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성결신학의 역사성과 미래의 과제

 


 


   우리는 평화와 번영 그리고 행복이 깃드는 황금시대의 꿈을 안고 새천년의 첫 세기인 21세기를 맞이했다 .

   그러나 그런 기대와는 달리 오늘의 현실은 너무도 복잡하고 혼미 상태에 빠져들어 지금의 세계는 희망과 절망, 활력과 쇠퇴, 진보와 퇴보 등의 상반된 이중주를 합주하고 있다. 오늘의 세계는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관차가 산비탈을 달려 내려가는 듯한 모습이며, 방향을 잃은 배가 정처 없이 표류하는 것같이 하루 앞을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한 어둠의 미궁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특히 한국의 상황은 국가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문제와 심각한 고민 속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다.

   그래서 많은 미래학자들 사회학자들은 이런 시대를 혼돈의 시대니, 위기의 시대니, 불안의 시대니 하고 특징을 짓기도 하지만 그러나 어떤 표현으로 끊임없는 미래 충격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적절한 해답을 주기에는 부족하다. 다만 「갤부라이스(John K. Galbraith, 1908.10.15 ~ )」의 주장대로 이 시대는 불확실하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확실한 것이 전혀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역사의 방향이 불투명한 때에 성결신학의 선봉에 서있는 학자들이 뜻을 모아 「한국성결신학회」를 창립하게 된 것은 성결운동의 서광이며 한국교회와 신학계에 크게 기여할 것을 믿어 격려와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Ⅰ. 성결교회의 발자취


   성결교회는 1907년에 김상준, 정빈 두 사람이 동양선교회(OMS)의 도움을 받아 '동앙선교회복음전도관'이란 이름으로 시작됐다. 그 후 한국성결교회는 '조선예수교동양선교회성결교회'라는 긴 이름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해방 후에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로 명칭을 다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개신교의 주요 교단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성결교회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성결교회가 어떤 교단이냐 하는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없었다. 그 이유는 성걸교회를 시작한 주역들이 생존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체험적 복음'을 열심으로 전하는 교단으로 이해되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성결교회의 성장과 함께 1970년에 들어서면서부터 성결교회와 성결신학의 정체성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이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된 성결교회는 장로교나 감리교와는 다른 두 가지 특색을 가지고 시작했다.

   그 하나는 외국의 교파 배경이 전혀 없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는 장로교회 감리교회의 선교정책과는 대조적이다. 이 두 교단은 교세 확장을 통한 세계선교 정책에 의하여 한반도에 들어와 지역을 안배하여 복음을 전했다.

   두 번째 특색으로 성결교회는 외국 선교사에 의해서 창립된 것이 아니라 외국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에 한국인에 의해 이미 시작된 복음전도관으로 출발하였다는 사실이다. 위에서 언급한 김상준, 정빈 두 젊은이가 일본에 건너가 동양선교회가 운영하는 동양성서학원에 1905년에 입학하여 1907년에 졸업하고 귀국하여 한국에서도 일본에 와있는 동양선교회와 같은 방법으로 전도의 계획을 세우고 복음전도관이라는 간판을 붙이고 전도를 시작했다. 그 후 일본에서 먼저 선교를 시작한 동양선교회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합세함으로 한국성결교회는 시작되었다.


  ⅰ. 한국성결교회와 18세기 웨슬리와의 관계


   한국성결교회는 개신교의 일파로서 신학은 전체적으로는 개신교 신학과 맥을 같이 하면서 신학의 계보를 따진다면 18세기의 개혁자 「요한 웨슬리( John Wesley, 1703.6.17~1791.3.2)」의 경험주의에 입각한‘복음주의 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성결교회는 「웨슬리」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 이명직 목사는 “성결교회는 「웨슬리」의 정신을 이어받아 계승하기 위하여 생겨난 단체"라고 말했다. 또는 성결교회의 선교 배경이 되는 동양선교도 '웨슬리안'이라는 사실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면 성결교회는 어느 점에서 「웨슬리」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가? 그것은 '성결의 복음'을 전하는 데서 이다. 그러므로 성결교회의 신학적 핵심 사상은 '성결'이다. 그리고 성결교회의 성결의 뿌리는 「웨슬리」에게 있다. 「웨슬리」의 신학적 위치는 성결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다. 성결교회의 성결론은 크게 보아서 「웨슬리」의 성결론은 이어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웨슬리」는 죄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아담으로부터 피를 통해서 물려받은 '원죄'라는 것이고, 둘째는 인간이 스스로 지은 자범죄라는 것이다. 원죄는 사람이 부패한 근성을 가지고 태어난 아담의 죄로 인한 유전 죄이다. 이 원죄는 나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그런 죄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원죄에 대한 대가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책임도 묻지 않는다. 이미 하나님은 예수를 십자가에서 온 인류를 대신하는 희생의 제물로 죽게 하였음으로 그 공로로 아무런 조건 없이 이 원죄를 사하시고 용서하셨다. 이것을 「웨슬리」는 신학적인 용어로 '선행적 은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스스로 지은 자범죄는 다르다. 이는 인간이 직접 지은 죄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시고 값을 요구하신다. 그러므로 인간이 이 죄로부터 사함을 받지 않고서는 구원을 밭을 수가 없다. 지은 죄에 대하여 직접 회개하고 용서를 받아야 영적으로 거듭나 새 사람이 된다. 자범죄는 스스로 회개하고 십자가의 속죄의 공로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아 거듭남으로 해결된다고 「웨슬리」는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자범죄와 원죄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성화의 은혜는 중생과 성결의 두 단계를 거쳐야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성화는 완전히 죄와 관계가 없는 상태라는 말이 아니라 복음적인 의미에서의 성결을 말하는 것이다.

   성결교회가 「웨슬리」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는 것은 칼빈주의와 비교해 보면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칼빈주의는 인간의 전적 타락을 철저하게 강조한 나머지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해버렸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 나머지 절대 예정론으로 기우러졌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런 극단적인 주장으로 나가지 않았다. 인간의 타락을 강조하면서도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을 통한 의지의 자유를 인정했고,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면서도 모든 인간이 구원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였다.

   한국성결교회는 분명하게 하나님의 은총을 통한 자유의지와 모든 인간이 구원의 대상이라는 「웨슬리」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그래서 장로교회가 칼빈주의 전통이라면 성결교회는 「웨슬리」의 전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성결교회는 모든 점에서 「웨슬리」를 계승하고 있는가? 그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사중복음이 그대로 「웨슬리」에게서 나온 것은 아니다. '중생과 성결'은 「웨슬리」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신유와 재림'은 19세기 미국 복음주의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성결교회의 사중복은 18세기 「웨슬리」의 중생 성결의 복음과 19세기 미국복음주의의 '신유와 재림'의 복음이 결합하여 형성된 것이다.


   ⅱ. 그러면 한국성결교회의 복음주의적 신학의 특색은 무엇인가?


   첫째로 성결교회는 성경의 권위를 모든 것에 앞서서 강조한다. 성결신학의 근거는 성경이며, 성결교회의 최종의 권위는 성경이다.

   두 번째 특색은 체험적 신앙의 강조다. 19세기 복음주의는 체험적 신앙의 강조다. 19세기 근대 복음주의는 체험적 신앙을 반대하는 자유주의 뿐 아니라 신앙을 단순히 지적인 동의로 간주하는 정통 보수주의도 반대했다. 참 신앙은 인격적인 만남이라고 믿는 경험주의적 신앙을 강조했다.

   세 번째 특색은 구원의 심층구조를 선포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결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특색이다 .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된 후에 성결의 은혜를  받아 죄의 뿌리에서 씻음을 받아야하며 철저한 극복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상대적인 완전을 경험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 개인도 사회도 완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성결운동의 핵심적인 메시지다.

   구원의 심층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병든 몸도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구원받는 신유의 은총을 강조한다. 그리고 구원의 최종적인 완성은 역사의 종말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성결신학이 가르치는 구원의 심층구조다. 이런 구원의 과정 설정은 전인구원의 방법을 제시한 훌륭한 신학적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네 번째 특색은 성결신학의 선교지향성이다.

   18세기「웨슬리」의 순회전도,「카우만(Charles E. Cowman)」과 「길보른(Ernest Albert Kilbourne)」의 해외선교 관심,「나카다( 中田 ) 쥬지」의 순회전도 , 정빈 과 김상준의 노방전도 등은 성결신학의 또 한 가지 특색이 전도지향적임을 입증한다.


 

Ⅱ. 성결신학의 미래의 과제


   성결신학이 총체적으로 가속적으로 변해가는 미래 사회에 적응력을 갖기 위해서는 사견임을 전제로 다음의 한두 가지 방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인류학자 「월레스」에 의하면 전통적인 가치가 흔들릴 때 사람들은 두 가지 태도를 취한다고 한다. 하나는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태도이고, 또 하나는 과거의 상황에서 형성된 가치관이 새로운 시대에 맞을 수 없기 때문에 새 시대에는 새로운 가치관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태도이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하셨다.

   그것은 전통 속에 잠재해 있는 새 시대의 요소들을 발굴해서 새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자는 것이다. 낡은 것은 새롭게 해석하는 예언자적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야 역사는 단절이 없는 발전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의 성결교회는 그 초기에 비해서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고, 지도력에 있어서도 초창기에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의 가르침에 조건 없이 순종 했지만, 이제는 교단의 인적 구성도 다양해졌고 지도자들의 목소리도 다양해 졌다. 신학도 전에는 몇몇 보수적인 웨슬리안 계통의 학교만을 선택하도록 권유를 받았지만 이제는 다양한 신학의 배경을 가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학위를 받은 학자들이 많아졌다. 그러므로 성결교회는 과감하고 폭넓게 학문의 다양성을 수용하여 그 속에서 성결신학의 정체성을 새롭게 부각시켜야 할 것이다. 그 동안 시대적 상황도 많이 변했다. 그러므로 다음 세대에는 과거 어느 때 보다 교회는 사회로부터 더 큰 사회적 책임 강요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결신학도 새로운 변모를 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사명을 다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