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하게 설교하기!


설교에 치이면 죽습니다. 예배의 특성화, 설교의 특성화가 필요합니다!


 설교에 둘러싸인 설교자!

오늘날 우리 강단의 설교자들은 사방이 설교에 둘러싸여 설교에 치여 버린 모습입니다. 처음에는 비명을 지르다가 이제는 그나마도 무감각해져서 비명이나 신음도 내지 않는 무덤덤한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주일 낮예배, 밤예배, 삼일 예배, 일곱 번의 새벽예배... 게다가 구역예배를 인도할 경우는 구역예배설교, 심방설교... 기관까지 인도할 경우에도 설교는 추가됩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 강단의 설교자들은 슈퍼맨 소리를 들을 정도로 대단한 분들입니다. 물론 교회 현장이 이렇게 하지 않고는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상황의 불가피성을 아무리 역설한다 하더라도 그리고 그것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처럼 수많은 설교가 가져올 수 있는 피해(?)를 해명할 정당성을 갖지는 못합니다.

우선 과연 설교자가 그 많은 설교를 설교답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설교의 횟수만을 놓고 보면 그것은 철저히 충전 없는 방전의 연속입니다. 안에서 나올 것이 없으니 많은 설교자들이 남의 설교를 도용하고 ― 모방이 아닙니다! ― 각종 설교 자료를 제공해 주는 전문기관으로부터 제공된 ‘완성된 남의 설교’에 의존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의 설교를 적절하게 짜집기해서 설교단에 올라가는 경우가 허다하게 됩니다. 물론 마르틴 루터도 그 수준이 천차만별이었던 초기 개신교 설교자들을 위해 친히 설교문을 만들어 회람시켰고, 능력이 안되는 설교자는 루터가 만든 설교문을 읽는 것으로 설교를 대신하기도 했습니다. 또 존 웨슬리 시대만 하더라도 집안 어른의 설교문을 그대로 반복해서 설교단에 갖고 올라가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던 전통이 있었습니다.

능력이 안되어서 남의 설교집에 의존하는 것을 무작정 나쁘다고만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또 사실 자신의 설교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남의 설교문을 많이 보고 분석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고, 한편의 설교문을 만들 때에도 다른 설교자들이 그 본문을 어떻게 설교했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추천할 만한 방식입니다.

그러나 호랑이가 가죽을 남긴다면 설교자가 남길 것은 결국 설교밖에 없습니다. 내가 먹여야 하는 양들은 절대로 중립적인 양들이 아닙니다. 다른 목자들이 인도하는 양도 아닙니다. 적어도 그 양을 가장 잘 아는 것은 목자 자신입니다. 그렇다면 그 양들을 가장 잘 아는 목자가 꼴을 조제해서 먹여 주어야 하고 식단을 짜 주어야 합니다. 식단도 없이 자기 회중에 대한 고민도 없이 남의 설교에 맛들이기 시작하면 회중은 회중대로 괴롭고 설교자는 그 모방의 습성을 빠져나오기가 결코 쉽지 않게 됩니다.

무엇보다 현재와 같은 과도한 설교의 횟수는 설교자의 생명력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설교가 남발되다 보면 처음 얼마 동안은 설교에 대한 좋은 평가를 내리다가도,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그저 그렇고 그런 무감각으로 바뀌어지게 됩니다.

설교의 특성화와 예배의 차별화

따라서 설교 현장의 불가피성을 피해갈 수 없다면 설교자는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즉, 각 예배의 특성이 차별화되는 것처럼 설교 사역의 특성화와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많은 설교자가 이와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마는, 가령 예를 들어 주일 낮 예배의 설교는 ‘복음’(evangelism)을 중심한 전통적인 ‘복음설교’가 중심을 이루어야 한다면, 저녁 예배 혹은 오후예배에는 교육적 기능(didache)에 주안점을 둔 그리고 칠판이나 OHP 등의 기자재를 이용한 좀더 자유로운 ‘교육설교’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오후예배의 활성화는 한국 교회의 전반적인 문제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략 전 교회의 70%가 오후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주일 낮 예배가 드려진 후 2-3시간 간격을 두고 시작되는 오후 예배의 차별화에 많은 애로를 겪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많은 교회의 예배가 ‘어쩔 수 없어서 드리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이런 차별화 내지는 특성화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기껏 해야 청년들이 주축이 된 찬양단이 20-30분간 찬양하고 거기에 말씀이 따르는 방식이 그나마 오전 예배와 다른 점일 것입니다마는 그것마저도 복음성가 위주로 되어 있어 나이 드신 노인이나 장년들은 호흡을 맞추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목회란 일년 삼백육십오일 전체를 커버할 수밖에 없는 전천후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주일의 목회인 예배에서 실패하고 주중의 목회에서 성공하기를 바란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목회자는 주일 예배에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오후예배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노력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후 예배는 의식이 중심이 된 오전 예배보다 예배의 축제성과 성도의 교제를 극대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제안하고 싶은 것이 프로그램식 예배입니다. 즉 1시간 10분 -20분을 예배시간으로 설정하고 예배가 잘 짜여진 프로그램식으로 진행이 되도록 진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선 예배의 주축을 이루는 6-7개의 주요 프로그램을 설정하십시오. 예를 들어 이런 프로그램이 가능할 것입니다:

1. 우리는 주님 안의 한 가족 - 이 순서는 한 신앙공동체 안에 있으면서도 외적인 것 외에 서로를 너무나 모르는 현실을 극복하고, 진정 서로를 이해하고 감싸안기 위해 서로를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토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먼저 교회 구성원 가운데 대상을 선정하십시오(장로, 권사, 집사 등 직분을 가진 분을 순서대로 다루되 한 주에 한 분만 다룹니다). 그 대상자에게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3-4쪽 분량으로 적어내도록 부탁하십시오. 그 원고에 입각해서 목회자가 라디오 드라마를 작성하십시오(본인이 재능이 부족할 때에는 교인 중 재능 있는 분의 도움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청년들뿐 아니라 여선교회, 남선교회 회원들로 또 다른 찬양단을 만드십시오. 그래서 한 주일을 한 팀이 책임지도록 하여, 드라마 역시 이 팀에서 소화하도록 하십시오. 이 순서가 끝나고 나면 소개한 당사자가 앞에 나와서 2-3분간 소감을 피력하도록 하십시오.

2. 선교지에서 온 소식 -각 교회에서 선교금을 보내 후원하는 교회가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외국의 선교사례 등도 가능합니다. 대개 선교금만 보내고 더 이상 관심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마는 이 순서를 통해 진정한 관심을 북돋을 수 있습니다. 먼저 해당 선교지원 교회에 그곳의 사정을 상세히 적어보내도록 협조를 요청하십시오. 그 내용을 바탕으로 편지 내지는 선교보고 형식의 작문을 하십시오. 그리고 순서를 맡은 이에게 한 교회씩 보고하도록 하십시오. 이것은 대략 분기에 한 차례 정도 실시가 가능할 것입니다.

3. 기도할 제목이 있습니다 - 대개 오후예배에서 공동의 기도 제목을 놓고 기도하는데 대부분은 형식적인 기도로 흐르는 게 대부분입니다. 이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목회자는 구체적인 기도의 제목(북한문제, 환경문제, 시사적인 난제, 가정문제 등)을 설정한 후 그것에 맞는 드라마를 작성하십시오. 7-10분에 걸친 드라마를 라디오 드라마식으로 실시한후 이어서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대본의 내용에 따라 기도의 강도는 전혀 달라질 것입니다.

4. 스킷(Skit) 드라마 - 라디오 드라마에 비해 출연진들의 수고와 노력이 요구되긴 합니다마는 정통 연극이 아닌 약식 스킷 드라마라면 10분 정도로 가능하며 또 어떻게 진행하는가에 따라 의외로 적은 노력에 더 큰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가령 해설을 주축으로 하고, 출연진은 동작 중심으로 연기하게 하는 방식이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시중에 이에 관한 서적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주의할 것은 이때 다루는 주제가 예배 전체의 내용과 조화를 이루어야 할 뿐 아니라 그 드라마 뒤에 교역자 혹은 인도자의 설명이 연결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5. 영상으로 받는 메시지 - 영상화면(15-20분)을 준비하여 이를 방영하고 그 의미를 설명하며 공동의 관심과 기도를 촉구하는 순서입니다. 정보화 시대와 영상시대에 많은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순서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Beam-Project’가 갖추어져야 하고 적절한 필름을 확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마는 이 정도의 부담은 이 시대를 목회하려면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6. 가족이 함께 드리는 예배 - 다섯 주가 있는 달의 마지막 주일 혹은 매달 한 번씩 정해 드릴 수 있으며 현대의 가정 해체의 위기 속에서 분명한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특정한 가정들에 각 순서를 배당하고(기도 역시 가족 구성원들이 릴레이식으로 진행하는 방식 등) 가족들이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함으로 그 의의를 고양할 수 있을 것입니다.

7. 제자들 이야기 - 사순절을 맞아 제자들의 입을 통해 예수와의 추억과 그분에 대한 인상 그리고 그들의 인간적 고민과 새 결단을 들려주는 순서로, 4-5명의 제자들을 설정한 후 준비된 원고를 백 뮤직과 함께 낭독하도록 하되 사이사이에 독창, 제창 등을 넣습니다.

이밖에 행사(성경 퀴즈, 성경 암송, 기관별 찬양 등)가 한 주일의 순서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며 헌신예배 역시 같은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매 예배마다 하나씩 순환적으로 배치하고 교육적 기능의 설교를 또 다른 핵심 순서로 자리매김하여 진행합니다. 그 사이에 3-4곡의 찬양이 자리잡고, 또 5분 정도 소요되는 신앙간증 및 성시낭독 아니면 감동적인 글의 일부를 발취하여 낭독하는 순서를 추가합니다. 대략 2번의 기도와 3개의 찬송이 고정적으로 들어가고 여기에 순환적인 프로그램과 설교가 자리잡으면 오후 예배는 나름대로의 특성을 갖춘 예배로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수요예배와 새벽예배도 다시 생각합시다!

특히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부족한 것이 교육임을 염두에 둔다면 이 기회를 선용하는 것이야말로 피할 수 없는 당위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이때에는 설교보다는 교육이라는 느낌이 설교자나 회중 모두에게 공유될 수 있도록 진행방식이 주일 낮 예배와는 완연히 차별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루는 주제 역시 성경교육에서부터 기독교 교리, 이단에 대한 해부, 기독교의 역사, 성경의 난제 등 설교자의 판단과 필요에 따라 다양하게 채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요예배는 본래 수요기도회의 성격이 강함을 염두에 두어 기도와 찬양 그리고 ‘수요 성서연구’라는 인식에 기초한 ‘주석적인 강해설교’가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새벽예배는 기존에 일반예배의 축약식 구성에서 벗어나 회중의 적극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차별화하는 것입니다. 특히 새벽예배의 경우 과거 수도원에서 행해지던 새벽미사를 보면 미사에 참석한 수도자들로 하여금 깊이 있게 본문을 묵상하는 방식을 통해 본문과 직접 씨름함으로 오늘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본인 스스로 발견하도록 하는 방식이 주로 행해졌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요청되는 방식입니다.

가령 QT 방식을 접목해서 설교자가 회중에게 설교본문에 대한 대강적인 설명을 적은 교안을 미리 작성하여 나누어주고, 설교자는 5-8분에 걸쳐 본문을 개략적으로 설명한 후 회중들이 본문을 읽고 묵상하고 관찰한 다음 그것으로부터 받은 교훈, 즉 하루의 길잡이를 적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리 약속된 회중 가운데 한 사람으로 그 본문으로부터 자신이 얻어낸 교훈을 발표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개 교회의 회중 구성원이 어떠한가에 따라 일률적으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방법일 수 있지만 점차적으로 상향조정되고 있는 국민 교육의 질을 염두에 둔다면 시도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