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식 설교의 다양한 방식

 

 

최근 새롭게 부각하고 있는 이야기식(Narrative Preaching) 설교는 지금까지 300년 이상 서구 교회 설교의 핵심적인 설교방식으로 자리잡아왔던 대지설교(three points preaching) 방식의 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대지설교는 그것이 가진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주지적 설교 방식이라는 점에서 효과적인 전달에 많은 문제를 야기해 온 것이 사실이다. 즉 설교자가 미리 만들어 놓은 원리를 연역적으로 풀어가는 방식이다 보니 원리를 말한 뒤에 이어지는 설명이 설득력을 잃는 경우 회중의 주의를 집중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설교자는 이미 말할 것을 다 말한 상태이고 회중은 이미 들을 것의 핵심을 들은 상태이다 보니 설교의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해 설교자가 기울여야 하는 수고는 지대한 것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설교자는 수동적인 경청만을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이에 반해 이야기식 설교는 그 근본 형태가 귀납적이다. 즉 설교의 전반부에 여러 다양한 상황들이 제시되고 그것들로부터 하나의 원리를 향해 나가는 방식이다 보니 영화와 소설의 전개방식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즉 설교를 들어가면서 메시지의 감을 잡아 나가는 방식, 설교자와 함께 회중이 설교의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방식, 설교가 대지별로 끊어지는 조각교훈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작품으로 맥이 흐르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내러티브 설교가 소개되기 전에도 대지설교를 하지 않고 이와 유사한 설교를 하는 분들이 없지 않았다. 예를 들어 곽선희, 김진홍, 옥한흠 목사 등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설교가 본격적인 내러티브 설교라 보기 힘든 것은 비록 형식으로 이들의 설교가 대지의 방식을 취하지 않고 있지만 설교에 흐르는 기본적인 정서가 주지적이라는 것이다. 즉 설교자가 만들어 놓은 결론을 논리적으로 차분히 풀어 가는 것일 뿐 회중이 문제의식 및 의문을 가지고 설교의 과정에 동참한다는 인상을 주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이야기식 설교는 여전히 발전해 나가는 진행형의 장르이기 때문에 확정적인 형태를 고집하지는 않는다. 이 말은 이 방식의 설교가 그만큼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유진 로우리가 제시한 기본적인 네 가지 방식은 우리가 주목해 볼 만한 방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스토리 진행(Running the Story) 방식이다. 이것은 이야기 설교(Storytelling)라는 최초 방식에서 한 단계 발전한 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 이야기가 들어 있는 본문을 택해 기록된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전개해 나가는 것이 처음 방식이었다면 이 방식은 화자가 해석 진단 평가를 겸해 가면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방식으로 설교하려면 먼저 이야기가 있는 본문을 택해야 하며 그 이야기로부터 핵심 메시지가 무엇인가를 추출해 내야 한다. 그런 다음 본문에 나와 있는 이야기를 차례대로 진행시키되 상상력을 통해 행간을 읽어냄으로 그 사건을 마치 그림을 그리듯 회중에게 그대로 전달함으로 사건을 함께 경험하도록 한다. 하지만 단지 성경이 전하는 본문의 사건을 진행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오늘의 유비되는 상황을 대입시켜 전개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본문이 갖고 있는 사건의 갈등 구조를 극대화시키고 해석된 핵심 메시지로 해답을 주는 것이 설교의 근간을 이루도록 하여야 한다.

이 방식은 이미 회중이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단순 반복할 수 있다는 약점을 노출시키지 않도록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화자의 진단과 해석을 곁들이는 것이 필수이고 오늘의 회중이 연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적절한 유비를 사용하여야 한다. 또한 마치 어린이들에게 동화식 구연설교를 하는 것처럼 상황에 대한 사실적이고 극적인 묘사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둘째는 스토리 보류(Delaying the Story) 방식이다. 이것은 이야기가 있는 본문을 선택하지만 설교의 도입부를 본문으로 시작하지 않고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상황으로부터 시작하여 본문으로 옮아가는 방식을 취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처음 상황으로부터 시작할 때 문제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부각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다음 본문의 이야기를 전체적으로 한번 다루어 주면서(스토리텔링) 도입부에서 제기한 문제를 본문으로부터 다시 한 번 추출해 내도록 한다.

그런 다음 이 문제를 숙성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즉 갈등과 문제를 심화시키는 과정인데 이것은 주로 본문에 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가져가는 방법을 통해 혹은 또 다른 본문이나 오늘의 상황을 통해 가능하다. 그런 다음 설교의 핵심 메시지를 던져 주고 이것을 다른 본문 혹은 예화를 통해 두세 번에 걸쳐 재 강조해 준 다음 다시 간략한 정언적 정리로 끝맺도록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메시지는 결코 길게 가져가서는 안되며 한 단락 정도(6-7문장)에 머물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그런 다음 다른 성경이나 예화 등 자료의 변화를 시도해 이 메시지를 다른 각도에서 제삼 제사 취급해 줌으로 설교의 지리함을 극복하도록 하여야 한다. 시간적으로 메시지가 나오는 것은 설교의 70% 정도가 지나간 시점이기 때문에 자칫 회중의 집중력이 이완될 수 있다. 따라서 어느 한 소재로 지루하게 끌고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물론 일차적으로 설교는 그 메시지가 얼마만큼 구태의연함을 벗어나는가가 설교의 성패를 좌우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그 운용을 어떻게 가져가는가 하는 것 역시 매우 중요한데, 특히 이 시점의 운용여부가 하나의 관건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세 번째는 스토리 유예(Suspending the Story)이다.
이것은 이야기가 있는 본문을 택해 설교의 도입을 본문에 대한 이야기로(스토리텔링) 시작하여 오늘의 회중의 상황으로 연결시킨 뒤 다시 핵심적인 메시지를 본문으로부터 추출해 내는 방식이다. 엄밀히 말하면 스토리 보류 방식의 역순이라 할 수 있는데 처음 도입부에서 성경 본문을 상세히 다루되, 관찰식 진단식 진행을 통해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도록 한다. 그런 다음 오늘의 회중이 살아가는 상황을 취급하면서 본문에서 도출한 문제점과 동일한 것들을 회중의 상황 속에서 추출해 내도록 한다. 이어서 도출된 문제점을 확장시키고 갈등을 성숙시키는 과정을 갖게 되는데 다른 본문이나 예화 등을 사용하면서 문제점을 심화시켜야 한다.

메시지의 제시는 갈등의 심화 다음에 나오게 되는데 이 때 메시지를 직접 이야기하기보다는 예화를 통해 먼저 인상지우고 그 다음 메시지를 제시한다. 이 경우에도 메시지는 한 단락 정도로 간략하게 제시하는 것이 좋으며 다른 본문이나 예화를 통해 이 메시지를 심화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네 번째 방식은 스토리 전환(Alternating the Story)이다.
이 방식의 특징은 앞의 세 경우와 달리 설교 본문이 이야기가 들어 있지 않은 것이라 해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가령 서신서나 예언서 등과 같이 사건이나 구체적인 이야기가 들어 있지 않은 본문을 이야기식으로 만드는 데 매우 유리한 방식이다. 스토리 전환은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각기 다른 다양한 예화를 수시로 동원하여 설교를 진행하는데 여기에 사용되는 자료들은 성경 혹은 기타 예화를 망라한다.

예화를 수시로 동원하면서 설교를 진행시키기 때문에 설교가 아닌 예화의 진열장 식으로 비쳐질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런 위험을 불식시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이 예화들을 하나로 묶어내는 주제의 명확함이다. 이 주제의 끈이 정확할 경우에만 이런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스토리 전환 역시 처음 도입부에서 한 단락 정도의 짧은 예화 3-6개를 동원하여 설교자가 제기하려는 문제를 집중 부각시킨다. 이 경우에도 사용되는 예화들이 점층적으로 처리되어 강도를 더해 가는 것이 좋은데 예를 들어 어려움이라는 것을 부각시키려는 경우 일상 생활의 어려움, 신체의 불편에서 오는 어려움, 가치관의 혼동에서 오는 어려움 등으로 심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 마지막 부분에는 본문으로부터 나오는 문제를 다루도록 하며 그것을 풀어가기 위해 즉 메시지를 도출하기 위해 먼저 예화를 들어 인상을 지우고 그 다음 본문으로부터 메시지를 제시하도록 한다.

앞의 두 경우와 마찬가지로 메시지의 제시는 짧게 처리하되, 예화와 다른 성경을 통해 보완하도록 한다. 예화를 많이 쓰게 되면 설교의 깊이 있는 논구가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여 설교자는 주제의 일관성을 유지하는데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네 가지 방식은 모두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설교의 도입부에서 문제 및 갈등 구조를 제시하고 설교의 후반부에서 메시지를 제시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것을 그림으로 표시하면 문제의 제기 및 메시지의 제시라는 두 개의 산봉우리를 가진 설교라 할 수 있다. 첫 번째 봉우리와 두 번째 사이에는 문제와 갈등의 심화라는 산골짜기와 산등성이가 자리잡게 되는데 얼마나 골이 깊은가 산등성이가 가파른가에 따라 설교의 메시지가 - 이것은 결국 반전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 - 그 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회중으로 하여금 당연한 설교가 아닌 생각하게 하는 설교가 가능하며 따라서 설교의 진행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이야기식 설교의 장점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전하려는 메시지를 가급적 단출하게 지시한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 설교의 문제점은 바로 이 메시지의 제시가 설명 일변도로 흐르면서 그 길이가 상당히 길다는 것이다. 이야기식 설교에서는 이것을 가급적 짧게 줄이되 예화와 다른 본문이라는 소재의 변경을 통해 메시지를 다른 각도에서 재 강조해 주는 방식을 취한다.

하지만 대지설교가 그 메시지의 분명함을 특징으로 갖는다면 이야기식 설교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가 갖는 구성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회중 입장에서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할 수도 있다. 따라서 설교자는 이런 문제를 잘 파악하여 전하려는 메시지를 강하게 강조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국의 경우 결론을 열어 놓고 회중에게 맡기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 이것은 우리 설교 현장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점이라 할 수 있다. 또 신언을 인언으로 전달하는 것이 설교이고 보면 메신저인 설교자가 분명한 메시지를 회중에게 전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할 것이다.


우리 설교자들은 지금까지 대지설교라는 한 가지 방식에만 너무 안주해 왔다. 만일 그렇게 한 가지 방식만 쓰는 것이 설교자가 설교를 작성하는 데 편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회중에게 전달하는 데 최선의 방식인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만일 전자가 그 이유라면 설교자는 어서 빨리 그 편안함을 벗어버리고 그 구태로부터 나와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경우 대개는 설교자만 만족하고 회중이 외면하는 설교이기 쉽기 때문이다. 설교자들이여, 분명히 기억하시라! 깊이 있는 메시지를 추출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라. 그런 다음 그 메시지를 실어 나르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레가 무엇인가를 결정하라. 그 심사숙고의 과정에 이야기식 설교 방식을 끼워 줄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