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아세아 복음화와 한국교회의 사명

(162-168)

 

1.

우리는 예수의 사역(Ministry)을 "내게로 오라"(마11:28),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눅 24:49, 행 1:4), "온 세상에 가라"(막 16:15-16)는 세 가지 분부로써 요약할 수 있다. "오라"는 말씀은 죄인을 구원에로 초대하시는 은총이며, "기다리라"는 분부는 위에서 오는 능력을 힘입으라는 말씀이고, "가라"는 말씀은 선교하라는 명령이시다. 고로 선교는 주님의 최후의 위임이시며 지상명령이시다. 그리고 복음 선교의 순서는 예루살렘에서 출발하여 안디옥을 발판으로 땅 끝까지 확대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11제자를 포함한 120문도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앉아 기도하면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렸다. 오순절날 모인 무리에게 성령이 무리에게 성령이 강림하자마자 베드로는 죽은 듯이 고요하던 침묵을 깨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고 안도감에 잠겨 있던 종교가들에게 "너희가 죽인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났다. 그는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며 역사의 주인이다."라고 그는 증언하자 하루에 3천명이나 회개하고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 결과 처음으로 예루살렘에 교회가 설립되었고, 밖으로는 과감하게 그리스도의 최후 위임하신 복음을 증거하여 구원 얻는 자의 수가 날로 증가하게 되었다. 이렇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의 수가 많아지자 한편 그리스도를 따르는 무리에 대하여 큰 박해가 일어나 최초로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것이 전환점이 되어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을 떠나 국경을 넘어 이방 땅으로 이동하여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안디옥이라는 곳에 복음을 들고 모여들었다. 안디옥은 그 당시 대 로마제국 영토 안에서 제3위에 해당하는 도시로서 하나님의 교회는 이곳에 뿌리를 박게 되었다.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이 흘린 순교의 피와 박해를 받고 흩어진 성도들의 뜨거운 신앙 위에 세워졌다. 안디옥 교회의 처음 목회자는 신앙이 독실한 바나바였다. 바나바는 안디옥에서 얼마동안  선교하는 동안 이 교회가 세계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이 때 바나바는 이렇게 활기에 넘치고 장래성이 많은 교회를 자신의 역량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다고 느끼고 자기보다 월등한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가장 적당한 후보자로 사도 바울을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로 추천하였다.

바울은 헬라의 다소 사람이며 열렬한 유대교이며 법률에 능통하고 헬라철학을 깊이 연구한 저명한 학자였다. 스데반이 순교를 목격한 바울은 통쾌하게 생각하여 모든 기독교도를 박해하기 위하여 살기 등등하여 다메섹으로 향하던 도중 "사울아 사울아" 하는 하늘의 소리를 듣고 회심한 후 이방사도가 되어 세계선교의 창문을 열어 놓았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아 안디옥을 발판으로 세계선교에 발을 내디딘 지 15년에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미 지중해를 건너 그 당시의 땅 끝인 로마에까지 미쳤다. 기원 64년경 바울이 순교할 때, 기독교는 벌써 세계적 종교로서의 그 기초를 튼튼히 놓았다. 바울의 사상은 벌써 흔들 수 없는 기독교신학의 핵심을 이루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미치리라"고 까지 고백한 바울의 열렬한 선교정신으로써 대 로마제국도 복음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고, 바울의 이런 선교정신은 1517년의 종교개혁과 영국의 퓨리탄을 통하여 남북미 대륙을 복음화하였다. 그밖에도 수만의 선교자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계를 정복하려는 야망을 갖고 위험한 지역도 개의치 않고 문화의 차이도 뛰어넘어 오늘의 세계 교회를 형성해 놓았다. 그래서 오늘은 저 북방 그린랜드의 얼음산에서부터 저 남방 산호섬까지 선교사의 발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고, 기독교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지 않은 곳이 없게 되었다.

 

2.

그러면 오늘날 이 세계에 기독교 인구나 얼마나 되며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복음화되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서구 사회는 비교적 복음화가 되었다고 생각해도 좋다. 그 이유는 국민의 대다수가 그리스도인으로 교회에 등록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의 기독교 인구는 약 1억 5천 2백만, 구라파는 3억 8천 5백만이 된다. 서구 여러 나라들이 복음화되었다는 말은 기독교 인구가 얼마나 되느냐 보다도 그 나라들의 전통 문화 정치이념이 모두 기독교적 바탕 위에 세워졌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완전히 철의 장막이라고 생각하는 소련에도 6천만의 크리스천이 있고, 루마니아 같은 나라는 인구의 거의 90%가 그리스도를 마음에 구주로 시인하는 자들이다. 동구라파 여러 나라도 기독교는 아직 절대적이다. 언젠가 하나님의 섭리가 이 땅에 실현되는 날, 그 세계의 복음화는 시간문제다. 라틴 아메리카는 주로 카톨릭이지만 거의가 명목상으로나마 기독교인이다. 아프리카에도 기독교는 전 인구의 거의 삼 분지 일을 차지한다. 이렇게 생각할 때, 위에 말한 나라들은 비교적 복음화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그런데 우리가 사는 아세아만은 아직도 복음의 황무지다. 세계 인구의 반 이상의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아세아 대륙에는 기독교 인구가 겨우 7천만 밖에 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아세아에서 복음화를 저해하는 요소들 때문이다. 그것은 첫째로 공산주의이고, 둘째는 수 천년동안 뿌리 박은 재래종교이며, 셋째는 서구인에 대한 민족주의의 도전이다. 중공대륙, 시베리아, 북한, 인도지나 반도 등은 완전히 공산주의라는 적 그리스도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다. 또 필리핀이 민다오섬 남쪽에서부터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중동지역의 여러 나라들은 소위 철저하게 반기독교적인 회교문명권이라 불리우는 이슬람 벨트에 걸려있다. 그 이외의 나라 중의 인도와 네팔은 힌두교 국가다. 힌두교인이 아니면 인도인이 아니다 라고 말할 정도로 힌두교가 지배적이다. 그 나머지 태국과 미얀마는 불교국가다. 그런데 이런 재래종교들은 모두가 반기독교적이다. 뿐만 아니라 아세아 복음화를 저해하는 요인 중에 역사적 배경이 있다. 아세아 여러 나라들이 기독교를 배척하는 강한 이유는 서구 사람들, 즉 백인과 기독교를 동일시하는 데 있다. 그것은 과거 여러 나라들이 서구 제국의 식민주의 정책 밑에 착취를 당하고 지배를 받을 때, 기독교는 그들의 식민정책에 동조하였던 것이다. 고로 아세아 여러 나라들은 식민정책과 기독교를 또한 동일시하였던 것이다. 고로 서구교회의 아세아 복음화는 강한 민족주의의 저항으로 어렵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위에 언급한 재래종교 공산주의 등은 기독교를 겨냥하고 맹렬한 선고경쟁을 벌이고 있다. 불교는 최근 그들의 경전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용어로 번역하고 기독교와 같이 설교를 실시하며 찬송가를 부르고 신학교를 세운다. 그들의 선교전략도 다양하다. 모든 사찰 슬로건은 세계평화수립이다. 기독교의 실패를 주장하면서 도전하고 나선다. 모하멛교는 애급 카이로에 본부를 두고 하루에 12시간을 8나라 말로 매스컴을 통해 포교한다. 최근 타임지 보도에 의하며 그들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매년 9백만 명의 결심자를 얻는다고 한다. 기독교의 9배를 능가하고 있다. 그들은 형제애를 부르짖고 인류의 통합을 강조하면서 기독교는 인종문제 해결에 실패했다고 도전해온다. 인도와 네팔의 국교인 힌두교도 선교경쟁에 적극적이다. 힌디신학을 수립하고 학교와 병원 등 사회문제에 큰 관심을 갖는다. 그들은 관용과 신앙의 자유를 강조하고 하나의 세계를 내세움으로써 기독교의 절대성과 독자성에 도전한다. 공산주의는 무신론이기 때문에 종교는 아니다. 그러나 종교가 됐다. 그 이유는 절대충성, 절대복종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복음은 물질의 유토피아를 세우는 것이다. 오직 공산혁명에 의해서만 인간의 기본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하면서 기독교는 인류의 경제문제 해결에 실패했었다고 도전해온다. 이상과 같이 재래의 여러 종교들, 민족주의 공산주의는 모두 강하게 기독교에 도전하면서 선교경쟁의 적극성을 띠고 있다.

 

4.

그러면 이런 아세아 복음화의 어려운 여건 속에 굳게 서 있는 한국교회의 사명은 무엇인가? 한국은 19세기 서구교회가 파송한 선교사에 의해서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 후 한국교회는 세계선교역사상 유례없는 발전을 하였다. 해마다 기독교 인구의 성장률은 10%선을 상회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의 한국교회 성장지수를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개신교만 가지고 이야기해도 1950년 이후 6·25전까지만 해도 겨우 30만에 불과했다. 그것이 1950년에서 1960년대에는 50만에서 100만으로, 1960-1070년대에는 100만에서, 200만으로, 1970-1975년에는 200만에서 일약 400만으로 성장했다. 카톨릭도 8.15 해방 시에 겨우 20만을 상회하던 것이 지금은 100만을 훨씬 넘어섰다. 개신교 선교 100주년을 맞는 1985년에 가서는 적어도 4만교회에 750만을 넘으리라는 기대를 갖는다. 카톨릭을 합하면 1000만 명을 초과하리라고 내다본다. 이것은 물론 양적인 성장을 의미한다. 그러나 천만 명의 기독교 인구를 갖게 된다면, 한국의 양상은 달라질 것이며 나아가서는 아세아 복음화에도 큰 변화가 생길 것이다. 어떤 외국사람은 한국 교회를 두 가지고 평가했다. 하나는 한국은 아세아에서 유일한 기독교 나라요, 둘째로 한국 교회의 척추에는 강철이 들어있다. 이 말은 한국 교회는 전도하고 수난을 받으면서도 급속히 성장했다는 뜻이다.   

이런 성장과 함께 아세아 복음화를 위한 한국 교회의 위치는 굳어졌고 사명은 더욱 크다는 것을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물론 우리의 선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세계 복음화다. 그러나 순서에 있어서 민족 복음화는 아세아가 세계 복음화에 선행되어야 한다.

가까운 데서부터 시작하여 세계복음화의 궁극적 목표는 성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민족 복음화와 동시에 아세아 복음화에 노력할 때다. 즉 이제 우리는 민족 의식의 울타리 속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는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우리는 나 자신을 나의 몸에 비끄러 매놓지 않고 나의 가정, 나의 민족에로 확대하여 나가듯이, 이제 우리는 민족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가 아세아 의식에까지 우리의 선교의 비전을 확대시켜야만 한다. 그 이유는 한국 교회는 아세아 대륙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아프리카나 미국이 아니라 예수께서 나신 기독교의 발상지인 아세아에 있기 때문에 아세아 복음화의 책임을 지어야 한다.

기독교와는 너무도 판이한 문화전통이 수 천년 동안 깊이 뿌리박고 있는 아세아 대륙은 세계 어느 대륙보다도 절실하게 복음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을 복음화하는 것만이 민족의 유일한 살길인 것처럼 아세아를 복음화하는 것만이 아세아 사람들을 공산주의 마수에서, 하나님 없는 우상종교에서 건져 살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민족 복음화는 아세아 복음화의 첫걸음이며, 아세아 복음화는 세계 복음화의 준비 작업이다. 어쩌면 아세아 복음화는 세계 복음화의 마지막 장이 될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아세아 대륙은 기독교와 가장 먼 민족들이 살고 있는 곳이요, 각색 민족이 제나름대로 고유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으며 따라서 세계적으로 대종교는 모두 아세아에 있기 때문이다. 고로 세계선교의 최종목표는 아세아가 될지도 모른다. 이런 뜻에서 깊이 생각하면, 어느 면으로 생각하나 아세아 복음화는 한국 교회에 의하여 주도되어야 한다. 뭐니뭐니해도 한국 민족은 아세아 복음화를 위해 선택된 민족임에 틀림없다. 한국교회는 이제 빚을 갚아야 할 때가 왔다. 19세기 서구교회에서 진 빚을 아세아에 갚아야 한다. 만민에게 남기신 하나님의 복음의 유산을 바울의 말대로 갚지 않으면 화가 미칠 것이다.

우리는 아세아 구석구석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박탈당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굶주린 대중에게 의료와 교육 그리고 문화의 혜택을 못 받고 있는 많은 아세아 사람에게 복음의 빚을 갚아야 한다. 이 중대한 과업을 위해서 자신이 선교사가 되거나 아니면 선교단체나 선교사를 지원하는 데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