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와 수사학

 

설교가 기독교적 연설임을 상기한다면,
연설을 위한 수사학적 훈련은 반드시 필요하다!

 

설교의 기본 단계

연설로서의 설교를 결정짓는 요소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이론적인 측면을 다루는 신학, 형식적인 측면을 다루는 언어학, 개인적인 차원이 연계된 심리학, 그리고 각각의 설교에 쓰여지게 되는 각종 자료의 차원이 그것이다.

설교란 언제나 복음의 빛 아래서의 이야기이어야 하기 때문에 신학적 사고 없이는 불가능하다. 설교란 언제나 언어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언어학은 설교를 위해 귀한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 동시에 설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향한 것이기 때문에 반신적(反神的) 심리학이 아닌 인간에 대한 진지함으로 접근하는 심리학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설교의 일차 자료인 성경 이외에 설교자의 논지를 뒷받침해줄 자료의 확보가 중요하다. 이런 요소들을 바탕으로 하는 설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단계를 거쳐 진행된다:
 

1단계: 들려짐 - 사신인 설교는 전달되어야 한다. 즉 회중은 설교를 통해 설교자가 알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정확한 언어의 사용, 명확성, 고저장단, 적절한 강조 등이 필요하다.

2단계: 이해함 - 사신은 이해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논리성, 분명한 목적, 일목요연한 정렬, 순서가 문제가 된다.

3단계: 확신함 - 사신은 수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설교자 자신이 문제가 되는데 이는 곧 즉 그의 능력, 인격, 설득력, 영력 모범으로서의 인상 등을 말한다.

4단계: 실천함 - 설교는 행동으로 옮겨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구체적 방법제시와 실현가능성이 핵심이다.


이런 사항들은 타고난 재능만으로 되지 않는다. 물론 설교자에게 천부적 재능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사실이자만 그러나 엄밀히 말해 설교에서의 재능이란 훈련된 후천적 재능이다. 더 엄밀히 말하면 연설로서의 설교의 삼대 요건인 명확성, 예술적인 정교함, 관심과 흥미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선천적인 재능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계발시키고 교육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고 또 이 위에 경험이 덧붙여져야 한다. 즉 ‘재능계발 - 교육 - 경험’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이 모든 것을 포괄하고 동시에 그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데 필수적인 것이 수사학이다.

 

수사학의 내용

어거스틴 이래 수사학은 설교의 효과적인 진행과 성공적인 전달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법으로 널리 인정받아왔지만 고대세계에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에서 수사학이 필요했다. 첫째는 고대세계에서 철학 등 교육에서 필요로 했던 정보제공을 위주로 하는 ‘도체레’(Docere)가 그것으로, 듣는 사람의 생각을 말하는 자의 그것으로 바꾸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두번째는 대중 연설과 축제연설을 뜻하는 ‘델렉따레’(Delectare)로, 일상 사회생활의 용어를 사용해 토론이나 정보전달적인 어법이 아닌 친근한 분위기에서 행해지는 대화적 기법의 연설이었다. 셋째는 그리고 정치담화에서 행해지던 ‘모베레’(Movere)로, 이것은 타인을 선동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등의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연설들은 그 자체로 가르치고(docere) 기쁘게 하고(delectare) 그리고 의지를 변화시키는(movere)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설교에서는 이런 성격들을 그대로 설교 속에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연설은 타고난 재능보다는 유명한 연설가들의 연설을 모방하고 특정한 규칙을 숙달하며 그리고 훈련을 통해 획득되는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그리고 이 연설에서는 흥미나 호기심 자극, 핵심에 대한 명확한 묘사, 분명한 근거, 구체적 실례 그리고 실천을 위한 호소를 핵심적인 요소로 강조하면서 이것을 위해 다음과 같은 5가지 기준을 제시해왔다: ① 창안(iventio: 청중이 관심을 둘 만한 주제 찾기) ② 배열(dispositio: 창출한 메시지를 일정한 순서에 따라 논리적으로 배열하기) ③ 형식(elocutio: 언어형식의 명료성) ④ 기억(memoria: 전달된 메시지를 좀더 효과적으로 기억되게 하기) ⑤ 전달(pronuntiatio: 일정한 물리적 형식을 갖추어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으로 자연스러움이 생명력).

물론 수사학적 기법이 지나쳐서 설교가 수사학의 시녀로 전락했던 중세의 폐단을 우려한 나머지 마르틴 루터 같은 개혁가들은 설교에서의 수사학의 사용을 금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그런 조처가 영구불변한 효용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또 우리가 강조하는 수사학이 중세의 그것처럼 복잡하고 기교가 내용을 앞지르는 그런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수사학이란 그 본질적인 관심이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말할 수 있으며 말하는 자의 의도를 듣는 자들에게 명확하게 전달하고 그들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즉 내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달해서 듣는 자로 하여금 내 견해에 동의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까를 궁구(窮究)하는 기법이다. 디트리히 뢰슬러(Dietrich Rossler)가 주장한 것처럼 설교가 “기독교적 연설”이라면 설교 역시 연설이 가지는 일반적인 지향점 즉 설교자의 주장을 회중에게 설득시킨다는 사실에서 자유할 수 없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 나라에 복음이 들어오고 복음 사역을 위해 신학교육기관이 세워지고 거기서 교육받은 목사님들이 성경을 해석하는 훈련을 착실하게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설교를 위한 언어적 훈련으로서의 수사학적 훈련 즉 말하는 훈련을 받아보지는 못했다. 그러니까 말할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또 그것의 추출을 위해 훈련받는 것에서부터 그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말할 것인가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구 교회 설교의 전통을 보면 지금까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한 설교자들은 하나같이 소위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고, 말하는 기술로서의 수사학에 능통한 사람들이었으며, 당연히 설교가 가지는 연설로서의 차원을 꿰뚫고 있었다. 또 서구의 교육에서 이 말하는 기술로서의 수사학은 가장 기본적인 교과목으로 오랜 동안 자리잡아왔다.

 

설교의 구체적 훈련

설교란 일종의 연설이고 그것을 이루는 것은 언어적 요소와 비언어적 요소이다. 언어의 운용이라는 것은 결국 빠르기, 크기(목소리), 높이(음), 길이, 쉬기 그리고 힘주기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맺고 끊음, 압축과 이완 등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 설교는 이런 언어의 운용과 관련된 요소들을 적절히 사용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한 문장 안에서 너무 지나치게 변화를 자주 주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여러 요소들은 작게는 한 단어의 처리에서부터 좀더 확장하면 한 문장의 운용이고 더 나아가서는 한 문단의 운용에까지 적용이 된다.

1) 우선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기법으로 반복과 부연법이 있다. 하나의 단어나 문장을 강조하기 위해 해당부분에 강세를 주어 반복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사랑, 사랑이 가장 중요합니다! 다시 말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사랑이 가장 중요합니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반드시 부연과 반복을 통해 강조할 필요가 있다. 회중은 결코 설교원고를 들고 다시 반복해서 설교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2) 두 번째는 설교진행에서 일정한 부분을 압축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설교자가 강조하려는 부분 앞 혹은 뒤의 한 단락 정도를 처리할 때 사용하는 방식으로 설교의 진행에 변화를 줌으로 말하려는 부분을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대개 이런 휘몰이법에서는 평상시보다 1.5-2배의 빠르기로 마치 폭풍우가 휘몰아치듯 빠르게 처리하는 게 좋다. 그리고 이런 휘몰이법을 사용한 다음 문장은 극히 대조적으로 그 속도를 떨어뜨리는 것이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다.

3) 점층법을 설교에 적극 활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동일한 맥락을 점차 그 의미를 고조시켜 나가는 방식으로 부연법이나 강조와 비슷한 맥락의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때는 정도의 심화 내지는 범위와 대상의 확대(축소) 등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타락한 인간은 자기와 자기 자신이 불협화음을 내기 마련입니다. 자기와 다른 사람의 관계에도 불협화음이 납니다. 자연과 상황 그 어느 것과도 화목할 수 없습니다 마침내는 자기와 하나님의 관계에도 불협화음이 납니다.”

4) 정상적인 설교를 일시 중단하는 휴지(Pause)의 기법이다. 갑자기 진행하다가 중지한다든지, 회중에게 질문을 던져놓고 중지한다든지, 다같이 생각할 수 있는 문제를 서술한 뒤 중지하는 기법이 여기에 해당될 수 있다. 이 휴지 기법은 설교의 흐름을 3초 내지 5초 동안 끊음으로 회중의 분위기를 일신시키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나아가 설교가 대화라고 했을 때 회중을 설교자가 전하려는 사안 속으로 흡입해 들여, 같이 해답을 위해 생각하게 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한 설교에서 대략 2-4회 정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문을 보자: 산다는 것은 종종 뭐 그리 대단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가운데 엄청난 기쁨을 누려본 분들이 계실 겁니다. 얼마나 기쁩니까? 그런데 그 기쁨이 도대체 얼마나 오래 가던가요? ...(5초) 하룻밤만 자고 나면 그 기쁨도 그저 덤덤해집니다. 엄청난 슬픔 때문에 잠 못 이룬 적이 왜 없겠어요? 그런데 어떻든가요? 그 슬픔도 시간이 가니까 사그라지지 않던가요. ...(5초) 인생이란 게 결국 그런 것이거든요.”

5) 기계적인 적용을 할 필요는 없지만 필요에 따라 문장 혹은 문단을 처리하는 음성의 높이에 변화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통상적인 음높이가 1단계에서 최고 10단계까지로 구분된다 할 때 절정을 나타내는 것은 8-10정도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일반적인 설교의 진행은 통상 말하는 높이에 해당하는 5-6정도일 것이다.

이런 사항을 염두에 두고 통상적인 진행보다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고 느껴질 때에는 설교원고에 음높이에 대한 표시를 해두어야 한다. 설교원고는 설교자만이 알아볼 수 있는 암호문처럼 여러 기호들의 장치로 치장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모든 절정 부분을 고음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도 정말 중요한 이야기 심각한 이야기는 목소리를 낮추기 마련인데 다행히 요즘은 마이크로폰이 발달했기 때문에 설교에서도 절정의 처리를 오히려 낮은 톤으로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설교가 수사학의 시녀일 필요는 전혀 없지만, 그렇다고 수사학과 원수질 이유 또한 없다. 오히려 적절한 수사학적 기법의 활용은 효과적인 메시지의 전달을 위해 적지 않은 도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