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의식개혁과 종교의 역할




 

Ⅰ. 서론


  우리 민족의 근대사를 살펴보면 1940년대 이전의 주요 관심사는 민족의 독립 이었다. 독립을 쟁취하는 것이 우리 역사의 기본명제였다. 그래서 우리 온 국민은 모든 지혜와 정열과 에너지를 이 한 가지 일에 집약시켰다. 1945년에 해방이 되고 1948년에 새 나라 건설의 목표가 달성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북한이 제외된 독립, 경제독립이 수반되지 않은 독립이었다.

  1950년대의 우리 민족의 관심은 자유였다. 자유민주주의를 이 땅에 정착시키는 것이 과제였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의 제도는 도입했으나 그 사상과 철학을 이 땅에 토착화하기에는 시기가 일렀다.

  1960년대의 민족의 관심은 근대화 산업이었다. 즉 경제적인 번영이었다.

  

  독립 쟁취가 40년대의 좌표요, 자유 확립이 50년대의 좌표라면 경제적 성장,  근대화 복지사회 건설 등은 60년대 이후 우리 민족의 염원이요 목표였다.


  그동안 우리는 독립의 산을 넘고 시련의 벌을 지나 발전의 언덕에 이르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농공업사회에서 공업사회를 거쳐 탈공업사회로 지향하는 과정에서 경제적인 성장과 사회구조의 급격한 변화, 그리고 윤리적 가치의 변화는 자연히 우리 국민의 물질적 생활이 호전되고 사회생활이 편리해짐에 따라서 그것들을 움직이는 한국인의 의식구조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발달한 기계문명 때문에 인간이 자기 능력에 자신감을 상실했으며, 자기 위치와 역할에 대한 책임감을 잃고 일의 보람과 가치, 삶의 의욕과 동기마저 잃어버린 허영 속에서 가치의식의 혼란을 일으켰고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형성된 개인주의는 자기 능력에 자신을 잃고 연고주의, 한탕주의 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따라서 근대화 과정에서 도입된 서구적 가치풍토의 영향을 받아 금전만능주의, 이기주의적 행동 경향이 한국인의 의식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사건만의 나열이 아니고 그 사건들을 일으킨 인간의 행위 뒤에 숨은 동기, 의미, 원인, 이유를 찾아서 역사를 해석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내적인 속성이 외적인 인간생활, 인간현상을 결정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Ⅱ. 그러면 먼저 한국인의 주요한 의식구조 몇 가지를 추려보기로 하자.


  ⅰ. 첫째는 주인의식의 결여를 들 수 있다.


  36년간 일본의 식민지적 통치는 우리에게 자율적 의존심을 갖게 함으로서 사회나 국가운영에 자율적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주인의식의 결여를 초래했다. 정의로운 민주국가의 건설은 다른 국민이 와서 실현시켜 주거나, 정부의 어떤 특정한 인물이 나와서 실현시켜 주기를 기대해서도 안 된다. 자신이 힘으로 해야 한다.


  ⅱ. 두 번째로는 국민의 부정적인 의식구조다


  우리가 일제강점기시대에는 우리 민족을 지배한 일본인에게 반항하기도 하고 부정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의식은 해방되어 새 나라를 건설하는 과정에서도, 선진국의 문턱에 다가선 오늘에도 습관적으로 부정을 위한 부정, 비판을 위한 비판의 삐뚤어진 사고방식이 계속되고 있다. 이렇게 됐을 때 자기 민족을 멸시하거나 무시하는 태도가 생기며 자기만 옳다는 자기 영웅심에 빠지게 된다.


  ⅲ. 세 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의식구조는 관료우선주의다


  이것은 잘못하면 목적을 위해서 각개인의 자율과 창조와 인격을 무시하는 태도다. 목적성취만을 위한 것이 되고, 그 일 자체와 봉사의 가치보다도 결과만을 생각하게 된다.

 

  ⅳ. 네 번째로 지나친 요령주의 기회주의의 의식이다.


  이것은 소극적이고 무사안일주의 태도이다. 우리가 일제 시에는 살기 위해서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취해야 했고, 현실과 타협해야했다. 육체적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방관적 태도, 무비판적 냉소주의, 그때 그때의 어려움을 피하려는 요령주의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금은 그런 요령주의로서는 살아갈 수 없는 시대다. 진실과 능력이 통하는 시대다.


 ⅴ. 다섯 번째로 지나친 약소의식이다.


  우리 민족은 약소민족인데 어떻게 큰일을 할 수 있나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러시아에 비하면 작은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작은 나라라고해서 강국이 못 된다는 이유는 없다. 스파르타는 작은 나라였다. 로마는 작은 나라였다.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다. 그러나 이런 나라들은 한때 넘볼 수 없는 강국들이었다. 한국은 이런 나라들 보다는 면적이 넓고 인구도 많은 나라다.


  ⅵ. 여섯 번째로 지나친 후진의식이다.


  물론 우리나라가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한 몇 선진국에 비하면 후진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역사적으로 언제나 후진국이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때는 어느 나라보다도 선진국이었다. 우선 우리나라는  5천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문화면에서도 천문대를 제일먼저 쌓은 자는 한국인이었다. 활자를 제일 먼저 사용한 사람도 한국인이다. 철갑선을 먼저 발명한 사람도 한국인이다. 자기를 만든 것도 한국인이었다. 인간역사는 마라톤 선수와 같아서 오래 경주를 하다보면 좀 앞설 때도 있고, 좀 떨어질 때도 있다. 그러므로 오늘 좀 떨어졌다고 후진의식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다.

  이런 것 외에도 불안심리, 불신풍조 등 개혁해야 할 의식이 많다. 


  위에서 지적한대로 그러한 한국인의 의식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정의로운 민주사회 건설을 위해서 뚜렷한 주인의식을 갖고 매사에 긍정적인 자세, 장래를 향해 전진해야한다.


 

Ⅲ. 의식개혁과 기독교의 역할


  먼저 지난 한 세기를 돌아볼 때 그동안 한국기독교가 수행한 헌신적인 역할이나 우리 문화에 준 신선한 충격, 그리고 우리 국민의 생활이나 정신사를 고양시킨 점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더욱이 조선왕조의 쇠락과 함께 시작된 개화의 물결 속에서 기독교가 담당했던 근대화 촉진이나 근대 인간형성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문화의 개발, 각종 산물의 장려, 상공업의 권장, 과학정신의 고취, 서양의술 보급, 근대 교육을 실시해서 한글을 깨우치고 문맹퇴치와 민족의 자각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킨 일과, 새로운 도덕적 가치 기준을 제시했다.

  이런 각성된 의식은 개성의 존중 및 인격의 존엄성을 강조하면서 한국사회에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지도자를 양성하는데 기여했고, 주권재민과 만인평등의 민주주의 정신을 함양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다. 삼일운동을 정점으로 하는 항일운동을 비롯해서 해방 후 자유사회와 민주주의를 전개하는 과정에서는 물론이고 지난 39년 동안 공산주의와 정면으로 싸워 이 나라를 수호하는데도 기독교의 역할은 과소평가할 수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나라 기독교는 여러 가지 사회사업 등,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지난 100년 동안 이 땅위에 어둠을 밝히는 등불의 역할을 감당했다. 현재 우리나라 안에 있는 사회복지 기관 중에서 84%를 기독교단체나 크리스천들이 설립운영하고 있다.

  정규 교육기관만도 256개를 기독교단체가 설립운영하며 병원도 40여개를 운영한다. 

  지난 100년은 고난의 한 세기로서 일제하의 무서운 압박 속에서도 6.25의 민족적 시련 속에서도 제사장적인 자세로 민족의 아픔을 감싸주며 고난의 현장을 찾아 사랑을 실천해왔다. 기독교는 지난 100년 동안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종교로 정착시키고 주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완수해오고 있다.

  교육과 의료등 사회봉사 활동을 통해서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한 사회복지사업도 정신문화 창달에도 선각자적 역할을 감당해왔다.


 

Ⅳ. 그러면 앞으로 온 국민에게 바른 의식을 심어주고 선진조국을 창조하는데 종교(기독교)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말씀드리고자 한다.


  ⅰ. 첫째로 한국종교(기독교)의 역할은 민족의 양심을 재건하는 일이다.


  국민의 양심이 살아있어서 성실과 신의를 생명으로 하는 보증수표와 같이 정직하고 공신력이 강한 국민이 될 때 우리 국민의 그릇된 의식은 개혁될 것이다.

  우리의 도덕적 판단을 주장하는 기관은 양심인 까닭에 하나님은 우리의 양심을 통해서 그의 뜻을 들려주시고 그의 빛을 비추어 주신다. 고로 우리의 급선무는 공신력의 구축이요, 신의의 재건이요, 허물어진 양심의 회복이다,

  그것은 양심은 마음의 지성소요, 인격의 눈이요, 사회도의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양심의 눈이 어두워지면 개인도 사회도 국가도 어두워진다.

  성실과 정직은 맑은 양심에서 솟아나는 것이기 때문에 양심의 재건은 의식개혁의 첫째 길이라고 생각된다.

  맑은 양심만이 서로 믿고 살 수 있는 신임사회를 건설할 수 있다. 정직은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행동철학이다. 마음을 곧게 바르게 가지짐으로서 말과 행동의 허식을 버리고 자기에게 솔직하여 있는 그대로의 능력과 역할을 인정할 줄 알 때에 자기 자신에게 용기가 생기고 자기와 모든 것에 진실할 때 자신감을 갖게 된다.

  정직은 열려진 마음의 상태이며, 맑은 양심의 상태다. 맑은 양심을 가졌을 때 서로 믿고 상호신뢰하면서 불신풍조를 제거하게 되며 인격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정직은 말의 신의를 지키는 것이다. 신은 참이요 의는 옮음이다. 참됨으로서 믿고 옳으니 행하는 것이다. 「도산 안창호(安昌浩, 1878.11.9~1938.3.10)」 선생은 “죽더라도 거짓이 없으라,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말아라, 꿈에라도 정직을 잃었거든 통회하라”고 하였다.

  맑은 양심이 회복될 때 자기 자신에게 진실할 수 있다. 양심은 사람으로서 마땅히 가져야할 바르고 착한 마음인 동시에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다스리는 능력을 말한다. 인간의 양심이 회복됐을 때 주체의식을 갖게 되며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게 된다.

  바르고 성실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부정부패의 심리가 생길 수 없다. 정직했을 때 화합이 정신이 생기고 상호의존의 깊은 마음이 생기고 전체공동의식을 갖게 되며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안정감을 갖게 된다.

  이렇게 됐을 때 직장을 아끼고, 직책을 사랑하며 주체의식을 갖게 될 때 의욕적인 창조의 힘이 스스로 일어나게 된다. 아무리 좋은 재료들이 있다 해도 시멘트로 연결시키지 않을 때 그것들은 쓰러진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것들이라도 시멘트로 서로 연결하여 놓으면 어떠한 고통과 폭풍이 불어 닥쳐도 절대로 넘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맑은 양심을 회복함으로 얻어지는 진실과 정직으로 결합됐을 때 이길 수 있는 힘, 강한 힘이 생기게 된다.

  맑은 양심은 민족을 하나로 묶는 화합의 힘이다. 이런 맑은 양심의 회복만이 “정직한 사람은 못산다.” “법대로 살면 손해 본다”는 그릇된 의식을 고칠 수 있다.  


  ⅱ. 두 번째로 앞으로 의식개혁을 위한 종교인의 역할은 국민들에게 긍정적인 생활철학, 적극적인 사고를 갖게 하는 일이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새로운 긍정적인 윤리관을 통해서 인간생활의 양상을 새롭게 바꿔야한다.

  어떤 율법학자가 예수에게 어느 계명이 크냐고 물었다. 이에 대하여 예수는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시면서 이 두 계명이 제일 크고 선지자의 대강령이라고 대답하셨다. 또 제자들에게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먼저 남을 대접하라”고 하셨다.

  동양의 한 성현은 “기소불욕(己所不慾)이면 물시어인(勿施於人)”이라고 가르쳤다. 이 교훈은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뜻이다.

  위의 두 교훈에서 우리는 상반된 생활철학과 사고를 발견한다. 하나는 「하라」는 철학이요 다른 하나는 「하지 말라」의 철학이다. 이 두 철학의 내용에는 별로 차이가 없다. 그러나 이런 사상이 인류문명에 미친 영향은 하늘과 땅의 차이다.

  좋은 일을 행하라는 말과 나쁜 일을 하지 말라는 철학은 그 내용이 같다. 그러나 「하라」의 철학은 서구문명을 낳고 「하지 말라」의 철학은 동양문명을 낳았다.

  과거 동양인들은 「하지 말라」의 철학을 강조함으로 소극적이고 수동적이고 부정적이며 비협조적인 인간의 성격을 조성하였다. 그래서 무슨 일에나 강요를 당하지 않고서는 참여하지 아니했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하라」의 철학을 강조함으로 진취적이고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을 조성하여 만사에 자진해서 참여하는 국민성을 길렀다.


  근세 이후의 세계역사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서양이 동양을 지배한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세계 인구의 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동양인들이 오랜 세월 서양인들에게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지배를 받아온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서양은 동양을 지배할 힘이 있었고 동양은 이것을 막아낼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서양은 그 힘을 어디서 얻었나? 그것은 일찍 근대화를 하여 과학기술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근대화 작업은 그들의 선조들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생활철학에서 나온 도전력의 산물이다.

  서양문명이 동양문명보다 앞서 발달한 것은 서양인이 동양인보다 그 두뇌가 우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먼저 기독교의 적극적인 생활철학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잇따라터진 대형 금융사고, 벼락부자가 된 부실기업, 거액의 축재사건 등등을 놓고 국민들이 분통을 터드리고 있다. 국민으로서는 도덕성과 정당성이 결여된 무차별 치부행위에 규탄의 돌을 던지는 것이 당연한 권리일지도 모른다. 또 언론인들이 사회의 비리를 파헤쳐 나라의 장래를 국민과 함께 걱정하는 것은 그들의 직무일 것이다. 

  이렇게 어두운 면만이 이 사회를 온통 뒤덮고 보니 백성들의 의식은 돈 있는 자, 학식이 있는 자, 지위 높은 자에 대한 냉대 또는 적대감정까지 갖게 된다.

  이렇게 국민의식이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치솟게 되면 나라의 장래는 어두워진다. 현대산업사회에서는 과거 농경사회에서처럼 나물먹고 물마시고 고무신만 신고 살아갈 수는 없는 시대다. 국민윤리의 차원도 과거와 같은 청빈사상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

  오늘은 커피마시고, 구두신고, 비행기 타고 여행하는 시대다. 그러므로 모험을 무릅쓴 사람,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 기술혁신을 주도하는 사람, 뛰어난 판단력을 가진 사람들이 게으르고 소극적이고 피동적인 사람보다 돈이나 명예나 지위를 더 얻도록 하는 동기부여는 자유세계에서 시대적인 청빈사상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세상에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무슨 사건이 하나 터지면, 가진 자, 지위 있는 자를 무조건 싸잡아 매도하는 성향이 나타나고 있다. 옥과 돌을 가리지 않고 도매금으로 넘기는 풍조가 번지고 있다.

  일부 사고를 저지를 사람 때문에 정당하게 얻은 기득권, 사유재산, 직위, 명예, 업적 등이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어 그 뿌리가 흔들린다면 그 나라는 퇴보할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못사는 사람, 돈이 없는 사람, 못 배운 사람, 소외된 사람을 상향 평준화시켜 인간답게 잘살게 만드는데서 역사 발전의 수례바퀴는 제대로 굴러가게 마련이다.

  동시에 상대적으로 나은 사람, 돈 있는 사람, 학식과 지위가 높은 사람을 하향 평준화시키는 사회에서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여러 가지 분통터지는 사회의 사건들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위로 모든 것을 끌어올리는 상향작업을 본격화해야 한다. 그래야 졸부, 벼락출세, 허상으로 가려진 가짜 권위 등이 이 땅에서 서서히 그 자취를 감출 것이다.

  「하지 말라」의 사고는 언제나 이 사회를 건설보다 파괴, 진보보다 후퇴케 할 것이다. 그러나 「하라」는 긍정적인 사고는 우리 온 국민을 잘사는 세계, 정의로운 세계로 끌어올릴 것이다.  

  오늘 한국의 새로운 목표는 민주주의 및 복지사회의 건설이다. 그러므로 이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언제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활철학을 가져야 한다.


  ⅲ. 세 번째로 의식개혁을 위한 종교의 역할은 애국운동의 전개다.


  온 국민으로 하여금 내 나라 사랑하는 마음 갖게 하는 운동이다.

  이 땅에 태어난 우리는 이 나라를 거룩한 나라로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 책임이 있다. 이 땅에 사는 우리들 외에 그 누구도 이 땅을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줄 사람은 없으며 또 이 나라를 자기 나라처럼 사랑할 사람도 없다.

  옛날 희랍의 철인 「플라톤」은 “자기가 희랍 사람으로 태어난 것을 운명의 신에게 감사한다”고 고백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국민이 되어야한다.

  이 나라를 거룩한 나라로 살기 좋은 나라로 발전시키는데 무엇보다도 먼저 확고한 국가관이 필요하다. 이 세상에서 국적 없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도산 「안창호」 선생은 “나는 밥을 먹어도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잠을 자도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라고 절규한 것은 그의 간절한 애국심의 표현이다. 우리가 어디서 살든, 무슨 일을 하든, 조국이라는 두 글자만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일제강점기 말엽 한국인에 대한 핍박이 강렬할 무렵에 별처럼 나타났던 민족의식이 거대한 애국지사가 있었다. 그들이 「김교신(金敎臣, 1901.4.18~1945.

4.25)」, 「주기철(朱基徹, 1897.11.25~1944.4.21)」, 「윤동주( 尹東柱, 19

17.12.30~1945.2.16)」 등이었다.

  「김교신」은 한국에 민족의 얼을 끝까지 지켜주느라 애쓰다가 죽은 애국적 종교인이었다. 1945년에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이 겨레가 암흑처럼 어두운 수난과 형극의 길을 마지막 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희망과 사명은 우리 민족에게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고 간 위대한 애국자다. 그는 한국 지도를 바라보면서 그 모습이 아시아 대륙을 머리 위에 지고 일어서려는 강력한 우리의 역사적 기개를 바라볼 수 있는 예언자의 눈길을 가지고 있었다.

  「윤동주」 역시 그랬다. 그의 애국사상은 그의 짧은 시 한수 속에 담겨져 있다. “새벽이 되면 나팔소리 들려올꺼외다.” 이 내용은 그의 피 끓는 겨레에 대한 사랑과 희망의 선포요, 심판의 나팔소리였다.

  「주기철」 목사의 순교 역시 우리 겨레 나라 사랑에서 종교(기독교)가 가져야 할 자세나 신앙에 대해 더없는 교훈을 남겨주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신사참배를 반대했고 반 천황체제에  묵시적 저항의 원점이 무엇인가? 기독자가 최후 순교할 마지막 충성의 대상이 무엇이었던가? 그것은 이 나라 이 겨레를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Ⅴ. 결론


  종교(교회)는 마치 누룩과 같이 내부로부터 변화를 일으켜서 전체의 새로움을 창조해야 하며, 종교(교회)는 사랑과 용서와 친목과 희망의 샘터로서 민족 전체를 하나로 묶어놓는 것이고, 종교(교회)는 사회의 평화와 질서 및 발전을 촉구하면서 평화의 분위기를 조성해야한다.

  성서는 종교인(신앙인)의 사회적 책임을 인간의 몸과 지체를 비유했지만 “누구를 위한 희생이 아니고 서로 더블어의 사회형성을 강조한다.”

  그 때문에 등경 위에 켠 등불로서 누룩으로서 소금으로서 정의사회 건설에 큰 역할을 하기 위하여 종교인은 반듯이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인간의식을 구성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