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시편 121:1~8)

 


우리는 가끔 역사는 누구에 의해서 움직이는가에 대해 자문할 때가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역사는 시대에 따라서 나타난 소수의 뛰어나고 걸출한 인재들에 의해서 주도해 나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선한 사람이 통치하는 나라는 태평성대를 이루지만 악한 사람이 통치하면 온 나라와 세계가 그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게 되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히틀러나 스탈린이 통치할 때에 사람들은 역사와 세계는 사람의 손으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때로는 세계가 악마의 지배 밑에서 움직여지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악이 기승을 부리고 악한 정권이 흥하는 것을 역사 안에서 자주 보기 때문입니다. 그 예로 신문에서 2백만 명의 캄보디아 국민을 죽음을 몰아간 뒤에 다시 20년이나 캄보디아라는 조그만 나라를 뒤흔들어 놓은 인간백정이라고 할 수 있는 폴포드라는 무시무시하고 잔인한 인간을 볼 때 우리는 분명 악한 세력이 역사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역사관은 확고합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창조주가 아닌 다른 어떤 힘에 의해서 역사가 운행된다고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역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서 운행된다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1장부터 계시록 마지막까지 성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는 역사의 주인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 분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18장 6절에 보면,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같이 모든 만국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나 세계가 모두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움직여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까지 이어져 온 유구한 인간의 역사는 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순종하는 개인이나 나라는 복을 받았고, 그렇치 못한 나라는 역사 속에서 비참히 사라졌음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1917년 레닌은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키고 천년 동안이나 활짝 열렸던 교회의 문을 닫았습니다. 모든 교회를 폐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하나님을 경배하던 교회건물을 불신자들인 공산당의 당사나 노동자의 숙소 등으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공산당은 100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닫았던 교회 문은 열었고 그들이 활짝 열어 놨던 이데올로기의 문은 닫혀지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공산주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시편 121편 1절에 보면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여호와에게서로다" 라고 시인은 노래합니다. 1절의 내용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에 제1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십계명에서도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은 하나님 이외에는 역사의 주인이 될 분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에서 오랜 포로생활을 마치고 해방되어 예루살렘을 향해서 돌아올 때에 한 무명의 시인이 이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올라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시를 '여행의 노래'라고도 하고 '성전에 올라가는 순례자의 노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후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은 길을 떠나기 전에 시편 121편을 읽고 나서 기도하고 떠나는 풍속이 생겼습니다. 온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은 리빙스톤 선교사가 홀로 자신의 고향을 떠나서 그 무시무시한 검은 대륙으로 선교의 길을 떠날 때에 그의 마음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때에 그는 가족과 함께 모여 이 시편 121편을 읽고 기도를 드리고 선교의 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이 시의 내용은 보다시피 매우 단순합니다. 먼저 눈을 들어 산을 보았고 그리고 나서 산을 지으신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 다음에는 온 우주를 지으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지켜주신다는 사실을 체험했습니다.

또한 시인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실족치 않게 하신다고 찬양합니다. 그 당시에는 오늘과 같은 교통수단이 없었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걸어다녀야 했습니다. 특별히 표준성경에 보면 '실족치 않게'라는 말은 헛발을 디디지 않게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의미임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또한 4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항상 깨셔서 택한 백성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5절에는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단순히 관념적인 의미에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우리의 오른쪽에 서서 보호하는 그늘이 되어주신다는 사실을 더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험한 골짜기를 걸을 때나 어려움에 당할 때 그리고 시련 속에서 허덕일 때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얼마나 든든하고 힘있게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또 낮에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낮의 햇빛이 아무리 뜨거울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그늘로 덮어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은 해가 지면 갑자기 추워질 때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기상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위험한 지대를 지날 때에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행로에 얼마나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재난에서 지켜 주시고 환난을 면하게 해주십니다. 이는 육체뿐 아니라 영혼도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명 전체를 보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신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와 여러분의 생활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지켜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미국에 살건, 한국에 살건 간에, 지구촌 어디에 살건 간에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들을 지키신다는 말씀입니다. 아침에는 집을 나가서 일하고 저녁에는 당연히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우리의 일과입니다. 농부는 손에 쟁기를 들고 밖으로 나갑니다. 학생들은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갑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시장으로 근로자는 공장으로 나갑니다. 하지만 모두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오지 않습니까. 밤에는 안식을 주셔서 쉬게 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나가고 들어오는 것을 항상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이 짧은 시 속에 지킨다는 말이 7번이나 반복이 돼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이 시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인류를 지키신다면 왜 이 세상에는 자주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질병과 고통과 전쟁, 그리고 실패와 좌절이 계속되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시를 읽으시면서 꼭 알아야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말씀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 그가 기르는 양에게 주시는 특별한 언약입니다. 하나님을 진실되게 공경하지 않는 자에게는 이러한 약속을 하시지 않습니다.

시편 91편 1절에 보면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 그리고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는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보호의 그늘이 항상 그들을 덮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구원받은 성도들이 불신자가 받은 시험이나 또 질병이나 환난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보는 것과 인간이 보는 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은 육안에 있는 세계만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보지 못하는 세계까지 다 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영흔을 참으로 축복하기 위해서 육신의 재난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에게도 육신의 가시를 주셨습니다. 참으로 고치지 못하는 질병을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성 프랜시스 같은 이도 중병을 앓지 않았다면 오늘과 같이 온 인류의 존경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파스칼 같은 사람도 말을 타고 다리를 건너다가 말이 갑자기 뛰면서 다리 밑으로 떨어져 중상을 얻었습니다. 이런 체험이 없었더라면 많은 사람들이 읽는 파스칼의 유명한 명상록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밀톤이 시각을 잃지 않았더라면 「실락원」이라는 성경 다음가는 명저를 인류에게 남길 수가 있었겠습니까? 인간은 현재만을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현재도 보고 미래도 함께 보시며 우리를 지키십니다. 요셉이라는 사람이 형제의 미움을 사서 애굽의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때에 누가 그의 미래를 예상할 수 있었겠습니까? 모든 형제들은 그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이 비극적인 사건은 택한 백성을 창대케 하고 연단시켜서 참으로 하나님의 인류구원의 뿌리를 심으시기 위한 뜻임을 성경을 통해 보게 됩니다.

특히 다음의 로마서 8장 28절을 보면 좀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는 자에게는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보호가 눈에 보이지 않아도 결국은 우리를 더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이 시를 읽으면서 문명을 창조하며 세계를 움직이는 거인들, 훌륭한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의미라고 받아들이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분명히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늘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는다. 이와 같이 참새 한 마리도 함부로 떨어뜨리시지 않는 분이 어찌 존엄한 인간을 지켜주시지 않으시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너의 머리털까지도 세시니 염려하지 말고 두려워 하지 말라."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는 큰 자도 작은 자도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뜻대로 사는 사람이라면 돈, 명예, 권력이 있건 없건 간에 하나님께서 똑같이 지킨다는 분명한 약속입니다. 그렇다면 이 '지킨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기서 몇 가지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항상 보살핀다는 뜻입니다.

언제나 택한 백성에게 관심을 가지고 보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마치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이, 어머니가 어린아이 옆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는 것처럼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평화로울 때나 괴로울 때,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병들었을 때나 고독할 때조차 잠시도 택한 백성에게서 떠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의 행복이고 하나님을 믿은 기쁨입니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 끝날 때까지 너를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두번째로는 인도하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시편 24편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오니 내게 부족함이 없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하셨습니다. 목자가 양을 칠 때는 단지 관심만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양의 길을 인도합니다. 어디에 좋은 풀과 맑은 물이 있는가? 어디에 사나운 맹수가 있는지 위험한 지대는 어딘지를 모두 살펴서 가장 안전한 곳으로 그 양들을 인도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이를 아는 지식으로만이 아니라 신앙을 체험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이겨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번째로는 보호하신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가 비록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목자는 어떤 환경에서나 자기의 양들을 보호합니다. 이는 자기를 사랑하는 백성을 어느 환경에서나 보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는 이 보호한다는 단어를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산성이시니." 여러분 남한산성이나 북한산성에 올라가 보십시오. 이 산성들은 서울에 사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쌓았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산성이라는 말은 당신이 택한 백성, 그리고 당신이 사랑하는 백성들을 언제나 산성 안에 늘 보호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라고 했습니다. 또한 여호와는 나의 방패이요, 반석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늘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보호하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으십니까? 병이 났거나 즐겁거나 슬프거나 성공할 때에도 항상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동일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킨다는 것은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왜 목자가 푸른초장이나 물가로 인도합니까? 이는 양이 좋은 것을 먹고 신선한 물을 마실 때 건강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성도들의 필요한 영육간의 양식을 언제나 고루 공급하십니다. 바울 사도가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기를 부족한 것을 언제나 채워주신다고 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말씀을 체험해야 합니다. 저는 이 시를 읽을 때마다 내가 정말 이 말씀을 체험했으며 지키고 있는가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온 세월을 따라 올라가노라면 이런 체험을 했던 순간들이 나의 눈앞에 생생합니다. 또한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많은 믿음의 조상들이나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의 종으로 귀히 쓰였던 위인들을 통해서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 위험합니다. 한국뿐 아니라 지구촌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질병과 굶주림과 고통 속에서, 그리고 싸움과 사망이 끊이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지키시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밤이나 낮이나 졸지도 아니하시고 우리를 지키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습니다.

신앙의 사람 맥아더 장군은 그의 아들을 위해서 다음과 같은 놀라운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에게 평탄한 길을 주지 마십시오. 쉬운 길을 걷지 못하게 하소서. 역경과 환난을 주옵소서. 그리고 그 속에서 지키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하시고, 그 신앙을 가지고 어려움을 극복하는 용기를 허락하게 하소서. 영광을 환란 속에서 얻게 해주소서." 여러분을 긍극적으로 지켜주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아니면 권력이나 명예입니까? 이런 것들은 일시적인 것이고 지나가 버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으로 한 분 하나님을 믿겠다고 결정했다면 육적으로나 영적으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역사를 오직 조물주이신 하나님께서 움직이신다는 사실과 내 일생도 오직 하나님만이 지휘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들을 지키십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편이 되시며 보호자가 됩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한분 하나님만이 나도 가족도 교회도 나라도 지키신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믿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굳건하게 하나님을 믿고 염려과 근심을 버리고 평생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