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청지기론(steward)




Ⅰ. 청지기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는 일정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청지기의 원리다.

  

ⅰ. 청지기의 어의


  헬라어의 (오이코노모스)라는 말은 신약성경에만 약 10회 정도 사용되었다. (마20:8, 눅8:3, 12:42, 16:1,2,3,8, 갈4:2, 딤전4:6, 딛1:7, 벧전4:10)

  많은 재물과 수입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것을 관리하기 위하여 고용된 사람을 청지기라고 부른다. 새 번역에는 관리인(눅12:42, 고전4:1)이라고 했다.

  영어에는(steward), 지키는 사람(미천한 직업에서 시작된 말)이라고 했다. 우리말로는 수청(守廳)(廳直)이다. 높은 양반집에서 여러 가지 일을 맡아보는 사람, 품위가 없거나 모욕하는 뜻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성경에 표현된 청지기는 명예롭고 중요한 위치를 말한다.


  ⅱ. 청지기의 성경적 개념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과 사람을 맡은 자로서 주인의 뜻을 따라 재산과 사람을 보호하며 관리할 책임이 있다. 구약시대는 재산과 사람의 관리를 맡은 자, 신약시대는 진리와 교회를 맡아 봉사하는 자,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고전4:1, 딤전1:12)를 의미한다.


  ① 구약시대의 청지기 사상

  청지기는 신임을 받은 자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은 자기 집의 청지기(엘리에셀)를 자기 집의 상속자로 믿고(창15:2) 자부를 선택할 때 모든 것을 일임(창24:2~4)할 정도로 신임하고 맡겼다.

  또한 청지기는 높은 지위의 사람이었다. 나라의 중요한 일을 상의할 때 의논의 대상이 된다. 다윗 왕이 감독을 참여시킬 때 그 감독은 청지기였다. 그리고 청지기는 지성의 사람이었다. 다니엘서 1장8~20절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 때 환관(청지기)이 왕자와 귀인들의 교육을 맡을 정도로 교양이 높고 지성이 풍부하여 존경을 받은 사람 즉 지혜와 총명을 지닌 사람이었다.


  ② 신약시대의 청지기는 주인의 대리자였다(마20:8).

  포도원 주인이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자까지 삯을 주라하셨다. 청지기는 이렇게 주인의 일을 맡아 처리하는 주인의 대리자였다.

  그러므로 청지기는 신실성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의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했고, 감독(청지기)은 하나님의 관리인으로서 흠잡을 데가 없고 자기 고집대로 하지 않아야한다(딛1:7)

  또한 청지기는 받은 은사를 따라 봉사하는 자로(벧전4:10) 봉사는 삯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을 위해 헌신하는 자다.


  ⅲ. 청지기와 종의 구별


  성경에는 청지기와 종이란 두 낱말이 같이 사용되었다.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관리인(고전4:1)이라고 했지만, 또한 그리스도의 종(롬1:1, 빌1:1) 그리고 하나님의 종(딛1:1)이라고 했다. 그러나 청지기(steward)와 종(servant)은 다르다.


  ① 종(노예 servant)은 자기의 뜻(의지)이 없다(엡6:5~7, 롬12:2).

  종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종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존재이다. 종은 주인의 소유다. 그 당시 로마에는 자유인 보다 종이 더 많았다.

  종은 자유가 없다, 종은 값으로 팔리운 자임으로 전혀 자유가 없다. 고로 바울은 자신을 팔리운 자라고 하면서 “너희는 너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고전6:19~20)”고 했다.

  종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죄의 종(범죄함으로)(롬6:16), 또 하나는 하나님의 종(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주고 산)(롬6:22)이다. 그리스도인은 없어질 금이나 은으로 산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산 것(벧전1:18~20)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산 하나님의 종 죄사함을 받은 그리스도의 종이다.

  종은 자신의 소유가 없다(빌3:8, 딤후4:14). 종은 자신도 자식도 재물도 주인의 것이다. 자기 이익을 주장할 권리가 없다. 종은 자신의 영광이 없다(갈6:4). 종은 주인의 의사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복종이 있을 뿐 책임도 영광도 없다. 그리스도의 종은 그리스도와 그 십자가를 자랑할 뿐이다(갈6:14).


  ② 그러나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 관리인이다(직무상으로는 주인과 같다). 주인에게 유익하도록 관리할 책임이 있다.

  청지기는 종과는 달리 자유인이다. 청지기는 맡은 재산의 관리를 위하여 자기의 지혜와 재능을 활용할 자유가 있다. 자기에게 유익하도록 주인에게 유익하게도 할 자유가 있다. 그러나 그 자유를 낭비하거나 또는 직무유기를 할 때는 징계를 받는다(눅16:1~8).

  청지기는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종은 주인의 뜻에 복종할 뿐임으로 책임이 없다. 이것이 청지기와 종의 다른 점이다. 또한 종은 팔려온 자요, 청지기는 신임을 받아 일을 맡은 자임으로 창의력이 있어야 한다(딤전1:12).


 ⅳ. 그러면 청지기의 근본정신은 무엇인가?


  ① 하나님은 우주의 주인이라는 정신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창1:1). 창조는 무에서 유를, 인간은 유(有)에서 유를 만들뿐이다. 이 우주는 자존도, 진화도 아니다. 창조의의 창조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소유자이시다. 이 사실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명한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24:1).”

  “이는 산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산의 새들도 내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시50:10~11).”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로다(학2:8).”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지니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25:23)."

  “모든 영혼이 다 네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겔18:4).”

  “바다도 그의 것이라 그가 만드셨고 육지도 그의 손이 지으셨도다(시95:5).”


  ② 청지기의 근본정신은 인간은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것이다. 

  청지기는 모든 것을 위임받은 자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맡기시고 관리하고 보호하라는 책임을 위임했다. 그리스도인은 진리와 교회를 맡은 자다. 청지기는 주인의 회수권을 인정해야 한다(마25:28).

  청지기(steward)는 보관자다. 잠시 위임을 받았기 때문에 주인의 소유권을 인정해야 하며 만물은 하나님의 소유, 인간은 임시로 점유하는 것뿐이다. 소유와 점유(占有)는 다르다. 결국 주인에게로 귀의(歸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청지기는 내 것이란 주장은 정당하지 못하다.

  청지기는 관리자다. 관리의 인식이 철저해야 부정과 욕심을 막을 수 있다. 관리인은 주인의 목적과 방침에 따라 사용해야 하며 남용, 임의 사용은 횡령이 된다.

  청지기의 자격은 사명감이 있어야한다. 그 사명감은 철저한 소명(召命)의식에서 나온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부름을 받았고, 사무엘은 세 번이나 반복된 부름을 받았고, 엘리사는 농장에서, 이사야는 성전에서, 예수의 제자들은 어장에서 부름을 받았다.

  청지기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요15:16)에 의하여 부름을 받은 자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여 선민의 조상을 삼았고, 모세를 택하여 히브리 민족의 구원자로, 이사야를 택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선지자로, 예수님은 베드로와 안드레를 어장에서 마태를 세관에서 선택하여 제자를 삼았다.

  그러므로 택함을 받은 청지기는 주인의 절대 신임을 받아야 한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신임을 받았다(창24:2~4). 요셉은 보디발의 신임을 받았다(창39:4). 고로 신임은 청지기의 생명이다.

  청지기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지혜는 맡은 일을 관리하는 기술과 운영의 묘를 공급한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왕의 직책을 수행하기 전에 지혜를 구했다(왕상 3:9).

  지혜 있는 청지기가 되려면 진리로 분별할 줄 알아야 하며 주인의 뜻을 분별해야 맡은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다(딤후2:15). 또한 자신을 바로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즉 자신의 장단점을 아는 것이 사명을 감당하는 지름길이다(고후13:5). 그리고 청지기는 최후의 심판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반드시 셈할 때가 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눅16:2).


 

Ⅱ 하나님이 청지기에게 위임하신 분야는 무엇인가?


  ⅰ.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위탁하셨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바울은 “너희 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몸(고전6:19)이라고 했다.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이다.”“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고전6:19~20)” 내 몸을 내 것이라고 생각할 때 이기주의에 빠져 사회와 국가에 봉사할 마음이 없어진다.  

  우리의 몸은 주께 드려야 할 몸이다. 고로 바울은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너희 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롬12:1)”고 했다.  헌신은 청지기의 첫째 조건이다. 몸은 사지백체를 뜻하고, 드린다는 것은 몸에 속한 일체뿐 아니라 우리의 인격 전부를 빠짐없이 주게 드린다는 뜻이다. 나의 삶의 중심과 생의 최고의 목표를 하나님께로 이동한다는 뜻이다.

  이런 헌신을 통해서 주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고로 성경은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20)고 했다.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몇 가지 생활이 요청된다.

  먼저 성결한 생활을 해야 한다. 머리, 손, 발, 눈으로 깨끗한 생활을 해야 한다.  성결은 하나님께 접근할 수 있을 만큼 순결하다는 뜻이다. 다음 네 가지 순결은 성경의 도덕적 요구이다.

  성경은 입술의 깨끗함을 요구한다(사6:5~6).

         손의 깨끗함을 요구한다(시24:4).

         마음이 정결을 요구한다(시73:13).

         생각의 깨끗함을 요구한다(약4:8).


  다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진실한 생활을 해야 한다. 진실한 마음이 하나님을 움직이고, 진실한 생활태도가 이웃을 감동시키고, 진실한 정신이 물질을 바르게 취급한다. 진실은 하늘에 오르는 사다리요, 이웃과 사귀는 교량이요, 교회를 섬기는 길이다.

  끝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의무에 충실한 생활을 해야 한다. 의무란 각자의 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10장31절에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라”고 했다. 청지기가 지켜야할 의무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계2:10)”은 의무를 다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상급이다.


  ⅱ. 하나님이 청지기에게 위탁하신 것은 시간이다.


  고로 바울은 지혜 있는 자 같이 행하면서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다”고 경고했다.

  청지기의 시간개념은 시간은 일회성, 단일성, 순간성이다. 일회성은 한 사람이 생일을 두 번 가질 수 없다는 것이고, 단일성은 같은 사건, 같은 종류의 일이 반복되도 완전히 동일한 것은 없다는 것이며, 순간성은 시간 측정은 언제나 순간적임을 의미한다.

  시간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최대의 선물이다. 그러나 시간은 하나님이 임시로 맡겨주신 선물이다. 고로 시간이 내 재산이 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시간을 선물로 주신 목적은 이 시간을 잘 활용하여 하나님과 이웃과 나라를 위하여 값진 일을 많이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함이다.

  우리는 시간을 선물로 받은 청지기들이다. 우리는 잠시의 시간도 창조할 수 없고 적은 시간도 빌려 쓸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잘 쓰고 못 쓰는 자유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하면 값있게 쓸 수 있을까를 항시 생각하며 살아야한다.

  청지기는 시간의 현재성, 보편성, 중요성, 제한성을 바르게 이해해야한다.


  ① 시간은 현재뿐이라는 것을 알아야한다.

  시간은 쌓아둘 수도 없고, 지나간 시간을 다시 사용할 수도 없고, 장래의 시간을 앞당겨 쓸 수도 없다. 시간은 현재뿐이다. 지금이 아니면 그 시간을 영원히 다시 만날 수 없다.

  우리는 시간을 관습적으로 과거 현재 미래로 표현한다. 그러나 과거는 벌써 없어진 시간이요, 미래는 당도하지 않은 시간이다. 우리 실존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현재뿐이다. 그러나 이 시간을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과거는 현재의 기억으로 미래는 현재의 기대로서 살아남는다.

  시간의 흐름은 그칠 때가 없다. 시간의 거리에는 stop sign이 없다. 시간은 전진이 있을 뿐이다. 쌀독의 쌀은 퍼내야 없어지지만 시간은 퍼내지 않아도 저절로 없어진다. 잃었던 돈은 다시 찾을 수 있어도 한번 잃어버린 시간은 다시 찾을 길이 없다. 시간은 예고 없이 끝나기 때문에 현재가 가장 귀중하다.

  

  ② 청지기는 시간의 보편성을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 누구에게나 꼭 같은 시간을 선물로 주셨다. 고로 누구도 불평할 수 없다. 다만 선용하느냐 악용하느냐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③ 시간의 중요성이다.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984.2.11~1931.10.18)」은 “시간이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17~1790.4.17)」은 “너희 생명을 사랑하느냐 그러면 시간 그것이 바로 너의 생명이다.” 동양격언에도 “시간은 한번 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④  시간의 제한성(制限性)을 잊지말아야한다.

  시간은 제한이 있다. 그 제한은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맡은 시간이 얼마인 알 수 없다. 어떤 시인은 “우리의 년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년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10)”라고 표현했다.

  시간이 짧다는 것을 증명할 길은 없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세월여류(歲月如流)”, “광음여시(光陰如矢)”라는 말로 표현하였을 뿐이다. 고로 「쥬베날(Juvenal)」은 “소리 없이 발길 옮기는 시간은 민첩하게 지나가니 우리는 당대 긴 세월이 있을 것인 양 암흑 속에서 꿈만 꾸고 있네”하고 한탄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보면 야곱이 바로 왕에게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130년이니 이다. 아뢰는 말이 나의 남은 때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냈나이다(창47:9).” 영원한 역사적 안목에서 일생을 볼 때 인간이 맡은 시간이란 ‘밤의 경점’같은 것이다(시90:4)

  고로 청지기는 하나님이 맡기신 시간을 선용해야한다. 시간을 선용하려면 다음 몇 가지를 주의해야한다.


  ⑴ 시간을  경건하게 사용해야한다.

  주일을 거룩히 지켜야한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께 바쳐야 할 시간을 봉헌하는 것이다. 이것은 주의 계명이다. 하나님께서 물질은 열의 하나를 드리라 하셨으나 시간은 이례 중 하나를 드리라고 하셨다. 주일은 안식의 날이요 예배의 날이며 축복의 날이다. 그러므로 주일은 다른 날과 구별하여 하나님의 날로 지켜야한다(출20:8,11, 사56:6~7, 사58:13~14).

  자신의 경건생활을 위해 시간을 선용해야한다. 기도하는 시간, 성경 읽는 시간을 아끼지 말아야한다.


  ⑵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

  시간을 규칙적으로 사용하려면 중요한 일을 먼저 해야 하고 편리한 일을 속히 행하게 되고 불급한 일은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 수면시간, 활동시간, 휴식시간의 계획을 짜야한다.


  ⑶ 시간을 아껴야 한다.

  우리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면서도 시간을 낭비할 때가 많다. 고로 바울은 “시간을 아끼라 때가 악하다(엡5:16)”고 경고했다.

  청지기는 시간을 절약해야 한다. 시간 절약의 방법은 부지런해야 한다. 고로 바울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어 주를 섬기라(롬12:11)”고 했고 잠언 6장6절에 보면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고 했다.

  예수님은 부지런하신 분이었다. 일찍이 새벽 미명에 일어나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낮에는 종일 일하시고 밤에는 산에 가셔서 기도하셨다. 근면은 청지기의 우선적인 의무다.

  청지기는 언제나 시간을 지킬 줄 알아야 한다. 내가 남의 시간을 허비할 권리가 없다. 시간을 안 지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살인행위다. 시간을 지키는 것은 교양의 척도요, 문명인의 표요, 근면의 상징이다.

  청지기는 기회를 잃지 말아야한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기회를 사라는 뜻이다. 주어진 기회를 충분히 살리라는 뜻이다.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의 비유는 지혜 있는 다섯 처녀는 기회를 살렸고 미련한 다섯 처녀는 주어진 기회를 잃어버린 좋은 교훈이다.

  예수님은 언제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일을 하신 분이시다. 그것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요4:1~10)에서, 또 세리 삭개오를 만난 사건(눅19:1~10)이 입증한다. 봉사할 기회, 전도할 기회, 일할 기회를 바로 신속히 이용하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것이다. 기회는 한번 지나가면 다시 만날 수 없다.

  청지기는 시간을 미루지 말아야한다. 「에드워드 영(Edward Yong)」은 “연기(延期)라고 하는 것은 시간을 도적질하는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다음에 다음에 하면서 연기하는 것은 시간을 훔쳐버리는 것이다. 고로 선한 청지기는 그날 그날의 할 일들을 조심스럽게 그대로 실천해야한다. 「하시오드(Hasiod)」는 “미루는 것을 줄기는 사람은 파멸과 투쟁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동양 격언에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ⅲ. 하나님은 청지기에게 은사(재능)를 위임하셨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재능이 있다(고전4:7). 야고보서1장6~17절에 보면 “각양 좋은 은사(재능)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로서 내려온다”고 하였다. 베드로전서4장10절에도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했다.

  그리고 받은 은사는 각각 다르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재능에는 선천적인 재능(자연적 은사)이 있고 성령을 통해서 받은 은사(영적 은사)가 있다. 자연은사는 타고난 재능 즉 어학, 수학, 음악, 손재주 등이다. 이런 재능은 자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천부의 재능이다. 영적은사는 여러 가지이나 같은 성령이 주시는 것이다. 바울은 은사에 대해서 세 가지 점을 분명히 했다.

  은사는 여러 가지다(고전12:4).

  모든 은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고전12:6).   

  은사는 일반의 유익을 위해 써야한다(고전12:7).

  모든 은사는 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해 써야한다. 하나님은 사람의 재능을 요구하시지 않으신다. 다만 그가 받은 은사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를 문제 삼으신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재능은 각각 다르나 기회는 같고, 받은 은사는 다르나 그 은사에 대한 책임은 같다(엡4:11~12).

  재능을 효과적으로 선용하는 길은 각자가 받은 재능을 개발해야 한다. 사람마다 한 가지 이상의 재능을 다 가지고 있다. 모세는 언변은 없으나  지도력은 탁월했고, 아론은 언변이 좋았다(출4:10,16). 각자는 자기 재능에 충실해야한다. 재능은 다르나 귀천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각자의 재능을 잘 발휘하여 공동의 이익을 위해 써야한다. 청지기가 준수해야할 것은 각자가 받은 은사를 가지고 서로 도와야하고, 서로 존경하면서 써야한다.

  청지기에게는 상급과 심판의 날(마25:11~30)이 있다.

  여기서 선한 청지기와 악학 청지기의 운명이 갈라지게 된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잘 활용하여 업적을 남긴 청지기에게는 칭찬과 상급이 내려지고, 게으르고 받은 은사를 활용하지 못한 청지기에게는 무거운 벌이 내려졌다. 여기서 청지기는 세 종류로 분류되었다.

  하나는 꼭 있어야 할 사람

  둘째는 있으나마나한 사람

  셋째는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다.


  ⅳ. 하나님은 청지기에게 재물을 위임하셨다.


  먼저 재물을 위임받은 청지기 재물에 대한 두 가지 중요한 착안점이 있다. 모든 위임을 받은 재물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이고, 청지기는 그 재물을 관리하고 바르게 선용해야한다는 것이다.

  물질에 대한 그릇된 견해가 있다. 그것은 이원론적 사고다. 물질은 악하고 영혼만 선하다는 사상이 있다. 이것은 옛날 교회사에 나타난 나스터시즘(Gnosticism)이다. 이 견해는 물질을 모두 악하게 보고 무시함으로서 고행주의, 수도주의자가 탄생했다.  

  고행주의자란 인간의 육체는 물질이며 물질은 악함으로 신령한 은혜를 많이 받으려면 어떻게 해서든지 육신을 괴롭혀야 한다는 위험한 사상이다. 중고시대의 어떤 사람은 몸을 일부러 괴롭히려고 못을 밖은 속옷을 입고 다니며, 몸에 피부병이 나도 치료를 거부하고, 또 성자는 높은 기둥 위에 올라가 살면서 몸에 헌데가 나도, 그 속에 구더기가 생겨서 살을 먹다 떨어지면 다시 손으로 집어서 헌데 위에 놓으면서 “어서 먹어라, 어서 먹어라”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과 위반되는 사상이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후 보시고 좋다고 하셨다. 하늘과 땅은 모두 물질이다. 철학적으로 생각하면 물질은 변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다. 물질은 선하게 쓰면 선해지고 악하게 쓰면 악해진다. 몸은 음란의 도구가 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원론은 그릇된 사상이다.

  또 하나는 유물주의다. 철학적 유물론은 이 우주에는 오직 물질만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영혼의 존재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다. 고로 완전한 유물주의자는 완전한 무신론자다.

  인간을 완전히 물질로만 보면 사람은 짐승과 같아진다. 사람과 짐승 사이에 차이가 없어진다. 고로 인간을 짐승과 꼭 같이 대한다. 그러므로 유물론을 배경으로 하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생명이 천대받는 것은 당연하다. 유물론적 사상은 유물론적 사회관을 낳는다. 고로 공산주의 사회를 보면 동물원과 비슷한 점이 많다. 의식주에 대한 관심은 있으나 자유에 대한 관심은 없다. 고로 성경은 이런 유물사상을 단호히 배격한다.(딤전6:9~10, 마6:24, 신8:3,12~14).


  ① 그러면 재물에 대한 청지기의 바른 자세는 무엇인가?

  물질은 임시로 위임받은 것이다. 모든 재물은 하나님께 속한다. 물질을 내 것으로 생각하고 땅에만 쌓아놓는 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바닷가에 모래를 모아 산을 만드는 것과 같다. 아무리 열심히 모래산을 만들었지만 바닷물이 한번 그 위를 지나가면 그 자취는 없어지고 만다.

  물질도 이와 같다. 역사의 파도가 한번 지나가면 남는 것이 없다. 농부가 아무리 봄에 씨를 뿌려도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정신도 몸도 재물도 하나님께 속한다. 고로 욥은 알몸으로 왔다가 알몸으로 간다(空手來空手去)(욥1:21)고 강조했다.

  고로 모든 물질은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써야하고 자기 뜻대로 처리해서는 안 된다(요일2:15~17). 그러므로 예수님은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방법이 무엇인가?


  첫째로 재물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말3:9~2).

  둘째는 재물로 여호와를 공경하는 것이다(잠3:9~10).

  셋째는 가난한 자를 도와주는 것이다(잠19:17).

 

  그러면 십일조의 기원을 찾아보는 것부터 시작한다. 십일조는 율법이 있기 전에 시작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 중심의 민족으로서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 예배를 민족의 생명으로 하는 특수한 민족이다. 그들은 “네 제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를 여호와를 공경하라(잠3:9)”는 말씀을 전 수입의 십분의 일을, 전 생산물의 1/10을 성별하여 드리라는 명령으로 알고 살아온 민족이다. 십일조에 대한 최초의 성경 기록은 창세기 14장18~20절에 아브라함과 멜기세덱 사이에서 시작된다. 또 창세기 28장20~22절, 31장13절에 야곱의 서원이기도 하다.


  ⑴ 이교도들의 11조

  고고학자들이 애급과 바벨론의 옛 도성들의 폐허에서 고대민족들이 그들의 신들에게 11조를 드렸던 흔적을 발견하고 있다.

  「아돔 그라크(Adom Clark)」는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종교를 위하여 거의 다 그들의 11조를 바쳤다”고 주장했다.

 「오이스털리(AW.O.E. Oestuley)」는 “11조의 제도의 시작은 멀리 이스라엘의 역사 이전이다”라고 주장했다.

  「W.L.Muney」는 “이교도들이 그들의 신에게 11조를 바친 것은 아브라함 이전에 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앗수르와 애급의 흙제단이 보여주는바에 의하면 11조 준행이 그리스도 이전 3,800년이라고 했다.


  ⑵ 구약시대의 11조

  예배에의 헌물로 어느 민족이나 예배의식에는 음악, 춤, 헌물이 있었다. 신을 믿는 마음은 인간의 본능이요, 물건을 신께 드리는 것은 신앙심의 표현이다. 보은하는 감사의 표시이다.


  1) 율법으로서의 11조, 거룩한 11조(레27:30)

  전 재산, 전 산물은 하나님의 것이다. 신에게 드리는 표준은 11조다. 그리고 11조의 헌물로서 선민과 이교도를 구분한다.


  2) 11조가 신앙의 부흥

  ⒜ 히스기야 임금 때의 신앙부흥과 11조(대하29:1~36, 31:5~7).

  ⒝ 느혜미야 시대의 부흥과 11조(느13:10~13).

  ⒞ 말라기의 경고와 11조(말3:7~12), 11조를 드리지 않는 것은 절도, 횡령죄라고 했다.

 

  ⑶ 신약시대의 11조

  바리새파 사람들의 11조(눅18:12), 예수와 11조(마23:23, 눅11:42), 구약시대처럼 율법적으로 강조할 필요는 없으나 속죄의 은총을 받은 신자가 은혜에 감사하며 자유의 11조를 드림은 마땅하다.


  1) 초대교회의 11조

  할례가 세례로, 안식일이 일요일로 변했으나 11조는 변경이나 폐지한 기록이 없다.


  2) 바울의 11조

  ⒜ 11조는 영적 축복(고후9:7~8)

  영적축복이란

  a) 모든 은혜를 풍성케 한다.

  b) 모든 일을 넉넉하게 한다(왕상 3:11~14).

  c) 선한 일을 할 수 있게 한다(막10:29).


  ⒝ 11조의 물질적 축복

  물질적 축복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자에게(마6:33),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면 그 결과로 물질적 축복을 받는다(말3:1~12).

  십일조 헌금의 정신은 신앙의 표현이고 헌신의 표현이며 감사의 표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