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교회와 세계선교




 

Ⅰ. 교회의 본질


  교회를 참으로 교회되게 하는 길은 선교하는 일이다. 종탑이 우뚝 솟은 웅장한 예배당, 성직자의 검은 가운, 장엄하게 거행되는 예배의식, 제도와 조직, 교리와 신학 그리고 다양한 교파 같은 것들이 모두 중요하다. 어느 하나도 경하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교회의 본질일수는 없다. 애당초 교회는 어떤 교파나 기관으로 존재된 것이 아니라 ‘부름 받은 사람들의 신앙집단’으로 시작됐다. ‘부름 받은 무리’는 그들이 부름 받게 된 동기와 목적이 있다. 그것은 우리를 죄악세상에서 부르신 그분의 뜻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우리를 부르신 분의 뜻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게 하고, 주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선교의 사명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실 때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옛날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실 때도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인류에게 두 가지 축복의 약속을 주시기 위해서다. 하나는 “내가 네게 복을 주어 너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고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즉 큰 민족을 이루기 위함이요. 둘째는 “네가 복의 근원이 되어 모든 민족이 너로 인하여 복을 받게 되리라.” 즉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였다.

  옛날 미디안 사막 호렙산 떨기나무 불꽃 속에서 모세를 부르실 때도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430년 동안 노예로 고생하는 선민 이스라엘 민족을 애급에서 구출하여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대로 그 선민을 통해서 세계 만민을 구원코자 하심이다.

  예수께서 갈릴리해변을 지나시다가 바다에 그물을 던져 고기 잡는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실 때도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기독교 박해의 제일인자였던 바울을 다메섹에서 부르실 때도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이방세계에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였다.

  그 후 2천년 동안 많은 사람을 부르실 때에도 그의 신분이나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부르신 목적은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이니까?” 묻는 제자들에게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었으니 너희가 알바 아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얻고 땅 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다.

  만일 교회가 선교의 사명을 잃으면 이 땅에서 존재의 의미가 없어진다. 교회가 할 일이 많지만 가장 기본적이고 우선적인 사명은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즉 구속의 사건을 만 백성에게 전하는 일이다. 어떤 선교학자의 말대로 등불은 불이 타고 있을 때에만 등불이지 만일 불이 꺼지면 그것은 이미 등불이 아니며 거기에는 싸늘한 심지만 남아있을 뿐이다.

 화란의 신학자 「호켄다이크(J.C.Hoekendijk 1912-1975)」는 교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교회는 아무데도 선 곳이 없다. 교회는 끊임없이 창출되어가는 선교 도상의 실체일 뿐이다. 교회는 땅 끝과 마지막 때를 향하여 열려있으며 결코 정착지가 될 수없는 잠정적인 한 처소에 불과하다. 교회는 이런 한에 있어서만 교회일 수 있다.” 고로 교회의 본질은 선교하는 것이다.


 

Ⅱ. 한국교회의 120년의 발자취


  한국 땅에 개신교를 통해서 복음이 전파 된지 이제 120년을 지나면서 한국교회는 선교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경이적인 성장을 하였다. 1885년에 선교를 시작한 이래 1896년에 세례교인 200명, 1905년에 9,000명, 1919년 3.1운동 당시에 기독교 인구는 10만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세계 제2차대전이 끝나고 8.15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한국교회는 어두웠던 박해기를 지나 급속한 성장을 계속하는 가운데 현재는 교회 수가 5만 교회, 교인 수가 1,200만, 신학 대학 및 신학교가 184개, 기독교 기관이 430여개, 기도원이 521개, 선교단체가 210여 곳이라고 발표했다(1994년 11월 현재 국제복음주의 선교회, 크리스천 라이프사, 1995년1월5일자 국민일보).

  그래서 한국의 기독교는 불교 유교 천도교 등 여러 종교가 공존하는 복수 종교사회에서 전체 인구의 20%를 상회하는 다수종교(majority)의 위치를 굳히게 되었고, 세계 50개 대형교회 중에서 23개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국교회의 성장의 일면을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렇게 양적으로 급성장한 한국교회는 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19세기에 서구교회로부터 받은 복음의 빚을 갚아야겠다는 자각과 함께 선교를 받던 교회에서 선교하는 교회로 그 방향을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런 선교의 자각은 한국교회로 하여금 민족의식의 울타리를 넘어 70년대 후반부터 선교사를 해외에 파송하기 시작했고 오늘에는 공식적인 선교사의 수만도 13,000명에 이르고 있다.

  그러면 한국교회가 이렇게 눈부시게 자랄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 무엇이 한국교회를 이렇게 부흥케 하였는가? 이 물음은 침체에 빠져있는 서방교회의 물음인 동시에 성장 과정에 있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물음이기도 하다. 나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한국교회의 성장 요인을 다음 몇 가지로 요약해 보고자한다.

 

 ⅰ. 한국교회의 성장은 『영적각성운동』에서 시작했다.

 

  이 각성운동의 절정은 1907년에 마치 오순절과 방불한 성령의 비상한 현현과 더불어 나타난 것인데 그 때 참석했던 옵서버들은 그때 광경을 18세기 「요한 웨슬리(John Wesley 1703.6.17~1791.3.2)」의 부흥운동을 연상케 했다고 그 때 소감을 말하기도 했다. 1903년부터 1908년까지 5년간에 교인 수는 네 곱절로 치솟았다. 그때 모인 무리들은 오순절 날 120문도의 간절한 기도와도 같이 성령의 충만함을 갈구하는 성도들의 기도에서 연유한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교회는 새벽 5시면 많은 성도들이 교회당에 모여들어 부르짖는 기도소리는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오늘의 놀라운 한국교회의 성장은 이런 기도의 열매라고 믿는다. 지금도 많은 교회가 새벽기도 뿐 아니라 일주에 한번은 민족복음화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철야기도를 계속한다.


  ⅱ. 한국교회의 성장요인은 선교 초기부터 성령 중심의 교육과 철저한 훈련에 있었다고 믿는다.


  한국교회는 선교 초기부터 성경공부에 열중했다. 성경을 읽고 암송했으며 각책을 공부하면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 말씀 안에서만 인생의 의미와 인간 운명의 궁극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특히 사경회, 주일학교, 구역예배그룹 성경공부 등은 성경공부의 산실이었고 현장이었다. 성경공부야말로 교회 성장사였고 성경공부의 흐름은 곧 교회의 기상도였다.

  건전한 성경공부가 한국교회 성장의 결정적인 요인이 된 것은 16세기 종교개혁 운동이 성경 연구에서 시작됐고 18세기의 성결운동도 「웨슬리」를 중심한 성경 연구에서 비롯된 것과 맥을 같이한다.

  선교 초기부터 성경공부는 기도회나 주일예배와 마찬가지로 교회 행사의 가장 중요한 활동이 되었다. 1909년 북장로회 선교국의 보고는 약 5만 명에 달하는 참가자를 가진 800개의 사경회가 개최되었다고 했다. 이것은 당시 세례교인 수의 두 배에 달하는 숫자였다. 선교역사상 최고의 참석 인원을 가진 사경회는 1917년에서 1918년 사이에 개최된 것이었는데 당시 신자의 총 수 117,000명 중 65%에 해당하는 76,000명이 참석하였고 1910년에서 1920년 사이에 매년 참석인원은 평균 64,000명이었다. 

  이와 같이 한국교회의 사경회는 전국적이며 그 규모가 해를 거듭할수록 수가 증가되어 단일 반이었던 사경회가 남녀 반으로 나누어지는가 하면 도시와 농촌 반, 평신도와 지도자 반으로 초신자와 세례교인 반으로 구분하여 운영하게 되었다. 이렇게 사경회가 활발하게 선교방법으로 채택된 배경에는 중국에서 사역한 선교사 「네비우스(John Nevius 1829~1893)」의 방법(Nevius Method)을 배제할 수 없다. 「네비우스」의 선교방법의 양대 원리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경제적 자립 즉 자급원리요 또 하나는 성경 반을 조직하여 모든 교인의 성경 지식을 넓히는 것이다. 위에서 지적한대로 한국교회의 성장은 하나님 말씀을 기초로 하여 그 말씀의 가르침대로 성장했다는데 특색이 있다.


  ⅲ. 한국교회의 성장요인은 뜨거운 전도열이었다.


  사경회의 목적은 성경공부에 있었으나 성경공부 자체만으로 끝난 것은 아니다. 성경공부를 통한 신앙훈련과 함께 가가호호를 방문하여 전도하는 개인축호전도 운동을 벌였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사경회는 전도를 통한 성장을 가져오게 되었다.

  사경회가 내적으로는 무지와 죄를 깨닫게 함으로서 교인들의 신앙을 견고하게 세우는데 기여하였고 외적으로는 전도운동을 통하여 교인의 양적 증가를 가져왔기 때문에 사경회는 교회 성장의 경이적인 요인이 되었다. 기도를 통한 영적각성과 성경공부를 통한 신앙의 성장은 자연히 복음 증거로 나타나게 되었다.

  한국교회의 선교 초기에 있어서의 뜨거운 개인전도는 교인들의 공적 신앙고백으로 요구를 받았다. 그때 목사님들은 신도들에게 이렇게 문답하였다. “당신들은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렇지만 “당신들이 어떤 사람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함으로서 증거를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당신들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줄 알 수 있습니까?”

  한국교회 교인들의 뜨거운 기도와 폭넓은 성경공부는 복음 전파의 불을 지펴 ‘전도폭팔운동’을 전국적으로 일으켰다. 그 후 한국교회는 바울처럼 “매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미치리라”는 절박감을 느끼고 전도에 전력을 쏟음으로 오늘의 한국교회를 이룩하였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ⅳ. 한국교회의 성장요인은 고난과 박해가 쉬지 않고 뒤따랐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아시아나 세계교회 지도자들이 모이는 회의에 참석해보면 거의 예외 없이 한국교회의 급성장에 대한 비결을 묻는다. 따라서 세계적인 대형교회가 많다는데 놀라움과 함께 높은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이런 질문이나 찬사를 받을 때마다 그들이 한국교회 성장의 결과만보고 그 이면의 깊은 곳을 보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것은 한국교회 성장의 배경에 있었던 견디기 어려웠던 무서운 고난과 박해 그리고 많은 순교자들이 뿌린 피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백성은 많은 고난을 받으면서 살아왔고 한국교회는 심한 박해 속에서 성장하였다. 한국 민족과 교회는 36년이란 긴 세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밑에서 온갖 핍박을 견디어야 했다. 온 국민이 신사참배를 강요당했고 이로 인해서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순교했고 교단은 해산되고 교회당도 폐쇄되었다.

  또한 해방 후에는 북한의 공산체제에 의하여 무수한 박해를 받았고 많은 지도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1945년에서 6.25까지는 예배를 방해하고 교회 재산을 몰수하고 성직자들을 체포하고 처형하기도 했다. 6.25에서 1972년까지는 종교 탄압과 말살정책을 쓰다가 1972년 이후 오늘까지는 종교를 정치적으로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 나 자신도 일본 감옥에서 신사참배 문제로 한번, 공산당 감옥에서 세 차례나 옥고를 치러야했다.

  그러나 이런 심한 고난과 박해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이 많은 시련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었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신앙을 갖게 하였고 우리의 자만심을 버리고 열심히 배우고 일하게 만들었다. 결국 한국 사람은 이런 환난 중에서 급속히 발전하는 개도국이 되었고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이제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이런 시련과 박해 속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교회로 나타났다. 그것은 초대교회의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 150~155년경~222~225년경)」의 말대로 “순교자의 흘린 피가 교회성장의 씨앗”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 한국교회는 기도 말씀 전도 세 가지 영적 힘의 역학관계를 기초로 하는 균형 있는 교회로 형성되어 오늘에 와서는 세계 선교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교회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런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서 성장한 한국교회의 지난 한 세기의 발자취를 되돌아볼 때 한국교회가 성장과 함께 사회와 국가에 기여한 공헌 또한 매우 컸다고 생각한다.  우리 문화에 끼친 신선한 충격 그리고 온 국민의 생활과 정신사를 고양시킨 점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더욱이 조선 왕조의 쇠락과 함께 시작된 개화의 물결 속에서 기독교가 담당했던 근대화의 촉진이나 근대 인간형성에 끼친 영향 또한 지대하다. 문화의 개방, 근대 교육의 실시, 과학정신의 고취, 서양 현대미술의 보급, 여성의 지위 향상, 한글 보급 등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항하여 나라를 수호하고 민주주의를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한 기독교의 역할은 누구도 과소평가할 수 없다.


 

Ⅲ. 한국교회의 현황


  나는 위에서 지난 120년에 걸친 한국교회의 성장을 긍정적으로 설명했다. 그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교 제일세기를 정리하고 제이세기에 접어든 한국교회는 자체 반성의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그것은 급속한 외적 성장에 비해 내적이고 질적인 성장이 균형 있게 뒤따르지 못해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숨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경이적인 양적 성장을 자부하면서도 양과 질의 균형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약점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한국교회 일각에 흐르고 있는 비성서적이고 비신학적인 요인들을 솔직하게 몇 가지 추려보고자 한다.


  ⅰ. 급성장한 한국교회는 지나치게 물량주의적 성공주의에 치우치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의 양적성장을 부정할 사학적 근거는 없다. 특히 비기독교 인이 절대 다수인 한국이나 아시아 여러 나라 현실에서 볼 때 주님의 선교의 지상명령은 아직도 교회의 절대적인 지상과제로 남아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의 이중적 사역의 기능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나는 ‘정적인 사역’으로서 예배와 교육 등 교회 내적 사역의 기능이고, 또 하나는 ‘동적 사역’으로서의 선교와 봉사 등 교회 외적인 사명의 기능을 지닌다.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모아 그들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훈련시켜 다시금 그리스도의 제자로 세상에 내보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있다. 즉 교회란 교회의 특권과 교회의 소명으로 교회됨을 이룬다.  이 두 가지 기능이 바르게 균형을 이룰 때 거기에 성숙된 교회됨이 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교회는 모이는 교회로서의 성격이 지나치게 강한 나머지 교회의 특권의식에 비해 소명의식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것이 사실이다.

  목회적 개념으로 말한다면 교회안의 평신도들을 교육 훈련시켜 그들을 성숙한 제자로 세워 그들의 삶의 장에서 예수님처럼 그들의 이웃과 세상을 섬기며 결국 그곳을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시키도록 하는 사역(ministry)보다는 교회 안에 들어온 신자만을 돌보는데 역점을 두는 목양의 차원(pastoral care)이 훨씬 더 강하게 느껴진다.

  우리는 교회가 양적 부흥운동을 일으키고 대규모의 교회 건물을 짓고 신자 배가운동을 전개하는 등의 대형화 현상을 배타적이거나 비판적인 시각에서 평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교회 성장의 기준과 선교의 목적을 물량적인 팽창에만 두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그 이유는 물량적인 비대화에 맛을 들이면 배금풍조에의 유혹에 빠져 물질주의  인본주의 허영과 영웅주의에 빠져 본의 아니게 경쟁의식 나아가서는 승부욕에 집착하게 된다. 더욱 위험한 것은 신앙 내용이 지나친 기복사상 또는 탈 역사적인 미신화에 빠져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차원 높은 기독교를 미신화하고 상식 이하의 종교로 전락시켜 빛을 잃게 된다.


  ⅱ. 교회가 안고 있는 또 다른 교회 일각의 위험성은 물량적 성장의 거부반응으로 질적인 성장만을 강조하고 현실 참여만이 기도교의전부요 선교의 본질처럼 생각하는 일부 진보주의 인본주의적 경향이다.

  

  이들은 개인 영혼의 구원문제나 모이는 교회의 경건훈련 또는 전도활동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다만 사회 속에서의 신앙행동만을 강조함으로서 영적으로는 고갈하고 선교에 대한 정열은 싸늘하게 식어 오히려 교회성장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기독교는 이렇게 하나의 도덕적인 종교로 인도주의적으로만 생각하면 모든 가치 기준을 인간에게 두기 때문에 인간 이외의 어떤 권위도 인정할 수 없게 되며 그 결과는 하나님의 권위도 영적세계도 존재할 수 없는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이것 또한 한국교회의 어두운 현실의 일면이 아닐 수 없다,


  ⅲ. 한국교회의 또 하나의 부정적인 현실을 지적한다면 “하나”가 되지 못하는 비극이다.

  

  이것은 머리도 하나요, 몸도 하나라는 일치신학에 근거하지 못한 교회성장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은 지상생활을 마치면서 유언과도 같은 두 가지 명령을 내리셨다. 하나는 “하나가 되라”는 일치사상이요 또 하나는 “증인이 되라”는 선교의 명령이다. 한국교회는 지난 120년 동안에 두 번째 명령인 “증인”의 책임을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래서 오늘과 같은 양적 성장의 결실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첫 번째 명령이신 “하나”가 되라는 일치와 연합에는 실패하였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가장 크고 아픈 문제가 무엇인가? 그것은 “분열”이요 “분파주의”다.

  온 세계가 운명을 같이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전환기에 있어서 역사의 흐름을 외면하고 제각기 분열의 길로 달려가는 것은 한국교회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의 세계”는 먼저 우리의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하나 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마음을 열지 않고서는 세계의 질서도, 인류의 평화도, 교회의 일치된 연합도 기대할 수 없다.

  고로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하나가 되는 길을 제시하면서 “너희는 주 안에서 먼저 마음을 같이하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으라(빌립보서2:2)”고 하셨다.

  우리는 힘의 역학관계를 잘 알고 있다. 힘이란 것은 하나가 될 때 강하게 작용한다. 교회나 민족이 강한 힘을 형성하려면 먼저 하나가 되어야한다. unity를 이루어야한다. 그리고 유니티를 이루려면 조화(harmony)와 협력(cooperation)의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한다. 우리는 다양한 계층이 공존하는 환경 속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다른 것들이 “하나의 뜻”을 위해 조화를 이루고 협력을 할 때 놀라운 힘이 생긴다.

  반대로 조화와 협력을 못하면 각자가 받은 능력조차 발휘할 수 없다.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데 2만개의 부속품이 필요로 한다고 한다. 부속품 하나하나가 제구실을 해야 하지만 그러나 2만개의 부속품이 동시에 조화된 협력을 이루지 못하면 자동차는 완성품이 될 수가 없다. 전도서 4장12절에 보면 “혼자 싸우면 지지만 둘이 힘을 합하면 적에게 맞설 수 있고 셋이 합하면 당할 자가 없다”고 했다.

  하나가 되는 것, 연합한다는 것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하나가 됩시다.”, “뭉치면 살고 헤어지면 망합니다”하고 너 나 할 것 없이 입만 열면 외친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이런 저런 많은 연합기구를 조직하고 규약을 만들고 인물을 배치한다. 그러나 이런 가시적인 활동만으로 서는 연합이 어렵다는 것이 우리의 뼈아픈 경험이다. 마음과 사랑과 뜻의 내적 일치가 없이는 하나가 되기 힘들다. 마음의 줄을 끊어놓고 아무리 짜임새 있는 조직을 해도 누가 그 책임을 맡아도 하나가 되기 어렵다는 것이 우리 모두의 경험이다. 연합운동은 먼저 우리의 마음이 열리고 마음이 서로 통하는데서 시작된다. 열린 마음의 윤리가 사회의 바른 질서를 형성하고 마음의 개혁만이 연합운동의 기초가 된다. 우리는 부끄럽게도 “동상이몽”이라는 말을 자주한다. 이 말은 같은 침상에 누어서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뜻이다.

  그러면 한국교회가 연합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각자의 고정관념(固定觀念) 때문이다. 보수교단은 보수교단대로 진보교단은 진보교단대로 경직된 자기 폐쇄성을 버리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이해가 없는 곳에 협조가 있을 수 없고 협조정신이 없는 교회연합은 불가능하다. 한국교회는 왜 연합하지 못하는가? 자기의 욕심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이익, 집단이익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경쟁의식 승부욕에서 벗어날 수 없고 승부욕의 노예가 되면 자기를 비울수가 없다. 한국교회의 연합운동을 어렵게 하는 장애요소는 연합기관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연합정신의 결핍에 있다. 교회는 한 몸이라는 연합정신이 신학적인 바른 인식의 전환이 없이는 일치와 연합은 기대할 수 없다.

  이제 한국교회는 지난날의 경이적인 성장만을 만족하는 자부심에서 깨어나 겸손한 자세로 오늘의 잘못된 요인들을 과감히 시인하는 용기와 성령의 지혜를 힘입어 그것을 바로잡아 나갈 수 있는 신앙의 결단이 필요하다. 이렇게 함으로 제2세기에 접어든 한국교회는 온 세계 앞에 성숙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세계선교에로 그 장막 터를 넓혀야할 것이다.

  

 

IV. 한국교회와 세계선교   


  공산주의가 막을 내리고 냉전이 종식되면서 세계 역사는 크게 변했다. 따라서 한국교회 앞에는 선교의 문이 활짝 열렸다. 마치 마케도니아 사람이 환상 중에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 달라“고 바울을 부른 것처럼 오늘은 세계 도처에서 한국교회를 부르고 있다. 얼마전만해도 선교를 생각할 수 없었던 철의 장막 러시아 동구라파 중국대륙 등 세계 어느 곳에나 한국 선교사들의 발이 미치지 않는 곳이 별로 없을 만큼 선교의 길이 뚫리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에는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unreached people) 22억이나 되며 성경이 번역되지 못한 언어를 가진 부족의 수도 12,000이 넘게 있다. 그 중에서도 아시아 대륙은 선교의 황무지와도 같다. 세계 지도를 펴놓고 보면 아시아는 세계에서 제일 큰 대륙이며 인구도 세계 전체 인구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 모르는 무신론 인구가 아시아 인구의 절대 다수다.

  종교적으로는 불교 유교 회교 힌두교 등 대 종교들이 대중문화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런 불신세계 즉 비기독교 세계에서 기독교 인구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합해서 겨우 3%에 불과하다. 마치 옛날 애급의 바로 왕이 이스라엘 민족의 해방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사람 모세에게 “너희가 믿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물은 것처럼 아시아 어느 곳에 너희가 믿는 하나님이 있느냐고 물을 정도다. 그러므로 아시아 대륙은 우리의 선교의 첫째 대상이다.

  그러나 역사가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1889.4.14~1975.10.22)」는 “오늘의 아시아의 급격한 변화는 세계의 내일을 결정할 것이다”라고 예견하였다. 이미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아시아시대 태평양시대가 열렸고 따라서 2천 년대에 가서는 기독교 선교의 초점도 아시아가 될 것이며 복음의 결실도 아시아 대륙에서 거두게 될 것이라는 것이 선교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그러면 2천 년대에 아시아 선교의 주역은 누가 될 것인가? 아시아의 많은 교회 지도자들은 그 사명을 한국교회에 기대하고 있다. 그 이유로 첫째는 짧은 한 세기동안에 한국교회의 경이적인 성장을 예로 들고 있고 둘째는 한국의 크리스천들이 가는 곳에는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예배의 제단을 쌓고 있다는 사실들을 예로 든다.

  서두에서 언급한대로 한국교회는 지난 30년 동안에 공식 비공식으로 13,000여명의 선교사들을 세계 도처에 파송하였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 수는 증가될 것이다. 그 증거는 한국교회는 충분한 인적자원을 갖고 있으며 또한 경제력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서구교회에 비해 해외 선교의 경험이 연천한 관계로 아직은 선교의 훈련 전략 방법 등에 있어서 부족한 점이 많다, 그래서 그동안 적지 않은 시행착오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더욱이 선교 협력에 있어서는 제대로 실천되지 못하고 있다. 해외 선교에 대한 정열은 대단하지만 각 교단 선교 단체들 간에는 연합이나 협력정신은 매우 희박하다. 파송한 교회 선교단체 현지의 선교사들은 거의가 독자적으로 자체 프로그램과 계획을 세워 수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서 피선교지에 혼란을 줄뿐 아니라 인력과 재력을 낭비하게 되고 협력보다는 경쟁심리를 조장하여 효과적인 선교를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오늘 세계선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협력사역”이다. 고린도전서 3장6절에 보면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고 하나님은 자라게 하신다”고 하였고 6장9절에는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라고 했다. 또 에베소서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권고하면서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요, 몸도 하나요, 소망도 하나다”라는 신학의 일치사상을 강조하였다.

  오늘날 세계의 특징은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다. 우선 지리적인 거리가 극복되면서 지구는 좁아지고 세계가 서로 이웃이 되었다. 단시일 내에 우리는 세계 어느 곳에나 갈 수 있고 또 어느 곳에서 일어난 사건이든지 그 즉시 세계 방방곡곡에서 알 수 있게끔 정보망이 발달하여 하나의 세계를 이루어가고 있다. 고로 오늘의 세계는 하나의 공동체운명이라는 의식이 차차 높아져 가면서 어느 한 곳의 불행이 옛날과는 달리 그들만의 불행이 될 수 없게 되었다. 세계는 이제 떨어져 살 수 없는 한 가족이 되었다. 실제로 오늘의 세계는 모든 영역에서 일치와 연합과 통일을 지향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서로 돕고 서로 격려하면서 살아야할 하나의 지구촌이 되었다. 고로 우리는 어느 분야에서건 지난날의 갈등과 냉전을 극복하고 화해와 협력의 장을 열어 21세기에 대비할 준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기독교의 세계 선교도 예외일수는 없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주미 한인교회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세계선교의 사명을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기위하여 그동안 한국교회가 전 세계에 파송한 선교사들, 한국교회 지도자들 그리고 선교 전문가들이 1988년7월25일에서 30일까지 미국 시카고 시에 있는 휘튼대학교 빌리그램 센터에 모여 한인 세계선교대회를 세계선교의 협력문제를 중심으로 열리게 되었다. ‘88 한인세계선교대회’직후 조직된 ‘한인선교협의회(Korean World Mission Council)'는 첫째로 미국에 있는 한인교회들 간에 선교의 협력과 동반자 정신을 고취하고 둘째로 ‘KWMC 88 선언’은 세계선교에 있어서의 동반자 관계를 증진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1988년1월18일에 한국의 복음주의적인 6개 교단 선교부 지도자들이 모여 ‘한국 동반자 선교협의회(Korea Partnership Mission Fellowship)'을 창설하였다. 그 설립 취지는 선교에 있어서 동반자적인 관계를 수립하고 그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데 있다.

  1990년6월25일에는 보다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한국 세계선교 협의회(Korea World Mission Association)'을 서울 소망교회에서 설립하였다. 이 협의회의 설립과 함께 이미 설립된 ‘한국 동반자 선교협의회’는 창립자들의 합의하에 자연 합류하여 ‘한국 세계선교 협의회’라는 이름으로 통일하게 되었다.

  1990년11월5일에서 8일 사이에 ‘아시아 복음주의 협의회(EFA)'와 ‘한국 복음주의 협의회’가 공동으로 충현교회에서 “선교에 있어서 파트너십과 협력”을 주제로 하여 “아시아 선교대회(Asia Mission Conference)"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에서 토론된 내용과 강연들을 묶어 ”World Mission The Asian Challenge"라는 490페이지에 달하는 영문 판이 출판되어 세계에 보급되었다.

  1991년11월5일에서 8일 사이에는 ‘한국 세계선교 협의회’가 주체하여 “한국교회 선교의 비전과 협력”이라는 주제로 2천 년대를 향한 민족과 세계 복음화에 관한 전략회의를 횃불선교관에서 가졌다. 이 회의에서 발표한 강연들과 토의 내용을 정리하여 “한국교회 선교의 비전과 협력”이라는 제목의 한글판 704페이지에 달하는 책이 1992년6월26일 자로 발간되었다.

  1992년7월30일에서 8월3일 사이에 ‘제2차 한인 세계 선교대회’가 일회 때와 같은 장소인 시카고 시 휘튼대학에서 개최되어 ‘세계 복음화’라는 동일한 주제 밑에서 온 세계에 흩어진 한인 크리스천들의 협력사역을 다짐하였다.

  1993년에 “21세기 선교운동”이라는 기구를 설립하고 이미 조직된 ‘이천년 대 세계복음화 운동(A.D. 2000 and Beyond Movement)'와 협력하여 세계선교에 적극 참여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 두 선교 movement는 공동으로 1995년5월17일에서 25일 사이에 서울 횃불회관에서 5,000여명의 세계교회지도자들 평신도들 선교 전문가들이 모였다. 이 선교대회에 참석한 나라 수는 120개국이었고  외국에서 온 지도자의 수는 4,200여명이며 기독교 역사상 처음 갖는 가장 큰 선교대회였다.

  바로 ‘GCOWE Ⅱ' 대회와 때를 같이하여 '한국세계선교협의회(KWMA)' 는 “제2차 선교전략 회의”를 소망교회 수양관에서 개최하였다. 세계 각 나라에서 선교하는 선임 선교사들과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 온 350명의 지도자들이 진지한 발표와 토의를 했다. 이 전략회의에서 토론된 많은 의제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심도 있게 토론된 의제는 이 지구촌에 한인 교회와 크리스천들을 하나의 네트워크에 묶자는 것이었다. 이 문제를 연구하기위한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이 대회에서 발표 토의된 내용도 정리하여 “세계선교의 비전과 협력”이라는 책이 1996년5월에 출판되었다.

  결론적으로 선교는 다양한 대상과 전략 그리고 그 방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협력은 절대적이다. 그러므로 이천년 대에 세계복음화에 적극 참여해야할 한국교회의 협력과 대연합은 주님의 지상명령이요 역사적인 과제임을 인식해야하고 동시에 이런 협력 사업만이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를 창출해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