도 있고 이야기 없이 이야기를 실어 나르는 틀만을 사용한 설교일 수도 있다. 이 설교 방식이 지향하는 것은 회중으로 하여금 마치 영화나 소설을 보는 것처럼 설교를 들어가면서 줄거리를 파악하게 하고 그 설교의 흐름 속에서 경험을 공감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야기식 설교의 기본 요소로서의 플롯

이야기식 설교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적인 요소는 플롯(plot)이다. 플롯이란 우리말로는 ‘얽어짜기’로 번역할 수 있는데, 부분과 부분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완전한 이야기를 형성하게 될 때 그 이야기는 일정한 플롯을 형성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플롯이란 전체와 부분이 해설자의 의도에 따라 일정한 방식으로 조직적 관계를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플롯은 문학 작품뿐 아니라 이야기식 설교에 있어 생명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이 설교 방식이 일정한 진행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특히 라이켄(Leland Ryken)이 플롯을 이야기의 중심부에 있는 갈등이 해결을 향해 나아가는 장치라고 정의했을 때 그것은 곧 이야기식 설교가 갖는 이야기성(Narrativity)을 충족시키는 필요충분 조건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플롯의 구성은 매우 다양하지만 현재는 마틴(Martin Wallace)이 독일의 프레탁의 이론에서 추출한 4단계를 규범적인 플롯의 모형으로 꼽는다: A―B―C―D. A-B에서는 해설이 제시되고 B에서는 갈등이 소개된다. B-C는 행동의 발생 곧 갈등이 복합 또는 발전되는 단계이며, C는 절정, 행동의 전환을 의미한다. C-D는 갈등이 해결되는 단계이다.

해설은 발단이라고도 불리우는데, 플롯을 제시하기 위한 최초의 상황도입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바탕을 제시해 주는 단계이다. 해설 단계는 최초의 등장인물과 그들의 상호 관계를 제시해 주며 앞으로 전개될 사건의 진행을 위해 사건 발생의 원인과 배경을 불완전하게 설명한다. 또한 이야기의 중심 사상이 암시되면서 다음 사건에 대한 지적 흥미를 야기시키는 단계이다. 성서 이야기에서 해설은 보통 배경이나 인물의 소개, 인물의 이름이나 특성 인물의 외관 삶의 양태나 그들 사이의 관계 그리고 설화를 이해하기 위한 세부적인 필요들을 소개하기 위해 이야기의 서두에 제시된다.

갈등은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어떤 장애가 생겨 갈등이 생기고 복잡해지는 단계이다. 갈등은 주로 등장인물 사이의 대화를 통해 표출되거나 해설자에 의해 선정된 한 사람의 독백 또는 심리적 요인으로 드러난다. 등장인물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은 관점의 불일치나 등장 인물 사이의 서로 다른 성격에서 비롯된다.

절정은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고 위기라고 알려진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지는 순간을 말한다. 이때 플롯에서 제일 중요시되는 갈등과 문제해결의 순간이 분기점을 이루는 전환점이 나타난다. 이 지점에 이르면 독자와 해설자 모두는 실마리를 찾게 된다.

대단원은 갈등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을 보게 되며 새로운 안정 상태를 이루는 토대가 마련된다. 물론 이런 토대는 최종적이거나 확정적이 아니어서 암시적일 수도 있다. 이야기는 절정의 순간에서 세 가지 다른 양상 즉 급반전 발견 그리고 파국을 맞이한다.

 

이야기식 설교의 형식

이야기식 설교가 기본적으로 내용보다는 형식상의 그리고 구성 방법상의 문제라고 할 때 어떤 방식들이 개발되었고 또 사용되고 있는가? 사실 이 문제는 어느 하나로 대답할 수 없는 문제이자 동시에 여전히 열려 있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어느 것이 이야기식이고 어느 것이 이야기식이 아닌가에 대한 합의조차 분분한 것이 이야기식 설교라는 장르가 처해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플롯이라는 구성 인자는 모든 이야기식 설교의 전제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전제하에 어디에 강조점을 둘 것인가 그리고 어떤 형식으로 배열할 것인가 하는 것에 따른 다양성이 존재할 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방식들이 제시되고 있다.

첫째로 로빈슨이 제안하는 방식이다: ① 쟁점(issue)을 발견하라 ② 쟁점을 탐구하라 ③ 쟁점을 재구성하라 ④ 쟁점을 해결하라. 여기서의 핵심은 쟁점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회중이 마음속에 ‘생각하게 하는 문제의식’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 설교는 아무 생각 없이 단지 ‘들려지는’ 설교가 될 뿐이다. 따라서 설교자의 주 임무는 쟁점을 추출하여 그것을 조합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존스톤(Sara Johnston)은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 관한 설교를 통해 먼저 긴장 상태를 조성하고 제사장과 레위인의 행위 속에서 그릇된 긴장해소의 방법을 파악한 후 더 큰 바른 해결 방법 - 멈추고 도와 주라 - 을 제시한다. 그리고 이것이 가지는 또 다른 모순을 분석한 후 진정한 해결 방법 - 가서 이처럼 행하라 - 을 제시한다: 갈등 → 그릇된 해결(방법) → 계속되는 갈등 → 해결 → 새로운 갈등 → 진정한 해결.

좀더 간단한 방식으로는 각기 다른 이야기를 통해 ‘부정 - 부정 - 부정’을 설교 전반부에 배치한 후 결론적으로 긍정을 제시하는 방법을 들 수 있다: ① 이것은 아니다 ② 이것도 아니다 ③ 이것도 아니다 ④ 그러나 이것이다.

이 방법은 일견 이성적 논리가 경험보다 앞선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에 루시 로즈(Lucy Rose)가 주장하는 것처럼 이야기식 설교와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있지만 만일 논리적 끈을 유지한 채 소용되는 소재들을 이야기로 가져간다면 단순하면서도 훌륭한 이야기식 구성의 설교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식 설교의 형식과 관련하여 가장 분명한 유형을 제시한 것을 우리는 유진 로우리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이야기식 설교를 이끌어 가는 형식을 다음과 같은 네 가지로 분류한다:


① 스토리 진행 - 성경사건의 진행을 그 순서에 따라 그대로 옮겨 설교하기

② 스토리 보류 - 설교본문을 뒤로 미룬 채 현재의 관심사로부터 설교를 시작하고 그 다음 본문을 대입하여 진행하는 방식으로 본문이 익히 알려져 있어 놀라움을 주기 어렵다든지 전달에 어려움 있을 경우에 사용하는 방식

③ 스토리 유예(suspending) - 성경본문으로 시작하여 다른 무엇이 스토리 진행과정에서 돌출하는 방식 즉 스토리 흐름 선상에 있는 해당 본문을 떠나지만 다시 본문으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그러나 만일 두 본문을 갖고 시작하여 어느 하나를 다루다가 다른 본문으로 가서 다시 돌아옴 없이 끝맺으면 이것은 스토리 보류에 해당한다.

④ 스토리 전환 - 기본적인 줄거리에 다양한 성경 기사 및 다양한 이야기를 줄거리에 맞게 동원하는 기법



로우리는 이야기식 설교의 작성 단계를 다섯 단계로 상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그 내용을 설명한다.


첫째, 평형을 뒤집어라. 이 단계는 청중들을 설교의 주제에 참여시킴으로 그들의 평형감각(늘 갖고 있는 생각)을 뒤집어 놓는 단계이다. 로우리는 회중의 경청태도가 매우 다양하고 준비상태 역시 천차만별이라는 전제하에 존 듀이가 말한 “사고(thinking)는 심각한 문제점을 만난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오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한다면 그 다음 회중이 경청하게 하기 위해서는 긴장감(문제)이 전달되도록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너무도 자주 사랑의 손길을 펼쳐 보지만 되돌려 받는 것이라고는 멍들고 상처 입은 손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거부당할 각오를 하는 것입니다.”

그는 갈등이나 문제점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재료이기 때문에 설교 내용 및 설교제목은 항상 모호함과 문제를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설교를 열어가는 첫 단계의 목적은 청중의 마음에 모호함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며 끝맺음과 해명이 필요한 무엇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모순을 분석하라. 이 단계는 분석과 진단의 단계로 길이로 보면 가장 긴 단계이다. 로우리는 이 단계의 핵심어는 “왜 그런가?”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이 단계는 우리 설교 임무에 핵심적인 진단의 단계인데, 그는 왜 그런가를 물어보는 진단이야 말로 설교 내용뿐 아니라 설교구성을 유지해 나가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고 본다.

셋째, 해결의 실마리를 드러내라. 이 단계는 문제화된 이슈를 해결해 주는 어떤 설명을 찾는 단계이다. 지금 문제가 되는 논점을 납득할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으로 이것은 기대하지 않은 곳으로부터(상식적인 기대) 오며 그것이 모든 것을 뒤집어 놓는다. 소위 역전의 발생이다.

역전의 원리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형태로 가능하다: 원인-결과의 역전; 변화된 원인의 역전; 변화된 가정의 역전; 변화된 논리의 역전

넷째, 복음을 경험하라. 이 단계는 복음을 경험하는 단계이다. 일단 해결의 실마리가 드러나면 청중은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된 것이다. 로우리는 이 단계에서 특히 설교자가 주의해야 할 사항으로 소위 ‘복음의 누전’(the homiletical short circuit) 현상을 든다. 즉 회중은 해답을 빨리 듣고 싶어하고 설교자 역시 그런 기대에 부응하려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결과를 기대하라. 로우리는 기존 설교의 구성은 모든 단계가 ‘헌신으로의 초청’으로 끌고 가는 데 맞추어져 있었다고 보고 이야기식 설교 역시 이 기능의 일단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고조되는 긴장감이 설교의 70% 진행정도에서 깨지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주목하면서 클라이맥스가 설교의 종결부에 나타나는 전통적인 방식과 달리 해결의 순간으로 그 위치를 정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나서 그 해결의 결과로 인해 문제를 다시 정돈하는 것이 설교의 ‘물음’과 동등한 역할을 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위에서 살펴본 다양한 방식들은 설교자들의 경향성, 본문의 구조, 회중의 이해력 등에 따라 자유롭게 채택할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다양한 방식을 개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형식이 어떻든 우리의 설교는 살몬(Bruce C. Salmon)이 말하는 충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즉 설교가 좋은 이야기가 되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명확히 제한된 주제, 이야기 전개에서 단 하나의 관점, 발단에서 갈등 해결까지 잘 짜여진 구성, 실제적이고 회화적인 설명의 사용, 감정에의 호소, 소수의 인물, 직접적인 연설에 의존, 반복 사용과 결론 강조라는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