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그리스도론의 이해

(55-61)

 

 

1. 그리스도는 누구냐?

예수는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전도하실 때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마16:13)고 물으셨고 또 '바리새파' 사람들이 모였을 때 "너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마 22:41-42)고 질문하셨다. 그리스도가 누구냐? 이것은 인생 최대의 질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대체로 두 가지로 표현할 수 있다. 하나는 그를 위대한 인격자로, 뛰어난 교사로, 예언자로 혹은 종교적인 인격자로 믿고 그를 존경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그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엄밀한 의미에서 그를 신앙의 대상으로 믿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종교적으로 최고의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는 절대적이 아니고 상대적이다. 이러한 견해는 누구에게나 납득하기 쉬운 것이나 성서가 증언하는 그리스도는 아니다. 그리스도가 누구냐? 하는 물음에 대한 두 번째 대답은 그리스도는 주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태도다. 이러한 태도는 그 속에 독자적인 의의를 인정하고 계시와 속죄,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약속이 이와 관계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태도는 그를 단순히 존경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의 대상으로 믿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론을 설명함에 있어서 크게 둘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그의 수육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론과 둘째는 그의 죽음을 중심으로 한 속죄론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수육자(受肉者) 그리스도, 즉 그리스도의 인격의 문제를 중심으로 성서의 증언과 교회 역사상 있었던 그리스도 논쟁, 그리고 그의 인간성과 신성 등에 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2. 그리스도에 대한 성서적 증언

그리스도의 신앙의 기초가 되는 그리스도의 사건에 관한 기초적인 증언은 성서다. 물론 성서의 증언 가운데는 율법과 예언의 메시야에 대한 대망의 형식을 취한 구약성서의 증언도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인격을 직접적으로 취급한 것은 신약성서다. 그 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적 사실을 정확히 증언하는 것은 4복음서이다. 4복음서는 그의 탄생, 그의 생애, 그리고 그의 최후의 고난과 십자가 부 활동을 상세히 말해준다. 4복음서에 이어서 그리스도의 사실을 전하는 것은 사도행전, 서간, 계시록이다. 그러나 이런 책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실보다 이 사실에 대한 신앙고백을 중심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실과 고백, 이 둘은 분리할 수 없다. 공관복음은 그의 인격적 사실에 관해서 먼저 그들 사람의 아들(人子)로 증언한다. 즉 그는 "마리아의 몸에서 나서 지혜가 자라고 몸도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고 하였다. 이것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람으로서 성장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는 보통 사람과 같지 않고 탁월한 인격자로 묘사되었다. "그는 학자와 같지 않고 권위 있는 사람과 같이 말하더라"(막 1:22). 또 "한 백부장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목격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다고 말했다(눅 23:47). 이와 같이 4복음서는 그의 무죄성을 증명한다. 즉 그는 윤리적으로 종교적으로 완전한 사람임을 증언해 준다. 그의 독자적 의식이란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자는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마 11:28)는 그의 대담한 선언이라든가 '마태복음' 5장 17절 이하에 표시된 구약성서 및 '유대' 전통에 대한 그의 태도라든가, "인자가 온 것은 일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왔다."(눅 19:10)는 등등의 표현은 그의 독자적인 자의식이다. 이런 표현들은 그리스도의 인격적 사실에 대한 증언이다.

그러나 신약성서는 이러한 사실에 대한 증언 뿐 아니라 사실을 체험한 신앙 고백적인 증언도 있다. 이것이 바로 사도행전, 서간 또는 요한 서신 등이다. 공관복음은 그리스도라는 객관적 계시의 사실을 제공하지만 사도행전은 오순절 날 성령강림으로 제자들은 이 객관적 계시를 주관적으로 체험하게 되었고 그것은 신앙으로 고백하였다. 이 신앙고백을 주라는 말로 표시하였다.

 

3. 그리스도에 대한 역사적 증언

그리스도에 대한 신약성서의 증언은 그리스도론 수립에 기초가 된다. 그러나 이 문제를 중심으로 교회 역사상 많은 논란이 있었다. 시기적으로 구분한다면 초대교회, 종교개혁 시대 그리고 현대로 구분할 수 있다. 최초에 나타난 그리스도론의 문제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있어서 그의 신성한 인성의 실제성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즉 초대교회가 찾은 그리스도의 개념은 그리스도의 참되고 정당한 신성, 그의 참되고 정당한 인성, 한 위(位) 안에서의 신성과 인성의 연합, 그리고 한 위 안에서의 신성과 인성의 정확한 구별이다. 고대 교회는 이러한 요구들이 전부 혹은 일부라도 부정되면 그리스도의 개념은 건전치 못한 것이었다. 고로 고대교회에서 일어난 모든 그리스도론적 이단들은 이 진리의 교리적 진술에서 이 모든 요소들을 결합시키지 못한 데서 생긴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의 참된 인성의 전부 혹은 일부를 논박했다. 또 어떤 이는 위의 단일성을 무시하기도 하고 혹은 위의 구별을 부인하기도 했다. 이런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교회는 여러 차례의 회의를 열어다. 첫째는 325년에 열렸던 '니케아' 회의였다. 이 회의에서는 그리스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루었다. 즉 그리스도의 피조성을 주장하고 그의 신성을 부정하는 '아리우스'주의를 배격하고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을 주장하였다. 그리스도는 제 2의적(第 二意的)인 신이거나 최고의 피조물이 아니라 세계의 창조자이시며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니케아' 회의는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흡사한(like substance) 분이 아니고 하나님과 동질(same substance)이다. 두 번째 381년에 열린 제 1회 '콘스탄티노폴' 회의다. 이 회의에서는 그리스도와 인간적의 관계를 취급하였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부정하는 '아포리낼리우스'주의를 배격했다.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간성을 강조하고 그리스도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은 전면적 인간이다. 예수는 인간과 비슷한 분이 아니요, 인간에게서 나온 자요, 인간과 동질의 사람이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의 무죄성이다. 그 무죄성은 인간의 성취를 의미한다고 결정하였다. 세 번째는 451년에 열린 '칼케돈' 회의다. 이 회의에서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면서 사람인 양성의 통일을 확인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동시에 사람의 아들이다. 그렇다고 두 아들이 아니라 한 아들이다. 이 회의는 그리스도의 양성은 혼합할 수 없고, 변할 수 없고, 분리할 수 없는 하나의 인격임을 확정했다. 네 번째로는 681년에 열린 제 6회 세계교회 회의다. 이 회의에서는 한 인격 속에 양성이 변함없이 각각 완전한 성질을 갖고 존속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렇게 해서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본질에 관해서 완전한 해결을 보았다. 종교개혁 시대에 있어서의 그리스도론은 대체로 '칼케돈'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개혁자들은 대체로 그리스도라고 하는 하나의 인격 속에 신인 양성의 완전 통일을 시인하고 먼저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면서 또한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그는 완전한 인간임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그리스도론의 통일된 견해가 무너지고 여러 가지 색다른 해석의 경향이 나타났다.

 

4. 사람이신 그리스도

기독교에는 두 가지 이단이 있다. 하나는 그리스도는 완전한 사람이지 하나님이 아니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사람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성서에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라는 명백한 말은 없으나, 그러나 그의 성격, 그의 행위를 미루어 보아 그는 사람이 아님이 명백하다. 특히 그가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권능을 소유하였으며 사람은 죄 사함을 위해서 그리스도와 같은 분을 요구하는 점에서 생각해 보아도,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교 신자 전체가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신성문제에 관하여 투쟁하여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스도가 만일 사람일 뿐 하나님이 아니라면, 우리 죄인들에게는 용서의 확신이 있을 수 없고 부활의 소망이 있을 수 없고 영생의 약속을 기대할 수 없다. 두 번째 이단은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지 사람이 아니다 라는 주장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사람이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보다 더 큰 이단이다. 사도들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주장함과 동시에 그의 인성을 강조했다. 그리스도교회는 때때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그의 인간성을 잊어버릴 때가 많다. 성서는 명백하게 그리스도의 인성을 증명한다. 이 사실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 준 말씀은 '디모데전서' 5장 2절이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뿐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또 공관복음서는 사람이신 그리스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그는 '마리아'의 몸에서 나서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시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 공관복음은 신체적으로 우리와 같은 사람이신 예수를 증언한다. 즉 그는 우리와 같이 형제자매가 있었고, 일하였고, 굶주리고, 목마르셨으며, 피곤을 느끼고, 휴식을 취하시고, 주무시고,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다. 따라서 그는 신체적으로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지·정·의가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다. 즉 그는 슬퍼하시고, 근심하시고, 놀라시고, 기뻐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며, 사랑하셨다. 그가 12세 때에는 박식한 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을 상대로 변론을 하심으로 그의 비범한 지성을 보이시기도 했다.

 

5.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그러나 그리스도는 사람만은 아니다. 그는 완전한 사람인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우주의 중심 문제다. 성서는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증명한다.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은 하나님이시다."라고 한 이 말씀은 그리스도를 지적함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1장 14절에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했다."라고 했다. 그것은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나사렛' 예수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인류의 일원으로 나타나신 자이며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또 '요한복음' 20장 28절에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인 '도마'는 그리스도를 향하여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하고 예수를 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그 때 예수는 '도마'의 호칭을 거부하시지 않고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다."고 하셨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자신이 하나님을 분명히 인정하셨다. 그리고 '로마서' 9장 5절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증명한다. "조상들은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여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이 말은 주해할 필요도 없이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심을 증명해 준다. 위에 지적한 성구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성을 설명해 주는 성구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그러면 예수는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요 20:31)믿는 것이 그리스도교요 그 사실을 전하는 것이 선교요 그 내용을 탐구하는 것이 성서연구의 목적이라면, 어떤 의미에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말할 수 있을까? 그가 초자연적으로 처녀의 몸에서 탄생하셨기 때문인가? 또는 그가 부활승천하셨기 때문인가? 물론 이런 사실들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심을 증명하는 이유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보다도 더 큰 이유가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완전한 의에 근거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리스도에게 무한한 능력과 지혜가 있어도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이 결핍되었다면 그는 하나님이 아니다. 고로 '요한서신' 기자는 하나님은 곧 사랑이라고 하였다. 만물의 중심은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중심은 사랑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이요 계시다. 그리스도는 그의 교훈과 행위에 있어서, 그의 전 생애를 통해서 완전한 사랑을 나타내셨다.

고로 사랑은 그리스도요 그리스도는 곧 사랑이시다. 사랑은 그리스도의 대명사다. 그리스도의 전기를 읽고 그에게 사람이 불완전하다고 비판할 사람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 죄 없는 그를 십자가에 못을 박는 무리를 향해서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옵소서. 저들은 저희가 해야 할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하고 원수를 위해 복을 빈다는 것은 완전한 사랑이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의 완전한 사랑 때문에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이 사랑을 이해함으로 그가 행한 기적도, 부활도, 승천도 재림도 용이하게 믿을 수 있는 것이다.