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성결교회 발전사에서 본 서울신대

1976년 3월 11일, 서울신학대학 개교 65주년 기념 강좌

 (169-175)

 

정진경 목사(서울신대 교수, 신촌교회 원로목사)

 

인간의 자유정신과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을 그후 16년 되던 1936년에 자유정신과 신앙을 배양해 낼 명문 하버드 대학을 세웠다. 그리고 1701년에 예일대학, 1746년에 프린스톤 대학을 차례로 세웠다. 그런데 이런 명문의 대학들은 모두 교역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로부터 시작됐다. 지금은 모두 세계적인 종합대학으로 발전했고 신학교는 하나의 단과대학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설립 당시의 기독교 정신은 오늘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흔들릴 수 없는 정신적 기반이 되어 있다. 이렇게 세워진 교육기관들이 결국 오늘에 세계에서 가장 부강하고 자유롭고 행복한 인간 사회를 이룩하고 교회 발전에 끼친 영향은 막대하다. 고로 교회의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신학교육과 교회성장은 불가분리의 관계다. 지도자를 어떻게 훈련시키느냐에 따라서 교회성장과 비성장의 원인을 평가할 있음은 당연한 상식이다. 그러므로 건전한 신학교육은 교회성장의 기틀이 되며, 교회성장은 민족번영의 동력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처음 전도를 시작하셨을 때, 많은 군중이 그의 주위에 모여 들었다. 예수는 친히 병자를 고쳐주셨고, 굶주린 대중을 기적으로 배부르게 하셨고, 외로운 자들에게 위로를 주셨다. 그러나 예수의 최대의 관심은 앞으로의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하여 선택된 12 제자에 대한 교육에 역점을 두었다. 만일 그렇지 않았더라면, 예수의 종교운동은 그 당시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리스도의 이런 교육 정신은 오늘의 기독교를 이룩하게 되었다. 우리는 교회 지도자 혹은 복음 전도자 양성을 위한 교육을 신학교육이라고 부른다. 교육의 범위는 넓다. 그러나 신학교에서 실시하는 교육의 전체 구조가 신학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그것은 신학교육이라고 못박는다. 고로 교회성장이 주는 중심적 영향은 신학교육이다.

 

(1)

한일합방의 어두운 역사가 시작된 다음 해인 1911년 3월 13일에 OMS의 한국선교와 동시에 성서학원이 설립되었다. 이것이 오늘의 서울신학대학의 시작이었다. 이때는 벌써 1901년에 장로교 신학교인 평양신학교가 평양에 세워졌고, 감리교 협성신학교가 1905년에 이미 문을 열었던 때다. 이때 미국에서는 구라파에서 건너온 자유주의 신학에 대항하여 근본주의 신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무렵이었다. 이때부처 시작된 서울신학대학은 지난 65년이란 파란만장한 세월을 지나오면서 1,500명 이상의 교역자를 배출하였고, 이들을 통하여 현재는 한국개신교 삼대교파 중의 하나로서 1,000여 교회와 20여만 신도를 가진 대교파로 성장했다.

이것은  서울신학대학의 철저한 신학교육의 결실이었다. 만일 선교초기에 선교사들이 신학교육에 착안을 못했더라면, 오늘의 성결교회는 전도기관이나 기타 사이비한 종파로 전락했을 가능성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고로 서울신학대학은 OMS 한국선교의 거점이 되었고, 성결교회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서울신학대학이 본 교단 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에 끼친 영향이 얼마나 컸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다. 그 실례로서 장로교나 감리교같은 큰 교단의 총회장급, 감리사급 중에도 많은 수가 서울신대 출신이라는 사실이다. 또한 세계 여러 나라에 서울신대 출신 교역자가 안간 데가 별로 없다. 더 자세한 서울신대 65년 동안의 발자취는 본 대학의 학술지닌 "神學과 宣敎" 제2집의 '서울신대 60년사와 새로운 전망'이라는 논문을 참고하여 주기 바란다.

 

(2)

그러면 1950년 혹은 1960년대 이후의 서울신학대학의 신학적인 위치와 기여는 무엇이었던가? 하나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배격이요, 둘째는 한국교회의 지난 날의 주류를 형성하여 온 근본주의 신학에 대한 시정이다. 첫째로 서울신대가 자유주의 신학를 배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유주의 신학은 슐라이엘마허를 중심으로 하여 세계 제1차대전이 끝났을  20세기 초엽 변증법적 신학이 일어남으로 몰락을 보게 될 때까지 약 100년을 전성기로 잡는다. 이 운동은 구라파, 특히 독일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났다. 이 신학 운동은 단순히 정통주의에 대한 반립일 뿐 아니라 그 모태가 현대의 세계관에 있고 그 정신적 위치는 현대 세계관의 원리인 계몽주의 관념철학, 낭만주의 정신의 연장 또는 조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자유주의란 말이 학술적인 용서로서 보편화된 것은, 이 신학 사조가 미국에 건너가 근본주의의 반항을 받아 근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대결에서부터 발전되기 시작한 것이다. 해방 후 30년 동안 구미 여러 나라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학자들 중에는 그들이 속해 있는 신학조류가 일치하지 않는다. 그 중에는 건전한 복음주이 신학자도 많으나, 또는 자유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신학자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하며, 그 판단 표준이 무엇이기에 배척을 하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리스도교의 절대성 문제다. 이 절대성은 하나님의 계시와 은총을 말한다. 즉 기독교 신관의 독자성을 부전 내지는 상대화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삼위일체 교리를 부인한다. 이 말은 역사적 예수의 계시적 의미와 성령의 인격성을 부정함을 뜻한다. 또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의 전적인 죄성을 부정하며, 인신론에서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을 혼동하며,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위의 설명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총괄적으로 표시한 것이다. 좀 더 쉬운 말로 표현하면, 기독교 신학의 원리로서 "인간은 오직 그리스도의 은총과 믿음으로써만 구원을 받는다"는 '오직 은총, 오직 신앙의 원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유주의 신학의 문제점이 어디 있는가? 그것은 그들의 출발점과 그 표준 원리에 있다. 그 출발점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 인간의 선천적 능력에 둔다. 그들의 신학의 표준 원리는 위에서 말한 대로 삼위일체 교리의 권위, 전적으로 타락한 자연인의 모습, 하나님의 절대적 은총을 부정 혹은 상대화시키고, 그 대신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형제애를 종교의 본질로 삼는다. 이것은 훌륭한 휴머니즘의 종교는 될지 모르나 구속의 종교는 아니다. 이런 표준에서 출발한  자유주의 신학은 결국 종교상 주관주의에 빠졌고, 초월적이고 객관적 면은 무시하고 하나님의 내재성만을 강조하게 되었고, 지나친 낙관주의는 죄의식을 약화시켰고, 인간 중심, 현세주의에 빠지게 만들었다.

둘째로 서울신대의 현재 신학적 기여는 근본주의 신학을 시정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근본주의 신학은 과거 한국 신학계의 주류를 형성해온 신학사상이었다. 해방 전까지는 어느 교파를 막론하고 신학적 계보는 달랐으나, 근본주의 신학에 순응하였던 것만은 부인 못할 사실이다. 인본주의적 자유주의 신학과 현대 문명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것이 소위 근본주의 신학이다. 이것은 17세기의 정통주의 신학을 강화한 것으로서, 1910년에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근본주의는 기독교의 세속화와 성서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을 허용치 않으며, 신앙의 부흥사상을 강조하는 것이 그 특색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처녀 탄생,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성서의 무오성,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의 근본 신조 안에 묶여 버렸다. 그러면 근본주의 신학의 문제점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상황을 무시한 신학적 시도다. 근본주의는 영원불변하는 진리를 상실하지 아니 하려는 생각에서 어느 특정한 시대의 정통과 그 진리를 동일시한다. 그들은 신학과 진리를 동일시하고 어제의 신학과 케리그마를 같은 것으로 여겨, 이것을 오늘의 상황, 내일의 신학과 대립시킨다. 근본주의가 현재의 상황을 보지 못하는 까닭은 그들이 변해가는 상황의 피안에 서 있는 까닭이 아니다. 과거 어느 특정한 상황에 붙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케리그마의 선포는 웅덩이에 돌을 던지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다. 시대는 지체하지 않고 흐르기 때문에 새로운 상황을 포착하지 못하는 케리그마는 뒤를 돌아보는 추억의 소금기둥 묘비가 되고 만다.

그러면 근본주가 한국교회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 조수같이 밀려드는 새로운 사조에 대하여 완강한 투쟁과 항거로써 현대주의를 막고 성서적 기독교 신앙은 고수하려고 한 노력은 치하할 만하다. 그러나 그들의 결함을 구체적으로 지적한다면, 근본주의는 고루할 정도로 비타협적이고 새것을 일체 용납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진리를 자기 변호의 도구로 삼으며, 감정과 교권으로 진실을 억압한다. 부정을 하나의 미덕으로 삼고, 일치를 주장하며, 학문의 자유를 억압한다. 독선적이며 자기를 언제나 절대화하려는 경향이 짙다. 한마디로 추려서 표현하면 지극히 폐쇄적이다.

그러면 서울신대의 신학적 입장은 무엇인가? 신학대학 교육이념과 신조가 밝힌대로 자유주의와는 달리 삼위일체 교리를 굳게 믿으며. 신구약성서 전체가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의 권위를 믿는다. 인간은 하나님의 절대 은총을 오직 믿음으로 거듭나며, 성결하며 사랑의 생활을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소망 중에 산다. 또 서울신대는 근본주의가 작성한 기본교리를 문제삼지 않는다. 그러나 그 신앙태도와 그 신학적 경향에 반대한다. 복음주의는 기독교의 절대성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근본주의와 같이 자유정신, 과학정신 또는 변하는 현대사상에 대하여 조금도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복음주의는 이런 열린 태도로 성서비평에 임하며, 과학이나 전통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와 그 새로운 설명과 진술을 기피하지 않는다. 고로 서울신대는 위에서 설명한 자유주의와 근본주의의 극단적인 신학적 입장을 배격하고, 건전한 복음주의 입장을 취한다.

 

(3)   

우리는 자유주의와 근본주의의 양극의 결함을 극복하고, 앞으로의 신학의 중심과제는 이미 수립한 복음주의적인 신학적 기반 위에서 선교지향적이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앞으로의 신학과 교회의 중심과제는 선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오늘의 신학대학과 교회는 한손에는 영원한 케리그마를 쥐고 있고 또 한손에는 시대적인 상황을 진단하고 분석하여, 양자를 만나게 하며 조화시키는 일은 오늘의 신학과 교회의 최대의 사명이다. 교회가 선교를 지상과업으로 삼아야 한다면, 교회를 위한 학문인 신학이 선교를 그 중심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 되는 것이다. 선교를 위한 신학교육은 새삼스럽게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19세기 이래 세계 각 교파에서 모든 신학교육기관이 입을 모아 강조해온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1968년 웁살라에서 개최된 WCC대회 이후 에큐메니칼측과 복음주의측은 선교신학의 개념과 전략을 달리 설정한 데 있다. 둘다 성서적 근거를 갖고 있으며 신학적 논리가 있고, 호소력이 있다. 그러나 이 둘은 선교의 방향을 각기 달리 설정하고 하나의 코오스로만 가려는 데 문제가 있다. 하나는 선교의 궁극적 목표를 하나님의 주체성에다가 두고, 또 하나는 바람직한 인간, 바람직한 삶을 구현하는 데 둔다. 그러나 앞으로의 바람직한 신학교육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교육이 되어서는 안된다 . 선포와 봉사는 선교사업에 있어서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 선포에는 반드시 봉사가 뒤따르게 마련이다. 앞으로의 참된 선교는 선포와 봉사의 변증 속에서 이루어진다. 다른 말로 표현하며, 부름받아 신앙으로 모이고 흩어지며 증언하고 봉사하는 과정 속에서 그리스도는 교회와 세상의 주로 고백되며 입증된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도 모이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성령의 강림으로 형성된 교회는 모인 사람들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 유다, 땅끝까지 흩어져서 증인이 되는 디아스포라 속에서 자랐다. 디아스포라의 형태는 개인 뿐 아니라 세상 모든 구조 속에 누룩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바람직한 선교신학은 교회와 세계를 동심원(同心圓)에서 보는 세계관의 수립이 요청된다. 각기 입장을 달리한 신학들이 한국교회의 신앙을 제각기 하나만의 사상적 절대주의로 몰고가는 데 문제가 있다. 고로 니이버 교수가 지적한 대로 하나님을 향한 수직적인 신앙의 차원과 이웃을 향한 수평적인 사회성의 차원이 잘 조화될 때, 건전한 선교신학이 확립되고 성서적 기독교가 실현될 것이다. 다만 어느 것이 먼저고 후냐에 문제가 있을 뿐이다. 선포를 봉사에 앞세우므로써 조화된 선교신학이 실현될 것이다. 이런 조화된 선교지향적인 신학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서울신대에 주어진 교육적 사명이며, 앞으로 성결교회 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