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죄와 자유의지

(41-47)

 

기독교와 죄의 문제는 불가분리의 관계를 갖고 있다. 죄를 논하지 않고서 기독교를 논할 수 없다. 기독교의 인생관을 이해하려고 하면 먼저 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죄를 파헤치는 것은 누구나 싫어한다. 그러나 죄가 무엇인지를 모르고서는 기독교의 복음을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가정문제 사회문제, 국가 문제 등 많은 문제들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보다 큰 문제는 죄에 관한 문제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모든 학문도, 도덕도, 정치도 그리고 종교도 직접 혹은 간접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면 죄는 어떻게 생겼으며 죄의 성질은 무엇이며 인류에게 미친 결과는 어떤 것인가를 설명코자 한다.

 

1. 죄의 기원

죄가 언제 어떻게 생겼느냐 하는 기원을 설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죄의 기원에 관한 수수께끼를 푸는 유일한 실마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계시의 사건에 의해서 뿐이다. 성서적 견지에서 보면 죄는 창조된 자유의지의 남용에 기인한다고 말할 수 있다. 자유의지란 것은 이성적인 인격의 중심적인 것이며 행위의 목적을 선택하는 것과 동시에 행동을 시작하는 의식적인 자유도 내포한다. 그러므로 자유의지의 남용과 죄의 기원의 설명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창세기'의 타락의 기사에 의하면 인간은 뱀이라고 하는 동물에 의하여 유혹을 받았다. 이와 같은 사실은 도덕적인 악이 인간 속에 처음으로 나타나기 전에 인간 밖에 존재하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성서는 순전한 영계(靈界)에 창조주에 대한 반역으로 처음의 지위를 상실한 천사가 있었음을 암시한다(벧후 2:4 유다서 6, 이사야 14:12-14). 즉 인류의 타락이 있기 전에 천사의 세계에 타락이 있었다는 말이다. 천사라고 하는 영물 사이에 하나님을 반역한 자가 있었다. 기독교의 죄악관에서는 이 유혹자를 죄의 기원, 즉 최초의 원인으로 생각한다. 초자연적이면서도 피조물인 영물, 즉 사탄은 본래는 선하게 지음을 받은 자였다. 그러나 그의 의지의 자유를 남용함으로 인하여 높고 거룩한 위치에서 떨어져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죄는 그 기원에 있어서 인격적이었다. 이 거룩한 천사의 자유의지의 남용으로 죄는 모든 피조 세계에 소개되었다. '요한'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함이니라"(요일서 3:8). 그리고 '창세기 3:1∼24절'에 인간이 받은 시련과 타락의 기사는 풍부하고도 깊은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이 기록을 사실로 받아들였다(고후 11:3, 딤전 2:13-15). 인간의 타락에 관한 성서의 기사는 사람은 죄를 모르는 거룩한 상태로 지음을 받았으나 죄의 가능성이 그 속에 존재해 있었음을 제시해 준다. 그 가능성의 하나는 육체적인 욕망이었다. 그것은 여자가 그 나무를 보니 먹음직하고, 봄직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웠다(3:6)고 했다. 이 속에는 미각의 육체적 욕구가 숨어 있었고, 그것이 유혹의 수단으로 표시되었다.

 또 이 가능성 속에는 우주와 같이 큰 호기심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 열매가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호기심은 반드시 도덕적인 자질에 의해서 움직여진 것이 아니라 인생 경험을 시험해보려는 분별없는 어린이의 성급한 욕구였다. 다음으로 이 유혹의 가능성 속에는 자기 표현의 개인적 욕구를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더냐" 하는 도전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유혹은 절정에 달했다. 여기에는 인간이 자기 이상의 권위에 대해서 종속적인 위치에 서는 것을 거부하는 암시가 들어있다. 끝으로 이 가능성 속에는 사회적인 영향의 요소도 들어있다. 왜냐하면 '이브'가 죄를 범한 후에 같이 있던 남편에게 주니 그도 먹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범죄 한 직접적인 결과는 하나님으로부터의 소외와 사탄에의 예속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의 상실이다. 이 상실에 의해서 인간은 육체적 또는 도덕적 부패에 복종하게 되었다. 죄의 기원에 관한 성서적 기사에서 하나님은 어떠한 의미에서도 악의 창시자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인류 가운데 존재하는 죄의 기원을 설명하는 두 가지 기본적인 요인은 사람을 죄에로 유혹한 사탄의 선재(先在)와 도덕적 선택 앞에 높여진 인간의 선택의 자유가 결합된 것이다. 결국 성서의 가르침은 인간의 죄의 기원을 지적이며 책임 있는 피조물의 의지의 남용에 기인한다고 밝힌다.

 

2. 죄의 성질

죄는 적극적인 면에서 생각할 때 궁극적으로 자신을 하나님의 위치에 세우려는 것이며, 소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것이다. 죄의 성질을 논함에 있어서 먼저 죄가 무엇이냐를 설명하고 그 다음 원죄를 고찰하고 끝으로 인류에게 미친 죄의 결과를 말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그러면 죄란 무엇인가? 죄는 미혹은 아니다. 죄는 미혹의 원인이 되지만 미혹 그 자체가 죄는 아니다. 죄는 지식의 부족이나 두뇌의 이상도 아니다. 그 이유는 오랜 세월 교육을 받아도 그 지식으로 죄를 해결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죄는 행위도 아니다. 모든 행동의 원인인 영혼의 부패다.

행위는 대인관계의 모든 예의요 몸밖의 일이다. 그러나 죄는 마음 속의 일이며 숨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죄란 무엇인가? 성서는 죄를 주로 개인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의 균열 또는 절연, 불복종에 의한 소외라고 본다. 죄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복종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6장 5절에는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라고 묘사했다. '모세'의 율법은 죄는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과의 사이의 계약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다윗'은 자기가 범한 깊은 죄를 거룩하신 하나님께 대한 위반이라고 시인하고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향하였다."고 고백하였다. 그리고 예언자들은 죄를 거룩하신 하나님께 대한 반역으로 보았다. 하나님께 대한 반역은 죄의 근원이며 모든 배덕과 사망과 고통의 원인이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이브'의 반역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부자의 관계를 단절시켰으며, 이 슬픈 절연을 인류의 타락이라고 다음과 같이 부르짖었다. "반역한 이스라엘아! 들으라"(렘 3:12), "그 죄는 많고 그 반역은 심하다"(렘 5:6), "내 백성이 나를 전심으로 반역하고"(호세아 11:7), "내가 저들의 반역을 치료하리라"(렘 14:4). 예언자들의 유일한 목적은 백성들의 하나님께 대한 반역을 고치고 다시금 화해시키는 일이었다. '신약성서'에 있어서 예수는 인간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죄의 동기를 외적인 행동과 같이 보았다. 4복음서는 죄의 성질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였다. 빛에 대한 어두움(요 9:41), 자유에 대한 속박(요 8:34), 그리고 그리스도를 불신하는 것을(요 66:9) 죄로 정의하였다. 또 육과 영을 대조하시면서 모든 사람은 영으로 다시 나야 할 것을 강조하셨고(요 3:6), 죄와 사탄의 활동의 영역인 이 세상은 죄가 많고 부패한 곳으로 보셨다(요 88:36). '바울'은 "육의 생각은 하나님께 대하여 대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롬8:6-9). 또 '요한서신'에 의하면 죄는 불법(요일 3:4)이라고 했다.

 

3. 원죄

우리는 죄의 성질을 크게 둘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원죄요 둘째는 사실적인 죄다. 그러나 이것은 죄의 두 개의 범주가 있다는 뜻은 아니다. 원죄라는 표현은 모든 죄를 일컬어 하는 말이다 그런고로 사실적인 죄는 원죄의 외부적인 행동을 묘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원죄는 하나의 전체로서의 인간과 상관이 있는 문제다. 죄란 본래 인간의 외부적인 일이나 주변적인 일이나, 우발적인 일에 상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속 깊은 곳에 그 자리를 가지고 있으며, 의지의 경향심 가운데 존재하고 있으므로 하나의 전체로서의 인간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죄는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18)고 했고 또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 죄 밑에 있음을 고하고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달은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9-20)고 했다. 이와 같이 율법의 행위에 의해서는 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예수는 이런 죄인을 병든 자(마 9:12)라고 말씀했고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이 죄라고 말하면서 그것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우리 인간의 깊은 곳까지 침투되어 있는 죄의 상태적 성질을 신학에서는 원죄라고 불러왔다. 그러므로 원죄의 의미는 우선 죄의 근본성을 의미한다. 즉 원죄는 영혼의 전부에 침투된 우리들의 성질의 유전적인 부패이며, 먼저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진노 밑에 있게 하며(엡 2:3), 육의 행위(갈 5:19)를 우리 속에 초래하는 것이다. 이런 원죄의 교리는 역사적으로 '어거스틴'에 의해서 체계화되고 '칼빈' 등 여러 개혁자에 의해서 신학적으로 해석된 것이다. 그리고 원죄의 교리의 특징은 죄가 단순히 우리들의 성질을 깊이 침범하고 또 전체 인간에게 전파되었음을 말할 뿐 아니라 이러한 상태로서의 죄를 시조 '아담'의 타락과의 관계에서 설명하는 데 있다. 기록한 바와 같이 타락의 기사는 '아담'의 죄와 그 후손과의 관계를 기록하고 또 '시편' 51절5절은 죄의 유전을 설명해준다. 성서는 이와 같은 죄의 유전과 또 '아담'의 원죄의 유전을 기록하고 있음이 사실이다. '칼빈'은 이 사실을 '아담'의 타락이 전 인류에게 감염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만일 이 원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다른 모든 사실적인 죄도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죄의 개념은 인간성을 하나의 전체로서 보는 것이다. 죄는 결코 개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원죄는 전 인간성을 말한다. 인간성 가운데는 죄에의 경향성이 언제나 내재하고 있어서 그것이 세대를 이어 재생하곤 한다. 이러한 죄의 내용이 무거운 멍에로서 인간 위에 지워져 있으며, 또한 개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하나의 악마적인 세력으로 나타난다.

 

4. 죄의 극복

성서는 이러한 죄를 인생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로 취급한다. 다른 종교와는 달리 기독교 신앙은 죄를 가장 큰 문제로 생각한다. 주 예수의 생애에는 그 전부가 인간의 죄와 관계하고 또 그의 구원과 관계된다. 그러므로 예수는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다"(누가 19:10)고 하셨고, 또 그는 육체의 병을 치료하는 것보다 죄의 해결을 더 근본적인 것으로 생각하셨다(막 2:1). 죄는 하나님께 대한 인격적 반역이기 때문에 그 해결은 다만 하나님의 수중에 있고 우리 죄인은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을 행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롬 3:20)고 하였고 또 "오호라 나는 괴로운 사람이로다. 누가 이 죽음의 틈에서 나를 건져 주겠느냐?"(롬 7:24)고 부르짖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절망 속에 그대로 방치해 두시지 않는다. 인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해결을 위해서 하나님은 스스로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간이 받을 심판을 친히 받으시고 구원의 길을 여신 것이다. '바울'은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의를 나타내 보이시려고 그리스도를 세워 그의 피로 속죄 제물을 삼으시고 그리스도를 믿음의 길을 통하여 죄를 너그럽게 보신 것은 지금 이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의를 나타내 보이심으로서 하나님 자신이 의로우실 뿐 아니라 예수를 믿는 사람까지 의롭다 함을 얻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롬 3:25-26).

'아담'에 의하여 대표된 구 시대의 육의 사람과 그에게 속한 죄와 죽음과 심판과 불순종은 새로운 시대의 대표자인 영의 사람 그리스도에 의하여 극복되고, 신앙에 의하여 그에게 연결된 자들에게 은혜와 생명과 의와 순종이 이루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