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그리스도의 몸

(109-115)

 

 교회의 형성

교회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해서 프로테스탄트 교회들은 아직도 완전한 해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가 무엇인지 전혀 모른 채 막연하게 교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마치 안개 속을 배가 항해하는 것 같아서 바른 방향으로 가기가 어렵다. 그러면 교회란 이름부터 생각해 보자. 우리가 흔히 부르는 '로마'교회니 '데살로니가'교회니 하는 말은 어디서 왔는가? 이 말은 '헬라어'에서 왔다. 이 뜻은 '불러냈다'(call out), 또는 '불러낸 무리'란 뜻이다. 구약시대에는 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표현했다. 즉 교회란 하나님이 불러낸 무리의 집합체를 의미한다. 그러면 교회는 어떻게 형성되었나? 교회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로 형성되었다. 첫째 요소는 머리요, 둘째 요소는 몸이요, 셋째 요소는 지체다. 이 세 요소의 삼위일체가 교회를 형성하였다. 우리의 신체에는 머리와 몸과 지체가 조화됨으로써 건전한 사람이 되듯이, 교회도 이 셋을 갖추어야 건전한 교회가 된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신자는 그 몸의 지체다. 이 셋이 완전히 일체를 이룰 때 참된 교회는 형성된다. 만일 이 셋의 질서가 파괴되면, 아무리 건물이 훌륭하고 의식이 장엄하고 신도수가 많아도 참된 교회가 될 수 없다.

(1) 교회의 머리 : 머리의 뜻은 교회의 중심, 교회의 기초가 무엇이냐? 다시 말해서 교회의 주인이 누구냐? 하는 문제다. 한 마디로 말해서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다. 교회는 그리스도라고 하는 인격의 토대 위에 건설된 신자의 단체다. 그러므로 산 그리스도를 집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지 않는 교회는 유약하고 위험한 교회다. 교회는 산 그리스도를 머리로, 기초로 하여 건설되지 않으면 참 교회가 될 수 없다. 과거의 한 인물로서의 죽은 예수가 아니라 죽었다가 부활하시고 지금도 성령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살아 계신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인 것이다. 고로 교회의 기초요 시작이요 머리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은 교회성립의 근본요건이다. 교회는 산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고 기초로 삼는 데서 세상의 어떠한 단체와도 그 성질을 달리한다. 교회는 인간이 임의로 조직하고 모았다 흩었다 하는 계약단체와는 다르다.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원받은 자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 단결된 역사적 단체이다. 그 속에 산 그리스도의 영이 충만한 하늘이 준 단체이다.

교회는 세상의 모든 단체와는 달리 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그리스도이다. 고로 교회는 그리스도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리스도는 교회 안에서 그 형태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성서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 포도나무, 주의 거룩한 성전이라고 표시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형성되었다는 점은 가장 중요한 특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미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기 때문에 머리되신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것을 기초로 놓을 수는 절대로 없다. 금도, 은도, 세상의 권세도 교회의 기초가 될 수 없다. 교히는 하나님이 화신이신 그리스도만이 지배하는 데서 참 교회로 형성될 수 있다.

(2) 그리스도의 몸 : 몸이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되어진 것일까? 이 몸은 이곳 저곳에서 자신만의 문제를 가지고 반복할 수 없는 단 한번의 삶의 상황을 경험하고 있던 개개인이 모여서 하나의 몸을 이룬 것이다. 즉 이러한 개개인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고 부르시는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 부르시는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그 부르심에 순종한 무리들의 공동체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다. 소명을 받을 때는 나 개인으로 받았으나 호출을 당하고 본즉 벌써 다수가 동일한 부름에 의하여 모였고 동일한 방향에 섰고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찬미하고 감사하며 시대적인 무거운 짐을 같이 매게 된 공동체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다.

(3) 지체 : 지체는 몸을 형성한 개인을 의미한다. 우리의 몸에 여러 지체가 있듯이 교회의 지체는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다. 다수의 지체가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몸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지체의 신분에는 전혀 차별이 없고 누구나 동일하다. 어느 것이 귀하고 어느 것이 천할 수가 없다. 그러나 지체의 임무와 기능은 다양하다. 그리고 이런 기능이나 임무의 다양성은 어디까지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함이다. 이런 각각의 기능이 결합해서 하나의 몸을 이룬 것이 바로 교회다. 고로 이 지체 사이에는 언제나 질서가 있어야 한다. 에배소서 4:16에 보면 "그에게 한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얻으므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그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며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운다."고 했다. 이것을 교회에서는 성도의 교제니 친교니 하는 말로 표현한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연결됨으로 해서 맺어지는 친교다.

이 친교는 서로 남의 허물을 덮어 주고 약점을 보완해 준다. 고로 교회는 독선이나 이기심을 허용치 않는다. 전 회원들의 우고를 서로 내 것 같이 느끼는 것이 성도의 참 교제다. 그러므로 지체 사이의 교제는 참여로서의 교제다. 모든 고통과 즐거움에 같이 참여하는 교제다. 은유와 겸손으로 서로 대하고 남의 장점을 인정하고 단점을 관용하는 집단이 바로 교회다. 요는 교회란 이해관계 이상의 사랑으로 결합된 단체다. 그러므로 신자간의 교제에는 따스한 공기가 흘러야 한다. 뜨거움이 없는 교회는 맛 잃은 소금이다. 교회가 냉랭함은 가족적인 화기를 잃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펄슨'은 "우리의 당면문제는 이 세상을 기독화하는데 있지 않고 교회를 기독화하는 데 있다." 고 했다.

 

교회는 하나다.

그러면 위에서 설명한대로 머리와 몸과 지체가 형성된 교회는 몇이나 되느냐? 왜 교파가 이렇게 많은가 하는 질문을 자주 젊은이들로부터 받는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다. 오직 머리되시는 그리스도만을 주로 섬기고 있기 때문에 교회는 여럿이 있을 수 없고 오직 하나의 교회만 존재한다. 사도신경의 선언대로 우리는 거룩한 하나의 공회를 믿는다. 하나란 말은 교회는 한 분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한 분이신데 몸이 여럿일 수는 없다. 그리스도교적인 사귐에는 각각 다른 형식이 있을 수는 있으나 그러한 것들이 교회의 실존적인 통합을 깨뜨릴 수는 없다.   

교회가 여러 주님을 모실 때에는 그 통일이 깨뜨려진다. 교회는 오직 한 분 주님이신 그리스도와 하나의 목자(요 10:16)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 이상이 될 수 없다. 교회는 크게 나누어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다. 그러나 이 둘은 다른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하나이다. 마치 인간의 생명이 몸 속에 있듯이 생명과 몸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다. 보이는 교회는 보이지 않는 교회로부터 생명을 얻고 보이지 않는 교회는 보이는 교회를 통해서 나타난다.

그러므로 보이는 교회는 본래 그리스도 안에 보이지 않는 거룩한 공회인 하나의 교회에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바울'은 "몸도 하나요, 영도 하나요, 희망도 하나요,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하나다"(엡 4:5)라고 설명함으로써 오직 하나의 공회를 고백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하나의 교회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분열된 교회에 머물고 있다. 크게 나누면 '로마'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를 구분한다. 그리고 개신교 내에는 무려 300여 교파가 있다. 그러면 천주교는 하나의 교회를 형성하고 있는데 개신교는 여러 교파로 나누어진 이유가 무엇인가? 교파란 것은 어느 누구도 계획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자연히 되어진 것이다. 예를 들면 '말틴 루터'가 16세기 이전에 하나이던 '로마' 카톨릭은 이에 탄압을 가하게 되고 반면에 '루터'의 주장을 따르며 그가 전한 진리에 공명한 사람들이 생기게 되고 그것이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바로 '루터' 교회이다. '칼빈'과 장로교, 그리고 '웨슬레'와 감리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로마' 카톨릭은 교회의 통일성을 갖고 있는데 프로테스탄트는 그것이 왜 없는가?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카톨릭은 첫째로 기구적으로 단일 명령 계통을 갖고 있다. 강력한 중앙집권제도를 갖고 있다는 것과 둘째로는 교리적인 통일을 갖고 있다. 카톨릭 신자는 같은 교리 밑에 움직인다. 그리고 그 통일된 교리의 제정권은 교황이 갖는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교리와 신조의 통일이 없다. 따라서 기구적인 통일도 없다. 각 교파는 자기 나름대로의 교리적 통일을 갖고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개신교가 신앙양심의 자유를 원칙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교리의 통일이나 제도의 통일을 그리 중요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많은 교파가 생겼을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교파가 생겼다고 해서 하나의 교회가 깨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모든 교파에 속하는 교회는 그 조직과 교리와 생활의 획일성이 없다 하여도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하나의 교회에 연결되어 있다. 문제는 이런 교회들이 정말로 나무 가지가 그 나무에 연결되어 있듯이 교회의 머리되시는 그리스도에게 연결되어 있느냐 없느냐 일 뿐이다. 교회는 한 분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그 지체들이 연합하여 몸을 이룬 집단이기 때문에 보편적이며 세계적이며 하나이다. 여기에는 동서고금, 흑백인종, 문화의 차별이 없고 오직 성령에 의하여 하나의 주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고백만이 문제될 뿐이다.

 

교회의 사명

그러면 하나의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하나님께 예배하고 세상에 봉사하는 것이다. 교회는 소명단체로 건립하여 봉사단체로 그 목표를 삼는다. 고로 그 설립과 목표 사이에는 반드시 역동적인 운동이 개재되어야 한다. 그러면 그 운동이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는 자기자신을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봉사를 목적으로 존재한다. 교회는 먼저 하나님께 예배하는 단체인 동시에 세상을 위한 선교와 봉사단체로 교회는 세상 한가운데 서 있다. 교회는 이 세상 모든 세속단체와 마찬가지로 이 세계의 제약과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 세계는 악과 투쟁하는 장소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전투하는 백성으로서 부단히 변동하는 역사적 현실 속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선교의 사명을 세계 끝까지 펴야 한다. 이레 중 주일 하루만이 교회의 날이 아니라 다른 엿새도 말씀에 따라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증거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의 빛으로, 땅의 소금으로 세계 한 가운데 존재하는 단체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현실로부터 도피하여 조용하게 명상이나 하고 있는 단체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과 동역하는 자의 자각을 지녀야 한다. 동시에 이 세계의 파수꾼(겔 3:17-22, 합 2:)으로서 세계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을 위한 예언자적 발언을 쉬지 말고 해야 한다. 교회는 이와 같이 세계의 궁극적 운명을 쥐고 하나님 앞에 세상 한 가운데 서 있는 것이다. 고로 교회는 이 세상에다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시킬 책임을 지고 있다. 이것을 위해서 교회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이런 싸움이나 봉사는 입의 봉사(Lip service)가 아니라 생활 봉사(Life service)를 말한다.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에 있다. 어떤 태도로 세속 속에 사느냐? 다시 말해서 입의 봉사에서 생활봉사로 그 윤리관을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너희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보다 그 행실이 낳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경고하셨다. 우리 신자의 생활이 불신자의 생활보다 월등하지 못하면 진정한 전도나 봉사가 되지 못한다. 하나님의 뜻을 막는 불의한 세상을 개량하기 위해서는 어떤 구호나 외치는 것으로서는 불가능하다.

우리의 생활이 뛰어나서 실력으로 불의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의 실력자로서, 연대적인 공동체로서 이 세상 모든 문제 속에 과감하게 참여하여 봉사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