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교회와 세계

(188-191)

 

 과거의 한국 교회는 교회와 세계를 이원적인 구조로 해석하였다. 그래서 세계는 타락한 곳이며 부정한 죄악과 근심으로 가득 찬 곳이며 하나님은 안 계시고 악마가 지배하는 장망성이요, 지옥으로 가는 정류소로 생각했다. 반면에 교회는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거룩한 영역이며 성남성녀들의 집합소이고 천국 가는 정류소요 세고(世苦)에 시달린 인생을 닦아주는 오아시스라고 믿었다.

그래서 교회와 세계를 언제나 대립관계로 보았고 절대로 합류할 수 없는 적대관계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나 과거의 기독교인의 역사관, 세계관, 인생관은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경향이 많았고, 내세관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긍정적이었다.

그러면 교회와 세계의 관계를 성서는 어떻게 가르치는가? 성서는 교회와 세계, 즉 안과 밖을 동심원(同心圓)에서 보았다. 영혼과 육체가 조화 될 때에 참 인간이 되듯이, 교회와 세계는 하나님의 주권 밑에서 하나가 될 때에 건전한 관계를 성립할 수 있다. 고로 한 분 하나님의 통치 밑에 있는 교회와 세계는 이원적이 아니라 하나로 보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그러면 교회와 세계의 관계를 세 가지 원리에서 생각해 보자.

첫째로 교회가 세계 속에 있는가 아니면 세계가 교회 안에 있는가 하는 문제다. 이에 대한 성서는 세계가 교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계 속에 있다고 분명하게 대답해 준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한다"는 수육(受肉)의 원리는 교회의 존재 근거를 명백하게 설명해 준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심은 인간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구름 위에 오신 것이 아니라 죄악이 꽉 찬 현실 속에 오셨고 백성을 위해 일하시다 가셨다.

그러면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는 수육의 연장이며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무리들의 공동체다. 그러므로 교회의 존재 양식은 그리스도의 존재 양식과 같아야 할 것이다. 교회는 별다른 세계도 아니며 불가침의 성역도 아니다. 교회가 세계와 엄격하게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와 역사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세상과 구별된 생활을 한다. 고로 교회가 설 곳은 하늘이 아니라 땅이다. 역사에서 소외된 교회는 그 존재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과거의 한국 교회는 피안(彼岸)에 대한 관심이 지나쳐서 현실에 대한 윤리적인 책임을 소홀히 하였다. 오늘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경건주의적 현실 포기는 실은 현실악에 대한 공범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한국 그리스도인이 그 속에 깊숙이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데 문제점이 있다. 교회는 분명히 역사 속에 있다.

두 번째로 생각할 것은 교회의 존재 이유다. 즉 교회가 세상을 위해서 있는 것인가 아니면 세상이 교회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해서도 성서는 분명하게 세상이 교회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을 위해 있다고 대답한다. 이 면에서도 교회의 머리되시는 예수의 목적과 꼭 같아야 한다. 그는 자기가 세상에 오신 목적을 요약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요, 섬기려 왔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다"(마 20:28). 예수는 무엇이며 세상에 오셨나? 섬기려 오셨다. 그는 식사할 겨를도 없이 눌린 자에게 정신적인 자유와 해방을 주고 병자를 고쳐주고 굶주린 자를 기적으로 먹이는 일에 그 생애 전부를 바쳤다. 한가지도 자신의 성공이나 영광을 위해서 한 일은 없다.

그러면 교회의 사명은 무엇인가? 교회도 예수와 꼭 같아야 할 것이다. 교회가 자신을 위해서만 존재할 때, 생명도 가치도 빛도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교회의 사명은 두 가지다. 하나는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요, 둘째는 이웃에 대한 사랑의 봉사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순종을 이웃에 대한 사랑과 봉사로 표현하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예배와 봉사의 결합이며 완성이다. 다시 말해서 종교의 완성인 동시에 윤리의 사상이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의 잘못이 무엇인가? 그것은 성전 예배가 종교인의 의무의 전체인 줄로 착각한 것이다. 오늘도 교회의 예배가 신앙생활의 전부로 생각하면, 생명은 상실한다. 세상을 향한 교회의 방향 감각이 분명치 못할 때, 교회는 폐쇄적이 되고 맛 잃은 소금이 되고 말 것이다

세 번째로 생각할 것은 교회가 세상 안에 세상을 위해서 있으면서도 교회는 절대로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 성서의 교훈이다. 예수님은 여러 차례 자신과 제자들이 세상에 속하지 않음을 거듭거듭 강조하셨다(요 15:19, 17:16-17). 세상에 살고 세상을 위해 존재하면서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퍽 역설적인 진리다. 고로 예수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말씀하셨고, 만일 맛을 잃으면 버림을 받는다고 강조하셨다. 세상이란 말은 문화 전반을 가르치는 세속 세계를 말함이고, 소금이니 빛이니 하는 것은 소수의 크리스천 또는 그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의미한다. 고로 만일 교회가 세상을 위해 있다고 해서 세상과 타협하고 영합하면, 그 때는 맛잃은 소금같이 되어 하나님께도 인간에게도 버림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신앙은 정조와 같아서 세상과 영합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파륜 행위가 된다. 교회가 본받아야 할 그리스도의 세상 개입에 대하여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리스도는 세상에 참여했으나 그들과 같이 술 취하지 않았으며, 그는 간음한 여인들을 상대했으나 간음하지 않았다. 둘째로는 그가 세상에 참여한 것은 분명한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해서다(눅 19:10). 고로 교회의 세상과의 타협이나 결속은 그리스도가 우리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국 교회가 주체성을 잃으면, 세상도 못 건지고 자신도 망하고 말 것이다(고후 6:1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