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서는 어떠한 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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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와 교회

기독교를 이해하는 데 꼭 알아야 할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하나는 성서요 둘째는 교회다. 즉 성서는 어떠한 책이며 교회란 무엇인가를 바로 아는 것이다. 사실에 있어서 이 두 가지 요소를 분리시키고서는 기독교를 바르게 설명할 수가 없다. 성서가 없으면 교회가 있을 수 없고 교회가 없으면 성서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교회사를 읽어보면 카톨릭 교회와 개신교는 이 면에서 근본적인 이견(異見)을 갖고 있다. 카톨릭 교회는 신자들의 신앙과 생활과 구원을 위해서 성서보다는 교회를 우월한 위치에 두었다.

즉 카톨릭은 눈에 보이는 제도로서의 교회를 종교의 절대적 권위로 인정하고 또한 종교적인 진리를 완전히 보증하여주는 것은 교회뿐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카톨릭교회에서도 성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성서의 해석은 교회에 의하여 공인되는 것이기 때문에 교회의 전통과 성서와를 동일하게 취급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의 궁극적인 권위는 성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있다고 보는 것이 카톨릭의 입장이다. 그러나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의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는 교회보다는 성서의 절대성을 주장하고 성서만을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표준으로 믿고 성서만이 구원에 필요한 모든 진리를 가르쳐 준다고 믿는다. 고로 교회의 유전이나 규칙, 그리고 교황의 교서 같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를 대행하거나 보완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성서를 최고의 권위로 삼는다. 성서는 인류역사상 세상에 출판된 많은 저서 중에서 신·불신을 막론하고 가장 대표적이고 가장 많이 읽히는 책이다. 성서는 구약과 신약 두 권으로 구분한다. 구역은 율법과 예언의 책이며 그리스도 이전의 글이다. 신약은 예수님의 언행록과 그의 제자들의 신앙고백의 기록이다. 그러므로 구약은 신약의 기초요 신약은 구약의 완성이다. 이런 성서는 현재 1천2백여 방언으로 번역이 되었다. 성서의 양은 구약과 신약을 합해서 66권으로 된 방대한 책이다. 이런 성서는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계시록'에 이르러 끝이 났다. '창세기'는 천지창조에 관한 기록이며 '계시록'은 천지완성에 관한 기록이다. 즉 성서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다"로 시작하여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니 이전의 하늘과 땅은 이미 지나갔고 바다도 있을 없다."로 끝이 났다. 이만큼 위대한 글은 이 세상에 또 있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한편의 민족사나 세계사가 아니라 우주사이다. 즉 우주의 유래와 목적, 그리고 종국을 말해주는 것이 성서다.

 

성서의 유형

그러면 이런 위대한 책은 어떻게 형성되었나? 성서가 우리의 손에 들어오기까지는 긴 세월을 통해서 여러 가지의 성립과정이 있다. 그 하나는 원본(原本-Original text)이고 둘째는 사본(寫本-Manuscript)이며 셋째는 역본(譯本-Translation)이다. 그리고 성서 원본을 위해서 사용된 용어는 구약은 '히브리어'와 '아라메익' 말이고 신약은 '헬라어'다. 그 원본을 위해 사용된 용지는 파피러스(Papyrus-이집트 나일 강변에 있는 갈대의 일종)와 고가의 양의 가죽 혹은 소가죽을 사용하였다. 그러면 현재 원 저자의 기록인 원본은 어떻게 보존이 되어있나? 구약이나 신약의 원본은 오늘날 한 권도 없이 모두 소멸되었다. 소멸된 이유는 자세히 모르나 한 권의 원본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의 손을 거쳐 사본화되는 동안 자연소멸되었거나 혹은 불에 타버렸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이 원본을 쓸 때는 한자 한자 기록할 때마다 붓을 빨아가면서 썼기 때문에 막대한 비용이 들었다. 그러면 사본이란 무엇인가? 현재 우리의 손에 있는 성서는 모두 사본에서 번역된 것이다. 원본을 여러 사람이 베끼고 그 사본을 또 다른 사람이 베끼고 하는 동안 사본의 수는 많아졌다. 즉 원본 한 책에서 베낀 사본이 다섯이 열로, 열이 오십으로, 오십이 백으로, 백이 이 백으로 증가됐다. 그래서 현재 남아있는 사본들 사이에는 차이가 생겼다. 그것은 하나님이 아닌 인간이 베낀 것이기 때문에 차이가 생긴 것은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차이에서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자기가 베낀 사본만이 정통이라고 서로 고집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서 어느 사본이 표준이냐 하는 논쟁이 생기게 되었다. 이즈음, 주후 130년 경 랍비 '아키바'가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여러 종류의 사본들을 대조 연구함으로써 표준사본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아키바가 표준성서를 제정한 후 주후 135∼150년 사이에 서기관들이 이 표준성서를 베끼고 해석하고 보관하고 전달하는 수고를 했다. 그리고 그것은 '마쏘라' (The Massorete) 학파에 의하여 완성을 보았다. 그런데 사본은 오래된 것일수록 정확하다. 이 말은 원본에 가까울수록 정확하고 현대에 가까울수록 오류가 많다는 것이다. 현존하는 사본 중에서 가장 오랜 것을 말한다면 다음의 셋을 꼽을 수 있다. ①바티칸 사본(Vatican Codex 400 A.D.) ②시내사본(Sinaitic Codex 400 A.D.) ③알렉산드리아 사본(Alexandria Codex 400 A.D.) 등이다.

그러면 구약과 신약이 정경(Canon)으로 형성된 과정은 어떠하였는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구약이 쓰여진 기간은 적어도 1000년 이상이다. 그 중 제일 오래된 것이 주전 1000년경이고 제일 마지막 것이 주전 2세기경이다. 처음에는 구전(口傳)으로 전해 내려오던 것이 언어가 발달하고 용지가 생기고 출판기술이 향상함에 따라서 활자화하게 되었다. 그러면 왜 현재의 39권만이 정경(正經)으로 되었는가? 그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그 내용의 권위 때문이요, 둘째로는 백성의 공인에 의한 것이다. 정경에 편입되지 못한 책을 외경(外經)혹은 외전(外傳)이라고 부른다. 신약의 형성과정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께서 직접 전도하실 때는 문서가 필요 없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도 복음을 전하라고 했지 그것을 기록하라고 명령하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구전으로 복음을 증거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그후 자연적으로 활자화되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역본이다. 최초의 역본은 70인 역(Septuagint)인데 이것은 '희랍어'로 번역된 것이다. 그 후로 '수리아' 역 '라틴어'역 '빌게잇' , '루터' 역, '킹 제임즈' 역, 표준 역 등이 있다. 처음 '한국어'로 번역된 것은 1885년 기독교가 아직 우리 나라에 들어오기 전 만주에 와 있던 '서상륜'이란 사람의 수고로 신약성서가 번역됐고 이것을 '러쓰' 역이라 부른다. 1900년에 신약이 번역되었고 1910년에 구약이 번역됐다. 이것을 우리는 구역(舊譯)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1938년에 개역 판으로 신구약을 완성했다. 1967년에 개역 판 신약이 다시 나왔고 1971년에는 신구교 공동번역의 신약이 출판되었다.

 

성서의 내용

그러면 성서의 내용이 무엇인가? 즉 어떤 글인가? 왜 위대한 책인가? 그것은 첫째로 성서는 하나님을 계시(啓示)하는 글이기 때문에 위대하다. 이 세상의 많은 책들은 모두 사람의 말이요 이 세상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을 계시하는 책이다. 성서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그의 뜻을 분별할 수가 있다.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란 뜻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에 의하여 쓰여진 글이란 말이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증명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계시하신 바니 교훈과 책망과 정직하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을 행하기에 더욱 완전케" 한다(딤후 3:16). 계시란 말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자기표시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도, 손으로 만질 수도, 인간의 지식으로 파악할 수도 없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아는 길은 하나님 자신의 적응으로써만 가능하다. 적응이란 말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낮추시고 인간의 능력에 적합한 방도를 취하여 계시하심을 의미한다. 이 뜻은 인간이 볼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는 형태로 오심을 의미한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목적은 온 인류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기독교의 하나님을 인식하는 길만은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고로 예수는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간청하는 '도마'에게 "나는 길이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에게로 갈자는 없다. 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보았다."고 친히 말씀하셨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리스도를 아는 길은 오직 한 길 뿐이다. 그것이 바로 성서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알 수 없듯이 성서를 떠나서는 그리스도를 알 수 없다. 그러므로 '마틴 루터'는 그리스도와 성서를 비교하여 '보자기에 쌓인 아기'라고 했다. 예수가 아기라면 성서는 보자기가 될 것이다. 성서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가 누구임을 알게 되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바로 인식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성서는 기독교의 최고의 글이다. 둘째로 성서는 역사적인 내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위대하다. 성서는 세계역사가 이루어져가는 과정에서 여러 번 그 방향을 돌려놓는 데 큰 원동력이 됐다. '로마'제국이 그러했고, 중세기 종교개혁시대에 그랬고, 현대의 교회에서도 그 사실을 발견한다. 성서는 개인은 물론 국가와 전 인류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도 남는 힘을 내포하고 있다. 성서가 역사상 인류를 근본적으로 개혁한 예는 한 두번이 아니다. 세 번째로 성서는 인생의 글이라는 점에서 위대하다. 성서가 역사를 두고두고 건져 오는 이유는 그것이 인생의 근본문제를 다루는 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생의 근본문제가 무엇인가? 그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죄 문제요, 둘째는 구원문제다. 성서는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 해답을 주는 글이다. 천여 년이란 긴 세월에 걸쳐서 지위와 지식과 환경이 각각 다른 저자들에 의하여 쓰여진 성서의 내용은 인간의 죄와 구원이라는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과학이 이렇게 발달하고 문명이 이처럼 진보됐다 할지라도 죄에 관한 문제와 구원문제를 해결해 줄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뿐이다. 성서는 인산의 죄가 무엇인가를 가르쳐 준다. 그리고 그 죄를 해결하는 길은 금도, 은도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그리스도는 인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간을 절망에서 구해내신 분이시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로 인하여 단절되었던 장벽을 헐고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화해의 길을 열어 주신 분이 그리스도다. 이런 사실을 세밀하게 가르쳐 주는 글이 바로 성서다. 끝으로 성서는 영원불변의 글이라는 점에서 위대하다. 오랜 역사를 통해 시대를 따라 성서와 같이 핍박을 받은 책은 없다. 학자의 손으로, 제왕에 의하여, 교권자의 횡포로, 무수하게 조소와 박해를 받았다. 예를 든다면, '데오클레티아누스'가 '로마'의 황제로 즉위할 때에 모든 성경책들은 거의 다 불살라 버렸고 수만 명의 기독신자들은 학살을 당했다. 그리고 그는 박해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하여 박해를 받은 성경책 위에 "기독교인의 이름은 이제 다 없어지고 말았다"는 말을 써서 비석에 새겨 세웠다. 그러나 몇 해 못 가서 마치 '노아'의 가족이 방주에서 나와 세상에 다시 인생이 번창하듯이 성서는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었고 그 후 기원 325년에는 '콘스탄틴' 황제에 의하여 기독교는 '로마'의 국교가 되고 성경은 진리의 확실한 재판관으로 서게 되었다. 종교개혁 당시만 해도 그렇다. 천주교에서는 열심히 성서번역을 저지하였고 수 만 권의 성서를 불사르고 성서 읽는 사람은 정죄하여 화형에 처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없애 버리려고 해도 없어지지 않는 것이 성서다. 지금 세계 성서공회의 통계에 의하면 매년 6000만 권을 훨씬 넘는 성서를 반포한다. 그러면 이 불멸의 이유가 무엇인가?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계시이신 산 그리스도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고로 사도 '베드로'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다." 했다(벧전 1:24). 또 시편 기자는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토록 하늘에 크게 섰나이다."(시 119:89)하고 노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