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속죄론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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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拘贖)의 과정이란 말은 화해(和解)의 과정이란 말과 같은 뜻일 것이다. 고로 구속이란 말은 기독교 교리의 중심원리이며 초석이다. 그러면 구속의 본질, 화해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에게 반역하고 하나님의 신성을 침범한 죄인이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 즉 그리스도의 구속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함으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교제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구속 혹은 화해되는 과정에 있어서 중심점이다. 다시 말해서 구속의 중심점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으로부터 격리된 인간이 하나님과의 정당한 인격적 관계를 회복하고 시정하는 데 있다. 즉 화해의 본질은 사죄에 있다. 구속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격리시킨 죄가 사함을 받을 때 실현된다. 그렇다면 기독교신앙에 있어서 구속은 어떠한 구조를 갖는가? 이것을 세 가지 방면으로 생각해보고자 한다.

첫째로 화해는 하나님의 창업(創業)이다. 즉 하나님의 사죄의 행위에서 시작된다. 둘째로 화해의 객관적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속죄사업이며, 셋째로는 화해의 주관적 조건은 우리의 신앙이다.

구속론의 첫 번째 구조는 구속의 주도권은 하나님 편에 있다는 사실이다. 성서의 '화목케 한다' 라는 타동사의 주격은 항상 하나님이다. 고린도후서 5:8의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의 뜻은 하나님이 화목케 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언제나 주격이시다. 성서는 이와 같이 화해에 있어서 하나님의 주도적인 활동을 주장한다. 그리고 인간은 항상 수동적인 입장에 선다(고후 5:20; 롬 5:10-11). 즉 하나님 편에서 제안한 화해의 은총을 신앙에 의해서 받은 것이다. 화해의 주도권은 하나님에게 있고, 인간은 수동적인 위치에 선다. 그 이유는 인간은 스스로 저지른 죄책에 의하여 하나님으로부터 격리된 죄인이다. 고로 인간 편에서 하나님에게로 접근하는 것은 절망적으로 불가능하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신성을 상한 죄인이 스스로 하나님에게 접근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죄인이 구속받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하나님 편에서 구속의 손을 펴는 것이다. 죄인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 편에서의 사죄의 선언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최대의 저주는 하나님으로부터 배척을 받는 일, 즉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교제의 단절이다. 이런 저주에서 해방되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뿐이다. 고로 성서는 구속 과정에 있어서 화해를 말할 때 항상 화해의 주도자는 하나님 자신이라고 강조한다. 구속은 하나님의 은총 행위 인고로 그 주도권은 하나님에게 있고 죄인은 그 은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구속의 두 번째 구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를 기초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로마서 5:10에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으면 화해함을 얻은 우리가 지금에 와서 그의 생명으로 구원함을 받은 것은 더욱 확실한 일이 아니겠느냐?" 하신 말씀은 화해의 기초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이루어진 속죄라는 설명이다. 그 외에도 골 1:22; 1:20; 엡 2:16 등은 십자가의 속죄를 구속의 객관적 기초로 삼고 있음을 명시해준다. 첫째로 그리스도의 속죄사업은 하나님 자신의 의지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그 원천은 하나님 자신의 사랑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의지대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했다. 그러므로 구속사업에 있어서 하나님과 아들은 그 사랑과 의지에 있어서 하나다(롬 5:8; 고후 5:18; 갈 1:4; 요서 4: 10).

둘째로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은 그의 인격과 불가분리의 관계를 갖는다. 그는 한편 무죄하신 하나님의 독생자요 또 한편 완전한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류와의 완전한 연대적 결합의 관계에 선다. 그의 인격이 이 두 면을 갖는 것이 그의 속죄사업의 유효성의 근거다.

셋째로 중요한 것은 속죄사업은 그의 십자가의 죽음에서 성취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도덕적 승리의 생애가 곧 속죄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물론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의 생애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십자가의 희생의 죽음만이 인간의 죄를 속량할 수 있다는 것은 성서의 근본적이고 일관된 주장이다. 성서가 속죄를 말할 때는 언제나 그의 죽음, 그의 피, 그의 십자가를 말하고 있다(롬 3:25; 5: 89-10; 갈 2:21; 3:13; 엡 2:2; 골 1:19-22).

넷째로는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우리 죄인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형벌을 우리를 대신해서 받으셨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속죄의 중심이다(갈 3:13).

다섯 번째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활동이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죄인 대신 형벌을 받으심으로써 하나님의 의의 요구를 만족시키며 하나님의 의의 본성과 모순됨이 없이 사죄의 길을 여신 것이다.

끝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전 인류를 대속했다는 사실이다(고후 1:19). 그는 십자가에서 이 세상의 죄를 지고 세상(전 인류)을 위하여 속죄사업을 성취하였기 때문에 그 결과로써 우리 각 사람은 자기의 어떤 공적에 의하지 않고 오직 신앙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고로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공로 없이 하나님의 은총에 의하여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죄에 의하여 의롭다함을 얻는다."(롬 3:34)고 설명했다. 이 말은 의인(義忍)의 은혜가 오직 신앙에 의해서만 우리 각 사람에게 주어졌다는 뜻이다.

구속의 세 번째 구조는 구속의 개인적 실현이다. 위에서 구속의 첫째 구조로서 구속의 발단이 하나님이었음을 말했고, 둘째 구조로서 구속의 객관적 기초로서 십자가의 속죄사업을 설명했다. 그리고 여기 설명하려는 속죄의 구조는 개개인이 신앙에 의해서 의롭다 함을 받고 하나님과의 상실했던 교제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구속의 개인적 실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구속은 속죄를 토대로 하여 의인에 이르러 실현된다. 고로 화해의 개인적 실현의 문제는 결국 의인의 문제다. 그러면 의인(義忍)의 본질은 무엇인가?

첫째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초로 한다. 로마서 3:25-26은 의인과 속죄의 관계를 명시한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고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의 형벌을 관철하신 후에 죄를 사하신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가 받을 형벌 대신 받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의인은 속죄를 기초로 한다.

둘째로 의인은 신앙에 의해서만 주어지는 절대은총이다. 자신의 도덕적 노력에 의하여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인간은 나면서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의 품성이다 행위에 의하여 우리의 구원이 결정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거의 절망적이다. 바울의 말씀대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만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엡 2:8-9).

셋째로 의인의 본질은 필연적으로 동시에 죄인이며 의인이다. 실제적으로는 아직 죄인이면서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하여 의인의 대우를 받는 것이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감격이 있고, 도덕력의 원천이 있다.

끝으로 의인은 죄책(罪責)에서 해방되는 동시에 좀더 적극적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부자(父子)의 관계가 수립된다. 의인의 본질은 하나님의 화해이며 하나님과 인간의 새로운 관계의 수립이다. 즉 사탄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로 그 신분이 바뀌는 새로운 관계를 갖게 된다. 고로 의인이란 하나님의 잠정적, 일시적 행위가 아니라 죄인과 하나님과의 사이에 완전히 새롭고 항구적인 관계의 시작이라고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