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관점에서 본

성결교회의 과제와 사명


정진경 목사(서울신대 교수, 신촌교회 원로목사 역임)  

 


Ⅰ. 머리말

이제부터 삼년 후면 서기 2,000년이 시작된다. 지금 온 인류의 관심의 초점은 2,000년이라는 숫자에 있다. 밀레니엄(Millenium) 이라는 낱말이 뜻하듯이, 2,000년을 기점으로 세계는 어떻게 달라질까? 번영과 평화의 시대가 될까, 아니면 인류의 종말이 오고야 말 것인가? 교회는 어떻게 달라질까?

여하간 이런 세기적인 전환기에 교회창립 70주년을 일년 앞둔 부평제일교회가 '한국성결교회의 어제, 오늘, 내일'이라는 큰 주제를 갖고 기념 세미나를 개최하여 교단 발전에 기여하려는 깊은 뜻을 치하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나에게 주어진 제목은 '역사적 관점에서 본 성결교회의 과제와 사명'이다. 역사적 관점이란 성결교회의 기원과 걸어온 과정을 말하는 것이고, 과제와 사명은 앞으로 교단의 방향성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나는 이 제목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는 한국 성결교회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이고, 두 번째는 급변하는 시대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다시 말하면, 전자는 성결교회의 뿌리를 묻는 역사적 질문이고, 후자는 성결교회가 급변하는 역사적 상황에서 어떤 도전에 직면하고 있으며, 그 도전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이냐의 물음이다. 이 강연은 최근에 출간된 성결교회사와 전문가들의 몇몇 논문을 참고하였음을 밝혀 둔다.

 

Ⅱ. 성결교회의 발자취

1. 성결교회의 시작

성결교회는 1907년에 김상준, 정빈 두 사람이 동양선교회(OMS)의 도움을 받아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이란 이름으로 시작했다. 그 후 한국 성결교회는 '조선 예수교 동양선교회성결교회'라는 긴 이름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해방 후에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로 명칭을 다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개신교단의 주요 교단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2. 성결교회의 정체성 논란

한국 성결교회는 1960년대까지는 성결교회가 어떤 교단이냐 하는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없었다. 그 이유는 성결교회를 만든 역사적 주역들이 생존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명직 목사를 대표로 하는 한국 성결교회는 '체험적 복음'을 열심히 전하는 교단으로 이해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성결교회의 성장과 함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성결교회의 정체성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성결교회의 정체성이 무엇이냐라는 물음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물음과 같다. 나의 지나온 과거가 무엇이며, 과거에 의해 형성된 나는 누구인가라는 역사적 질문이다.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성결교회는 장로교회나 감리교회와는 다른 두 가지 특색을 가지고 시작했다. 그 하나는 외국의 교파배경이 전혀 없이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는 장로교나 감리교의 선교정책과는 대조적이다. 그들은 교파확장을 통한 선교정책에 의하여 한반도의 지역을 안배했다.

두 번째 특색은 외국 선교사에 의해 창립된 것이 아니라 외국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전에 한국인에 의해 이미 시작된 복음전도관으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다. 김상준, 정 빈 두 청년이 일본에 건너가 동양선교회가 운영하는 동양성서학원에 1905년에 입학하여 1907년에 졸업하고 귀국하여 한국에서도 일본에 와 있는 동양선교회와 같은 방법으로 전도의 계획을 세우고 서울시 무교동 12번지에 기와집 한 채를 마련하여 복음전도관이라는 간판을 붙이고 전도를 시작했다. 그 후 일본에서 먼저 선교를 시작한 동양선교회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합세함으로써 한국 성결교회가 시작된 것이다.

3. 한국 성결교회와 18세기 웨슬리와의 관계

한국 성결교회가 웨슬리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 이명직 목사는 "성결교회는 웨슬리의 정신을 이어받아 계승하기 위하여 생겨난 단체"라고 말했다. 이것은 성결교회의 선교 배경이 되는 동양선교회도 '웨슬리안'이라는 사실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면 성결교회는 어느 점에서 웨슬리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가? 그것은 '성결의 복음'을 전하는 데서이다. 그러므로 성결교회의 신학적 핵심 사상은 '성결'이다. 그리고 성결교회의 성결의 뿌리는 웨슬리에게 있다.

근대 웨슬리의 신학적 위치는 성결의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있었다. 성결교회의 성결론은 크게 보아서 웨슬리의 성결론과 같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대체적으로 웨슬리의 성결론을 이어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웨슬리는 죄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했다. 하나는 아담으로부터 피를 통해 물려받은 원죄라는 것이고, 둘째는 우리들이 스스로 짓는 자범죄라는 것이다. 원죄는 사람이 부패한 근성을 가지고 태어난 아담의 피로 인한 유전죄이다. 이 원리는 나와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그런 죄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원죄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시지 않으신다. 책임도 묻지 않는다. 이미 하나님은 예수를 십자가에서 온 인류를 대신하는 희생의 제물로 죽게 하였으므로 그 공로로 아무런 조건없이 이 원죄를 사하시고 용서하셨다. 이것을 웨슬리는 신학적 용어로 '선행적 은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범죄는 다르다. 우리들 스스로가 직접 지은 죄악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시고 값을 요구하신다. 우리가 이 죄로부터 사함을 받지 않고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지은 죄에 대하여 직접 회개하고 용서를 받아야 영적으로 거듭나 새 사람이 된다.

자범죄는 스스로 회개하고 십자가의 대속의 공로를 받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 거듭남으로 해결된다고 웨슬리는 주장하였다. 자범죄와 원죄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성화의 은혜는 중생과 성결의 두 단계를 거쳐야 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성화는 완전히 죄와는 관계가 없는 상태라는 말이 아니라 복음적인 의미에서의 성결을 말하는 것이다.

성결교회가 웨슬리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는 것은 칼빈주의와 비교해 보면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칼빈주의는 인간의 타락을 철저하게 강조한 나머지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해 버렸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한 나머지 절대 예정론으로 기울어졌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런 극단적인 주장으로 나가지 않았다. 인간의 타락을 강조하면서도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을 통한 의지의 자유를 인정했고,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면서도 모든 인간이 구원의 대상이라고 생각하였다. 한국 성결교회는 분명하게 하나님의 은총을 통한 자유의지와 모든 인간이 구원의 대상이라는 웨슬리의 정신을 이어받고 있다. 그래서 장로교회가 칼빈주의 전통이라면, 성결교회는 웨슬리의 전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성결교회는 모든 점에서 웨슬리를 계승하고 있는가? 그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사중복음이 그대로 웨슬리에게서 나온 것은 아니다. 물론 중생과 성결은 웨슬리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하지만 신유와 재림은 19세기 미국 복음주의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성결교회의 사중복음은 18세기 웨슬리의 중생, 성결과 19세기 미국 복음주의의 신유와 재림의 복음이 결합하여 형성된 것이다.

교회론에서도 성결교회는 웨슬리와 구별된다. 웨슬리는 영국 성공회의 성직자요, 영국 성공회의 고교회(high church)적인 전통을 받아들여 유아 세례를 인정했다. 그러나 한국 성결교회는 유아 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그 대신에 헌아식을 한다. 또한 성례전에서도 이해를 달리 한다. 한국 교회는 성례전 자체에 신비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단지 상징적인 의미만을 부여하고 있다.

4. 한국 성결교회와 동양선교회와의 관계

성결교회와 동양선교회는 처음부터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러나 이 두 단체가 모든 면에서 일치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교리 문제에서가 아니라 교회의 제도에 관한 문제이었다. 성결교회는 초기부터 감독제도였다. 그리고 감독은 당연히 OMS 선교사였다. 이 감독제도는 언제나 선교사를 지지하는 파와 반대하는 파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1930년대에 잠시 동안 대의제도인 의회제도를 도입해 보았지만 얼마 못 가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해방 후 한국 성결교회가 재건 총회를 개최하면서 성결교회는 대의제도를 다시 채택함으로써 오랜 세월 간직해온 감독제도는 폐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해방 후 정치제도를 고치면서 동시에 성결교회라는 명칭에서 '동양선교회' 라는 이름이 빠지고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가 된 것이다. 이 때부터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정치제도는 성결교회 자체가 선택한 것이 되었다.

따라서 한국 성결교회는 OMS로부터 독자성을 갖게 되었고 이제는 완전 자립 자치 교단으로 성숙해졌으며 OMS와는 동반자로서 서로 돕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 성결교회는 웨슬리의 전통과 근대 복음주의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성결교회는 신학적 기반을 근대 복음주의에 두고 있으며, 19세기말에 형성된 미국의 복음주의적 운동이 동양선교회의 직접적인 뿌리가 되었고, 그 후 한국 성결교회는 이 근대 복음주의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5. 그러면 한국 성결교회의 복음주의적 특색이 무엇인가?

첫째로 성결교회는 성경의 권위를 모든 것에 앞서서 강조한다. 성결교회의 신학의 근거는 성경이며 성결교회의 최종적인 권위는 성경이다.

두 번째 특색은 체험적 신앙의 강조다. 19세기 근대 복음주의는 체험적 신앙을 반대하는 자유주의뿐 아니라 신앙을 단순히 지적인 동의로 간주하는 정통 보수주의도 반대했다. 인격적인 만남을 믿고 경험주의적 신앙을 강조하였다.

동양선교회의 창설자들인 미국인 카우만 부부, 일본의 나까다 주지 그리고 캐나다의 길보른 네 사람은 모두 성결운동의 영향을 깊이 받은 사람들이었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에는 찰스 피니와 무디 등을 중심으로 일어난 영적 대각성운동의 결과로 영혼 구원과 믿는 자들의 각성운동 그리고 세계 선교운동이 뜨겁게 일어났으며, 1890년에는 국제성결연맹이 결성되었다. 카우만 부부는 이 연맹에서 훈련을 받고 직접 선교에 헌신하기로 결정하고 그곳에서 안수를 받고 일본에 선교사로 가게 되었다.

세 번째 특색은 구원의 심층구조를 선포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결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특색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된 후에 성결의 은혜를 받아 죄의 뿌리에서 씻음을 받아야 하며, 죄의 철저한 극복을 통해서 기독교인은 이 세상에서 상대적인 완전을 경험할 수 있으며, 그래야만 개인도 사회도 안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 성결운동의 핵심적인 메시지이다. 구원의 심층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병든 몸도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구원받는 신유의 은총을 경험한다. 그리고 구원의 최종적인 완성은 역사의 종말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성결운동이 가르치는 구원의 심층구조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이런 구원의 과정 설정은 전인구원의 방법을 제시한 훌륭한 신학적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네 번째 특색은 성결운동의 전도지향성이다. 18세기의 웨슬리의 순회전도, 카우만, 길보른의 해외선교에 대한 관심, 나까다 주지의 순회전도, 정빈, 김상준의 노방전도 등은 성결교회의 또 한 가지 특색으로서 전도지향적임을 보여 준다.

 

Ⅲ. 한국 성결교회의 과제와 사명

성결교회가 총체적으로 가속적으로 변해가는 다음 세기에 신속한 적응력을 갖기 위해서는 사견임을 전제로 다음의 몇 가지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첫째로 한국 성결교회는 과거지향적인 자세에서 미래지향적인 자세로 새로운 변모를 해야 할 것이다.

인류학자 월레스에 의하면, 전통적인 가치가 흔들릴 때 사람들은 두 가지 태도를 취한다고 한다. 하나는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태도이고, 또 하나는 과거의 상황에서 형성된 가치관이 새로운 시대에 맞을 수 없기 때문에 새 시대에는 새로운 가치관이 제시되어야 한다는 태도이다. 예수님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고 하셨다. 그것은 전통 속에 잠재해 있는 새 시대의 요소들을 발굴해서 새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자는 것이다. 낡은 것을 새롭게 해석하는 예언자적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래야 역사는 단절 없는 발전을 계속할 수 있다.

오늘의 성결교회는 그 초기에 비하면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커졌고, 지도력에도 초창기에는 카리스마적인 몇몇 지도자들의 가르침에 조건 없이 순종했지만, 이제는 교단의 인적 구성도 다양해졌고, 지도자들의 소리도 다양해졌다.

신학도 전에는 몇몇 보수적인 웨슬리안 계통의 학교만을 선택하도록 권유를 받았지만, 오늘은 다양한 신학의 배경을 가진 여러 나라 여러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학위를 받은 학자들이 많이 돌아와서 가르치게 되었다. 그러므로 성결교회는 과감하고 폭넓게 이런 학문의 다양성도 수용하여 그 속에서 우리 성결교회의 정체성을 새롭게 부각시켜야 할 것이다. 또 시대적인 상황도 많이 변했다. 70년대, 80년대만 해도 한국 교회는 사회로부터 사회적 책임에 대한 도전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90년대 그리고 그 다음 세대에는 더욱 큰 새로운 문제들이 지상과제로 등장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결교회가 새로운 변모를 하지 않고서는 우리의 사명을 다하지 못할 것이다.

2. 두 번째로 성결교회는 새로운 역사의식을 갖고 새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역사적인 지표를 세워야 할 것이다.

지난 날 성결교회는 직접적인 전도, 개인전도에만 역점을 둔 나머지 기독교 진리를 내면화하고 개인주의화하는 결과를 초래하여, 실제적인 삶 전체와는 유리된 수직적인 신앙만을 형성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역사의식의 빈곤을 가져왔고, 사회진출의 기회를 놓쳤거나 약화시키고, 따라서 사회에 대한 윤리적인 책임을 소홀히 했다.

따라서 개인구원에 치중한 나머지 하나님의 궁극적인 관심인 인류 전체, 사회 전체의 구원이라는 폭넓은 하나님의 경륜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로 급변하는 사회구조, 의식구조에 눈을 뜨지 못해서 능동적으로 상황 변화에 적응하는 능력을 기르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우리 교단은 직접전도에는 성공했지만,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세우고 사회사업 기관을 세우는 등 간접전도에는 실패했다. 예수님은 개인전도에도 열중하시면서도 공생애의 전부를 거의 전부 바쳐 각종 병자를 고쳐주고 굶주린 자들을 먹이시고 제자 교육에도 소홀함이 없었다. 이런 예수님의 정신을 이어받은 청교도들은 신대륙에 건너간 지 16년 후인 1636년에 자유정신과 신앙을 배양하는 명문대학 하버드를 세웠고, 1701년에는 예일 대학을, 1746년에는 프린스턴 대학을 세웠다. 기독교 정신 위에 세워진 이런 대학들이 결국 오늘의 세계에서 가장 번영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인간사회를 건설하여, 교회발전과 세계선교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컸던가? 평양에 온 마포 삼열 선교사는 무려 250개의 각종 교육기관을 세웠다. 이런 것이 오늘의 장로교회가 대교단으로 성장, 발전하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개인구원, 직접전도에만 치우친 나머지 우리 교단은 '사중복음'이란 귀한 진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늘 날 대형교회에 비하여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뒤떨어진 이유를 겸손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다.

3. 세 번째로 성결교회의 과제는 지도력 형성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교단의 지도력 문제는 두 가지 차원에서 고려해야 한다. 첫째로 우리 교단은 소수심리에서 다수심리로의 의식변화가 필요하다. 둘째로는 지도자의 질적인 문제인데, 이것은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 분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일차적으로 목회자의 지도력을 생각해 본다. 목회자는 교회 자체를 운영하는 내적인 지도력과 사회를 향한 외적인 지도력을 겸비해야 한다. 그러나 성직자의 사회적 지도력이란 지극히 제한된 것이다. 기껏해야 정신적이고 사상적인 한계를 넘지 못한다. 그것도 개념적이며 구호에 지나지 않아 구체적으로 정신적인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역자들에게서는 제한된 지도력 밖에는 기대를 걸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 교단의 지도력 형성은 결국 평신도 지도력에 기대를 걸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어제의 목회자로서는 상상조차 못했던 변화들이 우리 목회자에게 도전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목회자는 옛날의 목회자와는 달리 '교회와 세상'을 엄격히 구분하는 '성속' 이원론의 모순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구속적인 관심이 교회뿐 아니라 넓은 속세까지도 포함한다는 폭넓은 관찰과 이해가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교회는 그 자체의 자립과 유지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모든 영역에까지 선교적인 사명을 인식하고, 이 세상 전체에 대한 목회적인 배려를 하여야 하는 시대적 도전을 받고 있다. 이런 도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목회의 선교활동이 목회자만의 기능에 국한되어서는 안 되고, 전 신도의 참여를 인도하는 평신도의 지도력 형성이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평신도 중에서도 절대 다수인 여성 지도자의 육성은 더욱 절실하다고 본다. 한국 교회에서는 이미 기독교 장로교회와 감리교회에서 여자 목회제도와 장로제도를 실시하고 있고, 최근에는 통합측 장로교회도 오랜 숙제였던 이 문제를 통과시켰다.

물론 나는 우리 교단이 다른 교단을 곧 따르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결운동의 전통이 여성의 역할에 대해서 어떻게 취급해 왔는가를 연구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19세기 성결운동의 여성 지도자였던 팔머 여사는 말세에 하나님이 남종과 여종에게 영을 부어주신다는 요엘 선지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옛 시대에는 남녀 차별이 있었으나 성령이대에는 남녀의 차별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성령시대에는 남녀의 차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로 그 지도력을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신학적 바탕에서 성결운동은 일찍이 여성의 목사안수가 이루어졌다. 나사렛 교회나 만국성결연맹에서는 여성에게 안수하였다. 만국성결연맹의 최초의 안수자는 카우만 선교사였고, 이 때 카우만의 부인도 목사 안수를 받았다. 또 같은 성결운동 단체인 구세군은 남녀가 같은 자격으로 일하고 있다.

4. 네 번째로 성결교회의 방향성을 제시한다면, 무엇보다도 성결가족이 하나가 되는 일치운동이다.

예수님은 유언과도 같은 두 가지 큰 일을 제자들에게 위임하셨다. 하나는 '하나가 되라'는 일치에 관한 명령이고, 또 하나는 '증인이 되라'는 선교의 위임이다.

한국 교회는 두 번째 분부인 증인의 사명은 비교적 성실히 수행해 왔다. 그러나 첫 번째 분부를 수행하는 데는 실패하였다. 우리 교단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 날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 중에서 가장 크고 아픈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분열이요 교파주의다. 온 세계가 운명을 같이 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이 역사적 전환기에서 하나의 세계를 바라는 의지는 만만의 공통된 이념이요 세계의 특징이다. 그러나 사분오열된 한국 교회는, 개 교회는 개 교회대로, 교단은 교단대로, 연합기관은 연합기관대로, 예외없이 역사의 흐름을 역행하고 있다. 이는 우리 모두의 슬픔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교회가 지난 날의 경이적인 성장을 바탕으로 21세기에 또 한번 제2의 부흥기를 맞아 세계적인 교회로 미래사회를 주도해 나가는 교회가 되려면, 힘이 필요하다. 우리는 힘의 역학관계를 잘 안다. 힘이란 하나가 될 때에 강해진다. 나라건 교회건 힘을 가지려면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가 되려면 조화와 협조는 절대적인 요소이다. 인간은 개성이 다르고 견해가 다르고 환경이 다른 세상에서 산다. 젊은 세대와 기성 세대가 다르고, 남자와 여자가 다르고, 직업이 다르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큰 뜻'을 위해 조화와 협력을 이룬다면, 놀라운 힘이 생길 것이다. 그러나 일치를 이루지 못하면, 각자가 가진 능력도 발휘할 수 없다.

바울은 빌립교회에 보낸 서신에서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어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면 불가능하다고 했다. 왜 하나가 되지 못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기 때문이다. 다툼이나 허영은 상대적 가치관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다투면 경쟁심을 낳고, 경쟁심이 커지면 자기 상실에 빠진다. 그리고 자기 상실은 곧 승부욕의 노예로 전락한다. 자기 집착에 지나치게 사로잡히면, 자기의 주관적 고정관념의 노예가 된다. 그 때는 모든 것을 자기의 주관적인 틀 속에서 평가하게 된다. 우리 성결가족은 이런 분열의 요소들을 털어 버리고 하나가 되어 한국 교회 와 사회에 본을 보여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 성결교회는 국내외의 모든 연합사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일치운동의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이제 성결교회는 커진 몸에 맞는 새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 역사의 순리라고 생각한다. 새 시대의 적응력을 가진 성결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은 과감하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벗어 던질 용기를 가져야 한다.

 

Ⅳ. 맺는 말

나는 역사적 관점에서 성결교회가 걸어온 발자취와 정체성을 말했다. 또한 성결교회의 방향성에 대한 사견을 말했다. 그리고 오늘 성결교회 지도자들이 한 가지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유산으로 남긴 은혜의 체험과 정열이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런 선배들의 순수한 체험신앙에다가 이론과 역사의식을 옷입혀 사중복음이 정도표제로만 머물지 않고 온 성결가족의 삶의 표준이 되도록 계속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19세기 독일에서 일어났던 경건운동, 미국에서 일어난 각성운동과 복음주의적인 성결운동을 이 땅에 재현하여 영적 활력을 불어넣는 사명이 우리 교단에 잊음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진경 목사 희수기념문집 "목회자의 지성과 인격"(도서출판 진흥) 407-4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