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교회정치의 제 형태

(192-197)

 

오늘 기독교 안에는 많은 유형(類型)의 정치 형태가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만을 말한다면 다음의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법황정치(Papal Type), 둘째는 감독정치(The Episcopal Type), 셋째는 장로정치(The Presbyterial Type), 넷째는 회중정치(The Congregational Type)다.

 

1.  법황정치(Papal Type)

이 제도는 로마교회의 감독인 법황이 모든 권위의 상징이며 원천이 된다는 성직자의 교권제도에 기인한다. 카톨릭은 기구적으로 단일명령 계통의 강력한 바티칸 중앙집권 제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법황직은 전 기독교의 통일의 중심이며 그 머리가 된다고 믿는다. 카톨릭의 이런 주장은 다음의 두 가지 근거에서 나왔다. 첫째는 마태복음16:18에 표시되어 있음 같이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네가 베드로라 내가 내 교회를 이 반석 위에 세울 터인데 죽음의 권세가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에 근거해서 카톨릭교회는 그리스도는 베드로를 선택하사 지상에서 그의 특별한 대리자로 세웠으며 교회의 머리로 임명했다고 믿는다. 교황 비오 9세는 1864년에 정식으로 이것을 선포하였다. 즉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계승한 직접적인 대리자이며 따라서 베드로를 이은 로마의 대대의 감독, 즉 교황이 참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그들에게만 그리스도는 자기의 교회를 맡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교회의 합법적인 머리의 계승은 사도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끊어지지 않고 연속되어 내려온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법황정치의 또 하나의 근거는 베드로가 처음으로 로마에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의 감독이 되었는데, 그 감독의 주권과 권위를 계승한 교회만이 참 교회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프로텐스탄트는 이러한 카톨릭의 주장에 대해서 그 확실성을 부인한다. 그 이유는 첫째로 베드로가 로마시에 선교했다는 전설을 의심한다. 베드로의 로마 선교는 하등의 역사적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베드로가 로마에 거주했다는 전설마저도 베드로가 죽은 후 100년을 지난 제 2세기 후반에 와서야 전해졌기 때문이다. 또 그것이 설혹 사실이라 해도, 그리스도는 베드로에게 교회의 최고의 권력을 위임했다고 믿지 않는다. 마태복음 16:18의 말씀은 베드로라는 개인을 지적함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토대로 하여 교회를 세운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교회는 참된 교회이며 그 신앙을 계승하는 성직자는 모두 그리스도의 계승자라고 본다. 그러므로 개신교에서는 전통의 형식적인 통일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며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고백의 통일을 더 중요시하고, 이 중요한 고백을 하는 교회는 교파 여하를 막론하고 참된 교회라고 믿는다. 사실에 있어서 베드로가 초대 교회의 최고의 권위자로 생각되지 않는 점은 사도행전 15:7-30; 갈라디아서 2:11 등의 성구를 보아도 알 수 있고, 또 베드로 자신도 권위에 있어서 다른 사도들 위에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벧전 5:1). 가령 베드로에게 최고의 권위를 부여했다 하더라도, 그는 그 권위를 후계자들에게 물려줄 하등의 권능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고로 카톨릭 교회의 교권 중심의 정치 형식은 비성서적이며 또한 그리스도의 정신과는 상응되지 않는다는 것은 개신교의 일치하는 견해이다.

 

2.  감독정치(The Episcopal Type)

감독정치는 법황정치와는 좀 다르다. 이 제도는 교회의 권위가 한 사람의 감독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감독의 일단에 부여되고 그 감독들은 모두 사도단의 후계자라고 주장한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교회의 최고의 권위가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에게 부여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그러나 감독정치를 채용하는 개신교에서는 그리스도의 여러 사도들의 동등한 지위를 인정하고 동등한 감독들은 사도들의 직계의 후계자이며 교회의 권위를 위임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신자들은 교회정치에 참여할 수 없다. 이 제도는 영국 감독교회에서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같은 감독정치를 채택하고 있는 메도디스트 교회에서는 이런 것을 별로 찾아 볼 수 없다. 그리고 각 감독은 그 교구 내에 있는 모든 교회를 감독하며, 대감독은 모든 감독을 감독한다. 이에 대해서 비감독 정치를 하는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의 감독들이 대감독의 감독을 받는다고 한다면, 다시 대감독을 감독할 자가 필요하게 된다. 그렇다면 법황정치와 다를 것이 무엇이냐?"고 비평하는 이도 있다. 이 감독정치가 감독자들에 의해서 행해지는 정치라고는 하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세 개의 다른 성직 계급에 의하여 교회가 운영되고 있다. 하나는 감독들(Bishops), 둘째는 목사들(Priests), 셋째는 집사들(Deacons)이다.

 

3.  장로정치(The Presbyterial Type)

 이 제도는 교직자 및 평신도 가운데서 회중에 의하여 선택된 장로의 손에 교회의 권위를 위임하는 정치 형태다. 장로라는 명칭은 헬라어 Presbuteros에서 유래했다. 이 말은 Ephiskophos라는 말과 상통하는 데가 있다. 후자는 특히 감독의 의무를 지적하고, 전자는 직위를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장로정치의 기초가 되는 것은 대의제(代議制) 정치다. 장로 정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정치의 주체는 선교장로인 목사 및 회중 가운데서 선출된 관리 장로로 구성되는 교회 회의다. 이 교회 회의는 크게 셋으로 구분한다. 하나는 소회(小會), 즉 당회다. 이 회의는 목사와 평신도 가운데서 선출된 관리장로로 구성되며 개체교회에 있어서는 최고의 정치 기관이다. 둘째는 중회(中會, Synod), 즉 노회다. 이 회의는 목사 및 일정한 비례에 의해서 장로 가운데서 호선된 장로로 구성한다. 노회는 확정된 범위 안에 있는 교회들을 감독한다. 셋째로는 목사 및 비례에 의하여 선출된 장로로서 구성되는 대회(大會), 즉 총회(The Goneral Assembly)가 있다.

이상과 같이 장로정치는 대의제로서, 회중의 각 사람은 독립된 단위가 아니고 당회의 관리 밑에 있으며, 당회는 노회의 관리 밑에 있고, 노회는 다시 총회의 관리 밑에 있다. 고로 장로정치의 최고 정치기관은 총회가 된다.

그리고 장로정치에는 세 가지 종류의 직분이 있다. 하나는 선교장로, 즉 목사(pastor)다. 목사는 말씀의 선포와 성례전을 베푸는 일에 봉사한다. 둘째는 관리장로(Ruling elders)다. 관리장로는 목사와 같이 교회의 영적 생활을 감독한다. 칼빈의 지도 밑에 있던 제네바의 공동사회에서는 장로들은 징계법원을 구성하고 모든 사람들이 원하든지 원치 않든지간에 복음의 교훈들에 순종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살피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세 번째 직분은 집사(deacons)의 직이다. 집사는 병자를 방문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구제사업을 담당하고, 때로는 회계하는 일을 맡는 직책이다. 이 셋 가운데서 최고의 직은 물론 목사의 직이다. 이 직을 표현하는 명칭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회중을 감독하기 때문에 감독이라고 칭하기도 하며, 영의 양식을 공급하기 때문에 목사라고도 부르며, 혹은 교회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대리자인고로 성직자라고도 불리어진다. 이 최고직에 있는 목사는 관리장로와 함께 교회의 전반문제를 관리한다. 목사는 어느 정도 당회, 노회, 총회의 감독을 받기는 하나 그의 유일하신 주는 예수 그리스도시다. 장로정치는 성서를 최고의 권위로 믿고 교회 위에 두며 양심과 성령의 지도 밑에 있음을 인정한다. 우리 성결교회는 초기에는 감독제도의 정치 형식을 채택하여 왔으나, 해방 이후부터 대의제의 정치형태로 변경하였기 때문에 현재는 실제에 있어서 장로정치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고 생각한다.

   

 4. 조합 혹은 회중정치(Congregational Type)

이 제도는 교회의 모든 권위를 자체교회(Local church)에 일임하는 정치형태다. 이 회중정치는 많은 교파에 의하여 시행되는 완전한 민주주의적 형식의 정치형태다. 이 정치제도를 채용하는 교회는 침례교회, 그리스도교회, 형제교회 등 여러 교파가 있다. 이 정치형태는 장로정치와 같이 기원을 종교개혁 시대에 둔다. 이러한 교회정치 또는 교리에 관해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성서 가운데 계시되어 있다는 하는 신앙에서 출발한 것이며, 이 제도의 창시자는 그 단순한 점에서 사도시대의 교회를 재현한다고 노력한 것이다. 그러면 이 회중정치의 내용이 무엇인가? 회중정치는 교회의 자치권(All Legislative authority in the local church)을 주장하고, 각 교회는 하나의 독립된 작은 민주정체로서 그 역원, 입회, 헌법, 교리 등을 회중의 투표에 의해서 결정하는 권리를 소유하고 있다. 그들은 교회는 지방적 기능체라고 믿는다. 고로 추상적인 교회는 있을 수가 없으며 교회는 항상 하나의 구체적인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이런 개체의 공동체 이상의 회의나 감독의 권위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밖으로부터의 여하한 간섭도 배제한다. 법황정치나 감독정치에 있어서는 중요한 역원의 임명권이 사도의 후계자인 법황이나 감독들에게 있고 장로정치에 있어서는 이것을 장로들로 구성된 회의에 위임한다. 그러나 회중정치는 그 회중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권능을 소유하며, 어떤 특정의 계급에 이것을 위임하는 일은 없다. 고로 회중은 저들이 원하는 대로 목사를 임명한다는 것이 그들의 정책이다. 그러나 그들도 책임은 교육받은 교직자에게 한층 무겁게 집중시키는 것도 사실이다.

이 회중정치는 모든 신도들의 평등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선출된 몇몇 사람에게 특수한 책임을 부여하는 그러한 기구의 설립의도를 반영하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는 아무런 본질적 차별이 없으나 그러한 소명과 훈련에는 차별이 있다는 것을 고려에 넣은 것같이 보인다. 그리고 이 회중정치를 하는 교회는 상호간의 이해를 깊게 하기 위하여 다른 교회 사람들을 임직식이나 회의 같은 데 초대하는 일도 자주 있다. 위에서 설명한대로 회중정치는 헌법의 권위를 개체교회에 두며, 장로정치는 각 교회의 회의에다 두고, 감독정치는 그 권위를 감독들의 손에 위임한다. 그리고 법황정치는 모든 교회의 권위를 최고의 지위에 있는 법황의 손에 일임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