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모으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

(183-187)

 

 

예수님은 전도 초기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외치면서 죄짓고 방황하는 인류를 구원의 길로 초대하셨다. 그리고 또 주님은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너희가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시면서 제자들을 불러내 세상으로 다시 파견하였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니면서도 실은 지금까지도 교회가 무엇인지 그 사명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신자가 많이 있다. 그러므로 교회의 본질과 사명이 무엇인가를 오늘 읽은 본문에서 찾고저 한다.

주님께서는 "내게로 오라"고 하셨다. 또 같은 주님은 제자들에게 "세상으로 가라"고 명령하셨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두 가지 형태의 교회를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모으는 교회'이다. 그것은 '내게로 오라'는 주님의 부르시는 소리를 듣고 모인 공동체이다. 이 부름에 응하여 모인 다수의 사람이 같은 방향에 서고 같은 사건에 대하여 신앙을 고백하고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무거운 짐을 같이 메는 공동체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예배하며 사랑의 교제가 교환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곳이다. 둘째는 '흩어지는 교회'이다. 이것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모인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주님의 명령에 의하여 세상으로 파견되어 각 분야로 흩어져 들어감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교제인 신앙의 집단을 바깥 세상에 파견하는 것이다. 소명의 집단인 성도의 교제가 그 집단 안에서만 끝나지 않고 밖을 향하여 봉사단체로 나타나게 될 때, 비로소 산 교회가 되며 그 교회는 역사 속에 현실화되고 구체화되는 것이다.

이렇게 교회는 모으고 흩어지고 두 가지 형태가 조화될 때에만 참된 교회가 될 수 있고 주어진 사명을 완수할 수 있다. 교회는 소명단체인 동시에 봉사단체이다. 교회는 하나님을 위한 교회인 동시에 세상을 위한 교회이다. 교회는 하나님을 위한 교회일 때에만 세상을 위한 교회가 될 수 있고, 세상을 위한 교회인 때에만 하나님을 위한 교회가 될 수 있다.

이 진리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세상을 화해시킨 화해의 원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예배단체이며 동시에 세상에 구원의 사건을 전달하는 선교단체이다. 고로 참 교회는 하나님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동시에 세상으로 뛰어나가는 성격을 지나고 있다. 여하튼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에는 틀림없다. 교회는 모으는 공동체에서 세상으로 흩어져 가는 역동적 관계를 가진 단체이다. 과거에 많은 신자들은 교회를 하나의 장소나 건물로만 생각해 왔던 때가 있었다. 이러한 생각 배후에는 모으는 교회만을 교회인줄로 알았기 때문이다.

과거나 현재나 대개의 경우에는 신학자나 목사가 중심이 되어 교회가 무엇이냐를 규정지었다. 그리고 교직자들은 모으는 교회에 중점을 두어온 것도 부인 못 할 사실이다. 그 이유는 우리 교직자들은 흩어지는 교회 속에 살아보지 못하고 모으는 교회 속에서만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교회에 간다 혹은 교회에서 나온다는 말을 한다.

예를 들면 주일아침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장소로 예배하러 모이는 것을 교회에 간다고 하며, 예배가 끝나고 우리가 생활하는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로 흩어지는 것을 교회에서 나간다고 말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모으는 교회만이 교회 같이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공관복음서에서 말하는 교회는 이런 의미만은 아니다.

마태복음에 교회란 말이 몇 번 나온다. 그 중에서 마 16:18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라는 하나의 인간 위에 교회를 세운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한 사람도 교회가 될 수 없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태 18:1-23에는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두 세 사람의 그리스도인에게도 베드로에게와 꼭 같은 권위를 부여하였다. 그 당신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대상화하지 않고 자신이 바로 교회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많은 사람이 한 곳에 모일 때나 혹은 분산해서 한 사람일 때도 우리는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만일 예배당에 여러 사람이 모였을 때만 교회라고 한다면, 일주일 동안의 한 시간만 신자가 되는 셈이고 그 나머지 날은 모두 예수와는 관계없는 이방인이 될 것이다. 이런 교회 개념 때문에 과거 한국 교회의 신도들은 사회와 교회를 완전히 구별하여 교회는 하나님이 임재하신 곳이요, 세상은 악마가 지배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여, 하나님이 계시는 예배당에서는 엄숙하고 두려움으로 예배하며 지내야 하고 그 나머지 세상에서 살 때는 이와는 정반대의 생활을 해도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나 참된 신자는 예배당에 모여 있을 때나 세상에 흩어져 살 때나 항상 "우리는 교회 안에 산다"는 생각을 버려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가 만일 예배당이라는 공간 속에만 갇혀 있다면 모르거니와 역사의 지배자요, 주인이라고 믿는다면, 그는 어디에나 계실 것이며 그의 지배 밑에 사는 신자는 항상 하나님께 예배하는 심정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교회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현재 살아 계셔서 지배하시는 영역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교회는 가족 같은 자연 공동체도 아니요, 국가와 같은 강제 공동체도 아니다. 그리스도 교회는 현재에 있어서 그리스도가 지배하는 영역이며 어디나 해당된다. 고로 사도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며 신자는 각각 그 자체(고전 12:27)라고 말했다.

고로 모으는 교회의 회원이 되려면 세례를 받아야 한다. 그 이유는 세례는 주인을 바꾸어서 세상 모든 지배로부터 벗어나 그리스도의 지배하시는 영역으로 들어감을 선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은 모으는 교회도. 흩어지는 교회도 그리스도의 지배 밑에 있다. 그러면 모으는 교회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예배당에 모여 찬미하고 천당에 갈 준비만 하는 것은 아니다. 모으는 교회는 일정한 방향 감각이 분명해야 한다. 그 방향은 세상으로 흩어져 나가는 것이다. 모으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의 관계는, 군대 술어를 빌어서 설명한다면 전방과 후방은 어느 쪽도 소홀히 여길 수 없다. 전방에서 병사들이 싸움의 사기를 읽어버리면, 아무리 후방의 보급이 원활하게 잘 돼도 소용이 없고 또 전방에서 아무리 사기가 넘쳐 잘 싸워도 후방의 보급이 끊어지면 결국 전쟁에 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흩어지는 교회를 전방이라고 한다면, 모으는 교회는 후방이 될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할 것은 밖으로 향하는 흩어지는 교회의 모든 원동력은 모으는 교회다. 만일 후방인 모으는 교회가 힘을 읽고 영적 공급을 못한다면, 흩어지는 교회는 고갈하고 말 것이며 빛을 읽게 될 것이다. 또한 신자들의 한 곳에 모였을 때만 교회라고 생각하고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 웅덩이에 고인 물같이 썩어 버릴 것이고 모으는 교회는 존재의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 일단 모으는 교회에서 흩어지면 교회는 없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우리가 교회에 모여 있는 시간은 사실에 있어서 몇 시간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곳은 가정이요, 공장이요, 학원이요, 시장이다. 내가 가정에 있을 때는 그곳이 바로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빛이니 하신 말씀의 뜻은 바로 여기 있다. 우리 개개인이 흩어져 사는 바로 그곳에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는 말씀이다. 모으는 교회에서 목사의 설교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터전에 분산된 그리스도인 하나 하나가 대화와 토론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행동에 의하여 증거하는 산 교회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할 때, 교회의 존재 목적은 자기가 아니라 타자(他者)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모으는 교회는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타자인 세상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