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부흥회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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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의 일년의 프로그램 속에 '부흥회'는 가장 중요한 행사 중에 하나다. 교회마다 1년에 한 두번은 꼭 부흥회를 갖는다. 어떤 교회에서는 석달이 멀다고 개최하기도 한다. 이런 교회는 거의 부흥회 때문에 교회가 유지되어 간다. 요사이는 개교회 뿐 아니라 연합적으로 부흥회가 개최되고 국제적으로 강사들이 교류되기도 한다. 그러면 부흥회란 무엇인가? 본래 부흥회를 영어로는 리바이벌이란 말로 표시하는데, 그것은 다시 소생시킨다는 뜻이다. 구약에서 이 단어는 원래 숨쉰다는 뜻을 지닌 '산다'의 어원에서 나왔다. 신약에서는 '다시 살아난다'의 뜻으로 설명되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의 비유 중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 회개한 탕자의 변화를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눅 15:24-32)고 한 것은 바로 부흥회를 의미한다. 고로 부흥회의 기본 개념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찾으시고, 소생시키고, 기운을 북돋우시고, 그들을 그의 풍성한 축복 속으로 해방시키는 그의 기이한 신 주권적인 사역"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고로 부흥집회의 근본 목적은 잠자던 영혼이 깨어나고 죽어가던 심령이 다시 살아나며 때묻은 영혼이 깨끗함을 얻고 약해진 영혼이 새 힘을 얻으며 실망과 의심에 쌓인 영혼이 소망과 확산을 얻게 되며, 죄인이 변하여 의인이 되고 마귀의 자식이 변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려는 운동이다.

한국교회의 선교역사를 뒤돌아보면, 부흥회는 사실에 있어서 많은 영혼을 각성시켰고 교회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만일 한국교외의 초창기에 있어서 이런 부흥회가 없었더라면, 선교 역사상 유래를 찾아보기 드물 정도로 한국교회가 급속한 성장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일례를 든다면, 1917년에서 1918년에 걸친 농한기의 사경회에 참석한 교인수는 7만 6천명이었다. 이 당시의 전 신자의 수가 11만 7천이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전체의 65%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 때의 부흥회는 주로 성서를 연구하는 사경회였고, 따라서 이 사경회를 통해서 우매한 대중을 계몽시키고 민족사상을 고취하여 사회에 대하여 산 증언을 했다. 그러므로 그 내용에 있어서 건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결과에 있어서도 개인적으로는 회개의 열매를 맺었고 또 사회적으로는 건덕의 열매를 맺었기 때문에 교인의 훈련을 위해서 바람직한 집회였다. 그러므로 옛날이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부흥회의 그 가치와 의의 그리고 그 필요성을 낮게 평가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부흥회의 본질보다도 부흥회의 성격과 그 운영방법이 어떠냐에 있다.

그런데 근년에 와서는 부흥회가 옛날의 양식과는 전혀 달리 이상스런 요소가 끼어 들게 되어, 그것은 민중을 우롱하는 한 때의 기분적인 충동을 자극하는 종교적 감상주의의 산물처럼 되어 버렸다. 부흥회의 본래의 목적을 떠나 입신, 방언, 치유, 안찰, 예언 등의 은사를 나타내는 것이 한국교회가 보여주는 부흥운동의 특성같이 변질되고 말았다. 고로 한국교회의 부흥집회의 일반적인 양상은 성서에서 말하는 성령의 어떤 특정된 측면만을 강조함으로 성령의 참된 역사를 말살해 버리는 경향이 크다. 그래서 부흥회는 죽어가는 심령을 다시 살리는 운동이라기보다는 일부 지도자들의 인기를 파는 상업적인 하나의 수단처럼 되고 말았다. 이렇 듯이 한국교회의 부흥회가 그 초기에 있어서 그처럼 교회 발전을 위해서 영적 훈련을 위해서 좋은 역할을 했던 것이 근래에 와서는 그다지 좋지 못한 양상을 보여주게 된 것은 부흥회에 대한 재검토가 시급히 요청된다. 부흥회가 끼친 손해 중 제일 심각한 것은 오늘의 부흥회가 신도들에게 영적인 불안감을 유발시켰다는 점이다.

오늘 한국교회의 많은 신도들은 자기 교회의 목회자가 아무리 귀중한 진리를 주일마다 먹여주어도, 자기들이 좋아하는 부흥회같은 종류에 속하지 않는 집회에서는 은혜를 받을 수 없고, 또 그러한 집회의 참석을 않고서는 클클증이 생겨서 견딜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사도, 자녀교육도 모두 내팽개치고 산으로, 들로 이 클클증을 풀기 위하여 집시모양 떠돌아  다닌다. 이런 신앙 태도는 분명히 개인의 신앙성장을 저해할 뿐 아니라 교회 발전을 가로막는 일이며, 불신사회의 빈축을 사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거의 직업적으로 부흥회에 따라 다니는 독실한 신자들을 무서운 독선병에 걸리게 하는 위험성도 있다. 이런 점에서 부흥회를 계획하는 교회나 또는 부흥회를 전문적으로 인도하는 강사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부흥회를 하나의 흥행적인 효과를 노리는 기회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어리석은 양떼들을 흥분시키고 열광적이 되게 하는 일을 고의로 시도하지 말아야 하며, 복음의 진수를 곡해시켜 오관의 비상한 발동을 구원의 조건으로 강요하는 일을 경계해야 하며, 따라서 부흥사 자신도 신자들과 같이 성령의 역사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성령을 대역하려는 인위적인 노력도 배제해야 한다.

나는 이런 원인이 한국의 부흥집회를 밑받침으로 하고 있는 성서적 근거가 매우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부흥집회는 신구약 전체를 일관하고 있는 신학적 근거가 희박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로 앞으로 건전한 부흥회를 위해서 시급히 요청되는 것은 올바른 성서 이해와 신학적인 충만한 지식을 갖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