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인간이 되신 하나님

(48-54)

 

 

"전능하신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신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이러한 신앙고백은 기독교 이 천년의 역사를 통해 한결같이 고백되어 온 전통적인 신앙교리이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평범하고 자연적인 출생이 아니었음을 모든 기독교회가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시 맞이하는 성탄절을 당하여 과연 예수님이 동정녀에게서 탄생했느냐 아니냐 하는 전통적 역사적 신앙의 진위(眞僞)를 논하기보다는 예수께서 육신으로 오셨다는 그 의의가 무엇인가를 살펴봄으로서 오늘의 우리의 신앙태도를 다시금 새롭게 하여야 할 줄 안다.

 

1. 수육의 성서적 의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하나님이시니라.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말씀들은 성서에서 증언하는 바 예수의 수육에 관한 대표적인 말씀들 일 것이다. 이 말씀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가르쳐 준다.

(1)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함은 태초에 있던 말씀이 이 사건의 선도권(先導權 initiative)을 가졌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은 말씀 자신의 행위이지 인간 역사 속에 내재한 필연성이라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하나님의 말씀, 즉 하나님의 아들이 피조물인 인간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의 새로운 창조이며 피조자 자신의 여하한 행동도 아니며, 천지창조와 같은 하나님 자신의 행위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창조가 아니라 죄에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하시고 행동하시고 계시하시는 것이다.

(2) 한편 그리스도의 수육은 하나님의 본질이 피조자의 본질로 변했다거나 또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제 3의 존재가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으셨다는 것으로 하나님이 현실적인 인간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그 신의 본질을 포기한 것이 아니요 단순히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인간성을 입고 세상에 오신 것을 말한다. 구체적으로 그가 마리아의 장남 예수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따라서 그는 스스로 진실한 하나님이면서) 또한 하나의 진실한 인간임을 의미한다.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神性)과 인성(人性)이 동시에 거하는 신인(神人, God-Man)임을 의미한다. 예수는 참 하나님이요 참 사람이시다.

(3) 우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는 우리 가운데 오셨고, 우리를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서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는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계시요, 하나님을 향하여는 우리의 속죄주가 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육의 날이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날이라 함은 영원이 시간의 세계 속에 개입하신 날이요, 불가시적인 하나님이 가시적인 하나님으로 변하여, 인간들을 위해 나타나신 날임을 말하는 것이다. 말구유에서 탄생하여 강보에 쌓인 아기 예수는 바로 하나님의 화신이다. 그러므로 수육이 없이는 하나님은 영원히 인간 세계에서는 숨어 계신 분이시다. 예수 자신이 말씀하신 바,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요 14:9) 하심은 곧 이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도 "누구든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이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얻으리라."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다고 함은 놀라운 구속의 사건인 것이다.

(4) 이 같이 '크리스마스'는 어느 한 유명한 인간이 출생한 날이라는 것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 예수의 탄생은 전적으로 하늘의 사건이지 땅의 사건이 아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향한 수직적인 사건이다. 이 날, 인간의 반역과 죄로 오래 단절되었던 하늘과 땅은 신비에 쌓여서 서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천군 천사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노래하였다. 이러한 천사들의 노래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갖는 두 가지의 의의가 있으니 곧 첫째로 하나님께 최대한 영광이 된다는 것이고, 둘째로 땅에 사는 모든 죄인들에게는 참된 해방과 자유와 평화의 성취가 된다는 것이다.

 

2. 수육의 역사적 의의

'세계 문학사 대계'의 저자인 'H.G. 웰즈'는 유사 이래 가장 위대한 인물로 예수를 지적하고 그의 위대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예수가 위대하다는 말은, 그 사람이 자신을 위해서 무엇을 얼마나 쌓아 놓았는가, 혹은 죽음과 함께 무너져 없어질 그 무엇을 얼마나 많이 건설하였는가에 의하여 평가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와는 반대로 그가 세상에 존재하였기 때문에 세계에 달라진 것이 무엇이며, 인간들에게 어떠한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으며, 그가 죽은 후에도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오래도록 존속할 수 있는가에 따라서 정한 것이다." 크리스천도 아니요 개인의 영생을 믿지도 않는 순수한 과학적 역사가인 그가 예수를 역사상 최대의 인물로 꼽은 것은 유사 이래 예수같이 위대한 영향을 인류에게 준 사람이 없고 또 그분 같이 사람의 마음에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준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갈릴리' 목수의 집에 탄생하신 예수는 사가 '웰즈'가 본대로 인간적인 입장에서만도 역사상 최대의 위인의 영예를 받으시기에 합당하다. 그러나 예수는 결코 그렇게 단순한 역사적 인물만은 아니다. 그의 생에 있어서는 너무나 위대한 것, 너무도 이상한 것, 너무도 거룩하고 신비스럽고 역설적인 것이 많다. 고로 그의 생애는 하나의 기념상이나 전기만을 남긴 것이 아니다. 그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즉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예수의 사건은 역사과정에 있어서 결정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다. 그 이유는 역사란 결국 자연이라는 무대 위에서 신이라는 감독의 지도 밑에 배우인 인생이 연출하는 하나의 연극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사실은 역사 안에는 인간의 힘 이상의 힘, 자연의 힘 이상의 힘, 즉 어떤 신비한 초자연적인 힘이 활동하고 있음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고로 예수가 탄생하던 날, 들의 목자들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노래했다. 이 노래 속에는 이 우주 속에 예수의 위치가 어떤 것이냐 하는 것을 보여준다. 옛날부터 위대한 종교가, 성현, 제왕들이 출생할 때에는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고 축복이 있었다는 전설은 많다. 그러나 예수가 탄생했을 때같이 하늘, 땅, 사람의 총 무게를 한 몸에 실은 송영을 볼 수 없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수육의 역사적 의의는 무엇인가?

 

(1) 첫째는, 무너졌던 우주의 질서가 회복되었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타락으로 인하여 역사과정에는 일대 변조가 생겼다. 자연계에 부조화가 일어나고 인류에게는 죄악이 만연하게 되고 그 결과로 고통과 사망이 인간 역사에 침입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창조주와 인간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장벽이 생겼다. 이로 인하여 창조주와 인간은 모두 불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장벽을 헐어버릴 길은 전혀 없었다. 율법도 예언도 모든 노력이 수포였다. 그러나 드디어 최후로 유일한 길이 열렸다. 이 길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 인간이 되어 역사 속에 개입하시는 일이고, 자신을 십자가에 화목 제물로 내어 줌으로써 허물어졌던 우주의 질서는 회복되고 새로운 질서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고로 수육의 날은 인간 역사가 정상적인 상태로 들어가는 평화의 첫날이다. 이 날은 역사가 시작된 날로부터 종국에 이르기까지 가장 행복된 날이다. 인류의 구원은 이 날에 시작되었고 죄악에서 신음하는 인간은 이 날에 해방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날은 인류역사에 있어서 일대 전환을 가져다 준 날이다.

 

(2) 둘째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인류에게 계시하신 것이다. 이 날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새로운 사랑의 윤리가 수립되었다. 즉 내 인격 이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몸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새 도덕이 탄생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고 외쳤다. '때가 찼다'는 말은 '기약이 이르렀다'는 말이다. 즉 자신의 출현으로 인해 어떤 기다리던 것의 만기가 되었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예수 이전의 역사는 결국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 세상에 나타나시기를 대망한 준비의 역사라는 말이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그 준비의 완성이 된다. 또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 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사랑이 행해지는 곳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두 관계를 회복하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심으로 우주에 생긴 최대의 변화는 머나먼 거리에 있던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고, 인류가 그의 자녀가 되는 길이 열려진 것이다. 인류에게 아들의 심정을 넣어 주고 아들의 자유를 갖게 하는 것, 이것은 실로 인간역사에 있어서 혁명적인 전환이다. 이에 의해서 율법이나 예언의 시대는 지나가고 신앙과 사랑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3) 또한 인류에게 새로운 생활의 원리를 제시해 준 것이다. 이 원리는 회개와 신앙의 생활이다. 예수는 복음전파를 시작하시면서 먼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부르짖었다. 새 세계에 살기 위해서는 새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회개와 신앙이 없이는 새 사람이 될 수 없다. 육으로 난 자는 육이요, 영으로 난 자는 영인고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새로운 생활의 원리이다. 예수는 마치 강을 건너려는 사공이 나루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가기 전에 먼저 모든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가벼운 몸으로 배에 올라 사공만을 의지하라고 승객들에게 명령함과 같다. 짐을 버리는 것은 회개요, 의지하는 것은 신앙이다. 이것만이 육의 세계에서 영의 세계로 옮기는 유일한 생활원리이다. 실로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사건은 두 개의 세계를 이어 주는 경계선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는 말씀은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를 하나로 만든 화해의 주가 되셨다는 뜻이다.

 

3. 수육의 현대적 의의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이 사실을 하나의 기념일로만 생각하고 오늘에 있어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아무리 그 내용이 신비스럽고 역사적 의의가 컸다고 할지라도 수육의 깊은 뜻은 소실되고 말 것이다. 이 수육의 사건은 아기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심같이 오늘의 교회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이 세상에 새롭게 증명하는 화신(化身)이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처음 하나님이 인간이 되실 때에는 말구유에서 '마리아'의 몸을 빌어 유대 땅에 수육하셨으나 오늘의 하나님은 교회를 통하여 전 세계에 재현되어야 한다. 마치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인간인 예수로 스스로 화육하신 것 같이 오늘의 그리스도는 교회를 통해서 세계 인류에게 산 증거를 입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오늘의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가 교회를 통해서 이 세상 모든 분야를 그의 주권과 능력으로 새롭게 하는 운동을 일으키고 부자유한 백성을 자유롭게 하며 굶주린 백성에게 온정과 자비가 베풀어져야 하며 개인과 개인 사이의 마음의 장벽을 헐어버리고, 나아가 인종, 문화, 언어, 국적들 사이에 가로놓은 모든 현대의 거침돌들을 제거하여 이들 사이에 화해의 대화를 실현할 때에 비로소 수육의 사건은 현대적 의의를 지니게 될 것이다. 이것이 빛으로 부름 받은 현대교회의 사명이기도 하다. 예수의 탄생은 분명히 사로잡힌 자를 다시 놓아주고,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고, 눌린 자를 다시 자유롭게 하려고 자신을 제공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몸된 교회는 그 지체인 그리스도인들을 이 시대의 말구유에 다시 나게 함으로써 가난과 공포와 불안과 초조감에서 허덕이는 이 백성들에게 사랑의 화신이 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이웃에 대해 외면하는 그런 관념적인 사랑을 버리고, 실제적으로 내 눈에 보이는 이웃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사랑의 봉사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