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인가 설교자의 말인가?

 

설교자들이 흔히 자신이 행한 설교를 두고 하는 이야기 가운데 가장 쉽게 들을 수 있는 말은 자신의 설교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겁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들으면 이것이야말로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이겠지만 성도들은 좀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설교를 듣기 위해 모이는 청중들의 대부분이 자연인으로서의 설교자 이야기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한 이유로 모여듭니다. 따라서 그런 회중들에게 이 말은 큰 저항감 없이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이것처럼 위험한 말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독일 튀빙겐 대학의 실천신학 교수인 뢰슬러(Dietrich Rossler)가 지적한 것처럼, 스위스 제2신앙고백서를 작성했던 그로스뮌스터 교회의 위대한 설교자이며 츠빙글리의 후계자로 종교개혁을 계승했던 불링거(Heinrich Bullinger)의 “하나님의 말씀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유명한 명제는 설교에 대한 종교개혁 일반의 입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또 예레미야 1: 9의 말씀 “보라 내가 네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와 누가복음 10:16의 말씀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역시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에 의해 행해지는 설교로서의 인간 말 사이의 관계를 밀접하게 연관지우고 있습니다마는, 동시에 이런 표현들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히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불링거의 신학적 명제나 성경의 선언들을 진지한 해석 없이 사용할 경우 개혁교회의 목사직은 과거의 사제보다 백 배나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게 된다는 존 칼빈의 경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두 가지 선결 조건

설교자의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 되려면 우선 두 가지의 선결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기록된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근거로 해야 합니다. 우리 한국 강단의 설교가 본문말씀을 정해 놓긴 하지만 대부분은 단지 장식물 같은 느낌을 주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성경말씀을 정해놓고는 설교자의 생각에 따라 대지를 정하고 그 대지의 전개는 대개 다른 본문들을 끌어다가 댑니다.이 정도만으로도 그런 대로 설교라 할 수 있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이 시점에서 왜 교회가 전통적으로 한 성경본문을 정해서 설교했는가를 주목해야 합니다.

성경본문을 정한다는 이야기는 설교 시간 동안 오직 그 본문에 주목하겠다는 의도입니다. 이것이 사람 편의 이야기라면, 하나님 편에서는 한 본문을 통해 우리와 이야기하시겠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본문은 하나님이 우리와 대화하시려는 창틀입니다. 그러니 이 ‘하나님의 창틀’ 즉 성경 본문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지요.

둘째, 설교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이야기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성경의 중심이자 성경의 계산점입니다. 모든 설교 본문을 억지 춘향격으로 기독론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지만, 설교의 궁극이 광의적으로 복음의 근간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을 드러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설교의 요건을 채우지 못하는 겁니다. 적어도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이 두 가지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일찍이 마르틴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 성경 그리고 설교의 세 가지 형식으로 규정하면서 말씀을 유일한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로 보았습니다:

 

1. 그리스도는 곧 하나님 말씀이며 곧 복음입니다.

루터에게 그리스도와 말씀은 서로 바꾸어 쓸 수 있는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말씀 없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참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고 그 예배하는 실상은 하나님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없이는 우상밖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WA 10, 1).

 

2. 이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전해 주는 것이 기록된 말씀인 성경입니다.

성경은 루터에게 말씀의 두번째 형식이며 우리를 만나시려는 하나님의 도구입니다. 성서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이 예수 그리스도는 전 성경을 해석하는 계산점입니다(WA 2, 113): “만일 성경에서 그리스도를 빼내면 무엇이 남을 것인지 너는 아느냐”(WA 11, 223) “전 성경은 어디서나 오로지 그리스도에 관한 것 뿐이다”(universa Scriptura de solo Christo est ubique)(WA 46, 414). 루터는 율법과 예언서들도 “그리스도를 싸고 있는 강보로 또 그를 뉘고 있는 구유”로 보면서 구약 역시 그리스도를 담고 있고 그리스도에 대해 말하며 그에 대한 증거를 준다고 주장합니다(WA 10, 1).

이러한 루터의 그리스도 중심적인 성경관을 바탕으로 “오직 성경으로만”이라는 그의 개혁 슬로건을 보면 그것이 단지 성경 해석의 개혁적 원리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그리스도에 대한 유일한 기록된 말씀이라는 의미를 함축하는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설교란 루터에게 성경이라는 기록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인간에게 말을 거는 말씀입니다.

그는 성경과 함께 설교를 ‘외적 말씀’으로 보면서 성경을 바탕한 이 ‘말해지는 말씀’을 통해서 이 말씀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주장합니다. 즉, 설교자가 복음을 외적 말씀으로 선포하는 설교를 통해 하나님은 회중에게 말씀하시고 회중을 움직이십니다. 이런 외적인 말씀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으며 육체를 갖게 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인간에게 다가오는 인간적-역사적 방법입니다. 따라서 ‘설교는 하나님이 그의 심판의 말씀과 은혜의 말씀을 가지고 현재의 순간에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바 그 수단’이라고 루터의 설교관을 요약한 스튬플(Stumple)의 주장은 정당합니다.

 

이런 하나님 말씀의 한 형식으로서의 설교가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을 루터는 ‘증언으로서의 하나님 말씀’으로 보았습니다. 즉, 설교를 하나님 말씀이라 할 때 그것은 설교가 그리스도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행위를 직접 지시하는 성서의 증언에 근거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이며 ‘복음의 살아 있는 소리’(viva vox evangelii)가 설교자의 증언의 말이 되어 살아나기에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3형식

바르트(K. Barth)는 이 문제를 좀더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그가 정리하는 하나님 말씀의 3형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성육신 된 말씀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계시는 바로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이것은 하나님의 일부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인격이요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것은 결코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하나님 말씀은 성육신 된 하나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이며 ‘위로부터 오는 절대적으로 새로운 것’이다.

 

2. 기록된 말씀

성경: 하나님의 계시는 성서라는 기록된 말씀의 형식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며 따라서 우리는 성서에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시를 찾아야 한다. 성서는 과거 사건의 보도이지만 결코 과거에 속한 지나가버린 사건이 아닌 세례와 성례와 선포와 회상 가운데 늘 현재화된다. 즉, 기록된 말씀은 오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께서 그 안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현재적 사건이다. 하지만 기록된 말씀으로서의 성서는 성육신 된 말씀과 구별되어야 한다. 성서는 계시 자체가 아닌 이 계시에 대한 증언이며 보고이다. 성서가 하나님 말씀인 것은 참 계시를 증거하기 때문이다. 곧 성서가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자기 증언이기 때문이다.

 

3. 선포된 말씀

설교: 설교는 하나님 자신에 의해 말씀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탁에 따르는 교회라는 장소에서 이를 위해 부름받은 자에 의해 자유로운 언어로 현재의 인간들에게 행해지는, 성서 본문에 대한 해석과 봉사의 요청 아래 행해지는 것이다

교회의 선포는 따라서 단순히 인간적인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통하여 전달되고 하나님이 자기를 계시하는 형식이다. 이 설교는 오직 성서에 근거해야 한다. 교회가 올바른 선포를 하려면 선포는 언제나 규범적 성격을 가진 정경으로, 궁극적으로 성서가 증언하고 있는 그리스도에게 돌아가야 하며, 성육신 된 하나님의 말씀인 그리스도에 대한 선포이어야 한다.

바르트는 인간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할 수 있는 확실성이란 설교자의 거듭남이나 인간의 어떤 조건에 달려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즉, 인간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은 거듭남의 체험이나 공직에의 임명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다시금 우리를 찾아오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설교자도 자기의 말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할 수 없으며 자기의 말을 신격화시켜서도 안됩니다. 설교자의 말은 여전히 인간의 말이고 이 말을 하나님 말씀 되게 하는 것은 설교자의 재능이나 제도가 아닌, 성부로부터 성자를 통해 오시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입니다.

루터와 바르트의 견해에서 보듯 하나님은 당신 스스로를 계시하시려 하며 그 하나님의 역사는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설교란 이 진행 중인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시고 말씀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체적인 말씀 형식입니다. 따라서 설교는 이미 기록된 이 하나님의 뜻에 귀를 기울여 듣고 복종하는 한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한 형식이 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칼빈은 ‘성령의 내적 증거’라는 말을 썼습니다. 설교가 곧 ‘증거’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리 보면 설교자는 증인이라는 말입니다. 증인! 그렇다면 증인은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 일종의 사신으로서 위탁받은 말만을 해야 합니다. 투르나이젠은 설교를 ‘복명복창’(復命復唱) 하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다소 과격한 주장을 하기도 했지만 근본정신으로 따져 이 말이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만일 당신이 계속해서 당신의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려면 적어도 위의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어떻게 듣지 않았는데 말할 수 있으며 발견해서 손에 잡은 것이 없는데 무엇을 회중에게 줄 수 있단 말입니까? 사환인 우리 설교자가 전할 것이 없는데도 여전히 말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까, 아니면 사환 자신의 이야기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